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조4000억 가치 평가…업계 관계자 "지금은 제값 받고 못 팔아"
조원태 회장, 올해 초 칼호텔·왕산레저개발 등 유휴자산 매각 나서
대한항공, 한진인터내셔널에 9억달러 대여…신용도 동반 악화 방지 가능성
   
▲ 미국 캘리포니아주 로스앤젤레스(LA) 소재 윌셔그랜드센터 야경./사진=윌셔그랜드센터

[미디어펜=박규빈 기자]전반적인 군살 빼기에 돌입한 한진그룹이 막대한 적자를 기록하고 있는 로스앤젤레스(LA) 윌셔그랜드센터에 대한 막대한 지원에 나서 그 배경에 관심이 모아지고 있다.

17일 업계에 따르면 대한항공은 지난 16일 이사회를 열고 윌셔그랜드센터를 운영하고 있는 자회사 한진인터내셔널(HIC)에 9억5000만달러(한화 약 1조1215억원)을 빌려주는 자금 대여안을 의결했다.

대한항공의 미국 LA 현지 자회사 한진인터내셔널은 1989년 15층짜리 호텔을 인수했다. 이후 2009년부터 저층부에 상업공간·컨벤션시설과 3만7000㎡ 규모의 오피스 공간을, 고층부에는 889개의 최고급 호텔 객실을 둔 73층짜리 윌셔그랜드센터를 조성했다. 투자액수는 10억달러에 달한다. 하지만 2017년 6월 개장 이래 윌셔그랜드센터는 단 한 차례도 흑자를 내지 못하고 있다.

   
▲ 대한항공 자회사 한진인터내셔널 요약 재무상황./자료=금융감독원 전자공시시스템

한진인터내셔널은 지난해 12월 31일 기준 3년래 2883억6200만원 수준의 순손실을 기록했다. 연평균 961억2000만원인 셈이다. 부채는 3조1522억2900만원이다. 따라서 윌셔그랜드센터는 오히려 한진그룹의 애물단지로 전락했다는 평가다. 코로나19 사태가 생겨나기 이전부터 적자를 기록해 현 시점에서는 적자폭이 더욱 커졌을 것으로 예상된다.

한진인터내셔널은 대한항공이 지분 100%를 갖고 있고 현재 신용등급은 CCC+로 정크본드로 분류된다. 이 회사가 이번달까지 상환해야 할 금액은 9억달러다. 이에 모회사 대한항공이 우선 급전 9억5000만달러를 대여해주기로 했다. 5000만달러는 호텔 운영자금으로, 나머지 9억달러는 한진인터내셔널 차입금 상환 용도다.

당초 한진인터내셔널은 윌셔 그랜드 센터를 건립하는 과정에서 지난 2012년부터 2014년 사이에 아리랑본드로부터 2억1000만달러, 한국수출입은행으로부터 3억달러 등 총 8억1000만달러를 빌려왔다. 그러나 자산을 담보로 한 차입·수출입은행 채권 등을 바탕으로 재융자를 받는 과정에서 채무가 9억달러로 불어났다.

한진인터내셔널의 신용도가 낮은 탓에 이 차입금 전액에 대해 대한항공이 보증을 섰는데 이 호텔에 대한 PF(프로젝트 파이낸싱) 만기가 다가오고 있다.

   
▲ 김포국제공항 주기장에 서있는 대한항공 소속 여객기들./사진=대한항공 커뮤니케이션실


대한항공 관계자는 "3억달러는 이달 말 당사가 수출입은행으로부터 대출을 받아 이를 다시 한진인터내셔널에 대여해주는 것"이라며 "대한항공이 대출금을 전달하는 구조인만큼 당사의 유동성에는 영향을 미치지 않는다"고 했다.

또한 "미국 현지 투자자와 한진인터내셔널 지분 일부 매각과 연계해 단기차입 등에 의해 필요자금을 일시적으로 조달하는 '브릿지론(Bridge Loan)'을 협의 중"이라며 "10월 중 3억달러는 이를 통해 상환받을 것"이라는 입장이다. 

또 나머지 3억달러는 내년 중 호텔·부동산 시장 위축이 해소되고 금융 시장이 안정세를 보일 때 한진인터내셔널이 담보대출을 받아 이를 되돌려받는다는 방안이다.

이와 같은 조치를 취하지 않을 경우 BBB+인 모회사 대한항공의 신용도 하락에 따라 대출 관련 각종 악순환이 예상돼 선제 차단에 나섰다는 관측이다. 자회사의 신용도 악화는 모회사 보증 채권 신용도에도 영향을 미칠 수 있다.

   
▲ 서울 중구 소공동 소재 한진빌딩./사진=한진그룹


그렇다면 한진그룹은 자산가치가 1조4000억원에 이르는 윌셔그랜드센터를 왜 처분하지 않는 것일까. 항공업계 관계자는 "(윌셔그랜드센터는) 조양호 선대 회장의 숙원 사업이었고 이 외에도 구조조정안이 충분했기 때문이었다"면서도 "현재 시장에 내놔도 제 값 받고 파는 건 사실상 불가능에 가까운 탓"이라고 전했다.

종합해보면 조 선대 회장의 숙원사업은 표면적인 이유이며, 시황 등 각종 조건에 따라 적정가에 매각하는 건 현실적으로 할 수 없는 일이라는 이야기다. 다시 말해 팔지 않는 게 아니라 못 파는 것에 가깝다는 설명이다.

업계에 정통한 한 관계자는 "시장에서 병아리를 사다 장닭으로 키워 팔아야 돈이 되듯 조원태 회장 이하 경영진은 아직 윌셔그랜드센터를 팔 때가 아니라고 판단한 모양"이라고 말했다. 그는 "기내식·기판 사업부도 과감히 정리하는 모습을 보면 현 경영진은 윌셔그랜드센터도 얼마든지 매각할 의향이 있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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