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로부터 독립적 운용 불가…외국투자자본 국내투자 발목 잡아
국민연금의 의결권 행사확대를 통해서 기업의 배당수준을 높이겠다는 정부의 정책은 신중을 기해야 한다는 주장이 제기되었다. 한국경제연구원은 21일 전경련회관 컨퍼런스센터에서 <배당정책 관련 연기금의 역할과 과제> 정책세미나를 개최하고 국민연금 의결권을 통한 배당확대 정책의 문제점을 지적했다. 패널로 참석한 발표자 및 토론자들로부터 우려의 목소리가 제기되는 가운데 토론자로 참석한 전삼현 숭실대 교수는 “연기금이 정부로부터 독립적이지 못한 우리 현실을 감안할 때 연기금의 주주권 행사는 민간기업의 공기업화나 관치경제의 심화의 우려를 불러일으킬 수 있다”고 지적했다. 아래 글은 전삼현 숭실대 교수의 토론문 전문이다.

 

 

 

 

 
▲ 전삼현 숭실대 법학과 교수, 기업법률포럼 대표

1. 문제제기

정부는 연기금이 배당관련 주주권행사에 대한 특례를 인정하여 어떠한 제약도 받지 않고 배당에 관한 의사결정을 할 수 있도록 자본시장법을 개정하고자 한다.

연기금이 기업에 투자한 경우 주주로서의 지위를 획득하는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연기금이 정부로부터 독립되어 있지 못한 우리 현실을 감안하여 볼 때에 연기금의 주주권행사는 민간기업의 공기업화와 관치경제의 심화를 통한 “대한민국의 전체주의화”에 대한 우려감을 낳고 있다.

이는 헌법 제126조에서 “국방상 또는 국민경제상 긴절한 필요로 인하여 법률이 정하는 경우를 제외하고는, 사영기업을 국유 또는 공유로 이전하거나 그 경영을 통제 또는 관리할 수 없다.”는 규정에 정면 배치될 수 있다는 점에서 위헌 논란의 여지도 있다.

문제는 이러한 연기금의 주주권행사가 근본적인 민간기업의 공기업화라는 위험성을 안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정부가 자본시장법을 개정하여 연기금에게만 강력한 주주권 행사를 가능하게 하고자 한다는 점이다.

주된 내용은 연기금이 기업의 배당정책에 사실상의 영향력을 미칠 경우 경영참여 목적으로 간주되어 지분변동공시 특례, 단기매매차익 반환 예외 등을 적용 받지 못하게 되어 있는 현행규정을 개정하여 연기금이 기업의 배당 결정에 사실상의 영향력을 미치더라도 경영참여목적이 아닌 것으로 간주하도록 하는 것이다.

그러나 이는 회사법의 대원칙인 주주평등의 원칙에 반할 뿐만 아니라 헌법 제126조에 위반되는 대한민국의 전체주의화를 초래할 수 있다는 점에서 보다 신중한 입법논의가 필요하다고 본다.

이하에서는 이러한 점을 중심으로 연기금의 배당관련 의사결정참여의 문제점 및 해결방안을 모색하여 보고자 한다.

   
▲ 한국경제연구원이 21일 전경련회관 컨퍼런스센터에서 주최한 <배당정책 관련 연기금의 역할과 과제> 정책세미나 전경. 

2. 배당정책에 대한 연기금역할 증대 정책의 문제점

정부는 이번 연기금을 통하여 기업들의 배당정책에 주도적인 역할을 해야 하는 이유로 우리나라 기업들의 배당률이 다른 국가들에 비하여 저조하다는 점을 들고 있다. 이는 외국계 자본의 국내투자를 억제하는 결과를 가져오고, 코리아 디스카운트의 주된 원인 중의 하나라는 주장을 근거로 하고 있다.

그러나 이러한 논거는 외국계자본 중 직접투자자본의 중요성은 외면한 채 간접투자자본, 즉 투기자본의 중요성만을 강조하는 우를 범하고 있다고 판단된다. 우리 자본시장의 현실상 대한민국에 시급한 것은 고용을 창출해 낼 수 있는 외국자본의 직접투자의 활성화이지 투기성 간접투자의 활성화는 아니라고 판단된다.

오히려 연기금이 배당정책에 관여하는 정도가 크면 클수록 외국자본의 직접투자는 더욱 감소할 수밖에 없다고 본다.

   
▲ 기업의 배당정책은 각각의 기업문화 및 국가의 대외무역의존도와 밀접한 관련을 갖는다. 사진은 증권사 객장의 모습. 

