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 9일 연락사무소 동‧서해 군 통신선·함정간 핫라인 모두 무응답
‘거대 여당’ 국회 상황 남정부 ‘약한 고리’ 삼아 압박‧긴장 높일 듯
[미디어펜=김소정 기자]북한이 예고한 대로 9일 오전부터 모든 남북 간 통신선을 차단하고, 심지어 남한을 적으로 규정하겠다고 밝혔다. 앞서 김여정 당 제1부부장이 밝힌 대로 앞으로 북한이 군사합의 파기를 선언하는 군사 도발까지 염두에 둬야 하는 상황이 왔다.   

북한은 이날 오전9시 통상적으로 이뤄지던 남북연락사무소 업무 개시 전화는 물론 동‧서해지구 군 통신선, 함정 간 국제상선공통망을 통한 정기적인 연락 전화에 모두 응하지 않았다.

앞서 북한 조선중앙통신은 이날 새벽 보도에서 “6월 9일 12시부터 북남 공동연락사무소를 통해 유지해오던 북남 당국 사이의 통신연락선, 북남 군부 사이의 동‧서해통신연락선, 북남통신시험연락선, 노동당 중앙위원회 본부청사와 청와대 사이의 직통통신연락선을 완전 차단‧폐기하게 된다”고 보도했다.

더구나 북한은 김영철 당 부위원장과 김여정 당 제1부부장이 대남사업을 대적사업으로 전환하기로 했다며 우선 남북 사이의 모든 통신연락선을 완전 차단할 것을 지시했다고 밝혔다.

북미, 남북 간 교착 국면이 길어지고 있지만 코로나19 사태 속에 다소 의아스럽기까지 한 북한의 이번 조치가 나온 표면적인 배경은 탈북민단체의 대북전단 살포이다. 김여정 제1부부장은 4일 담화를 내고 “우리 최고존엄까지 건드리며 핵 문제를 걸고 무엄하게 놀아댔다”며 맹비난했다.  

하지만 북한이 최근 내놓는 담화나 보도를 보면 역시 지난해 2월 하노이 2차 북미정상회담 결렬로 대북제재 완화가 이뤄지지 못한 것에 대한 원망 혹은 분노가 서려있는 것으로 보인다.
 
북한은 8일 대외선전매체인 ‘우리민족끼리’에서 문재인 대통령의 ‘북미, 남북 선순환 관계 전략을 “허구한 세월을 무료하게 보낸 달나라 타령”이라고 조롱했고, ‘메아리’에선 문 대통령을 겨냥해 “누구도 감히 바랄 수 없었던 평양시민들 앞에서 연설까지 베풀었지만...”이라며 남한정부를 무능하다고 비난했다.  

또 북한은 9일 조중통 보도에서는 “그러지 않아도 계산할 것이 많은 남조선 당국의 배신적이고 교활한 처사에 전체 우리 인민은 분노한다”고 했다.

북한이 문재인 대통령의 북핵 문제 해결 전략과 지난 평양연설까지 언급하며 비난하는 것은 그나마 친서외교 등으로 남북 정상간 유지되던 신뢰까지 건드리며 남한을 최고조로 압박하고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 북한 노동신문이 8일 전날(7일)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조선노동당 중앙위원회 제7기 제13차 정치국 회의를 주재했다고 보도했다./평양 노동신문=뉴스1

다만 이번 북한의 대남 비난에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직접 나서지 않고 있다는 점에서 일종의 ‘여지’를 남겼다는 분석도 나왔다. 지난 3월에도 김 위원장은 김 제1부부장이 청와대를 비난하는 담화를 낸지 하루만에 문 대통령에게 친서를 보내온 것을 볼 때 두 남매가 역할을 나눴다는 관측도 가능하다. 

즉 김여정 제1부부장이 대북전단 살포를 핑계로 남한정부를 비난하는 ‘베드캅’의 역할을 맡고 김정은 위원장은 남한의 반응에 따라 김여정의 지시를 철회하고 대화 국면으로 반전시키는 ‘굿캅’ 역할을 맡았다는 것이다.

