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덟가지 흠 네가지 환란 경고…자연과 일체 참된 인간 본성 일깨워

현대는 지식이 넘치는 사회이지만, 역설적으로 가치관의 혼돈을 겪고 있는 ‘지혜의 가뭄’ 시대이기도 합니다. 우리 사회가 복잡화 전문화될수록 시공을 초월한 보편타당한 지혜가 더욱 절실한 이유이기도 합니다. 고전에는 역사에 명멸했던 위대한 지성들의 삶의 애환과 번민, 오류와 진보, 철학적 사유가 고스란히 녹아있습니다. 고전은 세상을 보는 우리의 시각을 더 넓고 깊게 만들어 사회의 갈등을 치유하고, 지혜의 가뭄을 해소하여 행복한 세상을 만드는 밑거름이 될 것입니다. ‘사단법인 행복한 고전읽기’와 ‘미디어펜’은 고전 읽는 문화시민이 넘치는 품격 있는 사회를 만드는 밀알이 될 <행복한 고전읽기>를 연재하고자 합니다. [편집자주]

박경귀의 행복한 고전읽기 (39) - 탐욕으로 질주하는 현대인에 주는 교훈 장자(莊子, BC 369~BC 289?)의 『장자』

   
▲ 박경귀 행복한 고전읽기 이사장
한 해가 저물어 간다. 분주하던 마음을 정돈하고 삶을 되돌아보기 좋은 시간이다. 몸과 마음에 찌든 갖가지 욕망의 때를 씻겨내는데 읽기 좋은 책으로 『장자』를 권한다. 읽고 나면 마음이 한결 개운해질 것이다.

『장자』를 읽기 전에 우선 고민한 것은 수많은 『장자』 중에서 어떤 번역본을 고를 것인 가였다. 서점에서 수십 종의 『장자』 책을 펼쳐보며 군데군데 같은 대목들의 번역과 해설을 비교해 보았다.

필자가 두 시간 가까이 상당 부분을 읽고 대조한 후 선택한 책이 김학주 번역본이다. 이 책은 타이완의 왕숙민의 『장자교석(莊子校釋)』을 저본(底本)으로 하고 전목(錢穆)의 『장자찬전(莊子纂箋)』>를 참고자료로 활용했다고 밝히고 있다.

1983년 국내 최초의 완역본으로 나왔던 이 책을 역자가 2010년에 대대적인 개역과 주해를 통해 새롭게 선보인 책이다. 수십 종의 『장자』 번역 및 완역서 중 가장 사랑받고 있는 책이기도 하다. 『노자』와 같은 운율적 시가형식이 아닌 우언(寓言)집 형태의 『장자』의 특성에 맞춰 원문 직역이 군더더기 없이 유려해서 읽기 좋다.

고사(故事)가 가득하고 시대적 상황만 다를 뿐 현대의 우화(寓話)집을 대하는 것처럼 편하게 읽힌다. 게다가 역자는 필요한 대목마다 30년 이상 장자 연구에 천착한 내공에서 배어나오는 깊이 있는 해설을 덧붙이고 있다.

‘무위자연(無爲自然)’의 삶

장자의 사상을 이해하려면 먼저 노자를 알 필요가 있다. ‘노장(老莊)사상’이라 일컫듯 이 두 사람의 사상의 근간이 매우 밀접하게 상통(相通)하기 때문이다. 아니 오히려 장자의 사상이 ‘무위(無爲)’에 개념에 더 충실하고 명쾌하기도 한듯하다.

유가(儒家)의 관점을 깨뜨리는 데에 있어 장자가 더 과감하다. 노자는 배움을 중시하지 않았다. 그가 강조한 도(道)는 학습으로 취득되는 것이 아니라, ‘있는 그 자체’, ‘꾸밈이 없는 사물과 인간의 본성’에서 우러나오는 것이라고 보았기 때문이다. 노자는 일체의 인위적 노력을 극도로 경계했다.

장자의 인생관 역시 확고하게 ‘무위자연(無爲自然)’을 궁극적인 목적으로 삼았다. 자연의 만물이 모두 같은 본체에서 발원한다는 생각에서 볼 때, 인간과 자연의 동화는 자연스런 상호 회귀에 의해 이루어진다는 것이다. 여기에 ‘인위(人爲)’가 개입되면 인간은 자연의 본성과 어긋나게 된다.

