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럼프 재선 시 ‘쿠슈너-김여정 협상팀’ 기대해볼 수”
“바이든 되더라도 ‘페리 프로세스’의 교훈 상기시켜야”
“북, 지금은 자기 순서 아니라고 생각…체제보장 조건”
[미디어펜=김소정 기자]‘세기의 회담’과 ‘뼈아픈 패착’으로 기록된 북미 정상회담, 한미동맹의 가치가 방위비 50% 인상으로 저울질되는 일련의 사건들을 겪은 탓인지 오는 11월 3일 미국에서 벌어질 대통령선거 결과에 유독 관심이 쏠린다. 미국의 차기 행정부 정책에 따라 북한 핵 문제를 풀 해법과 한미동맹의 성격도 달라질 수 있으므로 미국 대선 결과는 그만큼 중요해졌다.

김준형 국립외교원장은 미 대선 후보자인 도널드 트럼프 현재 대통령과 조 바이든 민주당 후보(전 부통령)에 대해 “바이든이 이기면 한미동맹에서, 트럼프가 이기면 북미관계에서 각각 유리하다고 보는 것이 대체적인 평가”라고 말했다.

일단 바이든 후보가 대통령이 된다면 지금처럼 동맹관계를 돈으로 저울질하는 일은 없을 것으로 기대되기 때문이다. 김 원장은 “민주당은 트럼프의 방위비 인상 요구에 대해 조폭이 업소들을 보호해 준 대가로 돈을 뜯어내는 ‘보호비 갈취’라고 표현하며 비난해왔다”며 “또 바이든이 대통령이 되면 동맹관계를 회복하겠다는 것이 민주당이 내건 중요 공약 중 하나”라고 설명했다.

   
▲ 오는 11월 3일 미국 대통령선거 후보자인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왼쪽)과 조 바이든 민주당 대선 후보. (PG) 김민아 제작 일러스트./연합뉴스
현재 한미는 올해부터 적용됐어야 할 제11차 방위비분담금특별협정(SMC)을 아직까지 체결하지 못하고 있다. 트럼프 행정부는 한국에 연간 13억 달러(약 1조5900억원)을 요구한 것으로 알려졌으며, 이는 약 50% 인상된 규모이다. 한국정부는 ‘13% 인상안’을 고수 중이다. 한때 협상 실무선에서 이 안에 대한 타결이 임박했다는 소식도 들렸으나 트럼프 대통령이 발목을 잡아 틀어진 일도 있었다.

방위비 분담금 문제와 함께 한미 간에는 북핵 문제 해결을 위해 긴밀하게 공조해야 하는 과제가 크게 부각된 상황이다. 김 원장은 “북한 문제에 있어서 과거 오바마 행정부의 ‘전략적 인내’를 회고하며 바이든 행정부 탄생을 마냥 부정적으로 보거나 트럼프 대통령이 김정은 위원장을 두 번씩 만났다는 점에서 2기 행정부에서도 그럴 것이라고 기대하는 시선이 있지만 실은 트럼프 대통령이든 바이든 후보자든 각각 장단점이 있다”고 했다.

김 원장은 먼저 긍정적 시나리오부터 상정해볼 때 트럼프 재선 시 ‘쿠슈너-김여정 협상팀’을 기대할 수 있고, 바이든 역시 ‘지금은 맞고 그때는 틀리다’ 식의 달라진 대북정책을 기대할 여지가 있다고 말했다.

김 원장은 ‘쿠슈너-김여정 협상팀’이라는 흥미로운 상황을 상정하면서 트럼프 대통령의 사위 재러드 쿠슈너 백악관 선임보좌관이 최근 트럼프 대통령이 재선에 성공할 때 북한 문제에 돌파구가 마련될 수 있다고 발언했던 사실을 언급했다.

