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만경영 책임은 기업, 정부 정치권 훈수둘 일 아니다"
"주주행동주의 시대 열어 소수 주주권 강화 측면 있다"
[미디어펜=김규태 기자] 문재인 정부와 더불어민주당이 주요 입법과제로 삼고 추진하는 상법 개정안이 '방만경영 예방'이라는 명분에도 불구하고 '기업 빼앗기'가 될 것이라는 우려가 커지고 있다.

21대 국회가 열리자마자 민주당이 발의한 상법 개정안 모두 사외이사 독립성 강화·감사위원 분리선임·집중투표제 의무화·다중대표소송 도입 등 재계가 문제삼고 있는 규제를 골자로 삼고 있다.

지난 2일 기업지배구조개선 토론회를 주최하고 18일 상법 개정안을 발의하는 등 여당 선두에 선 박용진 의원이 대표적이다.

박 의원은 이날 국회 소통관에서 열린 기자회견에서 개정안 발의 취지에 대해 "민주당 차원에서 상법 개정에 나설 것"이라며 "방만 경영에 대한 예방적 조치이자 기업 이사회 구성의 다양성 때문"이라고 밝혔다.

   
▲ 지난 10일 고기영 법무부 차관이 서울 서초구 서울고검에서 다중대표소송 도입, 감사위원 분리 선임 등을 골자로 하는 상법 개정안 관련 개요를 발표하고 있다. 법무부는 11일 해당 상법 개정안을 입법 예고한다고 밝혔다./사진=연합뉴스
법조계는 경영권 위협이 재계 목전에 들어왔다는 평가가 크다. 한 대형법무법인에서 기업인수합병 전문변호사로 있는 L 씨(45)는 19일 미디어펜과의 인터뷰에서 "방만경영에 대한 예방조치라는 명분은 가당치도 않다"며 "방만경영에 대한 책임은 온전히 기업이 진다. 정부와 정치권이 뭐라도 되는 양 기업들에게 훈수를 두겠다는 것이냐"고 성토했다.

그는 "이번에 여권이 골자로 삼고 있는 것들이 이루어질 경우 국내 주요 상장사들은 해외 행동주의펀드들의 소송 리스크에 시달릴 것"이라며 "지난 2015년과 2018년 삼성 및 현대차그룹에 대한 해외펀드들의 공격을 잊었나"라고 반문했다.

이어 그는 "상법개정안 내용 거의 전부가 투자수익을 높이기 위해 경영권을 흔들어 주가를 부풀리는 해외펀드 구미에 맞는다"며 "감사위원 분리선임은 선진국 중 도입한 나라가 전혀 없고 집중투표제 의무화 또한 적대적 M&A 리스크로 도입했던 나라들 조차 이미 폐지한 사안"이라고 덧붙였다.

특히 그는 "상법개정을 기필코 하겠다면 기업이 경영권을 방어할 수 있는 의결권제한 완화나 포이즌필(Poison Pill·독약조항·주주권리계획으로 대표적인 경영권 방어수단)이 함께 이뤄져야 하는데 이런 언급은 전혀 없다"며 "단기적 차익만을 노리는 해외 투기자본이 연대를 한다면 감사위원 선출을 비롯해 기업 경영에 온갖 짓을 할 수 있는 상황이 조성된다"고 우려했다.

최준선 성균관대 법학전문대학원 명예교수 또한 이날 본지 취재에 "상법 개정안은 논리도 이론도 없이 기업을 규제하면서 최소한의 방어권마저 빼앗는다는 내용"이라며 "감사위원도 이사인데 이사 선임시 대주주 의결권을 제한하는 나라는 없다"고 지적했다.

최 교수는 "모회사의 소수주주가 계열사 임원들을 위협할 무기를 쥐어주는 꼴"이라며 "자회사 주주들이 엄연히 있는데 모회사 주주가 자회사 임원을 상대로 소송하게 하는 괴이한 소송제도를 인정한 나라 또한 없다"고 밝혔다.

다만 법조계 일각에서는 이번 상법 개정안이 주주행동주의 시대를 열어 소수 주주권을 강화하는 긍정적인 면도 있다고 보고 있다.

다중대표소송제도를 도입하면 결과적으로 경영진의 전횡을 막아 소수 주주의 지분 가치를 지킬 수 있고, 소수주주권 행사요건 완화 또한 상장회사에서 6개월 이상 주식을 보유하지 않고도 주주권 행사가 가능하도록 해 주주권을 보호한다는 지적이다.

서울지방변호사회 소속 한 법조인은 이날 본지 취재에 "해외사모펀드의 주주행동주의에 동의하지 않는 소액주주들에게 도움을 청해 경영권을 보호하면 된다"며 "이번 상법 개정안에는 전자투표제도 도입이 있다. 이를 계기로 소액주주들과 잦은 소통을 가져 단기수익이 아니라 주식의 장기보유를 통해 멀리 내다보는 충성심 강한 우군을 만들어야 할 것"이라고 밝혔다.

지난 10일 법무부 또한 다중대표소송 도입을 골자로 한 개정안을 예고하고 나서, 당정 차원에서 상법 개정은 최우선 과제로 꼽힌다.

자본력이 부족한 중소, 중견 상장사들까지 해외투자펀드의 적대적 인수합병 위험에 노출될 가능성이 크다는 재계 우려에도 불구하고 당정이 상법 개정을 원안대로 밀어붙일지 주목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