장자는 인간의 처세에서 각자의 분수를 깨닫고 그에 맞게 처신하는 것이 보신(保身)의 제일철학이 되어야 함을 강조한다. 세상의 일반적 가치 기준과 명분을 따르기 위해 쓸데없는 노력으로 자신을 수고롭게 하기보다 자유롭게 살기를 권고하는 것이다. ‘쓸데가 없는 무용(無用)’이 가장 크게 쓰일 수 있다는 역설의 인생철학은 늘 경쟁에 내몰려 무언가 더 많은 것을 성취하려 애쓰고 있는 현대인에겐 당혹스럽게 다가온다.

장자는 거목으로 자란 나무는 아무 쓸모가 없었기에 누군가 베어가지 않음으로써 그렇게 크게 자랄 수 있었다고 본다. 장자는 이런 예와 유사한 ‘쓸데없는 것의 쓰임’의 우화를 여러 번 소개하고 있다. 세상에서 재능을 뽐내지 않고 자신의 분수에 맞는 삶을 사는 사람만이 안온(安穩)한 삶을 살 수 있다는 얘기다.

유학자들이 세상을 주유하며 제후들로부터 헌물(獻物)을 받아 생활했던 것과 달리, 장자가 항상 궁핍하게 살면서도 사회의 쓰임을 받기 위한 인위적인 노력을 하지 않았던 것도 그의 무위자연적 삶의 실천이었다.

장자에게는 재능이 뛰어난 사람이나 부족한 사람이나 차별이 없다. 심지어 사람과 자연과의 사이에도 구별이 없다. 그가 나비 꿈을 꾸면서 나비가 자신의 꿈을 꾸는 것인지, 자신이 나비가 되어 꿈을 꾸는 것인지 분별하기 어렵다고 토로하는 이유도 같은 맥락이다. 자연과 인간, 현실과 꿈이 일체가 되는 경지가 그가 설정한 ‘도(道)’의 경지다.

   
▲ 장자의 호접몽(胡蝶夢), 육치(陸治, 1496–1576).

장자의 ‘도’를 깨닫는 사람은 ‘지극한 사람’, ‘신묘한 사람’이다. 그래서 어렵다. 어떻게 해야 장자의 도에 다가갈 수 있을까? 그가 제시하는 방법론은 ‘본성대로 살라’는 것이다. 개인의 지나친 욕망과 감정을 모두 내려놓고 자연의 모습으로 돌아가라는 것이다. 자신을 의식하지 않고 자연과 일체가 되어 살아가는 것이 인간의 참된 본성에 부합한다는 것이다.

장자는 공자가 설파한 인의(仁義)와 예(禮)를 강력하게 비판했다. 유가의 교훈은 모두 인위적인 노력을 요구하는 것으로써 인간의 참된 본성의 발로와 배치된다고 보았기 때문이다. 마음을 고요히 비우고 욕망을 버리는 것, 거기서 출발할 때 사람 사이의 예와 인은 저절로 이루어진다는 생각이다. ‘무심(無心)’과 ‘무위(無爲)’에서 나오는 생각과 행동이 가장 자연스런 본성이라는 의미다.

그런 차원에서 장자는 끊임없이 인간 사회를 교화하려 한 유가가 오히려 세상을 혼란시키고 있다고 보았다. <외편>과 <잡편>에서는 공자를 등장시켜 훈계하고 질책하는 대목이 상당히 많다. 이는 실제 대화록이 아니라 도가의 입장에서 자신들의 논리를 강조하고 유가의 폐단을 지적하기 위해 만든 우화들이다. 장자가 직접 들려주는 이야기도 있지만, 장자의 제자들이 추가한 글들도 상당하다는 평가를 받는다.
 

이 가운데 도척(盜跖)과 공자(孔子)의 대담편(29편)은 유가를 비판하는 도가의 관점이 어떤 것인지를 명확히 보여준다. 희대의 도적 도척이 공자야말로 세상을 어지럽히는 가장 큰 도적이라며 도구(盜丘)라고 호칭하며 맹공하는 대목은 섬뜩할 정도다.

세상을 어지럽히는 팔자사환(八疵四患)

고기잡이 어부가 공자를 깨우치는 팔자사환(八疵四患)론도 ‘무위 자연’을 추구하는 도가의 철학적 관점을 잘 드러내고 있다. 이는 유가(儒家)의 허위성에 대한 비판인 동시에 현대의 모든 지식인을 향해 내려치는 죽비의 매서운 훈계로도 들린다. '팔자사환론'은 장자가 말하는 ‘도’와 ‘무위 자연’의 삶이 어떤 것인지 직접 드러나지 않지만 최소한 어떠한 삶의 태도가 지양(止揚)되어야만 하는 지에 대해서 지침을 준다.

