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펜=이동건 기자] 관객들이 예상하는 대로다. 수컷들의 땀내와 피비린내가 진동하는 느와르 영화가 맞다. 칼날과 칼날이 맞부딪히며 선혈이 낭자하고, 고난을 넘은 뒤에는 더 큰 고난이 숙제로 기다린다. '다만 악에서 구하소서'는 마지막 청부살인 미션을 끝낸 암살자의 이야기를 그린다.

삶에 대한 욕심도, 의지도 없이 살아가는 인남(황정민)은 파나마로 떠나 유유자적하는 인생만을 기다리고 있다. 하지만 태국에서 발생한 유아 납치 사건이 옛 연인 영주(최희서)와 관련됐다는 사실을 알게 되고, 영주의 딸을 구하기 위해 태국으로 향한다. 이 가운데 인남이 암살했던 이의 형제 레이(이정재)가 복수심을 불태우며 인남을 추격하기 시작한다.


   
▲ 사진=영화 '다만 악에서 구하소서' 메인 포스터


'다만 악에서 구하소서'는 이렇다 할 정도로 차별화된 이야기를 들려주는 영화는 아니다. 홍원찬 감독이 밝혔듯 성에 갇힌 공주를 구하는 이야기의 원형을 따르고, 장르 영화답게 우리가 봐왔던 작품들의 연상 작용을 일으키는 요소가 많다. 예로 딸을 구하는 슈퍼맨 아빠의 이야기는 리암 니슨 주연의 '테이큰' 시리즈나 원빈 주연 '아저씨'를 떠올리게 하고, 인남과 레이의 추격전은 노보안관과 살인광의 대결을 그린 '노인을 위한 나라는 없다'(2008)를 오버랩시킨다.

그럼에도 영화가 꽤 볼 만하다고 느껴지는 지점이 곳곳에 산재한다. 영화 '신세계'(2013) 후 7년 만에 만난 황정민과 이정재의 맞대결과 기술의 진일보로 일궈낸 액션 신 퍼레이드가 그렇다. 프레임을 나눠서 촬영하는 스톱 모션 기법을 통해 인물 간의 실제 타격을 사실감 있게 구현한 작품은 두 사람이 첫 대면하는 순간부터 강한 전율을 일으킨다. 분명 지금까지의 한국 액션영화에서 느끼지 못했던 카타르시스다.

매 장면이 역동적이고 생동감 있게 펄떡거리니 다음, 또 다음이 궁금해진다. 또 잔혹성의 생략 덕분에 오롯이 액션에 집중하는 힘이 생긴다. 사지가 토막 나는 모습을 적나라하게 묘사하는 등 의미 없이 가학적인 일부 영화들의 단점을 답습하지 않아 보는 데 불편함이 없다는 이야기다.

그렇게 인남의 발자취를 좇아가다 보면 생기는 정서적 감흥도 충분하다. 회색빛 도시와 닮아있었던 인남의 무기력한 얼굴은 작렬하는 햇빛을 추월하며 뛰는 아빠의 처절한 부성애로 변모하고, 복수라는 명분으로 인남을 쫓았던 레이는 살인 이유는 아무래도 상관없는 절대악의 모습으로 여운을 남긴다.


   
▲ 사진=영화 '다만 악에서 구하소서' 스틸컷


이야기의 몰입을 돕는 건 배우들의 놀라운 호연이다. 몸에 타투를 휘감고 화이트 로브, 플라워 패턴 실크 셔츠, 스키니 레더 팬츠, 화이트 슈즈 등 독특한 패션을 선보이는 이정재의 파격 변신은 '관상'(2013)의 수양대군과 마찬가지로 강렬하다. 황정민은 많은 대사 없이도 베테랑다운 감정 연기를 선보이고, 최희서와 박명훈 등 짧은 등장에도 독보적인 존재감을 자랑하는 조연배우들의 공이 작지 않다.

아쉬운 점을 꼽자면 '다만 악에서 구하소서'가 독립적인 아우라를 제대로 형성하지 못했다는 것이다. 영화에서는 엘리베이터 안에서 싸우는 황정민('신세계'), "그럴 필요까진 없다니"라고 말하는 이정재('노인을 위한 나라는 없다') 등 유명작들의 묘사가 재연되며 종종 데자뷰를 일으킬 뿐 작품을 관통하는 한 방이 없다.

존재감 있는 캐릭터에 새 이정표가 될 만한 연출까지 만듦새가 우수한 작품이지만 아쉽다. 세상에 나온 액션영화가 수백 수천이고 적재적소에 필요한 클리셰가 있다지만, 관객들의 뇌리에 깊이 박히는 건 그 영화만이 가진 오리지널리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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