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동시대' 너무나 사실적이어서 심사 거부…자연 내면의 법칙 탐구 주문

현대는 지식이 넘치는 사회이지만, 역설적으로 가치관의 혼돈을 겪고 있는 ‘지혜의 가뭄’ 시대이기도 합니다. 우리 사회가 복잡화 전문화될수록 시공을 초월한 보편타당한 지혜가 더욱 절실한 이유이기도 합니다. 고전에는 역사에 명멸했던 위대한 지성들의 삶의 애환과 번민, 오류와 진보, 철학적 사유가 고스란히 녹아있습니다. 고전은 세상을 보는 우리의 시각을 더 넓고 깊게 만들어 사회의 갈등을 치유하고, 지혜의 가뭄을 해소하여 행복한 세상을 만드는 밑거름이 될 것입니다. ‘사단법인 행복한 고전읽기’와 ‘미디어펜’은 고전 읽는 문화시민이 넘치는 품격 있는 사회를 만드는 밀알이 될 <행복한 고전읽기>를 연재하고자 합니다. [편집자주]

박경귀의 행복한 고전읽기 (38) - 로댕의 예술관, 느낀 대로 사실 대로 표현하라
로댕(Auguste Rodin, 1840~1917)의 『예술론』

   
▲ 박경귀 행복한 고전읽기 이사장
우리에게 로댕(Auguste Rodin, 1840~1917) 하면, 그의 대표 청동조각인 ‘생각하는 사람(The thinker, 1889)’이 떠오른다.

하지만 예술적 가치로 본다면 ‘청동시대’나 ‘칼레의 시민’이 더 뛰어나다는 평가가 많다. 또 로댕하면 꼭 함께 생각나는 사람이 있다.

시대를 앞서 간 천재 여성 조각가 카미유 클로델(Camille Claudel, 1864~ 1943) 이다.

그녀는 19세에 43세의 로댕을 만나 열정적인 사랑에 빠지고 제자이자 연인이 되었다.

 하지만 카미유 클로델은 사랑의 결실을 거두지 못하고 로댕의 제자라는 굴레를 벗어나기 위한 강박관념에 시달리다 정신병동에서 비극적으로 인생을 마쳤다.

   
▲ 생각하는 사람, 로댕, 1889, 아르헨티나 부에로스 아이레스, 사진 Fabian Minetti.

이 두 사람의 애증 관계는 영화로 만들어져 화제가 되기도 했다. 여기서는 일단 세간의 관심을 끄는 두 사람의 예술과 사랑에 대한 얘기는 접어두자.  

   
▲ 칼레의 시민(The Burghers of Calais), 로댕, 영국 빅토리아 타워 가든, 사진 Adrian Pingstone

오귀스트 로댕은 19세기가 낳은 가장 위대한 조각가이자, 근대 조각의 새로운 장을 연 거장으로 평가된다. 그는 역사상 조각의 최고 장인으로 고대 그리스 조각가이자 건축가인 페이디아스(Pheidias, BC 5세기)와 르네상스가 낳은 최고의 조각가인 미켈란젤로(Michelangelo Buonarroti, 1475~1564)의 작품을 찬탄했다.

로댕은 이들의 작품에서 영감을 얻고 이들의 예술정신을 닮으려고 노력했다. 로댕은 이들 예술의 천재들이 공통적으로 ‘자연을 사랑하는 마음’과 ‘성실’에 바탕하고 있음을 강조한다.

예술가에게 정직함, 성실함이란 자연에 대한 존경과 애정의 마음을 갖고 본 대로 느낀 대로 재현해 내는 것을 의미한다. ‘성실과 양심’이 “예술가의 작업에 있어 그 사상의 진정한 토대”라는 것이다. “자연에는 오류가 없다.” 유기체인 자연에 변형과 시정을 가하려한다면 이는 실존을 파괴하는 것이다.

이런 예술가의 오만은 예술을 파산시킨다. 로댕은 이런 인식 아래 근대 예술인에게 자연에 내재한 법칙과 아름다움을 만들어내는 이치를 발견하라고 주문한다.

로댕이 고대 그리스 예술을 극찬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고대 그리스 조각가들은 만물에 대한 성실한 애정과 존경을 예술작품으로 표현해 냈다. 그들은 ‘숭고한 단순성’을 만들어 낸 것이다. 사물을 세밀하게 보지 못하고 대충 보는 근대 예술인들이 결코 “활발한 질감, 형체의 현실성 및 운동감의 정확성” 등 숭고한 단순성을 창조하지 못하고 있다고 자탄한다.

고대 그리스 예술인들은 ‘선의 진실’을 간파하고 있었다는 것이다. 자연을 진실하게 관찰하면 형체와 윤곽을 만드는 본연의 ‘선’이 떠오른다. 고대 그리스 조각가들은 자신들이 파악한 윤곽과 선을 바탕으로 “무한한 아름다움을 포함한 ‘유용성’의 리듬을 지닌 조각상”을 만들어냈다.