“사람에게는 여덟 가지 흠이 있고, 일에는 네 가지 환난이 있으니 살피지 않으면 안 되는 것입니다. 자기가 할 일이 아닌데도 그 일을 하는 것을 외람된 짓이라고 합니다. 그를 거들떠보지도 않는데도 나아가 가까이 하는 것을 간사한 짓이라고 합니다. 옳고 그름을 가리지 않고 얘기하는 것을 아첨하는 짓이라고 합니다.

남의 악한 점을 얘기하기 좋아하는 것을 모함하는 짓이라 합니다. 사귀던 사람을 떨어지게 하고 친한 사람을 멀어지게 하는 것을 해치는 짓이라 합니다. 남을 칭찬하고는 속임으로써 남을 악에 떨어뜨리는 것을 간악한 짓이라 합니다. 좋고 나쁜 것을 가리지 않고 두 가지를 다 받아들이며 얼굴빛을 적응시키고, 그가 바라는 목적을 이루는 것을 음험한 짓이라 합니다.

이상의 여덟 가지 흠이란 것은, 밖으로는 사람들을 어지럽히고 안으로는 자신을 손상케 하는 것입니다. 따라서 군자들은 그러한 짓을 하지 않고, 명철한 임금은 그런 자들을 신하로 삼지 않습니다.

이른바 네 가지 환난이라는 것은 다음과 같습니다. 큰일을 해 내기 좋아하고 변혁을 잘 시켜 일정한 것들까지 바꾸면서 공명을 얻으려 애쓰는 것을 참람된 짓이라 합니다. 자기만 아는 지식을 가지고 일을 멋대로 하며 남의 것을 침범하여 자기 것으로 삼으려는 것을 탐욕스런 짓이라 합니다.

잘못을 알고도 고치지 않고 간하는 말을 들으면 그 나쁜 행동을 더 심하게 하는 것을 포악한 짓이라 합니다. 남이 자기에게 찬성하면 괜찮지만 자기에게 찬성하지 않으면 비록 좋은 일이라도 좋지 않다고 하는 것을 교만한 짓이라 합니다.

이상이 네 가지 환난입니다. 이 여덟 가지 흠을 버리고 네 가지 환난을 행하지 않아야만 비로소 가르칠 수가 있는 것입니다.“

장자는 흠투성이인 유가들이 세상을 어지럽히고 있다고 질타하는 것이다. 그런데 내 얼굴이 더 화끈거린다. 여덟 가지의 흠과 네 가지 환난이 하나하나 폐부에 꽂힌다.

장자가 고기잡이 어부를 내세워 당대의 지식인들에 대해 강한 반감을 거침없이 드러낸 것이다. 어떻게 보면 장자의 이런 관점은 반주지주의(反主知主義), 반문명주의(反文明主義)로 비쳐질 수도 있다. 하지만 장자가 춘추전국시대에 만발했던 제자백가들이 앞 다투어 제후들을 부추겨 세상을 혼란하게 만드는 것으로 보았기 때문은 아닐까?

무위의 통치술을 강조한 것도 패권을 추구하던 제후들에 대한 환멸에서 나온 것은 아닐까? 이러한 시대적 배경을 생각해 볼 때, 장자가 자연에 은둔하며 자신을 보신(保身)하고 자신만이라도 세상의 혼란에 가세하지 않으려한 것으로 볼 수 있다.

장자는 세상의 주류가 아닌 비주류의 명상가이자 은둔자였다. 그는 세상일에 초탈하고 완전한 자유를 꿈꾸었다. 그의 ‘무한 자유’의 추구는 자연 속에서 최소한의 의식주를 스스로 해결해 나가는 자족적 삶을 통해 구현될 수 있었다. 하지만 그의 인생관이 세상 모든 사람들에게 달가운 것은 아니었으리라. 부와 권력, 갖가지 욕망에 사로잡힌 범인(凡人)들이 그러한 욕구를 내려놓고 자연적 삶으로 돌아간다는 것은 고통스러운 일이다.

