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네서점 위기가 소비자 탓? 시장경제 역행 결국 외면받을 것
정부는 한편으로 규제개혁을 외치면서 한편으로는 가격규제 정책을 시도하고 있다. 단말기유통개선법(단통법)의 쓰라린 실패에도 불구하고 또다시 도서정가제와 같이 시장원리를 무시하고 도서정가제를 강행하고 있다. 도서정가제는 중소출판사나 서점들을 살릴 수 있다는 기대로 만들어진 정책이지만 시장을 위축시키고 소비자들의 부담을 늘리게 될 것이라는 우려가 많다. 이에 자유경제원에서는 정부의 가격규제 정책의 문제점을 짚어보는 '정부의 가격규제, 이게 규제혁신인가' 토론회를 개최했다. 아래 글은 이유미 컨슈머워치 사무국장이 토론회에서 발표한 토론문 전문이다.

전국의 만 18세 이상 남녀 성인 2천 명과 초·중·고등학생 3천 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2013년 국민 독서 실태조사(문화체육관광부) 결과, 성인의 연평균 독서량은 9.2권이다. 이는 2011년에 비해 0.7권 감소한 수치이다. 반면 학생은 32.3권으로 2011년 대비 8권이 증가했다.

엄마들은 주로 어디서 책을 구입할까. 먼저 홈쇼핑을 통해 아동세트도서 등을 40-70% 할인 받아 구매한다. 공동구매를 통해 할인 받기도 한다. 참고로 이 과정에서 아동용 도서는 신간보다 베스트셀러나 고전 명작으로 소문 난 구간을 선호하게 된다.

이번 도서정가제의 개정으로 인해 초등 학습참고서가 정가제 대상으로 포함되었다. 이는 누굴 위해서일까? 중소 서점 매출에서 참고서가 차지하는 비중은 평균 50%이다. 최대 80-90%에 달하는 중소 서점도 상당수 있다.

   
▲ 자유경제원이 13일 주최한 <정부의 가격규제, 이게 규제혁신인가> 토론회에서 토론자로 발언하고 있는 이유미 컨슈머워치 사무국장 

박대춘 한국서점조합연합회장은 “중고등서와 달리 초등서는 그동안 정가제 예외 품목이어서, 반값 할인 판매가 성행했다. 앞으로 15%할인 틀에 묶이면 학기 초 등에 집중적으로 구매가 이뤄지는 참고서의 특성상 가까운 동네 서점에서 구매하는 사람들이 늘어날 수도 있다”고 언급했다. 바꿔 말하면 이는 도서정가제로 인해 중소 서점 동네 서점들이 이득을 본다는 것을 의미한다.

도서정가제 개정으로 인해 소비자들이 찾는 책 할인 행사로서 열리는 출판사 ‘패밀리 세일’, 리퍼도서 판매 북카페, 책 축제 등이 모두 금지되었다. 이는 명백히 소비자들의 효용과 선택의 자유가 제한되는 조치이다.

소비자들은 왜 중소서점이 아닌 대형서점과 온라인 서점을 찾을까. 문화를 즐긴다는 명목과 더불어, 클릭 몇 번으로 당일 무료배송이 가능하다는 편리성이 있다. 과연 중소서점이 이를 따라갈 수 있을까 의문이다. 중소서점만의 경쟁력이 관건인데, 중소서점의 경쟁력 구축을 위해서도 할인은 필요하다.

도서정가제가 없는 미국의 시장 현황은 다음과 같다. paper book보다 e-book의 매출이 더 많다. 업계는 계속해서 새로운 pricing 실험을 벌이고 있다. 월 일정액의 돈을 내면 무제한 다운로드가 가능하게 하거나, paper book을 산 고객에 한해서 e-book을 무료로 주는 옵션 등이 그것이다.

보다 더 자세한 이해를 구하기 위해서, 2014년 5월 도서정가제 시행 전 한 신문사에 기고했던 칼럼을 첨부한다.

   
▲ 자유경제원이 13일 주최한 <정부의 가격규제, 이게 규제혁신인가> 토론회의 전경 

동네서점의 위기가 할인을 좋아하는 소비자 탓?

엄마들은 주로 어디서 책을 구입할까? 한국인들이 책을 많이 읽지 않는다고 하지만 다행스럽게도, 학생들의 독서량은 증가하고 있다(문화체육관광부, ‘2013 국민 독서 실태 조사’-학생들의 연평균 독서량 32.3권, 2011년 대비 8권 증가). 부모들은 아이들에게 책 사주는 돈을 아끼지 않는 편이다.

