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먼 민족주의에 사로잡힌 '2.5류작'…한·일 관계만 악화 부채질

저열한 반일(反日) 뮤지컬 '영웅'의 중국 진출 왜 문제인가

   
▲ 조우석 문화평론가
눈먼 민족주의를 파는 문화상품이 한껏 언론의 조명을 받고 있다. 역사의 균형감각은 찾아볼 수 없고, 선악 이분법에 따라 반일(反日)을 극대화시키는 2.5류(流) 작품에 대한 과도한 평가다. 안중근 의사를 다룬 대형 뮤지컬 '영웅'이 문제의 작품인데, 안 의사 의거 100주년이던 2009년 초연(初演)됐던 이 작품이 올해 연말 중국 무대에 선다.
 

에이콤인터내셔널(대표 윤호진)은 12월 20~21일 하얼빈에서 '영웅'을 공연한다고 최근 밝혔다. 신시컴퍼니(대표 박명성), 설앤컴퍼니(대표 설도윤) 등과 함께 연극계의 메이저로 꼽히는 에이콤인터내셔널은 일찌감치 민족주의 문화상품 '명성황후'를 개발했던 곳. 그걸로 재미봤던 그들이 개발한 또 다른 민족주의 상품 '영웅'의 중국 진출은 뮤지컬 한류를 전하는 굿 뉴스로 들린다.
 

사실 이 작품은 안 의사 의거 100주년인 2009년 초연 이래 국내에서 7차례 공연됐고, 열차를 통째로 무대에 올려놓은 듯한 화려한 볼거리도 화제였다. 하지만 그런 것만을 조명하는데 그치는 표피적 보도행태가 관객의 안목을 가로 막고, 끝내 문화시장을 왜곡시키는 주범이다.

딱 뒷골목 양아치로만 묘사되는 일본 정객 이토 히로부미

즉 본바닥 뮤지컬을 뺨치는 볼거리를 효과적으로 백업해주지 못하는 철학-역사의식의 빈곤을 지적하는 보도는 거의 없다. 이 작품의 내러티브(이야기)의 뼈대 허약, 역사의식 빈곤이란 해도 해도 너무하는 수준이다. '동양 평화를 고뇌하는 인물'로 묘사된 안중근은 시종 무결점 무균질의 숭고한 인간으로만 설정된다. 그런 초엄숙주의 접근이야말로 안중근이라는 캐릭터의 효과적인 구축을 망치는 요인임은 물론이다. 
 

   
▲ 뮤지컬 '영웅'
결정적으로 이토 히로부미의 캐릭터가 최악이다. 우리와는 악연이지만, 어쨌거나 100년 전 메이지 시대가 낳은 거물인데, 그는 이 뮤지컬에서는 젊은 여자에 흐느적대는 호색한에 노추(老醜)로만 그려진다. 달리 말해 뒷골목 양아치 수준이다. 이 정도 규모의 뮤지컬에서 이웃나라의 옛 정객을 이런 식으로 희화화하는 건 사실에서 멀뿐더러 노골적인 외교적 결례에 속한다.
 

사실 안중근을 진정한 영웅으로 그리려면, 상대방 이토 히로부미도 비슷한 반열에서 설정하는 게 우선이었다. 그를 향해 안중근이 권총을 뽑을 수밖에 없었던 갈등과 파국의 과정을 장엄하게 담았더라면 '영웅'은 근대 동북아사의 비극을 다룬 전대미문 걸작 반열에 올라설 수 있었다. 대신 '영웅'은 쉬운 길을 선택했다. 초딩용 역사활극을 만든 것이다. 그건 제작 미스이자, 역사의식의 빈곤이었다.

가수 조영남 "일본인도 이 작품에 눈물을 왈칵 쏟도록 만들었어야"

즉 '영웅'의 한계는 우리 근대사를 읽는 구조적 한계를 반영한다. 식민지로 전락한 조선조의 '역사 실패'에 대한 성찰은 찾아볼 수 없고 대신 흉포한 강도 일본에게 책임을 떠넘기는 단선적 논리가 전부다. 유심히 살펴볼 건 그게 반미(反美)-반일-반 대한민국으로 채워진 좌파 역사책의 사이비 민족주의 논리와 잘 맞아떨어진다는 점이다.

뮤지컬 '영웅'이 애국주의 상품에도 못 미치는 '매우 위험한 상품'인 이유는 그 때문이다. 밝히지만, 5년 LG아트센터에서의 초연(初演)무대를 필자는 친구들과 함께 봤다. 가수 조영남, 신종인 전 MBC부사장 등이 그들인데, 객석을 막 들어가며 우린 ‘명성황후’ 제작팀의 후속타라서 관심도 갔지만, 걱정도 컸다. “또 한 번의 유치한 쇼비니즘을 반복하면 어쩌지?”하는 의구심이었다.
 