그들은 인위적인 노력보다 자연의 본연의 아름다움을 포착하는 데 더 탁월했다. 고대 그리스 조각의 자연스런 예술성, 표현양식에 대한 로댕의 찬탄은 그가 얼마나 고대적 사실주의의 영향을 크게 받았는지를 말해준다.

로댕이 스스로 탐구하여 깨달은 고대 그리스 조각의 진실과 미켈란젤로의 작품의 비법은 그의 작품에 그대로 투영되었다. '청동시대'가 대표적인 예다. 이 작품은 파리의 살롱전에 출품했다. 하지만 실제 살아있는 인물을 석고형으로 떠서 옮긴 것 같다는 오해를 사서 심사를 거부당하게 된다.

이는 거꾸로 작품의 사실적 표현이 정점에 이르렀음을 반증해 주는 사례다. 이에 실망한 로댕은 이 작품을 없앴다가, 주변의 재평가를 계기로 복제품을 다시 만들어냈다. 현재 우리가 감상하는 작품은 바로 로댕의 좌절과 거장으로서의 부활을 상징해 준다.

   
▲ 청동시대, 로댕, 1877경, 베를린 알테 미술관 , 사진 Daniel Ullrich, Threedots

고대 그리스 조각에 못지않게 로댕이 찬탄하는 조형예술은 프랑스의 고딕 건축이다. 그는 노트르담 대성당을 고딕 예술의 극치로 평가하면서, 동그란 대리석 천장을 가볍게 떠받치는 “불가사의한 균형과 힘, 경탄할 만큼 지혜로운 계산”에 의해 세워진 건축미를 찬미한다. 로댕은 고딕 건축의 프랑스 성당들이 파르테논 신전만큼 아름답다고 자부한다. 그는 고딕 양식을 프랑스 예술의 본류로 보는 것이다.

   
▲ 세느 강에서 바라본 로트르담 대성당, ⓒ박경귀

   
▲ 로트르담 대성당 정면, ⓒ박경귀

로댕은 조각 작품의 예술성을 좌우하는 중요한 요소로 동세(動勢, le mouvement)를 강조한다. ‘르 므브망’은 예술 작품의 생명의 느낌을 좌우한다. ‘르 므브망’은 “하나의 자세에서 다른 자세로 옮겨가는 경과를 나타내는 것”이다. 이런 동세를 제대로 표현하는 조각 작품만이 생명력과 감동을 불러일으킨다는 것이다.

또 하나의 요소는 “느낀 대로 사실대로 표현하는 것”이다. 사진의 과학적 영상보다 예술가의 작품이 더 ‘사실적’일 수 있다는 의미는 바로 예술가가 순간에 일어나는 인상을 제대로 포착할 수 있기 때문이다. 예술가는 “느낀 대로 사실대로 솔직하게 표현”하는 것을 창작의 정칙(定則)으로 삼아야 한다고 역설한다. 그는 박제(剝製)된 사실성보다 본능적 사실성을 중시하는 것 같다.

로댕의 개별 작품들에 대한 해설을 통해서도 그의 예술관을 엿볼 수 있다. ‘에우로페의 납치’, ‘키타라 섬으로의 항해’ 등 스토리를 담은 회화 작품을 감상하는 방법이나, ‘라 마르세예즈’와 같이 조각도 희곡처럼 이야기를 전할 수 있음을 보여준다.

고대 그리스의 최고의 조각 작품인 ‘밀로의 비너스’, ‘사모트라케의 니케 상’이 만들어내는 조화된 균형미, 미켈란젤로의 걸작인 ‘피에타’, ‘노예’에 담긴 인간의 고뇌와 우수가 무한한 감동을 이끌어낸다.

   
▲ 밀로의 비너스, BC 2세기, 르부르 박물관, ⓒ박경귀

로댕은 ‘근대 조각의 구도자’라 불릴 만큼 예술의 본질에 대해 끊임없이 자문하고 궁구했다. 고대 및 르네상스기의 위대한 작품들의 창조성, 예술성의 비밀을 탐구하고 그들을 그대로 모방하는 것이 아니라 자연과 사물을 대하는 그들의 태도와 천성, 그 자체를 본받고자 했다. 그러기에 그 역시 창조적인 위대한 조각가로 자리매김할 수 있었다.

그는 “인체 조각에서 그리스를 능가하는 것은 없”다고 단언했다. 나아가 그리스 예술가들이 현세의 생활에 대한 애정을 갖고 자연을 있는 그대로 보는 단순함으로 불후의 작품들을 남겼다고 보면서 당대의 예술인들이 “단순함과 진실”을 체득할 수 있기를 희구했다. 로댕의 이러한 예술 철학은 현대 예술인들에게도 여전히 유효한 교훈이 될 것 같다.  /박경귀 사단법인 행복한 고전읽기 이사장, 한국정책평가연구원 원장

   
▲ ☞추천도서: <로댕의 예술론>, 오귀스트 로댕 지음, 김문수 편역, 돋을새김(2010). 272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