그러나 보통 20~30만원이 넘는 전집을 선 듯 구입하기에는 망설여지는 것이 사실이다. 홈쇼핑은 이런 부모의 마음을 읽은 것인지, 40~70% 할인행사에 사은품까지 얻어주며 아동전집을 판매하고 있다. 메이저 홈쇼핑 몇 곳은 전집 판매로만 연간 700~800억 원의 판매고를 올린다고 한다.

그러나 더 이상 홈쇼핑에서 파격적인 가격에 전집을 구입하기 힘들 게 됐다. 신간과 구간 모두 마일리지나 쿠폰 등을 포함해 할인율이 15%를 넘지 못하도록 하는 도서정가제 개정안(출판문화산업진흥법 일부 개정법률안)이 4월 16일 국회 교육문화체육관광위 법안심사소위원회를 통과했다.

현행 도서정가제는 출간 18개월 미만의 신간도서의 경우 최대 19%까지, 구간도서와 실용서, 초등학습참고서는 도서정가제의 예외로 무제한 할인이 가능하다. 그러나 출판계와 오프라인 서점계는 현행 도서정가제가 예외규정이 많아 책 값 할인을 부추기고 있다며 완전한 도서정가제를 요구해 왔다. 이들의 요구대로 법 개정이 이뤄지고 있는 것이다.

한국서점조합연합회는 “책은 자유시장경쟁 논리가 작용하는 일반소비재와는 엄격히 구분해야 할 지식재이자 공공재”라고 주장한다. 이렇게 ‘특별한 가치’를 지닌 책이 인터넷 서점을 중심으로 할인경쟁을 벌이다 보니 ‘가치가 떨어지고, 출판생태계가 파괴되고, 지역문화의 실핏줄인 서점이 문을 닫고 있다’는 것이다.

한국서련에 따르면 2013년 말 현재 국내 서점 수는 2,331개로 2011년 말의 2,577개에 비해 246개(10%)가 줄어들었다. 한국서련은 “책의 가치를 되찾고, 동네서점을 살리는 유일한 길은 완전한 도서정가제”라고 주장한다.

그러나 소비자 입장에서 책은 할인경쟁 할 수 없는 ‘특별한 가치를 지닌 상품’이란 주장에 동의하기 어렵다. 책도 결국 소비자의 선택을 받기 위해 만들어낸 상품이다. 그렇다면 책값도 수요와 공급 법칙에 따라 결정돼야 한다.

만약 소비와 상관없이 그 가치가 결정돼야 한다면 누가 어떻게 결정한다는 것인지 묻고 싶다. 소비자들은 특별한 가치가 있는 책이면 특별한 값이라도 치러 살 것이고, 무가치한 책이라면 아무리 할인을 해도 사지 않을 것이다

동네서점을 살리기 위해서 완전한 도서정가제를 유지해야 한다는 것에 대해서도 동의하기 어렵다. 중소서점의 붕괴는 도서할인경쟁이 아니더라도 이미 예견된 사실이었다. 예전처럼 출판되는 도서의 양이 많지 않았던 시절에는 몇 평짜리 서점에도 웬만한 책들을 진열할 수 있었고, 동네서점은 이러한 책들에 파묻혀 책을 고르는 낭만 또한 있었다. 그러나 지금처럼 하루에도 수십 권의 책이 쏟아져 나오고 도서분류도 대단히 다양해진 세상에 동네서점은 사람들의 기호를 만족시키지 못한다.

동네서점은 자신만의 장점을 찾아 어필해야 한다. 퇴근하고 돌아온 아빠가 아이와 함께 책 한권 보러 갈수 있는, 집 근처 문화공간이라는 장점을 살릴 방안을 모색해 보라. 아빠와 함께 책을 구입하면 할인혜택을 주거나, 근처 어린이집 아이들을 초대해 책을 고르고 계산도 해보는 체험 공간을 제공한다면 어떨까?

아이들이 부모 손을 잡고 자연스럽게 동네서점을 찾게 되지 않을까? 동네 마트들이 매일 달라지는 할인상품을 내놓듯, 인기 아동도서를 매일 한권 씩 골라 할인 판매하면 어떨까? 시대 변화에 맞는 생존전략을 수립하고 새로운 아이템으로 변화해야지 무작정 도서정가제를 고수한다고 동네서점이 지켜지는 게 아니다.

출판계와 오프라인 서점계는 소비자의 욕구를 좇아가는 노력을 게을리 한 채, 자신들의 어려움을 너무 쉽게 ‘할인을 좋아하는 소비자의 탓’으로 돌리고 있다. 소비자를 위한 할인경쟁을 차단하는 도서정가제 개정안은 불황이라는 출판계에 더 큰 불황을 가져올지 모르겠다. 소비자를 무시한 정책의 결과가 늘 그렇듯이 말이다. /이유미 컨슈머워치 사무국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