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엔군으로 미국 178만명 등 16개국 195만명 참전해 3만7623명 전사
[미디어펜=윤광원 기자] 정확히 70년전인 1950년 6월 25일, 북한 인민군의 대규모 기습남침으로 신생 대한민국은 정부 수립 2년도 채 되지 않아 최대 위기에 직면했다.

적군의 압도적 전력에 일방적으로 밀리며 개전 3일만에 수도 서울을 빼앗긴 대한민국은 이후에도 후퇴를 거듭, 낙동강 일대에 최후의 방어선을 치고 경남.북 일부만 남긴 채, '바람 앞의 등불' 같은 최악의 상황에 처했다.

이때, 지구상 어디에 있는지도 모르는 처음 들어보는 나라, 본 적도 없는 사람들의 생명과 자유를 지켜주기 위해, 먼 타국의 이방인들이 달려왔다. 바로 유엔(UN)군이다.

   
▲ 유엔군이 국군과 함께 상륙에 성공, 전세를 역전시킨 '인천상륙작전' 상륙지점 기념비 [사진=미디어펜]


그들이 이 땅에 뿌린 뜨거운 피가 멸망 직전까지 갔던 대한민국을 구해냈다.

6.25전쟁 때 유엔군의 깃발 아래 전투병력을 파견한 나라는 세계 16개국, 연인원 195만 219명이었다. 그들 중 3만 7623명이 고국으로 돌아가지 못하고, 이 땅에 뼈를 묻어야 했다.

'국방백서'에 따르면, 가장 많은 참전자(178만 9000명)와 전사자(3만 3642명)를 낸 나라는 역시 미국이었다.

이어 영국이 참전 5만 6000명에 전사 1086명, 캐나다가 참전 2만 5687명에 전사 516명, 호주는 참전 1만 7164명에 전사 332명, 터키가 참전 1만 4936명에 전사 1002명이었다.

또 필리핀 참전 7420명에 전사 112명, 태국 참전 6326명에 전사 130명, 네덜란드 참전 5322명에 전사 124명, 콜롬비아 참전 5100명에 전사 213명, 그리스 참전 4992명에 전사 186명, 뉴질랜드 참전 3794명에 전사 43명, 에티오피아 참전 3518명에 전사 122명, 벨기에 참전 3498명에 전사 106명, 프랑스 참전 3421명에 전사 269명, 남아프리카공화국 참전 826명에 전사 35명, 룩셈부르크 참전 83명에 전사 2명이다.

인도, 노르웨이, 덴마크, 이탈리아, 스웨덴 5개국은 의료지원단만 보냈지만, 노르웨이는 3명의 전사자까지 기록했다.

물자지원 40개국도 빼놓을 수 없다.

과테말라, 니카라과, 대만, 도미니카, 독일, 레바논, 리베리아, 멕시코, 모나코, 미얀마, 베네수엘라, 베트남, 볼리비아, 브라질, 사우디아라비아, 스위스, 시리아, 아르헨티나, 아이슬란드, 에콰도르, 엘살바도르, 오스트리아, 온두라스, 우루과이, 이란, 이스라엘, 이집트, 인도네시아, 일본, 자메이카, 칠레, 캄보디아, 코스타리카, 쿠바, 파나마, 파라과이, 파키스탄, 페루, 아이티, 헝가리다.

로마교황청, 리히텐슈타인, 스페인, 아일랜드, 이라크, 포르투갈은 전후복구 지원국이다.

이중 콜롬비아의 사례를 보자.

콜롬비아는 중남미에서 유일하게 유엔의 파병 요청에 흔쾌히 호응, 5100명이라는 '상대적' 대병력을 참전시켰고, 213명의 용사들이 이 땅에서 죽어갔다.

콜롬비아군은 1951년 6월 15일 유엔군 중 마지막으로 한국에 도착했다. 그리고 8월 1일 강원도 화천의 전선에 투입됐다.

그리고 금성진격작전, 김화 400고지 전투, 연천 180고지 전투, 불모고지 전투 등에 참가했다.

군율이 엄하고 용맹하기로 소문났으며, '절대 후퇴하지 않는다'는 철칙을 지켜, 전투마다 혁혁한 전과를 세운 것으로 알려졌다.

이런 이방인 전우들과 그들이 이 땅에 흘린 피가 있었기에, 오늘의 대한민국이 있을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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