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펜=석명 기자] 3년째 한화 이글스를 이끌던 한용덕 감독이 전격 사퇴했다.

코로나19 사태로 뒤늦게 개막한 2020시즌 KBO리그가 한 달여밖에 안된 7일, 한용덕 감독은 구단에 자진 사퇴 의사를 밝혔다.

그럴 만한 팀 상황이었다. 한화는 이날까지 구단 최다 연패인 14연패에 빠졌다. 팀 순위는 최하위. 지난해 최종 순위 9위였던 한화가 이번 시즌에도 반등하지 못하고 긴 연패의 수렁에 빠져 꼴찌로 추락했으니, 사령탑으로서 책임지고 물러난 것은 어쩔 수 없는 선택으로 여겨진다.

한화의 침체가 오롯이 한용덕 감독 한 명의 책임인가에 대해서는 논란의 여지가 있다. 2018년 한화 감독으로 부임 당시 암흑기에 빠진 팀의 리빌딩이라는 중책을 맡았던 한 감독은 첫 해 팀을 정규시즌 3위에 올려놓으며 가을야구 숙원을 풀어줘 지도력을 인정받았다. 하지만 너무 빨리 수확한 달콤한 열매는 리빌딩 명분을 희석시켰다. 선수 수급이나 육성 등을 체계적으로 뒷받침해 선순환을 만들지 못한 구단의 책임도 적지 않을 것이다.

   
▲ 사진=한화 이글스, 더팩트


팀 성적 부진과 감독 사퇴라는, 흔히 볼 수 있는 일이 2020년 한화 이글스에서 다시 벌어진 것은 안타까운 일이다.

한화 구단의 역사를 놓고 보면 이번 한 감독 사퇴는 더욱 비극적으로 다가온다. 이글스의 레전드 출신이 한데 모여 중흥의 새 역사를 만들 것이란 기대감이, 레전드의 몰락이란 현실적 충격으로 나타났기 때문이다.

한용덕 감독이 부임하기 이전, 한화는 암흑기를 벗어나기 위해 김응용 김성근 등 한국프로야구의 대표적인 명장들을 잇따라 사령탑으로 모셨다. 하지만 실패했고 기대만큼 성과를 못 냈다.

이런 쓰라린 경험을 뒤로하고 한화는 레전드 출신 코칭스태프 구성이라는, 아껴뒀던 카드를 뽑아들었다. 한용덕 감독에게 지휘봉을 맡기면서 송진우, 장종훈 등 투타에서 한화의 전설이 된 코치들을 불러모아 코치진을 꾸렸다.

2018시즌 한화는 '레전드 코칭스태프'의 효과를 분명 봤다. 그러나 2019시즌 성적 부진에 시달리면서 송진우 투수코치는 시즌 도중 2군으로 내려갔다. 한용덕 감독이 사퇴하기 하루 전인 지난 6일에는 장종훈 수석코치 포함 5명의 코치가 한꺼번에 1군 엔트리에서 빠졌다. 얼마나 졸속 결정이었으면, 이들을 대신할 코치들을 1군에 합류시키지도 못해 덕아웃 코치들의 자리가 여기저기 텅텅 빈 채 경기를 치르는 씁쓸한 해프닝도 연출됐다. 한용덕 감독이 사퇴하지 않을 수 없게 만든, 누가 봐도 이상한 구단의 코치진 보직 변경이었다.

사실 이번 시즌 한화는 지난해와는 다를 것이라는 기대감이 더 컸다. 또 한 명의 레전드인, 명투수 출신 정민철 전 코치가 단장직을 맡았기 때문이다. 한화 이글스 역사의 일부분이고, 현장에 대한 이해가 누구보다 높은 정민철 단장이 프런트의 수장을 맡아 시너지 효과를 부를 것이란 장밋빛 전망이 넘쳤다.

그러나 팀은 일찍 흔들렸고, 선수단도 구단도 위기를 타개할 능력을 발휘하지 못했다. 오히려 확인되지 않은 팀 내 잡음만 커졌다. 정민철 단장은 장종훈 코치 등의 1군 엔트리 제외, 한용덕 감독 사퇴 문제를 직접 처리하는 난감한 상황을 맞았다. 한 감독의 사퇴를 발표하면서 정 단장은 "연패가 길어지고 있는 것은 감독님 만의 과오가 아니라 (구단과 팀) 전체의 과오"라며 머리를 숙였다. 그러나 정 단장 역시 붕괴된 한화 레전드 리더십의 한 축일 뿐이었다.

한 시대를 풍미했고, 현재의 한화를 이끄는 주축이었던 레전드들이 이렇게 몰락하는 모습을 보는 이글스 팬들의 마음이 편할 리 없다.

더군다나 한화는 현역 레전드라 할 수 있는 간판타자 김태균의 올 시즌 성적이 민망한 수준이다. 레전드의 상징성을 감안하면, 방황하는 '독수리군단' 다시 날개를 펼 때까지는 긴 진통의 시간이 필요할 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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