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용신, 이익, 김홍도의 도시 안산
   
▲ 안산 '최용신 거리' [사진=미디어펜]


[미디어펜=윤광원 기자] 중등교육을 받은 우리가 화려한 도시생활만 동경하고, 안일의 생활만 꿈꾸어야 옳을 것인가? 농촌으로 돌아가 문맹퇴치에 노력해야 옳을 것인가? 거듭 말하노니, 우리는 손을 서로 잡고 농촌으로 달려가자

일제강점기 여성의 몸으로 농촌계몽운동에 일생을 바친 독립운동가 최용신(崔容信) 선생이 운동의 대의를 역설한 말이다.

최용신 선생은 여성도 남성과 같이 사회개혁에 동참할 것을 호소했다. 특히 중등교육 이상을 받은 신여성이야말로 가정에 안주할 것이 아니라, 농촌에서 직접 농민들과 함께 생활하면서 문맹 없는 농촌, 잘사는 농촌을 건설하는 것이 선생의 이상이었다.

선생이 농촌운동을 시작한 곳이 당시 경기도 수원군 반월면 샘골(泉谷), 즉 지금의 안산시 상록구 본오동이다.

선생은 1931YWCA 농촌사업부 교사로 샘골에 파견됐다. 주민들의 협조를 얻어 스스로 교사를 신축하고, 매일 10리 길을 걸어 다니며 아이들을 가르쳤다. 어른들의 문맹 퇴치, 농업기술 보급, 생활개선은 물론, 애국심과 독립정신 고취에도 앞장섰다.

1934년 일본 고베신학교(神戶神學校)에 유학했다가 신병으로 귀국, 샘골에서 요양하면서도 농촌계몽운동을 계속하던 중, 26세의 꽃다운 나이에 과로와 지병으로 숨을 거뒀다.

한국여성단체협의회에서는 선생을 기려 용신봉사상(容信奉仕賞)을 매년 시상해 오고 있으며, 정부에서는 지난 1995년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했다.

심훈(沈熏)의 소설 상록수의 무대가 된 곳이 바로 샘골이며, 여주인공 채영신(蔡永信)은 최용신을 모델로 한 것이라고 한다.

안산시는 지난 2007년 강습소가 있던 곳에 최용신기념관을 건립했다. 선생의 묘소도 기념관이 있는 상록수공원 내에 있다. 상록구라는 지명은 아예 선생과 상록수(常綠樹)를 상징한다.

이처럼 선생은 신흥 공업도시인 안산시를 대표하는 역사인물이다.

안산(安山)이 처음 지금의 지명을 갖게 된 것은 고려 초의 일이다. 그러나 조선시대에는 연성(蓮城)이라고 흔히 불렸다. 일제강점기인 1914년에는 행정구역이 통폐합됨에 따라 안산, 시흥, 과천의 3개 군이 시흥군(始興郡)이란 명칭으로 통합되면서, 안산이란 명칭은 아예 사라졌다.

그러다 1976년 시흥군 수암면, 군자면과 화성군 반월면 일대에 반월신공업도시(半月新工業都市)가 조성되면서, 198611일 시 승격과 함께 안산이란 옛 이름을 되찾아 안산시로 부르게 됐다고 시사에 기록돼 있다.

안산을 대표하는 역사인물은 또 있다. 바로 실학의 중조(중시조)’라 불리는 이익(李瀷)이다.

이익의 호는 성호(星湖), 조선 영조 때의 실학자다. 당쟁에 휩쓸려 몰락한 남인의 가정에서 태어나, 평생 벼슬을 멀리하고 오직 학문에만 힘썼다.

선생은 유형원의 학풍을 이어받아 천문, 지리, 역사, 제도, 수학, 의학에 밝았고, 서양 학문에도 관심을 가져 실학사상에 이바지한 바가 컸으며, 모든 학문은 실제 사회에 필요한 것이어야 한다는 생각을 가졌고, 직업에 귀천이 없으니 양반도 산업에 종사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주요 저서로는 성호사설(星湖僿說)과 곽우록(奮憂錄), 성호집(星湖集) 등이 있다.

