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벌 되살린 퇴행? 현실 반영한 '전면 비범죄화' 목소리 높아
[미디어펜=김규태 기자] 문재인 정부가 현행 낙태죄를 유지하면서 임신 14주까지 인공임신중단을 허용하는 내용의 형법-모자보건법 개정안을 입법예고하고 나섰지만, 정치권과 시민사회 모두 비판의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집권여당 더불어민주당은 정부의 입법예고안에 조정 가능성을 시사했다. 여야를 가리지 않고 정부안에 대한 비판이 이어지고 있다.

형법상 처벌조항의 존치 여부가 가장 주목받는 가운데, 정확한 임신 기간을 확정하는 것이 불가능한 현실을 제대로 반영할지 또한 관심을 받고 있다.

정부안을 보면, 임신 14주까지 임신중단이 가능하고 14~24주에는 지금까지 예외적으로 허용한 경우에 더해 사회·경제적 사유가 있을 경우 임신중단이 가능하다.

앞서 헌법재판소(헌재)는 1953년 형법에 규정됐던 낙태죄에 대해 지난해 4월 4(헌법불합치)·3(단순위헌)·2(합헌) 의견으로 '헌법불합치' 결정을 내렸다.

'헌법불합치'는 해당 법률이 사실상 위헌이지만 즉각적인 무효화에 따르는 법 공백과 사회적 혼란을 피하기 위해 법 개정 전까지 한시적으로 이를 존속시키는 결정이다.

헌재의 결정에 따라 올해 12월 31일까지 국회가 형법 해당 조항(269·270조)을 개정하지 않을 경우, 낙태죄 규정은 폐지되고 시한이 만료된 낙태죄의 법률 효력은 사라진다.

   
▲ 헌법재판소는 2019년 4월 11일 산부인과 의사 A 씨가 '자기낙태죄와 동의낙태죄를 규정한 형법 269조1항과 동법 270조1항이 위헌'이라며 낸 헌법소원 사건에서 재판관 7대 2 의견으로 위헌 결정했다.

문제는 정부안의 낙태 기준이 모호해 현실을 제대로 담지 못하고 있고 '명확성의 법칙'에 위배되는 등 온갖 논란이 이어지고 있다는 점이다.

헌재는 임신 주수 22주 안팎을 '헌법불합치' 기준으로 명시했지만 정부안은 임신 14~24주 사이 기간일 경우 조건부로 낙태를 가능하게 해 여성계 반발이 커지고 있다.

특히 임신 14주까지는 임신중단을 처벌하지 않고, 24주까지는 특정 사유가 있을 경우에만 중단할 수 있도록 해, 정부안은 낙태죄를 그대로 존치시켰을 뿐 아니라 그동안 사문화되고 헌재가 위헌성을 인정한 낙태 처벌 규정까지 되살린 퇴행이라는 평가까지 나온다.

민주당 권인숙 의원과 박주민 의원은 정부안에 대해 '낙태 전면 비범죄화'를 전제로 하는 형법-모자보건법 개정안을 이번 주에 발의할 예정이다. 정의당 이은주 의원 또한 "임진 주수와 관계없이 낙태를 비범죄화하겠다"고 밝혔다.

의료계·법조계가 이번 정부안에 가장 우려를 표하는 지점은 현실을 전혀 반영하지 못한 낙태죄 존치다.

(낙태죄 기준인) 임신 주수를 판단하는 기준은 여성의 마지막 생리 시작일인데, 이는 사람마다 생리일이 불규칙하거나 몇 달씩 건너뛰는게 다반사다. 형사처벌에 앞서 명확성의 법칙에 위배된다는게 법조계 설명이다.

산부인과 등 의료계는 초음파 검사와 생리일 확인을 통해서도 태아 크기가 일치하지 않는 경우가 많아 산모가 생리일을 거짓으로 말하면 의사들이 이를 정확히 확인할 방법이 없다고 전했다.

정부가 낙태 인정 사유로 추가한 사회·경제적 사유도 마찬가지다.

법무부는 이에 대해 "산모가 정부 지정 기관에서 상담을 받은 후 24시간의 숙려기간을 지나면 이를 입증했다고 볼 수 있다"는 입장이지만, 법률적 해석의 문제가 남는다.

개별 사례를 통한 판례가 쌓이지 않아 명시적인 법률적 해석이 존재하지 않고 낙태죄 존치로 낙태에 대한 처벌 가능성이 여전한 것이 문제다.

앞으로 정치권이 심사숙고를 거쳐 어떻게 관련법 개정안을 바꿀지, 설사 형사처벌 가능성이 남게 되더라도 향후 수사기관이 헌재 결정에 발맞추어 수사에 나서지 않을지 주목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