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부고속도로 50주년③] 단군 이래 최대 토목공사, 혁신과 진보의 최고 단계
[미디어펜=김규태 기자] "불가능은 없다. 그때 당시에는 불가능에 대한 도전이었다. 경부고속도로는 우리는 할 수 있다는 것을 그대로 보여주었다."

박정희대통령기념재단 이종찬 홍보실장은 지난 1일 추풍령 준공기념탑에서 재단이 주최한 경부고속도로 50주년 기념식을 가진 후 미디어펜과의 인터뷰에서 이같이 말했다.

오는 7월 7일은 경부고속도로가 완공된지 정확히 50년 되는 날이다.

이종찬 실장은 이날 과거를 기억하며 "경부고속도로는 개인적으로 고향으로 가는 길이다. 고속버스를 타고 경부고속도로로 내려갔다"며 "명절이 되면 도로는 북새통이다. 또한 고속도로를 오가다 보면 수많은 화물 트럭들이 다닌다. 엄청난 물동량을 보면서 국가대동맥이라는 것을 실감한다"고 전했다.

   
▲ 박정희대통령기념재단 이종찬 홍보실장이 7월 1일 재단이 주최한 경부고속도로 50주년 기념식에서 박정희 대통령의 과거 기념사를 대독하고 있다./사진=미디어펜
우리나라 고속국도 1호선으로 건설업 시초기술의 상징이자 한해 국가예산의 23.6%가 쓰인 대역사 등 경부고속도로를 수식하는 말은 많다.

기자는 그 중 세계 고속도로 건설사상 가장 짧은 시간에 만든 고속도로라는 점에 주목했다.

경부고속도로는 1968년 2월 착공되어 2년 5개월 만인 1970년 7월 7일 개통됐다.

'기한을 꼭 맞춰야 했을까', '공사 중 인명사고로 유명을 달리 한 희생자들까지 77명에 달할 정도로 안타까운 일이 속출했는데 공사를 그렇게 짧은시간 내에 마친 속사정이 대체 뭔가'라고 묻자 이 실장은 "당시 현장 시찰을 33번 다녀왔고 원래 공기를 3년을 잡았었다. 군사작전 비슷하게 속도전이 펼쳐졌다"고 설명했다.

그는 "당시에는 우리나라 건설 기술도 그렇고 자본도 그렇고 매우 열악했다"며 "종합적인 경제개발을 빨리 하려면 기반시설이 중요한데 물동량 이동을 위해서는 고속도로가 빨리 만들어져야 한다고 생각했다"고 덧붙였다.

특히 이 실장은 "군 공병대와 건설부 공무원들, 민간 건설회사 모두 달라붙어서 했다. 군사작전이자 속도전이 된 것"이라며 "순수 우리 기술과 자본으로 하는 자긍심도 있었고 우리도 할 수 있다는 강한 신념을 강조하다 보니까 현장 사람들까지 불철주야 반드시 성공하고야 말겠다는 강한 의지도 있었고 결의도 있었다"고 강조했다.

또한 이 실장은 "대통령의 강한 의지와 관심 속에서 전국민적인 총력 작업에 임했다"며 "그 때에는 그럴 필요성이 충분히 있었다"고 당시 분위기를 전했다.

   
▲ 경부고속도로(서울-부산간)는 당시 폭 22.4m(4차선) 총연장 428km로 완공됐고 연인원 890만명, 연장비 165만대, 공사비 429억 7300만원을 쏟아부은 대역사였다./사진=미디어펜
이어진 질문으로 '달리는 자동차도 전혀 만들지 못했던 후진국의 대통령이 고속도로를 건설해야겠다는 영감을 어디서 받았는지' 묻자, 이 실장은 "1964년 12월 박정희 대통령이 서독을 방문했을 때 아우토반(고속도로)을 가서 그 곳을 목격했다"고 답했다.

이 실장은 "그 현장에서 아우토반이 '라인강의 기적'의 토대였다는 얘길 들었고 박 대통령은 우리도 산업 현대화를 성공하려면 반드시 고속도로가 필요하다는 확신을 갖게 됐다"며 "종합적인 경제개발이 효과를 얻으려면 고속도로가 있어야 가능하다는 판단이고 파급 연쇄효과가 상상 이상의 효과를 거둘 수 있을 것으로 보았다"고 밝혔다.

이어 그는 "1967년 대선 당시 선거공약으로 제시했고 당선되고 난 다음에 본격적으로 추진했다"며 "1968년 2월에 착공해서 1970년 7월 완공했는데 독일방문에서 영감을 얻었다는 내용이 1968년 9월 11일 대구부산간 경부고속도로 기공식에서 일부 언급됐다. 기본적으로는 서독 방문에서 영감을 얻은 것이라고 본다"고 덧붙였다.

이날 인터뷰에서 경부고속도로의 의미에 대해 질문하자, 이 실장은 "한강의 기적의 첫 출발이었고 우리나라 국민들의 저력을 상징하는 것이다. 무에서 유를 창조한 국력 결집 총량의 결과물이었다"고 답했다.

이 실장은 "경부고속도로에는 모든 것이 담겨 있다. 열정과 도전, 국민단결, 애국, 번영, 남북 통일과도 관계된다"며 "통일에 대한 여망과 미래세대까지 포함한 함축적 의미를 지녔다. 또 단국 이래 최대의 토목공사로서 혁신과 진보의 최고 단계라고 충분히 얘기할 수 있다. 이 정신이 우리 국가 혼이 되어야 하고 국민들의 정체성이 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고 힘주어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