애국심을 우러나게 하기보다는 쥐어짜는 방식, 게다가 초등학교 교실 수준의 선악이분법은 '명성황후'에서 이미 질리게 보았지만, '영웅'은 한 술 더 떴다. 두 시간 관람은 내내 끔찍한 경험이었다. 친구들 모두가 그랬다. 어설픈 민족주의 활극에 질렸던 가수 조영남이 나중에 정곡을 찔렀다.
 

“한마디로 '영웅'은 내국인용이야. 우리가 원했던 최상의 목표는 일본·중국인도 우리와 함께 이 작품을 보고, 뜨거운 눈물을 쏟게 만드는 것인데…. 이건 뭐 우리만 혼자 비분강개하고 부르르 떠는 꼴이야.” 필자는 그때 중앙일보에 연재하던 '조우석 칼럼'에 그렇게 썼다. 살펴보니 좋은 게 좋다는 식의 연극계에선 누구도 이의제기 없이 숭구리당당 넘어가는 분위기였다.

조악한 작품의 득세 앞에 "너는 함량 미달이야" 라고 지적하지 못하는 문화계-지식사회의 '침묵의 카르텔' 구조였다. 그게 겉만 화려하고 내용은 빈 한국문화의 수준이자, 지력(知力)의 한계, 시민의식의 현주소다.

지난해 3월 박근혜 대통령 취임식 연출도 윤호진이 맡았는데

눈여겨 볼 점은 연출자 윤호진이 구사하는 외곽을 때리는 노련한 흥행 공식이다. 그는 기회가 나는대로 뉴욕 공연을 떠나고 하면서 이 뮤지컬이 마치 '글로벌한 작품'인양 포장하길 즐겨했다. 3년 전 뉴욕 링컨센터 공연에 이어 이번 중국 진출도 그런 맥락이다. 그런 걸 국내 마케팅에 적절히 활용하고, 자신은 연극계의 거물로 커갔다. 그 탓일까? 지난해 3월 박근혜 대통령 취임식 연출도 그가 맡았다.
 

평창동계올림픽 관련 행사에도 요즘 그가 종종 모습을 드러내니 몇 년 뒤 윤호진이 올림픽 개폐회식 행사 등을 맡을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올림픽 이야말로 인류의 보편철학을 담아야 하는데, 민족주의 장사꾼이 그걸 망칠까봐 필자는 벌써 걱정이다. 그건 윤호진만의 문제가 아니다. 
 

   
▲ 뮤지컬 '영웅'
이런 눈먼 민족주의 부채질이 한일 관계를 방해하고 한미일 관계를 삐걱거리게 하는 요인이다. 외교이고 뭐고 간에 결국은 그 사회 시민들의 의식수준과 여론이 핵심적인 사회적 자본이기 때문이다. 참고로 '영웅' 제작진은 5년 전 이 뮤지컬의 중국 공연을 추진했다가 그때에는 하얼빈 시로부터 단박에 거부당했다.

중국은 왜 5년 전 뮤지컬 '영웅'의 공연을 반대하다가 입장을 바꿨나?

"일본과의 관계 때문에 좀 곤란하다'는 게 거부의 이유였다. 사실 그때는 중국-일본의 관계가 나쁘지 않았다. 2007년 원자바오 총리는 일본 방문 때 "일본의 역사에 대한 진정한 사죄를 중국은 감사하게 생각한다"고 말했다. 요즘 우린 그걸 잊고 살지만, 그 전 해에 중국은 일본을 염두에 두고 하얼빈 시 중심가의 안중근 동상을 철거한 적도 있다. 그러던 중국이 최근 들어 다시 확 변했다.
 

올해 초 박근혜 대통령이 안 의사 표지석을 설치해달라는 부탁을 뛰어넘어 안 의사 기념관을 덜컥 세워줬다. 저들이 한국을 끔찍하게 생각하기로 작심했을까? 그렇게 보는 사람이 많지 않겠지만, 혹시 그렇게 본다면 당신은 참 순진한 사람이다. 그건 일본 견제에 한국을 끌어들이려는 저들의 노림수다. 즉 중국에게 안중근이란 한국을 겨냥한 외교적 카드의 하나인 셈이다.
 

때문에 뮤지컬 '영웅'의 중국 공연 추진은 작은 이익을 취해보겠다고 섣부르게 뛰어드는 부나방인 셈이다. 뮤지컬 하나가 역사의식 빈곤하고, 외교적 전략마인드가 태부족한 우리의 뒷모습을 재확인시켜준 셈이다.

차제에 에이콤 측에 조언을 하려 한다. '영웅'을 고정 레파토리로 좀 길게 끌고 가려면, 자체적으로 스토리와 컨셉을 대대적으로 수정·보완을 하길 바란다. 그게 아니라면 차라리 폐기하라. 지금으로선 국민의식을 황폐화시키는 불량 문화상품이니까. /조우석 미디어펜 논설위원, 문화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