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의 상상 속 어떤 상황?…장단점 분명, 완벽한 해법 없어
   
▲ 김규태 정치사회부 기자
[미디어펜=김규태 기자] 나는 변호사다. 2024년 9월 오늘도 할 일이 산더미다. 오늘 사건은 성형수술에 사용된 최신 실리콘이 몸에 해롭다는 것을 실리콘 제조기업이 알고도 숨겼다는 피해자들의 집단소송이다.

이번 사건에서는 기업이 증거를 감추기 쉽지 않다. 원래 4년전 집단소송법 제정안이 마련되기 전까지는 모든 입증 책임을 고객(소비자)들이 져야 했지만, 이제는 집단소송 제기 전 상대방에 대한 증거조사 절차가 도입됐다.

소송을 제기하기 전 증거 조사할 수 있고 그 증거 조사는 본안 소송과 동일한 효력을 갖는다. 더욱이 기업이 자신의 입장을 증명하는 자료를 전부 제공해야 한다.

이번 사건 1심 공판 또한 국민참여재판이라 여론 압력을 일으키기 어렵지 않다. 소위 '사회적' 의견을 환기시키고 공분을 이끌어내면 된다. 판결에 앞서 소 제기만으로 기업 이미지에 타격을 입힐 수 있어 판결 전 양측 조정에 들어가도 유리한 구조다. 

지난해 마무리지었던 재판에서 수십억 원의 배상금을 내 고객들과 피해자 모두에게 물어냈던 제조업체 한 곳은 결국 회사를 해외로 이전했다고 들었다.

집단소송은 지난 몇년간 가장 큰 폭으로 성장했다. 지난 2020년 법이 제정되기 전 일어난 사안에 대해서도 소급 적용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50명 이상 집단적 피해만 입증할 수 있다면 배상을 받아낼 수 있게 됐다.

대상을 가리지 않는다. 거의 모든 영역에 다 적용된다. 과거 알려진 사례인 디지털 성범죄를 비롯해 개인정보 유출, 가상통화거래소, 신용카드, 대학교 등록금 환급, 부실판매한 펀드 환매 사태, 가습기 살균제 등은 시작에 불과하다.

에어컨, TV, 스마트폰 등 집에서 필수적으로 쓰는 가전제품부터 자가용 같은 값비싼 제품까지. 아이 분유나 저칼로리 두유, 유제품 등 일상생활용품도 모두 컴플레인 여지가 있다면 집단소송이 가능하다.

길거리에서 흔히 사먹는 콜라 햄버거 떡볶이 아이스크림도 집단소송 대상이다. 비만이나 피부병 등 공통된 피해 사례 50명 이상만 발굴하면 소송을 시작한다. 엄밀한 역학조사가 필요하지만, 여론 플레이에 들어가면 조정 과정에서 유리하다.

배달앱이나 모바일쇼핑몰 애플리케이션 또한 앱의 불공정 약관으로 인한 고객 피해 사례를 발굴해 소송을 걸 수 있다.

   
▲ 법무부가 입법예고한 이번 제정안에 따르면, 다른 피해자의 위임을 받지 않은 상태에서 집단소송에서 이기면 판결 효력은 모든 피해자에게 적용된다./사진=연합뉴스
소송 대응 여력이 없는 중소-중견 기업 제품일수록 유리하다. 법무팀이 막강한 대기업일수록 철저히 대비하고 있어 보다 더 큰 배상액으로 조정하기 쉽지 않다.

아, 그러고 보니 요근래 일하느라 태블릿을 많이 봐서 눈이 침침하고 아프다. 내가 지금 쓰고 있는 S태블릿 제조기업을 대상으로 피해자를 모집하는지 알아봐야겠다. 요새 뜨고 있는 블랙컨슈머 커뮤니티 게시판은 활황이다. 50명만 모이면 집단소송 시작이다.

지금까지, 몇년 뒤 가상의 상황을 가정해 한 변호사의 하루를 그려봤다.

법무부가 28일 전격 입법예고하겠다고 알려진 집단소송법 제정안에 대해서다.

집단소송은 소송 후 판결의 효력을 관계자 모두가 동일하게 공유하는 제도다. 법을 잘 모르는 대다수 국민 중 특정 피해를 입은 사람들에게 법률비용을 아끼는 장점이 있다. 피해자들 구제의 폭이 최대한 커진다. 하지만 집단소송 본고장인 미국에서도 부작용으로 인해 이를 폐기해야 한다는 비판이 제기되어 왔다.

장단점은 분명하다. 소비자 권익을 극대화하고 기업 투명성을 고취하는 장점이 있는 반면, 불필요한 소송이 남발될 가능성이 크다. 블랙컨슈머 및 소송을 대리하는 법조계가 보이지 않는 이득을 취하는 구조다.

악마는 디테일에 있다. 향후 어떻게 할지 그 열쇠는 정부와 여당이 쥐고 있다. 국회를 장악한 슈퍼여당 덕분이다.

억울한 피해자는 없어야 한다. 문재인 정부가 향후 재계와 기업법 전문가들의 의견을 수렴해 부작용을 최소화하는 방향으로 입법하길 기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