김 원장은 “지난 9월 미국의 중재로 이스라엘이 걸프지역 아랍국가인 아랍에미리트(UAE)와 바레인 간 외교관계 정상화 합의인 ‘아브라함 협정’이 성사된 것을 보면 쿠슈너의 말을  완전히 무시할 수 없다”고 분석했다.

“쿠슈너와 김여정 북한 노동당 제1부부장 간 연결고리가 생기면서 두 사람이 주도하는 협상팀이 만들어질 가능성도 상정해볼 수 있다는 것으로, 그는 “과거 협상대표로 나선 김영철이나 김혁철의 경우 전권을 갖지 못했지만 김여정이 나선다면 실무선의 협상 진전을 기대해볼 수 있다”고 덧붙였다.

김 원장은 또다시 트럼프 대통령 대 김정은 위원장이 아니라 ‘쿠슈너 대 김여정'을 상정해본 것에 대해 “트럼프 대통령이 톱다운 방식으로 북미 대화를 이끌어왔지만 지금까지 ‘톱’만 했지 ‘다운’이 안됐다”고 지적했다. “과거 행정부에서 했던 북미회담이 실무선에서 협상이 깨지면서 위로 더 올라가지 못했던 것처럼 이번에는 위에서 아래로 내려가지 못한 문제가 있었다”는 것이다.
  
반면, 트럼프 대통령이 재선되더라도 북미 간 대화 재개부터 힘들 것이라는 관측도 나왔다. 김 원장은 “트럼프 대통령은 이벤트에선 귀재일지 몰라도 실제 실천하는 데엔 관심이 없었다”며 “1차 북미정상회담의 이면 합의인 종전선언이나 한미군사훈련 중단을 실천하는데 주저했고, 결국 북미 간 신뢰를 쌓지 못했다”고 평가했다.

따라서 김 원장은 “앞으로 북한이 취할 행동은 지난 7월 10일 ‘김여정의 대미 담화'를 가이드북으로 삼게 될 것”이라며 “김여정은 이미 북미 정상간 좋은 관계로만 문제를 해결하지 못한다. 미국의 태도가 달라지지 않는다면 이벤트에는 안 나가겠다고 했다”고 지적했다. 

그렇다면 북한이 언제 대화에 다시 나설까. 이에 대해서도 김 원장은 “하노이회담 결렬 직후 리용호 외무상과 최선희 외무성 부상이 기자회견을 자청해 밝힌 것처럼 원래 조건인 ‘비핵화와 안전 담보’를 대화 조건으로 테이블에 올릴 수 있을 때"라고 했다. 

북한은 하노이회담 결렬 이후 제재 완화 대신 체제 보장을 협상 조건으로 내세워왔고, 지금은 선제공격도 안하겠지만 비핵화도 안하겠다는 입장이다.

북한이 요구하는 체제 보장과 관련해 일각에선 ‘주한미군 철수’까지 포함될 것이라는 우려도 내놓고 있다. 하지만 김 원장은 이와 관련해선 “추후 협상에 담길 문제”라고 했다. 

그는 “북한이 종종 미군 철수 주장도 하지만 실은 미중 사이에서 시계추 역할을 하고 싶어한다”며 “2018년 9.19 평양회담 때 우리 대표단이 북측으로부터 ‘종전선언 이후에도 미군 철수 요구를 안하겠다’는 말도 들은 바 있다. 주한미군 철수는 북한의 체제 보장 요구에서 절대적 조건이라고 말할 수 없다"고 말했다.
 
   
▲ 김준형 국립외교원장
바이든 대통령이 당선될 경우 대북정책이 ‘지금은 맞고 그때는 틀리다’ 식으로 달라질 수 있다는 기대는 과거 오바마 행정부의 ‘전략적 인내’ 때와 달리 북한이 이미 핵무력을 완성했으므로 더 이상 기다릴 타이밍이 아니라는 것이 김 원장의 관측이다. 

