도시는 진취적 인간해방의 공간...분업구조·복잡성 이해 못해

적금 타 주택자금 마련되면, 을랑이 엄마
내다버린 생각들을 다시 챙겨
메추리가 뒤란으로 기어드는 산골마을
곱게 깔린 노을 아래로 가자
가서, 솔가지 지펴 저녁연기 올리며 살자
집 둘레엔 듬성듬성 탱자나무 심어 울타리를 치고
빨래가 재주넘는 나일론줄도 달아보지 않으련?
-김영남의 시 ‘초향(草鄕)’ 앞부분

   
▲ 조우석 문화평론가
1990년대 말 일간지 문화면에 소개됐던 시작품 하나를 오려서 수첩에 넣고 다녔다. 틈나면 꺼내 읽다가 어느덧 외워버린 게 이 작품이다. 시인이 그리 유명한 분이 아니고, 시 역시 시사(詩史)에 남을만한 걸출한 작품이라고 할 순 없다. 하지만 이 시인이 시어(詩語)을 매만지는 솜씨가 남다른데다, 내용도 우리의 귀소 본능을 자극해서인지 심금을 울린다.
 

내가 시골 출신이라서 더욱 그랬을 것이다. “메추리가 뒤란으로 기어드는 산골마을/곱게 깔린 노을 아래”로 가서 “솔가지 지펴 저녁연기 올리며 살자”는 식의 소리를 들으면 바로 무장해제되고 흐물흐물해진다. 그건 누구라도 마찬가지가 아닐까? 반세기 전까지 한국인 대부분은 시골에 거주했으니 지금도 우리에게 도시란 그렇게 편안한 거주환경이 아닐 수 있다.
 

그걸 새삼 확인시켜주는 김영남의 시는 정지용의 명시(名詩) ‘향수’를 연상시킨다. “눈 감으면 언제라도 맑은 하늘이 숨 쉬는 고향 개울가” 이야기도 좋고, “밤이면 새끼줄 같이 긴 시를 쓰면서/달빛 쫓겨 가는 새벽 냇가 풀숲에 염소를 풀어 놓는” 낭만적 시골생활에 대한 꿈은 또 얼마나 은근하던가. 나중 은퇴하면 아내와 함께 충청도 고향으로 돌아가야지 하는 소망을 그때의 나는 품고 있었는데, 세월이 지난 지금은 확 달라졌다.

출판-지식사회-문화계를 휩쓰는 ‘정치화한 생태주의’의 문제

요즘은 김영남의 시를 잘 읽지 않으며, 시골생활에 대한 꿈도 접었다. 사람이 좀 둔감해진 탓일까? 그럴 수도 있다. 하지만 내 딴에는 전보다 균형이 잡혔으며 세상을 보는 시선도 상대적으로 나아졌다고 생각하는데, 무엇보다 생태주의-환경주의에 대한 미련을 거의 떨쳐냈다.
 

그렇게 된 건 어느 날 갑자기 우리시대 유행 품목으로 등장한 ‘정치화한 생태주의’에 질렸기 때문이다. 왜곡되고, 정치화된 생태주의에는 어설픈 센티멘탈리즘이나 허위의식이 깔려있는 건 물론 때론 아주 음험한 정치적 목적까지 깔려있다는 걸 눈치챘다. 사실 ‘꿈에 본 내 고향’ 등 흘러간 대중가요에서 제아무리 고향타령을 반복하고, “나는야 흙에 살리라”고 목이 터져라 다짐해도 그건 위안으로서의 노래에 불과하다. 
 

   
▲ 박원순이 내건 '환경주의 깃발'은 실은 도시에 거의 적대적이기조차해서 특단의 조치가 없다면 두고두고 서울의 우환덩어리로 작용할 우려가 높다.
21세기를 사는 우리 대부분은 이미 도회지에 두 발을 붙이고 산다. 그런데도 이명박 정부 시절 정치적인 이유를 앞세워 4대강 반대를 외치는 녹색 좌파들의 위선과 뒷모습을 두 눈으로 보았다. 정상(定常)에서 먼 저들은 세상을 19세기 이전으로 되돌리려는 역사 퇴행의 무리에 불과하다는 걸 그때 새삼 알아챘다. 당시 작은 깨우침도 함께 얻을 수 있었다.

김영남의 시를 외울 무렵 빨려들 듯 읽어뒀던, 생태주의 삶을 실천한 미국인 니어링 부부의 <조화로운 삶>, <조화로운 삶, 사랑 그리고 이별>등의 저술, 헬레나 노르베리 호지 여사가 쓴 티벳 이야기 <오래된 미래> 등에서 배운 것을 정리할 건 정리하고, 또 많이 내려놓을 수가 있었다.
 

