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법 부담 장기화에 대규모 투자·포트폴리오 구축 타격 우려
   
▲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중국 출장을 마치고 5월 19일 김포공항을 통해 귀국하고 있다./사진=연합뉴스


[미디어펜=권가림 기자] 삼성이 두 번째 '총수 부재'라는 위기를 넘겼지만 긴장의 끈은 놓치 못할 전망이다. 파기환송심과 함께 승계 관련 별건 재판이 진행되면서 대규모 투자와 미래 사업 포트폴리오를 구축하는 데 적지 않은 영향을 미칠 것으로 보이기 때문이다.  

법원은 9일 검찰이 청구한 이 부회장에 대한 구속영장을 기각했다. 삼성그룹은 창사 이래 두 번째 '총수 구속'이라는 사상 초유의 위기에서 벗어났지만 검찰의 수사 강행이 초일류기업인 삼성과 이 부회장의 위상에 치명적인 타격을 미쳤다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법원의 영장 발부 여부를 떠나 경영권 승계 수사가 장기간 이어지며 정상적인 경영 활동에 대한 타격과 이미지 하락 등의 손해를 감수해야 한다는 것이다. 

홍기용 인천대 경영학부 교수는 "글로벌 기업인 삼성이 회계 부정 사건에 연루됐다는 것 자체가 사실 여부를 떠나 외부 시선으로 봤을 때 기정 사실화될 우려가 있다"며 "외국인이 투자할 때 기업 내 평가를 믿지 못하게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어 "삼성의 회계 투명성을 저해하는 것은 회사 브랜드 가치를 떨어뜨리는 것이고 이는 곧 국가 경제도 흔드는 꼴"이라고 말했다. 

이병태 카이스트 경영대학 교수는 "위기 상황일수록 미래 사업 포트폴리오를 구축하는 총수의 역할이 중요하다"며 "주요 산업 주도권이 중국 등 다른 국가로 넘어갈 위기에 처해 있는데 글로벌 시장에서 높은 비중을 차지하는 삼성이 수년째 검찰 수사라는 올가미에서 벗어나는데 시간을 쏟는 게 안타깝다"고 했다.  

실제 이 부회장이  지난 2017년 2월 국정농단 사태로 구속된 후 삼성의 대규모 투자는 없었다. 대형 인수합병(M&A)도 2016년 11월 미국 자동차 전자장비업체 하만을 인수한 후 4년 동안 자취를 감춘 상태다. 수조원이 들어가는 투자를 위해서는 리스크를 떠안을 수 있는 총수의 과감한 결단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삼성의 대규모 투자는 지난 2018년 2월 이 부회장이 국정농단 항소심에서 집행유예로 풀려난 뒤에서야 재개됐다. 삼성전자는 같은해 8월 인공지능(AI), 이동통신 등 4대 성장사업에 25조원을 비롯해 3년간 180조원의 투자계획을 밝혔다. 지난해에는 133조원 규모의 '반도체 비전 2030'과 13조1000억원의 퀀텀닷(QD) 디스플레이 투자 방안을 세웠다.  

그는 올해 들어서도 해외 출장 등을 통해 신성장 동력 발굴 등 미래에 초점을 맞춘 경영활동을 펼쳐왔다. 그는 2박3일 일정으로 중국 시안 반도체 공장을 방문한 후 "어려울 때일수록 투자를 멈춰서는 안 된다"며 반도체 파운드리와 낸드플래시 생산라인 구축에 약 18조원을 투입하기로 했다. 정의선 현대자동차 수석 부회장과는 차세대 전기차 배터리 사업을 논의하기도 했다. 

경영권 승계 의혹 사건과 별개로 국정농단 사건 파기환송심이 여전히 진행 중인 점도 포스트 코로나 대비에 전념할 수 없게 한다는 우려도 나온다. 

삼성은 미·중 무역전쟁과 한·일 갈등에 따른 반도체 소재·장비 공급대란 가능성 등 대내외 위기에 마주한 상황이다. 여기에 코로나19로 스마트폰, 디스플레이 사업 모두 어려움을 겪고 있어 가야할 길이 멀지만 지난 2016년 11월부터 지금까지 약 4년 가까이 사법 리스크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는 지적이다. 

모든 역량을 결집해도 위기 극복이 쉽지 않은 상황에서 검찰이 무리한 수사로 기업을 압박하는 행태를 멈춰야 한다는 주장이 제기된다. 

최준선 성균관대 법학전문대학원 명예교수는 "대한민국에서 기업하기 얼마나 어려운 지 다시 한 번 보여준 사례"라며 "기업의 이익률은 이자보상률에 못 미치고 있고 한국 경제 역시 한치 앞을 볼 수 없는 상황인 만큼 재판 과정에서 혐의에 대한 판단이 가려질 것이라면 한국의 GDP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큰 기업의 총수 손발을 묶은 일은 없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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