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본소득 공론화하자마자 반나절만에 태세 전환
'간보기'인가? 내부 반발에 신중론 돌아섰나
[미디어펜=손혜정 기자]기본소득 도입 논의를 점화한 김종인 미래통합당 비상대책위원장이 돌연 '연구의 필요성'이라는 취지를 들어 다소 모호한 태도를 보이고 있다. 일각에선 당내 비판을 수용한 '신중론'이라는 평가가 있는 반면, 김종인 특유의 '알쏭달쏭' 정치 화법이 불신을 일으킨다는 목소리도 나오고 있다.

김 위원장은 지난 4일 그동안 군불만 지펴지던 '기본소득 논의'를 직접 공론화시켰다. 그는 이날 오전 비대위 회의를 열어 "기본소득 문제를 근본적으로 검토할 시기가 아닌가 생각한다"며 "전에 없던 비상한 각오로 정책을 세우지 않으면 안 된다. 이래야 국민의 안정과 사회공동체를 방어할 수 있을 것"이라고 언급했다.

김 위원장은 그동안 이준석 전 통합당 최고위원이나 측근으로 알려진 최운열 전 더불어민주당 의원 등의 입을 통해 '기본소득' 이슈를 선점할 것이라는 무성한 '설'에 '할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다'는 식의 애매한 입장을 취해왔다. 그러다 사실상 처음으로 그의 입에서 직접 '기본소득'이라는 의제가 제기된 것이다.

   
▲ 김종인 통합당 비대위원장./사진=미래통합당

그러나 김 위원장은 같은 날 오후 예정에 없던 기자간담회를 열고 반나절만에 말을 바꿨다. 그는 4차 산업혁명 시대에서는 대량 실업 문제가 발생할 것이기 때문에 기본소득을 화두에 올린 것이라는 취지로 설명했다. 그러면서 현재 국가 재정 수준을 고려했을 때 당장 기본소득을 시행하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지적했다.

김 위원장은 "지금 재정 적자 상황으로 치닫고 있는데 기본소득을 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은 환상에 불과하다"며 "앞으로 로봇이나 AI 같은 기계가 사람을 대체하면 대량 실업자가 발생할 텐데 이들의 소득을 보장하기 위한 대책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이어 "그때 가서 대책을 세우면 늦기 때문에 지금부터 기본소득이 뭐고, 기본소득을 어떻게 편성해야 하고, 어떻게 재정 뒷받침을 할지 연구를 계속해야 한다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같은 김 위원장의 태세 전환에 일각에선 그가 일단 숨을 고른 것이라는 평가가 나온다. 경제학계에서도 김 위원장이 '빵을 살 자유' 극대화를 위해 '기본소득'을 이슈화한다는 의도는 '자유' 외피를 쓴 사회주의적 행보라며 일종의 '기만'이라는 비판이 거셌던 터다.

'김종인 비대위'에 줄곧 찬성 목소리를 냈던 당내 최다선(5선) 정진석 의원은 같은 날 당 정책위원회 주최로 열린 '사이다 정책세미나'에서 "보수 진영이 비호감의 대상이 됐다고 하는데 보수의 가치가 실패한 것은 아니다"라며 "보수의 가치를 사수하기 위해서라도 변해야 한다"고 언급했다. 그간 김 위원장이 '보수·자유 우파라는 말은 쓰지도 말라'고 강조하거나 공개 석상에서 기본소득 추진 의사를 밝히는 등 연이어 파격 행보를 보이자 이에 제동을 건 것으로 풀이된다.

비대위를 출범 전부터 비판했던 장제원 의원은 '유사민주당·유사정의당으로 가서는 안 된다'고 이미 한 차례 경고한 데 이어 "기본소득은 복지 구조조정을 어떻게 할 것인가와 증세를 이야기하지 않으면 실현 불가능하다"고 반발했다. 또 당 초선 공부모임에서 김 위원장이 발언한 '물질적 자유'에 대해서도 "구현하려면 '타인의 자유'를 억압해야 한다는 소리"라고 비판했다.

여권에서도 김 위원장이 '기본소득' 운을 떼자마자 즉각 다양한 논의가 오갔다. 김부겸 전 민주당 의원은 "김 위원장이 기본소득 도입을 공식 천명했다. 환영한다"면서도 "보수적 기본소득 논의를 경계한다"고 말했다. 이원욱 민주당 의원도 "정당의 지지도를 높이기 위한 포퓰리즘이 아니라면 여야정 추진위원회를 만들어 논의하자"고 다소 도발적으로 제안했다.

박상병 정치평론가는 '미디어펜'과의 통화에서 김 위원장 특유의 '간보기' 화법은 당의 일관성 있는 방향과 동력을 상실케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 박 평론가는 "김 위원장이 '깜짝 놀랄만한 얘기'로 기본소득을 공론화한 것은 파격적이고 높이 평가한다"면서도 "당의 총의를 모으지 않고 단독 플레이를 하다 내부 저항이나 반발이 나오자 슬그머니 '그 뜻이 아니라 고민해봐야 할 때'라고 말을 바꾸는 것은 준비되지 않는 쇼잉, 화두 선점만 하겠다는 것"이라고 비판했다.

그러면서 박 평론가는 기본소득에 대한 김 위원장의 번복성 행보에 "당 동력도 잃고, 국민의 신뢰도 잃게 만드는 식으론 향후 무슨 얘기를 해도 신뢰를 얻지 못하는, 안 하느니만 못한 자충수가 되고 말았다"고 지적했다.

반면 신율 명지대 교수는 '미디어펜'과의 통화에서 "기본소득은 사실 우파의 아젠다"라며 "김 위원장이 말한 '고민해보는 것'으로는 손해볼 것이 없다"고 설명했다.

이어 신 교수는 "이걸(기본소득 아젠다를) 띄워봐서 반응을 보는 것을 굳이 나쁘다고만 볼 수 없다. 해당 논제는 김 위원장뿐만 아니라 다른 사람도 꺼낼 수 있는 이슈"라고 말했다.
[미디어펜=손혜정 기자] ▶다른기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