그 뒤엔 “느리게 사는 삶”, “어머니 대지(大地)” 어쩌구 하는 생태주의 단골 용어 따위로부터 거리를 두고 살기로 했다. 그래서 요즘의 나는 헨리 데이빗 소로의 <월든>이나, 노장(老莊)사상을 희롱하며 그걸 세상과 현실에 대한 교묘한 공격으로 활용하는 무리를 살짝 무시하거나 경멸하는 편이다. 인문학 애호가를 자처하는 저들 집단은 의외로 지식-정보를 오염시키는 수상한 집단일 수 있다.

산업혁명 이후 도시는 진취적 인간해방의 공간이란 사실에 눈떠야

그러다가 몇 년 전 가짜 생태주의의 허구성을 평정해버린 진화학자 매트 리들리의 훌륭한 저술 <이성적 낙관주의자>을 만날 수 있었다. “어쩌면 나와 비슷한 생각이 이 책에 두루 담겼을까?”하는 발견을 했다. 저자 리들리에 따르면 그동안 우리는 도시를 과도하게 깎아 내려왔고, 대신 시골·자연을 치켜세우는 행위를 지치지 않고 반복해왔다. 시, 음악, 소설 등의 대부분 작품은 자연예찬이기 십상이다.
 

하지만 산업혁명 이후 역사를 훑어보라. 도시는 진취적 장소이자, 인간해방의 공간이었다. 그게 진실이다. 리들리는 단언한다. “인도 여성에게 왜 뭄바이로 가려는가를 물어보라. 도시는 위험하지만 자유롭고, 또 수많은 기회의 상징이다. 반면 고향 땅이란 임금 없는 노동과, 숨 막히는 간섭과 통제만이 있는 곳이다.

그건 19세기 미국의 헨리 포드에게도 그러했다. 그가 훗날 자동차를 발명했던 건 ‘미국 중서부 시골의 끔찍한 권태로부터 탈출했기 때문’이다.” 산업혁명 이후 서구·비서구의 숱한 젊은이가 도시로, 도시로 빨려 들어갔던 건 그곳의 자유와 숱한 기회에 매료된 탓이다.

도시에서 창조적 파괴가 일어났고, 현대의 삶이 펼쳐졌다. 그 결과 2008년을 기점으로 인류 역사상 처음으로 지구촌 인구의 절반이 도시에 살게 됐다! 이런 거대한 인구학적, 역사적 변화는 누가 시키거나 강요한 게 아니다. 문명의 새로운 리듬이었다.

한국의 도시인구는 81.5%…일본(66.5%)을 너끈히 앞선다

한반도 20세기도 그러했다. 산업화가 시작된 1960년대 이래 사람들은 새로운 기회를 찾아, 그리고 자유와 변화의 공기를 따라 정든 고향을 떠났고, 거대한 성취를 거뒀다. 그 길은 자동차왕 헨리 포드가 걸었던 길이고, 지금은 시골을 떠나는 인도 여성들이 뒤따르고 있는 길이며, 우리가 매년 추석과 설날 민족대이동의 귀성전쟁 때마다 한 번씩 되짚어보는 코스다.
 

참고로 우리나라의 도시인구는 무려 81.5%이다. 그건 일본(66.5%)·인도(29.4%)를 너끈히 앞서는 수치다. 오해 마시라. 그건 우리사회가 역동적이란 증거이지, 고향을 잃은 채 뿌리 뽑힌 삶을 산다는 슬픈 얘기가 결코 아니다. 문제는 ‘생태주의라는 괴물’이 일부 못난 지식인 사이에서 여전히 살아있다는 점이다. 그 괴물은 때론 우리 눈을 가리거나 오도한다.
 

도시에 살면서 시골을 동경하던, 몸 따로 마음 따로의 이중구조를 만들어놓는다. 그런 낭만적 취향을 한두 명이 품고 있는 건 사회에 해가 되지 않는다. 그러나 서울시장 박원순 식의 생태주의라면 얘기는 또 달라진다. 박원순이 일부 눈 밝은 사람들에게서 “도시를 파괴하려는 좌익정치가”라는 비판(정규재 지음 <닥치고 진실> 22쪽)을 듣는 건 이유가 있다.
 

지난 번 글에서 나는 박원순이 내건 '환경주의 깃발'은 위선적 좌파의 기치라고 지적했다. 도심의 숲을 군사작전하듯 베어내는 환경파괴가 논란이지만, 더 엄중한 사실은 따로 있다.

인구 1000만 명의 행정을 책임진 박원순은 도시의 복잡성과 고도화된 분업구조 자체를 모른다. 실은 도시에 거의 적대적이기조차한데, 특단의 조치가 없다면 그게 앞으로 3년 그게 두고두고 서울의 우환덩어리로 작용할 것이다. /조우석 미디어펜 논설위원, 문화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