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임 학대' 신고 3차례 끝에 결국…'긴급조치' 공권력 개입 강화가 해법
[미디어펜=김규태 기자] 14일 10살과 8살 초등학생 형제가 허기를 이기지 못해 라면을 끓이다 화재가 일어났다. 어머니(30)는 전날부터 집을 비운 상황이었다. 형이 동생을 이불로 감싸는 등 보호했지만 화마를 막을 순 없었다. 형은 심하게 화상을 입었고 동생은 연기를 많이 들이마셔 둘다 나흘째 의식 불명 상태다.

인천 초등생 형제가 처한 '라면 화재 참변'이 많은 이들의 공분과 우려를 낳고 있다.

성년이 되자마자 첫째를 낳은 후 두 아이를 지난 9년간 양육해온 엄마의 자발적 방임이 문제의 시작이지만, 이를 정부라는 공권력이 사실상 방치했다는 반성이 크다.

지난 1년8개월간 '방임 학대' 신고가 3차례 접수됐지만 법원은 격리명령이 아닌 상담위탁 결정을 내렸다. '조사관 조사·전문가 진단을 거쳐 적절한 처분을 내렸고 어머니 또한 아이들을 돌볼 의지를 보여 선처했다'는 것이 법원 입장이다. 하지만 아이들이 엄마와 떨어지기를 원치 않는다는 이유가 결정타였다.

경찰은 지난달 아동복지법상 방임 및 신체적 학대 혐의로 어머니(30)를 불구속 입건했지만 공권력의 개입은 거기서 그친 것이다. 검찰은 지난달 24일 인천가정법원에 아동보호사건을 청구했으나 법원은 상담과 적절한 치료를 받도록 했다.

   
▲ 지난 14일 오전 11시16분 인천시 미추홀구 한 빌라건물 2층 거주지에서 불이 나 형 A군(10)과 동생 B군(8)이 중상을 입었다. 사진은 형제가 살던 인천시 미추홀구 빌라 2층 집 부엌의 모습이다./사진=인천 미추홀소방서 제공
학교에서 제공하는 긴급돌봄교실도 '희망자' 대상이라, 신청하지 않았고 결국 두 아이는 이용하지 못했다.

인천시 미추홀구·인천시교육청·경찰 등에 따르면,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 사태로 인해 두 아이는 화재사고가 일어나기 전까지 법원이 결정한 상담위탁을 제대로 받지도 못했다.

핵심은 법제도 상에 돌봄 사각지대가 존재한다는 것이고, 이번 사건은 거기서 비롯됐다.

구멍은 한두가지가 아니다. 아동보호전문기관이 지자체에 통보할 의무가 없어, 관할 지자체인 인천 미추홀구는 법원 판결이 나온 것을 알 수 없었다.

법조계와 전문가들은 이번 사건을 교훈으로 아동 분리·보호시 공권력 강화를 근본 해법으로 내놓았다. 부모의 자의적인 의사 표명과 아이들의 순응에만 맡길 수 없다는 지적이다.

공혜정 대한아동학대방지협회 대표는 17일 한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이에 대해 "법적 개입이 반드시 필요한데 개입을 꺼려하고 있다는 부분이 문제"라며 "법원이 아동학대 사건 전반을 심각하게 받아들이고 개입해야 할 필요성이 있다"고 지적했다.

공 대표는 "학대가 여러 번 재학대 신고가 됐음에도 불구하고 돌봄이 전혀 없었다"며 "재학대 신고가 여러차례 된 경우 분리조치가 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아동보호전문기관에서 긴급조치를 취해서라도 일단은 분리해놓고 지자체 보호가 같이 들어가야 한다"고 밝혔다.

법조계는 '한가정 보호 원칙'에 따라 학대를 당한 아이 대부분이 다시 가정으로 돌아가 학대 위협에 시달리는 현실을 고쳐야 한다고 봤다.

서울지방변호사회 소속으로 아동학대 사건을 여러차례 맡았던 법무법인민겸 이정민 변호사는 본지 취재에 "분리보호는 가정 내 안전한 보호자가 부재하고 학대 발생 가능성이 높은 경우 진행하지만 시설 부족으로 피해 아동을 일주일이나 한달 뒤에 데리고 가는 사례도 비일비재하다"며 "경찰이 사건을 최대한 신속하게 처리하고 법원 재판부가 부모에게 순응한 아이들 의사에 따르기보다 최대한 냉철하고 객관적으로 판단해야 한다"고 평가했다.

   
▲ 어머니(30)가 집을 비운 사이 주방에서 일어난 불로 초등학생 형제가 크게 다쳤다. 사진은 화재 현장 모습이다./사진=인천 미추홀소방서 제공
이 변호사는 "분리 보호되었다가도 다시 금방 가정으로 돌아가는 사례도 많다"며 "미국 유럽 등 선진국측 조치에 준할 정도로 강화시켜 더 이상 부모자식 간의 정에 호소해선 안될 정도로 심각한 사례가 허다하다. 국민 법감정으로도 이건 말이 되지 않는다라는 경우가 이번뿐만 아니다. 재학대를 언제까지 용인할 것이냐"라고 토로했다.

실제로 국회입법조사처의 '아동학대 대응체계 과제' 보고서에 따르면, 지난해 아동학대 1685건 중 초기에 아동을 분리해 보호한 건수는 187건(11%)에 그쳤다. 분리 보호된 아동 187건 중 절반은 다시 가정으로 돌아가기도 했다.

전국 아동학대 판단사례 2만4604건 중 재학대 발생사례는 2543건(10.3%)에 달한다.

다행히 오는 10월 1일부터 아동복지법 및 아동학대 범죄의 처벌 등에 관한 특례법이 개정 시행되면서 사건 초기 대응에서 민간 아동보호전문기관이 겪었던 공권력의 한계가 다소 개선될 전망이다.

지금까지 민간기관이 수행한 아동학대 조사업무를 지방자치단체가 직접 맡고, 민간기관은 사례관리 전담기관으로 전환되어 아동학대 가정에 대해 집중적인 사례관리를 할 수 있게 됐다.

인천 초등생 형제와 같은 사고의 재발을 막기 위해 관계자들의 노력과 국회에서의 개정안 발의 등 입법 추진이 병행되어야 할 시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