이익이 어린 시절 자란 곳이고, 평생을 은거하며 실학사상을 갈고 닦았던 곳이 바로 안산의 첨성리(瞻星里), 지금의 안산시 상록구 성포동이며, 묻힌 곳도 여기다. 바다에 가까운 그 고장에는 성호라는 호수가 있어 선생의 호도 여기에서 유래됐고, 가택도 성호장이라 불렸다.

이 성포동에는 이익을 기리는 성호박물관과 성호공원이 있다.

   
▲ 조선 실학의 '중시조' 성호 이익을 기리는 성호박물관 [사진=미디어펜]

최용신기념관과 상록수공원, 성호박물관과 성호공원은 그리 멀지 않다. 오늘은 두 역사인물을 기억하는 길과 주변 도시공원들, 그리고 안산천을 이어 걸어본다. 도중에 조선의 천재화가 단원 김홍도(金弘道)를 기리는 단원미술관도 있으니, ‘안산 역사의 길이라 할 만하다.

지하철 4호선 1번 출구로 나오면, 바로 앞에 최용신기념관 안내판이 보인다.

그 오른쪽에는 희망의 솟대공원도 있는데, 지난 2015년 상록수역 앞 화단에 상록수마을의 안녕과 평화 발전을 기원하는 희망솟대 30여 개를 세우면서, 조성됐다. 작은 정자도 보인다.

여기서 최용신기념관과 상록수공원 가는 길은 최용신 거리로 명명됐다.

처음 샘골에 들어와 아이들을 만나는 것을 형상화한 만남’, 아이들을 샘골 강습소(講習所)로 이끌고 가는 이끎’, 1932년 새로 지어진 강습소로 향하는 아이들을 표현한 향함’, 1934년 일본 유학에서 돌아온 선생에게 안기는 제자를 그린 안김을 주제로, 조각들이 4곳에 있다.

붉은 벽돌조의 기념관 2층은 당시 강습소 모습을 살린 근대건물 모양이다. 그 앞 외롭게 핀 원추리 한 송이가 선생의 고고한 정신을 대변하는 듯하다.

성호공원 쪽으로 가기 위해, 반대로 돌아 나와 대로를 건너 직진한다.

지하철 교각 밑도 소공원으로 꾸며져 있다. 계획도시인 안산에는 유난히 크고 작은 도시공원들이 많은 것 같다. 곧 나타나는 매화초등학교 건너편도 상록수 어린이공원이다.

그리고 정면은 구룡공원(九龍公園)이다.

일동과 이동의 중심에 있는 언덕 수준의 구룡산을 2004년 안산시에서 공원으로 조성했다. 신도시 개발 이전 일동은 윗말’, 이동은 아랫말로 불리면서 구룡골이라 불렸는데, 마을 모습이 마치 9마리의 용이 웅크리고 있는 것과 흡사해 이런 이름이 붙었다고 전한다.

또 푸른 용이 승천했다는 전설이 전해지는, 좌청룡(左靑龍)의 풍수지리상 명당이라 한다.

실제 등산로 입구에는 여의주를 품에 안은 청룡의 두상이 늠름하게 버티고 있고, 반대편엔 청룡의 꼬리 조각상도 있다. 구한말 수원군수를 지낸 문인화가 김용진이 구룡골에 살 때, 구룡산인(九龍山人)이란 호를 사용했다는 얘기도 전해진다.

청룡상 옆 계단을 올라, 산길로 들어선다. 가슴속까지 청량해 지는 숲길이다.

워낙 낮은 산이다 보니, 금방 정상인 듯한 정자가 보인다. 사방이 숲으로 막혀 전망은 전혀 없다. 정자 옆 의자에서 막걸리 한잔을 들이키며, 짙은 솔 향을 음미해본다.

반대쪽으로 내려와 대로(산업도로) 밑 굴다리를 지난다. 역사를 담은 공간 시간의 터널이란다. 성호 이익의 실학정신을 단원 김홍도처럼 예술적으로 승화시키기 위해, 상록구가 꾸민 도심 속 열린 문화갤러리.

굴다리를 지나 좌회전, 조금 가면 성호공원(星湖公園)이 있다.

