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권 여당·청와대 참모·고위 공직자는 무조건 이해충돌자
부동산 정책으로 인한 치부에 시민들은 비난할 수 있다
   
▲ 이석원 정치사회부장
[미디어펜=이석원 정치사회부장]19세기 후반 영국 의회에서 활동했던 보수당의 론 허버트 의원은 당시 영국에서 열 손가락 안에 꼽히는 부자였고, 또 하노버 왕가의 일원과 사돈을 맺을 정도로 고귀한 귀족 가문이었다. 그는 24년간 의회 의원 활동을 했는데, 영국 의회사에 따르면 그가 의원에 재임 동안 그의 재산은 5분의 1로 줄었다고 한다.  
 
의원을 마치고 4년 정도 자신의 영지에서 여생을 보내다가 죽음을 맞게 된 허버트는 자신의 임종을 지키러 온 보수당의 중진과 신진 의원들에게 “부자가 좋은 정치가가 되는 것은 여러 가지로 힘들다. 그 중에서 가장 힘든 것은 재산을 지키는 일이다”고 말했다고 한다. 

1950년대 미국 공화당 상원의원이었던 제임스 맥라이언은 원래 부동산 개발과 기계 수출로 엄청난 부를 쌓았던 인물이다. 본인의 의사보다는 주변의 권유로 상원에 진출한 그는 상원의원 재임 내내 부동산 개발 업자들의 이익을 대변하는 활동을 해 악명을 쌓기도 했다. 

그런데 어느 날 그는 상원의원 자리를 내놓았다. 사임할 당시 건강상의 이유를 들었지만 이후 그는 자신의 회고록을 통해 진짜 사임 이유를 밝혔다. 주위의 정치적인 시선 때문에 마음껏 돈을 벌 수 없었다는 것이다. 

부동산 개발과 관련된 법안들을 통과시키면서 그는 상원 재임 중에도 적잖은 재산이 증식됐다. 그런데 이를 두고 주변에서는 ‘자신의 재산 증식을 위해 정치를 한다’고 봤던 것이다. 그는 회고록에서 “나는 정치를 하면서도 사업을 계속해야 한다고 생각했는데, 상당수 시민들의 생각을 그렇지 않았다. 그래서 난 떳떳하게 돈 버는 길을 선택한 것이다”고 사임의 진짜 이유를 밝혔다.

1969년부터 1976년, 그리고 1982부터 1986년까지 2차례 스웨덴 총리를 지낸 사회민주노동당의 올로프 팔메는 스웨덴 2대 부자 가문의 외아들로 태어난 전형적인 ‘황금수저’였다. 그런 그가 노조의 이해를 대변하고, 노동자의 입장에서 정치를 하는 사민당의 정치인이 된 것도 의외이긴 했다.

올로프 팔메는 늘 부자들의 노블레스 오블리주를 강조했는데, 그래서인지 정치를 하는 동안 지극히 검소한 생활을 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올로프 팔메가 청소년들을 대상으로 한 여름 정치 캠프에 참석했을 때 “스웨덴 최고 부자 중 한 명이면서 가난한 사람들을 위한 정치를 할 수 있냐?‘는 한 청소년의 질문에 ”난 정치를 하기 전부터 내가 부자라고 생각한 적도, 부자로 살아온 적도 없다“고 말하며 ”그런데 부자가 정치를 할 수는 있지만, 정치로 부자가 되려고 하면 안된다는 마음만 있으면 세상은 정치로 행복해 질 수 있다“고 말했다.

집권 여당인 더불어민주당 일부 의원들과 정부 고위 공직자들의 ’자기 재산‘ 지키기가 눈물겹다. 특히 2주택 이상을 가지고 있는 다주택자들은 이미 시민들의 공공의 적이 돼 버렸다. 이번 정부 들어선 내내 서울을 비롯한 아파트값이 천정부지로 치솟는 것 때문에 그들은 상당한 재산이 늘어났지만, 그 이유로 비난의 대상이 되고 있다.

민주당 소속은 아니지만, 박병석 국회의장은 지난 4년간 서초구의 아파트가 23억 원 이상 올라 그야말로 백만장자의 반열에 서게 됐다. 노영민 대통령 비서실장도 서울 반포의 아파트 가격이 올라 앉은 자리에서 8억 원 가량의 시세 차익을 챙기게 생겼다고 한다.

