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철강사, 부채 불어나는데 4천억 시설 투자까지 '울상'
신소재·친환경차…변화 꾀하는 정유·석화·차도 '긴장'
탄소배출권 거래제 도입이 6년차를 맞고 있다. 그동안 투기 관행 등으로 거래가격이 급등해 관련 기업들의 부담이 가중되면서 제도의 실효성 문제까지 지적되며 구조 혁신의 목소리가 높다. 특히 산업계는 내년 탄소배출권 거래제 3차 계획 시행을 앞두고 전략 짜기에 분주하다. 유상할당 확대, 파생상품 도입 등 시장을 둘러싼 변수는 많기 때문이다. 정부가 '뉴딜 정책' 재원을 위해 탄소 감축 대상 기업들을 더욱 옥죄일 것이라는 우려도 다온다. 미디어펜은 '탄소거래 5년' 시리즈를 통해 탄소배출권 거래제의 문제점을 진단하고 개선안을 모색해 본다. <편집자주>

[미디어펜=권가림 기자]#A사의 온실가스 담당 김모 매니저는 요즘 눈코 뜰 새가 없다. 오는 7월 말 2019년도 배출권 정산이 이뤄지는데 배출권이 부족해 구매 등을 통해 정부에 제출할 실적을 만들어야 하기 때문이다. 내년 3차 계획 시행과 현대판 '녹색 성장' 정책으로 수 차례 회의도 들어간다. 실무를 맡은 김 매니저는 "내년 가격이 다시 5만원대까지 오를 것으로 보고 대비책을 세우고 있다"며 "국내 경기상황도 나빠 회사 실적도 안 좋은 데 중소·중견기업에만 탄소 감축 시설 지원을 해주냐는 불만이 적지 않다"고 말했다. 

지구온난화의 주범으로 지목되는 온실가스 배출을 억제하기 위해 국내에서 지난 2015년부터 배출권거래제가 시행된 이후 기업들의 주름살이 점점 깊어지고 있다. 

   
▲ /사진=픽사베이 제공


기업들은 겉으로는 "정부의 친환경 기조에 따를 수밖에 없다"는 입장이지만 속내는 다르다. "산업 경쟁력 후퇴가 우려된다"는 불만을 토로한다.

현재 배출권 거래에는 온실가스 배출량 평균이 12만5000톤 이상인 업체와 2만5000톤 이상인 사업장 600여곳이 의무적으로 참여하고 있다. 유상할당 비율은 3%지만 내년에는 10% 이상으로 확대된다. 가령 100톤의 배출권이 정해진 기업이라면 90톤은 무상으로 할당받고 나머지 10톤은 경매 등으로 충당해야 한다. 올해 유상할당 총량(825만톤)을 고려하면 할당량을 10%로 확대했을 때 총량은 2750만톤으로 증가한다. 이달 낙찰가 3만1000원으로 계산하면 금액으로는 8277억5000만원 규모다. 내년 배출권 가격이 5~6만원으로 상승하면 1조원을 훌쩍 넘긴다.

이 때문에 배출권 가격은 앞으로도 상승세를 지속하고 각 기업들의 비용 부담도 더욱 늘어날 가능성이 높다.

배출권에 가장 민감한 곳은 특히 기간산업이다. 국내 온실가스 배출량의 약 40%를 차지하는 곳은 발전사지만 이들의 비용은 한국전력이 보전해줘 부담은 비교적 적다.

한 철강사는 550만톤의 배출권이 부족하다. 내년 배출권 예측 가격을 감안하면 부담은 2000억원 이상으로 커질 것으로 보인다. 철강업계는 중국을 비롯해 글로벌 경쟁이 치열해 배출권 상승 비용을 제품에 전가할 수도 없어 사면초가인 실정이다.

석탄을 원료로 사용하는 일관제철 공정을 가진 철강업계는 지금까지 적게는 수억원에서 많게는 수십억원을 신공법에 투입하며 온실가스 배출을 최대한으로 억제해 앞으로 대규모 설비투자를 하지 않는 이상 더 줄이기가 현실적으로 어렵다는 입장이다.

한 철강사는 향후 5년 내 3~4000억원 규모의 탄소 감축 설비 투자를 추진할 계획이지만 코로나19로 적자 경영이 예상돼 경쟁력 후퇴가 불가피해졌다는 하소연이 나온다.

정유업계는 석유화학설비 나프타분해설비(NCC) 일환인 올레핀 생산시설(MFC) 사업으로 전환을 꾀하고 있어 탄소 감축 문제로 골머리를 앓고 있다.

자동차업계의 경우 수십억원의 배출권 부담비용이 발생하고 있지만 친환경차 개발에 배출권 비용을 내야해 긴장은 놓칠 수 없다. 친환경차 개발을 위해서는 간접배출(다른사람으로부터 공급된 전기나 열을 사용해 온실가스 배출되도록 하는 것) 비용이 드는데 전기시설의 신·증설은 인정받기가 어려워 예비분을 활용해 부담을 줄여야 하는 등 셈법이 복잡하다.

슈퍼섬유 등 신소재로 도약 준비를 하고 있는 화학섬유업계도 마찬가지다. 신소재 관련 제품군은 기존 제품보다 에너지 소비가 높아 생산량이 증가하면 에너지 소비가 상당하다.

전자와 디스플레이업계는 태양광 및 지열 발전 시설 설치 등으로 탄소 감축 관련 비용은 100억 단위에 그친다. 하지만 향후 수조원대의 신규투자가 진행되면 그만큼 탄소배출량도 늘어나는 점은 과제가 될 것이라고 업계는 입을 모았다.

탄소 규제는 오는 2030년까지 매년 강화될 것으로 예상되는 가운데 중소·중견기업에만 그친 지원과 할당량 감축 압박이 지속된다면 정부의 '리쇼어링(Reshoring)' 바람과는 달리 오히려 '탄소 누출'(공장 해외 이전)이 발생할 수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강승진 산업기술대 지식기반·에너지대학원 교수는 "정부도 '탄소 누출' 우려가 있는 기업들을 대상으로 유상에서 무상으로 전환하는 등 최소한의 우려를 하고 있다"며 "다만 2030년까지 현재 대비 24.4% 감축을 더 해야하는데 배출권 할당량을 줄이는 행보는 기업들에게 큰 압박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업계 관계자는 "정부의 '뉴딜 정책'으로 신재생에너지 투자 압박이 이어질 수 있다"며 "투자 대비 감축 효과가 높은 곳은 대기업인 만큼 현재 중소·중견기업의 탄소 감축설비에 매년 최대 50%를 지원해주는 대책을 대기업에게도 하루 빨리 적용해 글로벌 경쟁력 확보와 신사업 기회를 막지 않아야 한다"고 호소했다.
 
[미디어펜=권가림 기자] ▶다른기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