더욱이 기업의 배당정책은 해당 국가의 기업문화와 대외무역의존도와 밀접한 관련을 갖는다. 우리나라의 기업문화는 제조업 중심의 성장의 역사를 갖고 있다. 즉, 제조업의 후발주자로서 선진각국의 글로벌 기업과의 경쟁에서 살아남기 위하여는 이익의 상당부분을 주주들에게 배당하기 보다는 기술개발이나 신규투자를 위한 자본으로 활용해야 하는 불가피한 상황들에 직면한 바 있다. 더욱이 우리나라 경제의 특성상 높은 대외무역의존도를 고려하여 볼 때에 세계적으로 경쟁력있는 제품을 생산하지 않는 한 대한민국경제가 성장할 수 없다는 국민적 공감대도 큰 역할을 해 왔다. 따라서 저배당정책은 우리 기업들의 발전과정에서 형성된 우리나라만의 독특한 기업문화라고 할 수 있다.

또한 현재 배당 가능한 이익을 창출해내는 기업들은 일부 기업으로 한정되어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본시장법을 개정하여 연기금이 5% Rule에 대한 제약 없이 배당정책에 대한 의결권 강화를 법제화하는 경우 자칫하면, 향후 기업들이 이익을 내고자 하는 유인을 억제하는 결과를 가져 올 수 있다.

자본시장법이 공개매수제도를 법제화하고 5% 이상 주식소유자에게 경영참여 목적 여부에 따라 지분변동공시 특례, 단기매매차익 반환 등의 불이익을 가하는 이유는 경영권을 보호하기 위한 것이다.

특히, 현행 회사법상 경영권 보호장치가 어디에도 존재하지 않고 있는 현실을 감안하여 볼 때에 연기금의 배당결의 참여에 대하여 다른 주주들에 비해 특례를 인정하는 것은 민간기업의 공기업화를 초래할 위험이 크며, 더 이상 대한민국에서 이익을 창출하는 대기업이 탄생하는 것을 차단하는 결과를 가져 올 수 있다고 본다.

   
▲ 한국경제연구원이 21일 전경련회관 컨퍼런스센터에서 주최한 <배당정책 관련 연기금의 역할과 과제> 정책세미나에서 개회사를 하고 있는 권태신 한국경제연구원 원장. 

3. 대안 및 결어

이번 연기금의 배당관련 의결권 확대방안의 명분 중 하나는 배당에 대하여 주주들이 의사결정에 참여할 수 있는 기회가 없다는 점을 들고 있다. 그러나 상법 제462조 제2항에 따르면 배당가능이익의 범위 내에서 이사회나 주주총회에서 배당결의를 할 수 있도록 되어 있다. 물론, 일부기업의 경우 배당결의를 이사회에서 할 수 있도록 정관으로 정한 신설기업들은 있을 수 있으나 현재 배당 가능한 이익을 내는 기업들 치고 이사회에서 배당결의를 하도록 정관을 변경한 기업들은 거의 없다.

이는 여전히 배당결의는 주주들이 결정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물론, 주주총회에 배당안을 상정하는 것은 이사회의 결정사항이기 때문에 주주가 적극적으로 참여하는데 제약요인이 될 수 있다는 지적은 가능하다.

그러나 현행 상법 제363조의2와 제542조의6 제2항에서는 의결권있는 주식의 일정비율 (비상장회사 3%, 자본금 1천억원 미만의 상장사 1%, 자본금 1천억 원 이상의 상장사 0.5%)를 보유한 소수주주가 이들이 원하는 배당률을 주주총회 안건으로 상정할 수 있는 주주제안권을 규정하고 있다. 그리고 소수주주가 이사회에 이들이 원하는 배당률을 주주총회안건을 상정할 것을 요구하는 경우 이사회는 이를 거부할 수 없도록 되어 있다.

이는 연기금이 굳이 자본시장법상 특례를 통한 특권을 부여받지 않아도 당연히 현행법상 연기금이 원하는 배당률을 주주총회에 상정할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따라서 대한민국의 전체주의화라는 비판을 감수하면서까지 연기금이 자본시장법상의 특혜를 받아가면서 까지 국내기업들의 저배당정책을 개선하겠다고 하는 것은 회사법상은 물론이고 국가경제상 불필요한 정책이라고 판단된다.

굳이 연기금을 통하여서라고 저배당관행을 정부가 개선하겠다고 한다면, 자본시장법보다 먼저 국민연금법과 사학연금법을 개정하여 배당결의에 적극적 참여한 사유를 구체적으로 명기하고, 그 행사에 관한 객관적 절차를 명시해야 헌법 제126조에 위반되지 않는 자본시장법 개정안이 될 수 있다고 본다. /전삼현 숭실대 법학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