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석방이나 사면요건 갖춰도 반기업정서 작용으로 역차별

   
▲ 이동응 경총 전무
우리 경제의 역동성 저하에 대한 우려의 목소리가 높다. 내수 부진이 지속되는 가운데, 선진국 경기둔화와 엔저로 수출 환경도 악화되고 있다. 이를 반영해, 올 2분기 제조업 매출액 증가율은 전년대비 -4.2%로 지난 금융위기(2009년 3분기, -5.5%) 이후 가장 저조한 성적을 기록하였다.

물론 우리 경제의 침체는 대내외 경제환경 악화에 기인한 것이지만, 지속되고 있는 기업 투자 위축의 영향도 주요한 요인 중 하나다. 생산과 소비 증대, 내수 진작과 고용률 증가의 선순환의 시발점이라고 할 수 있는 기업 투자가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고 있는 것이다.

이런 가운데 주요 기업들이 경영판단의 주체인 총수 부재의 여파로 대규모 투자나 고용을 미루고 있다. 기업이 과감한 투자를 망설이는 이유로 경영환경 악화, 과도한 규제 등을 들 수 있겠지만 총수 부재에 따른 영향도 무시할 수 없다.

“내가 책임질테니, 해 봐”라는 총수가 없기 때문에 해외진출이나 인수·합병을 포기하거나 투자 규모를 줄이고 있다. 이 때문에 현재 수감 중인 기업인의 가석방이나 사면의 필요성도 심심치 않게 거론된다. 경제 회복의 실마리를 기업의 투자 활성화에, 기업의 경영 판단을 오너의 리더십에 기댈 수밖에 없다는 맥락에서다.

원칙적으로 기업인을 포함한 모든 국민은 위법한 부분에 대해서 법적 제재와 처벌을 받아야 하겠지만, 잘못한 것 이상으로 비난을 받아서는 안 된다. 특히 현행법 상 가석방이나 사면의 요건을 갖추었는데도 불구하고 반기업정서 등이 작용해 역차별을 받는다면 큰 문제다.

유전무죄(有錢無罪)가 안 되는 것처럼 유전필죄(有錢必罪), 다전중죄(多錢重罪)도 정의와 상식에 반하기 때문이다. 경제부총리의 "기업인에게 특혜를 주자는 것이 아니라 가석방 등의 기준을 판단함에 있어 기업인이 역차별을 받으면 안 되지 않냐"는 발언도 같은 관점일 것이다.

기업인들의 사면을 이야기하기 전에 짚어봐야 할 부분이 있다. 기업인의 죄목에서 빠지지 않고 등장하는 배임죄 논란이다. 배임죄는 그 성립요건과 처벌에 있어서 법조계에서도 논란이 많다. 특히 실무 상 허용되는 위험부담 경영행위와 금지되는 투기행위의 한계가 불명확한 상황에서 경영행위에 대한 법적 사후판단은 기업은 물론 국가 경제에도 악영향을 미친다는 데 법조계도 어느 정도 공감하고 있다.

독일이 배임죄를 도입했지만 제한적 법적용으로 실제 처벌한 사례를 찾기 힘든 것이나, 미국이 기업인의 경영행위를 존중하는 ‘경영판단의 원칙’을 판례법 상 원칙으로 확립한 것도 같은 이유 때문이다.

얼마 전 대통령은 국회 시정연설을 통해 창조경제를 통한 경제 활성화의 의지를 다시 한번 확인했다. 창조경제는 위험을 감수하는 기업인들의 용기 있는 결단과 과감한 투자가 있을 때 가능하다. ‘모든 기업인들이 잠재적인 배임혐의자’라는 자조 섞인 말이 나오는 이상 진정한 창조경제는 어렵다. 기업인들의 도전정신과 용기 있는 결단이 재평가되어 존중받는 문화가 자리 잡을 때 우리 경제가 새롭게 도약할 수 있는 발판이 마련될 것이다.

‘기업가(Entrepreneur)’는 불확실성과 위험을 기꺼이 감수하는 도전정신을 가진 혁신가(Innovator)라는 점에서 사업을 ‘관리하는 사람(Manager)’과 구별된다. 기업과 경제 성장의 가능성은 우리가 기업가정신(Entrepreneurship)이라 부르는 이 도전정신으로부터 비롯된다. 기업인의 실패에 관대하지 않은 사회 분위기, 경직적이고 모호한 배임죄 적용은 기업가를 소극적이고 방어적인 ‘경영 관리자’에 머물게 할 것이다.

지금 벌을 받고 있는 기업인들 또한 투자와 고용창출을 통해 경제 살리기에 헌신할 기회를 얻길 간절히 바라고 있다. 기업인 사면에 대해 반기업정서의 편협한 시선으로 바라볼 것이 아니라 그들이 경제 살리기에 일조할 수 있도록 공론을 모아야한다. 또한 배임죄 적용범위 제한, 무분별한 배임죄 적용 지양, 기업인 사면 등 기업의 사기를 고양할 수 있는 특단의 방안이 필요한 때다. /이동응 한국경영자총협회 전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