김 원장은 “민주당 캠프 참여자들의 면면을 보면 트럼프 식의 포괄적 접근이나 볼턴 전 백악관 보좌관이 주장하는 리비아 모델인 ‘선 핵폐기 후 보상’에 대해 비현실적이라는 판단을 갖고 있다”며 “이들은 북한이 원하는 살라미 식 방식도 나쁘지만 동결, 비핵화, 핵군축 협상과 같은 2~3단계 방식은 필요하다고 보고 있다”고 말했다.

김 원장은 또 1998~2000년 빌 클린턴 행정부의 대북 포용 기조인 ‘페리 프로세스’를 언급하며 “미국의 민주당과 한국의 진보 정권이 만나 공조가 잘 된 시기였고, 한반도 운전석이라는 말도 그때 클린턴 대통령이 최초로 표현했다. 민주당 행정부와 통할 수 있다는 긍정적 기대를 할 수 있는 전례”라고 말했다. 

당시 북한은 미사일 발사를 중단했고, 2000년 남북정상회담이 성사됐으며, 북한 조명록 차수가 미국에 특사 방문해 북미 공동코뮈니케에 합의한 바 있다.

반면, 오바마 행정부 때 대북정책 담당자들이 강경론자들로 주를 이뤘고, 바이든 캠프 선임 고문인 커트 캠벨이나 토니 블링큰 외교안보팀장은 인권 문제에서 강경하고, 대북제재론자이며, 친일파인 점은 우려되는 대목이다. 미국 정치권에는 여전히 북핵 동결로 시작하는 북핵 협상에 반대하고, 북한이 핵을 포기할리 없다고 보는 부정적인 시각이 우세하다.

결국 북핵 문제는 차기 미국에 누가 대통령이 되고 어떤 행정부가 들어서든 우리정부의 노력에 달렸다는 것이 김 원장의 지적이다. 그는 “지난 1998년 때처럼 아젠다를 갖고 미국을 설득시키는 것이 가장 좋은 방안이”이라며 "지난 북미회담에 대한 반성도 필요하다. 톱다운 방식으로 협상했지만 비핵화는 동결부터 검증까지 이어져야 한다. 이를 연결시킬 고리를 만들지 못했다”고 충고했다.
 
김 원장은 “문재인 대통령은 북미 대화와 북핵 협상을 진전시키기 위해 그동안 3번의 중재 역할을 했다. 4.27 판문점선언이 6.12 1차 북미정상회담을 견인했고, 9.19 평양회담이 하노이 2차 북미정상회담을 견인했다. 또 판문점 남북미 정상 회동은 스톡홀름 북미협상을 이끌어냈으므로 중재 역할에 성공했다”고 평가했다.

이어 문제는 하노이회담 결렬로 충격을 받은 북한이 미국을 탓하는 대신 한국 탓하기를 선택하면서 남북협력도 중단되는 바람에 교착 국면이 길어지고 있지만 문 대통령이 신뢰한 북한의 비핵화 의지는 분명히 있었다고 진단했다. 

김 원장은 “일각에선 북한이 2017년 핵무력 완성을 선언해놓고 비핵화 협상에 나선 것이 모순이고, 그래서 진정성을 의심하지만 북한은 핵무력 완성 이후에라야 협상에서 3가지 옵션을 얻게 된다는 점을 인지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즉 “북한은 현재 핵(핵 프로그램), 미래 핵(시험), 과거 핵(핵무기) 세가지 옵션을 만들어 협상에 나선 것으로 북한 입장에선 비로소 조건부 비핵화 협상을 시작할 때가 된 것이고, 바로 이런 점에서 앞으로 한미가 더욱 공조해서 북한을 대화로 끌어내야 하는 이유”라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김 원장은 “다만 북한은 지금은 자기들의 순서가 아니라고 생각한다”며 “미국이 행동해야 할 시점이고, 미국이 어떤 조건을 상정할지에 대화 재개 여부가 달렸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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