장자가 생각한 인간의 본성과는 거리가 멀겠지만 인간의 본성 자체에 부와 권력, 지식욕과 색욕, 과시욕이 내장되어 있는 건 아닐까? 갖가지 욕망에 노출되고 길들여진 현대인에게 장자의 ‘무위자연’ 철학은 너무나 낯설게 느껴질 수 있다. 설사 무위와 무욕이 인간의 타고난 본성이라고 할지라도, 문명화의 길로 들어서면서부터 인간들의 그런 자연적 본성이 서서히 소멸되어 온 것인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 장자, 작자 미상.

현대인의 맹목적 삶 돌아봐야

한 노인이 자공(子貢)에게 들려준 우화는 바로 문명의 이로움에 사로잡혀 자신의 본성을 잃어가는 것조차 망각한 현대인에게 들려주는 질책 같기도 하다. 자공은 땅에 구멍을 파고 물을 길어 밭에 물을 주던 노인에게 물을 쉽게 끌어올릴 수 있는 두레박이란 기계를 사용하면 효과적으로 더 넓은 밭에 물을 줄 수 있다고 권고한다. 이에 대한 노인의 응답은 새로운 깨달음으로 돌려준다.

“기계를 소유하게 되면 기계에 따른 일거리가 생기기 마련이고, 기계를 사용하는 일거리가 생겨나면 기계에 사로잡히는 마음이 반드시 일어나게 되어 있습니다. 기계에 사로잡히는 마음이 가슴 속에 있게 되면, 자연 그대로의 순박하고 깨끗한 본성이 파괴되고, 그렇게 되면 정신이 불안정하게 됩니다.”

문명의 이기(利器)에 매달려 사는 현대인의 맹목적 삶을 신랄하게 꼬집고 있지 않은가? 장자의 ‘무위자연’의 철학을 현대인이 그대로 실행할 수는 없다. 장자가 추구한 무심(無心)과 무위(無爲)를 따라할 만한 자유를 온전하게 추구할 수 있는 사람이 있을까? 현대인의 삶은 너무나 많은 이해관계와 복잡하게 얽혀있다. 하여 쉼 없이 유위(有爲)를 요구받고 있다. 그것도 열정적으로, 경쟁적으로 말이다.

이런 상황에서 세상과 등질 요량이 아니라면 자신 혼자만의 ‘무위자연’을 추구하기가 현실적으로 매우 힘들다. 아니다. '스스로 그러하게(自然)' 사는 의지와 방식은 이미 자신의 본성 안에 자리하고 있다. 다만 발견하지 못할 뿐이다.

현대인에게 '무위자연(無爲自然)'이란 어떤 의미일까? 장자의 '무위(無爲)'가 아무것도 하지 않고 빈둥거리는 게으름과 나태를 의미하는 것은 분명 아니다. 무위가 무위도식(無爲徒食)을 뜻하는 것은 더더욱 아니다. 자연(自然) 역시 만물의 터전인 대 자연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사물과 인간이 갖고 있는 본성적 요소를 간직한 상태, 순진무구한 맑은 마음의 바탕을 '자연'으로 이해해야 하지 않을까?

그렇다면 투철한 직업관이 없을 경우 생존하기 힘든 자본주의 사회에서 '무위자연(無爲自然)'에 대한 올바른 이해와 현명한 응용이 필요하다. 유위(有爲)의 삶 속에서 무위를 실천하는 지혜를 찾아야 하는 것이다. 갖가지 요구받는 소임에 자신의 분수와 능력에 맞게 충실히 임하는 것, 자신의 직무를 꾸밈으로 대하는 것이 아니라 정성을 다하는 것, 그 자체가 무위자연을 실천하는 길이 아닐까?

어쩌면 현대인의 인생은 새장 속에 갇힌 삶과 같은지도 모른다. 하지만 한번쯤 인간 사회에서의 무리한 욕망의 질주를 잠시 멈추고 천지자연의 순리를 생각해보자. 그리고 장자의 철학을 자신의 삿된 마음을 정화하는 해독제로 써볼 수 있지 않을까? 마음 한 구석에라도 ‘무심’한 나, ‘무위’의 나를 키우며 때때로 되돌아 볼 필요도 있지 않을까? 그 때 유용한 책이 『장자』다. /박경귀 사단법인 행복한 고전읽기 이사장, 한국정책평가연구원 원장

   
▲ ☞추천도서: 『장자(莊子)』, 장자 지음, 김학주 옮김, 연암서가(2013, 10쇄). 826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