촉망받던 신인 재미 교포 골퍼 크리스티나 김도 9년간 트라우마 시달려

국내 최고의 골프칼럼니스트인 방민준 전 한국일보 논설실장의 맛깔스럽고 동양적 선(禪)철학이 담긴 칼럼을 독자들에게 배달합니다. 칼럼에 개재된 수묵화나 수채화는 필자가 직접 그린 것들로 칼럼의 운치를 더해줍니다. 주1회 선보이는 <방민준의 골프탐험>을 통해 골프의 진수와 바람직한 마음가짐, 선의 경지를 터득하기 바랍니다. [편집자주]

방민준의 골프탐험(32)- 골프는 트라우마의 지뢰밭

   
▲ 방민준 골프칼럼니스트
골프만큼 핑계거리가 많은 스포츠도 없을 것이다. 풍성한 포획을 상상하고 사냥에 나서는 사냥꾼처럼 골퍼 역시 희망과 즐거움을 찾아 필드로 향하지만 골프코스는 결코 파라다이스가 아니다.

코스 자체는 파라다이스의 조건을 충분히 갖추었지만 코스를 걷는 골퍼의 마음은 코스의 아름다움과 평화로움을 그대로 받아들일 만큼 여유롭지 못하다. 그 많은 핑계거리만큼 다양한 종류의 스트레스와 징크스가 운명처럼 따라다니기 때문이다.

트라우마(trauma)는 의학 병리학에서만 통용되는 용어가 아니다. 간단히 정의해 ‘외상 후 정신적 스트레스 장애’로 알려진 트라우마는 사실 인간의 마음속에 똬리를 틀고 상주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성인이 아닌 이상 스트레스 없는 삶이란 존재할 수 없다. 어떤 분야이든 최고의 경지에 오른 사람들은 겉으로 드러난 즐거움과 보람 뒤에 뼈를 깎는 인내의 그림자를 안고 있다.

한 시대 빙판의 요정으로 추앙받은 김연아도 결정적인 순간에 다리가 무감각해져 마음먹은 동작을 할 수 없는 입스(yips) 증후군에 시달렸다는 얘기를 들으면 고통스런 트라우마를 자신의 한 부분으로 받아들인 뒤의 각고의 노력이 그들을 최고의 경지로 이끈 추동력이 되지 않았을까 생각된다.

골프라고 예외일 수 없다. 싱그러운 초원에서 한가하게 노닐며 이따금 그다지 복잡하거나 힘들어 뵈지 않는 동작으로 볼을 날리는 골프야말로 실은 트라우마의 지뢰밭이다. 

입스 증후군으로부터 자유로운 골퍼는 없다. 정신성 불안증세로 인해 나타나는 근육의 경련현상인 입스 증후군은 정도의 차이만 있을 뿐 설레는 가슴으로 필드를 찾은 모든 골퍼에게 필연적으로 나타나게 돼있다. 

   
▲ 골퍼들이 누적된 스트레스와 징크스 등으로 생긴 트라우마로부터 벗어나는 길은 트라우마의 존재를 인정하고 트라우마가 생긴 근본원인을 찾아내 꼬인 실타래를 하나하나 풀어가는 길 외에 왕도가 없다. /삽화=방민준

첫 홀 티잉 그라운드에 올라섰을 때의 울렁거림과 드라이버샷을 실패하면 어쩌나 하는 두려움, 벙커와 해저드에 대한 공포, 짧은 어프로치 샷을 남겨놓은 상황에서의 머리의 어지러움, 별로 어렵지 않은 퍼팅을 남겨놓고 겪는 두뇌의 잼 현상 등 지나친 흥분과 긴장에 따른 입스 증후군은 골프에서는 다반사로 나타난다.
이런 입스 증후군의 증세가 지속되면 터부 또는 징크스로 나타나고 결국에는 트라우마로 굳어진다.

입스 증후군 없는 골퍼가 없듯 트라우마 없는 골퍼 역시 존재할 수 없다. 트라우마 자체에 좋고 나쁨은 없다. 그것은 상처의 흔적일 뿐이다. 그 흔적을 보면서 지난날의 아팠던 기억을 되살려 헤어나지 못하고 고통을 받는다면 고질적 트라우마가 되고 만다.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면 트라우마가 치유되고 징크스나 터부로 굳은살이 되지 않을 텐데 부정하려 들다보니 트라우마의 존재는 더욱 강해지고 나를 옥죈다. 

‘골프란 원래 천국과 지옥을 오락가락하는 운동이다. 무슨 일이든 일어날 수 있는 게 골프다’라는 대 전제를 깔고 라운드에 임하면 필드에서 발생하는 모든 끔찍한 일들을 견뎌낼 수 있지만 ‘왜 유독 나에게 이런 끔찍한 일이 일어나는가’라며 부정하면 정신적 상처는 치유되기는커녕 더욱 악화될 뿐이다. 

촉망받던 신인이었다가 원인 모를 추락으로 극심한 우울증에 빠져 9년여 고통의 세월을 보내며 자살까지 생각했던 재미교포 골퍼 크리스티나 김(30)이 겪은 트라우마는 결국 자신의 우울증을 인정하고 스스로 탈출로를 모색함으로서 222 게임 만에 우승을 거두는 기적을 낳았다. 트라우마에 굴복하지 않고 트라우마를 천연두 자국처럼 받아들임으로서 트라우마를 극복한 대표적 케이스다.

내게도 한때 벙커 샷에 대한 트라우마가 있었다. 벙커에 볼이 들어가면 한 번에 탈출하지 못하고 투닥거리는 일이 비일비재했다. 주변에서 벙커 샷 연습할 곳도 없어 고질병처럼 굳어가던 차에 해변으로 짧은 휴가를 다녀오면서 벙커 샷에 대한 공포를 치유할 수 있었다.

휴가철이 아니어서 백사장은 한가했다. 샌드웻지와 볼 20여개를 들고 백사장 한 켠에서 샌드 샷 연습을 시작했다. 다양한 상황의 샌드 샷을 하면서 백사장을 반나절 동안 왔다 갔다 했다. 이튿날에도 백사장에서의 샌드 샷으로 반나절을 보냈다. 그러고 나니 샌드 샷에 대한 공포는 씻은 듯 사라져 평범한 어프로치를 하듯 벙커 샷을 할 수 있었다.

골퍼들이 누적된 스트레스와 징크스 등으로 생긴 트라우마로부터 벗어나는 길은 트라우마의 존재를 인정하고 트라우마가 생긴 근본원인을 찾아내 꼬인 실타래를 하나하나 풀어가는 길 외에 왕도가 없다. /방민준 골프칼럼니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