이 두 사람뿐 아니라 2주택 이상을 가진 민주당의 국회의원이 40명이 넘는다고 하고, 장차관 중에서도 14명, 2급 이상의 고위 공직자 중에서는 꽤나 많은 이들이 이 정부 들어서서 아파트 가격의 상승으로 수억 원에서 수십억 원의 재산이 늘어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물론 이들 대부분이 불법한 방법으로 재산을 증식시킨 것은 아니다. 오로지 재산 증식을 위해서 아파트를 사들인 것도 아닐 수 있고, 또 의도가 거기에 있지도 않았을 수도 있다.

게다가 아파트 가격의 상승으로 엄청난 재산 증식의 혜택을 본 것은 이들뿐이 아니다. 야당인 통합당 의원들 중에도 2주택 이상을 소유한 사람은 40여 명에 이르고, 이전 정부에서 장차관을 지냈거나 고위직에 있던 사람들은 이들보다 더 많을 수도 있다. 과거 통합당의 전신이었던 정당의 어떤 의원은 보유하고 있는 아파트가 몇백 채인 경우도 있었다.

   
▲ 아파트값 상승으로 논란의 대상이 됐던 박병석 국회의장(왼쪽)과 노영민 대통령 비서실장./사진=국회방송 캡처, 청와대
그런데도 유독 민주당과 청와대 참모, 그리고 정부 고위직에 대해서만 지금의 비난이 쏟아지고 있다. 민주당의 지도부, 국무총리 등의 압박으로 눈 뜨고 자기 재산을 억지 처분해야 할 지경에 이르기도 했다. 좀 더 지니고 있으면 더 큰 부를 쌓을 수 있는데, 이런저런 불리함까지 감수하고 1가구 1주택자로 신분 전환을 하게 생겼다.

야당도 있고, 전 정부의 고위직들도 있는데, 민주당과 현 정부의 고위직들만 이런 피해(?)를 감수해야 하는 것은, 본인들이 정권을 잡았고, 또 이 정신없는 부동산 정책의 입안자들이기 때문이다. 상당수 시민들과 이익 나눌 수 있는 정책이었으면 별문제 없었을텐데 특정한 부류만이 누린 혜택을 그들로 공유했기 때문이다. 안그래도 온갖 특혜와 특권으로 비난을 받는 국회의원인데다, 집권 여당이고, 고위 공무원인데다 행정 권력이기 때문에 그들이 받는 비난은 불공평하거나 부당하지 않은 것이다.

다시 스웨덴 이야기를 해보자. 스웨덴엔 모두 349명의 국회의원이 있는데, 이들은 세계에서 특권과 특혜가 가장 적은 국회의원이다. 우리나라 국회의원이 자기 방에 세금으로 월급을 주는 9명의 비서진을 둘 수 있는데 비해 스웨덴의 국회의원은 당에 소속된 정책 보좌관 몇 명 뿐이다. 세금으로 운영비를 충당하는 차량도 없고, 특별한 공무가 없는 한 1년 내내 열리는 의회에 출석해야 한다. 

그러면서 그들은 1억 원 남짓의 연봉을 받는다. 우리나라 1인당 국민소득이 3만 달러고 스웨덴이 6만 달러인 걸 생각하면......그런데 스웨덴 국회의원 중 상당수는-심지어 사민당이든 온건당이든 상관없이- 올로프 팔메 전 총리의 말을 금과옥조처럼 셍각한다. ”부자가 정치를 할 수는 있지만, 정치로 부자가 될 생각은 마라“

자본주의인 대한민국에서 개인의 재산 증식을 위한 합법적인 모든 행위는 비난받을 이유가 없다. 대한민국 5000만 국민은 모두 법 앞에 평등하기 때문에 집권 여당의 국회의원이든, 청와대 참모든, 정부의 고위 공직자든 그게 누구라도 마찬가지다.

하지만 집권 여당의 국회의원이나 청와대의 참모나 정부의 고위직 공무원이 자신들이 입안하고 입법하고 집행하는 정책 때문에 평범한 보통의 사람들보다 훨씬 많은 혜택을 보거나 재산을 쌓는 것에 대해 그렇지 못하는 사람들이 비난하고 비판하는 것도 욕할 수 없다. 정당하다고 할 수는 없어도 온당하다. 

그러니 둘 중 하나를 하자. 나라를 위해, 국민을 위해, 아니면 하다못해 개인의 명예를 위해 고위 공직에 앉아서 남들보다 조금 덜 벌고, 더 불편하더라도 열심히 일을 하거나, 아니면 그 자리 다 내어놓고 재산을 불려라. 정치로 부자가 될 생각은 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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