이 주변 일대는 성호공원, 일동공원, 단원조각공원, 독주골공원, 점성공원, 호동어린이공원, 식물원어린이공원, 성호어린이공원, 첨성어린이공원, 점성어린이공원, 부곡어린이공원, 아람어린이공원 등이 한 곳에 몰려있는, 그야말로 공원타운이라 할 만하다.

그 너머에는 골프장이, 대로 건너편에는 노적봉공원이 넓게 펼쳐진, 거대한 녹지지역이다.

곧 안산식물원(安山植物園) 유리온실이 나타난다.

성호선생이 학문을 닦던 곳 비석을 지나면, 바로 성호박물관(星湖博物館)이다. 정문 입구 옆에는 선생의 대표 저서인 성호사설을 표현한, 고서를 펼쳐놓은 조형물이 눈길을 모은다.

계속 공원길을 따라간다. 야외무대와 분수대가 있고, 한쪽 연못에는 연꽃들이 우아한 자태를 뽐낸다. 길옆에 수줍게 핀 구절초가 반갑다.

이윽고 대로를 건너는 큰 인도교가 나온다. ‘나드리길이란다.

다리 건너는 노적봉공원이다. 당연히 낱 가리를 쌓아놓은 듯한 노적봉(露積峯)이 보인다.

노적봉은 해발 143m, 정상에 오르면 안산 시내 전경이 한 눈에 펼쳐지고, 여기서 멀지 않은 별망성(別望城)의 낙조와 수리산 수암봉이 성큼 다가선다. 산기슭을 순환하는 2.5km의 산책로도 시민들의 인기 있는 휴식처다.

성포동 뒷산인 노적봉을 옛날에는 가사미산(可使美山)이라 했는데, 이름이 바뀐 유래가 있다.

산기슭에 당집에 있었는데, 인근 어부들이 이 곳에서 사해용왕(四海龍王)과 산신에게 무사귀환을 빌었고, 매년 음력 정월이면 큰 굿을 하곤 했다. 어느 날 당집 무녀의 꿈에 신령이 나타나 이 산 이름을 노적봉이라 부르라고 했다고 해서, 노적봉이 됐다는 전설이다.

노적봉공원의 하이라이트이자, 랜드마크는 노적봉폭포(露積峯瀑布).

가로 114m, 높이 20m 규모의 인공폭포 4개가 물을 쏟아내며, 일상에 찌든 시민들에게 색다른 느낌의 휴식공간을 제공하고 있다. 큰 폭포 2개가 나란히 있고, 그 양쪽으로 작은 폭포 모양의 계류가 흘러내린다. 그 앞에 있는 분수는 폭포보다 더 높이 치솟는다.

국내에서 외국인이 가장 많이 사는 도시답게, 낯선 피부색과 언어들도 넘쳐난다.

노적봉공원을 나와, 대로를 따라 걷는다. 안산시내 중심가로 향하는 큰 길이다. 곧 오른쪽에 단원미술관(檀園美術館)이 보인다.

우리가 잘 아는 풍속화는 물론, 당시 회화의 주류였던 산수화와 인물화 등에 두루 명작을 남긴 조선시대 최고의 화가인 단원 김홍도의 예술세계를 기리는 미술관이다.

단원 역시 안산을 대표하는 역사인물이다.

단원의 고향이 안산인지는 확실치 않지만, 나이 7~8세 때부터 당시 안산에 머물던 문인화가 강세황(姜世晃)의 집에 드나들며 그림을 배웠다는 기록으로 미뤄, 어린 시절을 안산에서 보낸 것으로 추정된다. 20대 초반 왕실의 주목을 받기까지, 여기서 성장하면서 그림을 배웠다.

안산시는 스스로 단원의 도시혹은 김홍도의 도시라 칭하며 자랑스러워한다. ‘단원구도 있고, 지난 1999년 단원미술관에서 단원미술제(檀園美術祭)도 개최하고 있다.

시내 쪽으로 대로를 계속 따라가다가 성어공원을 지나면, 안산천을 건널 수 있다.

안산천(安山川)은 안산시 상록구 장하동에서 발원하여 단원구 초지동 시화호로 흐르는 지방하천이다. 하천연장은 10.35km, 유로연장 12.56km, 유역면적 51.98이다.

천변을 따라 시화호까지 가고 별망성도 보고 싶었지만, 시간관계상 4호선 중앙역으로 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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