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행권, 결국 키코 배상안 최종 불수용
[미디어펜=백지현 기자] 은행권이 외환파생상품 ‘키코(KIKO)’ 사태와 관련해 금융당국의 배상 권고안을 거부했다. 이에 따라 금융감독원이 분쟁조정안을 권고한지 6개월 만에 우리은행을 제외한 모든 은행이 당국의 권고를 거부하는 것을 매듭지어졌다. 

   
▲ 윤석헌 금융감독원장./사진=미디어펜


8일 금융권에 따르면 금융권 안팎에선 은행권이 금감원의 분쟁조정안을 받아들이지 않을 것으로 관측해왔다. 분쟁조정안 자체가 강제성을 수반하지 않는 권고일 뿐인 데다, 이미 대법원의 판결이 난 상황에서 은행이 배상에 나설 경우 배임우려가 크다는 이유에서다. 또 최근 윤석헌 금융감독원장의 입지가 흔들리고 있는 점도 작용한 것으로 분석된다.

금융권의 관계자는 “손해배상 시효(10년)가 지난 상황에서 권고를 받아들일 경우 배임혐의가 될 우려가 있다는 점이 배상안 거부 요인”이라면서도 “최근 ‘금감원장 교체설’ 등 윤석헌 원장의 입지가 많이 흔들리고 있는 점도 작용했을 것”이라고 말했다.

키코 사태는 윤 원장이 취임 후 재조사를 지시하면서 재점화됐다. “키코 문제를 분쟁 조정 아젠다로 올려놓은 것이 가장 잘한 일”이라던 윤 원장은 취임 기간 동안 키코 사태에 대한 언급을 이어오는 등 의지를 갖고 추진해왔다. 그러나 키코 배상에 은행권의 거부가 잇따르면서 윤 원장의 입지에도 영향을 줄 전망이다. 

금융권의 또 다른 관계자는 “해외금리연계 파생결합상품(DLF)와 라임사태 등 최근 불거진 대형 금융사고를 처리하는 과정을 보면 금감원이 금융사를 제압하지 못하고 있다”며 “공을 들여왔다고 자처한 키코 사태 마저 은행권의 거부러시가 이어지면서 금감원과 윤 원장의 입지에 치명타를 입힌셈”이라고 말했다.

앞서 신한‧하나‧대구은행은 지난 5일 이사회를 열어 금감원의 키코 분쟁조정안을 받아들이지 않기로 결정했다. 이들 은행은 그동안 키코 분쟁조정안 수용 여부와 관련해 “이사회의 논의가 필요하다”는 입장을 관철하며 결론을 내지 못했다.

그러나 금감원의 분쟁조정안 수용 여부 회신 기간(8일)이 다가오는 데다, 내부적으로도 이미 5차례나 연장해온 회신 기간을 또 다시 미루기엔 부담스럽다는 의견들이 제기되면서 장고 끝에 조정안을 최종 거부하는 것으로 매듭지었다.

금감원 분조위는 지난해 12월 키코 피해기업 4곳(일성하이스코‧재영솔루텍‧월글로벌미디어‧남화통상)과 관련해 상품을 판 6개 은행(신한‧하나‧우리‧산업‧대구‧한국씨티은행)에 대해 피해액의 15~41%를 배상할 것을 권고했다.

이들 기업의 피해금액은 1490억원으로 추산된다. 금감원이 배상비율을 바탕으로 산정한 은행별 배상액은 신한은행 150억원, 우리은행 42억원, 산업은행 28억원, 하나은행 18억원, 대구은행 11억원, 씨티은행 6억원 등이다. 일찌감치 우리은행이 지난 2월 권고안을 받아들였고, 산업은행과 씨티은행은 분쟁조정안을 받아들이지 않기로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