하지만 김 제1부부장의 담화부터 통일전선부 대변인의 남북연락사무소와 개성공단 폐쇄 발표, 또 이날 남북 간 모든 통신선 차단 소식이 모두 북한주민들이 보는 노동신문에 실린 만큼 북한이 당분간 현 기조를 쉽게 바꾸지 않을 가능성이 더 높아보인다. 

전문가들 사이에서도 다음 조치인 개성공단 완전 철수를 위한 자산몰수 조치에 최악의 경우 군사적 대결까지 고강도의 압박 조치가 이어질 수 있다는 전망이 나왔다.

김동엽 경남대 극동문제연구소 교수는 북한 조치에 대해 “단순히 삐라에 국한된 것이 아니라 지금까지 누적되어온 남쪽에 대한 불만과 불신을 표출한 것”이라며 “그래서 지금 이 상황은 삐라 문제를 해결한다고 간단히 해결될 문제가 아니라고 본다”고 했다.

또 김 교수는 “북한의 지금 행동을 대화의 신호라고 보지 않는다. 북한은 지금 그럴 겨를이 없다”면서 “오히려 제재 국면에 코로나까지 겹친 상화에서 정면돌파전을 내세워 북한주민을 끌고나가야 하니 경제발전에 올인할 수 있도록 안보 우려를 만들지 말라는 간절함으로 들린다. (또한) 굴복하거나 양보하지 않고 제 갈길을 갈 것이라는 메시지라고 본다”고 분석했다.

양무진 북한대학원대학교 교수는 “현재 미중 갈등 국면, 코로나19로 인한 내부 단속, 경제성과 미도출 등을 감안해 북한은 진전없는 남북관계를 그냥 가져가기보다는 긴장관계로 조성해 후일 주도권을 가져가겠다는 것으로 분석된다”고 했다.

임을출 경남대 극동문제연구소 교수는 “전형적인 벼랑끝 전술이 재연되고 있다. 북한은 남북관계가 매우 엄중하다는 것을 계속해서 밝혀왔고, 이런 인식을 행동으로 보여주기 위해 고강도의 압박 조치가 필요하다는 판단을 한 것으로 보인다”며 “대남사업을 대적사업으로 전환한다는 결정은 최악의 경우 군사적 대결 상황까지 고려한 결정으로 해석된다”고 말했다. 

북한의 지금 태도와 행위는 한편으론 지난 3차례 남북정상회담과 북미정상회담에도 불구하고 북한경제를 살릴 획기적인 성과를 내지 못한 김정은 위원장의 입지가 흔들리지 않도록 내부결속을 다지기 위한 것으로 볼 수 있다. 북한주민들이 모두 읽는 노동신문 등을 통해 노골적으로 남한 때리기에 나선 것도 이 때문이다.

다른 한편으론 지난 총선 이후 거대 여당의 국회 상황이 만들어진 남한정부를 흔들 수 있는 시기는 바로 지금이라고 보고 남한을 ‘약한 고리’ 삼아 압박에 나선 것으로 보인다. 곧 있을 미국 대선을 내다보고 그 결과와 상관없이 남한정부를 통해 북미관계 리셋에서 유리한 국면을 차지하려는 의도로 볼 수 있는 것이다.    

북한의 의도는 다양하게 분석되지만 결과적으로 북한이 이번에 선언한 조치가 현실화되면 남북관계는 2018년 4월 27일 1차 남북정상회담 이전으로 돌아가는 것을 의미한다. 남북공동연락사무소와 정상간 직통 핫라인은 4,27 판문점선언의 성과이기 때문이다. 특히 김 제1부부장이 언급한 9.19 남북군사합의 파기는 그냥 말로 하는 것이 아니라 행동이 있을 수 있어 군사적 충돌 우려까지 나온다. 

청와대는 이날 북한의 조치와 관련해 국가안전보장회의(NSC)도 개최하지 않기로 했다. 청와대 관계자는 이날 기자들 앞에서 “오늘 건(북측의 통신선 차단 조치)으로 별도의 NSC는 열지 않는다”고 말했다. 청와대의 입장을 묻는 질문에도 “정부 입장은 오전에 통일부가 밝혔다”고 말해 말을 아꼈다. 통일부는 이날 “남북 간 통신선은 소통을 위한 기본 수단이므로 남북 간 합의에 따라 유지돼야 한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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