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국은행 본관 머릿돌 [사진=문화재청 제공]


[미디어펜=윤광원 기자] 서울 중구에 있는 한국은행 본관(사적 제280호) 정초석(머릿돌)에 새겨진 '定礎(정초)' 글씨가 이토 히로부미가 쓴 것으로 확인됐다.

문화재청은 서체 관련 전문가 3명으로 이뤄진 자문단이 현지조사를 진행한 결과, 이런 사실을 확인했다고 21일 밝혔다.

이번 조사는 지난 12일 전용기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국회 문화체육관광위원회 문화재청 국정감사에서 이런 내용이 담긴 간행물을 제시하며 국민적 관심이 커지자, 진행됐다.

당시 제시된 간행물은 일제 치하 조선은행이 1918년 발간한 영문잡지 '조선과 만주의 경제 개요'(Economic outlines of Chosen and Manchuria)로, 전 의원은 "미국 버클리 캘리포니아대학(UC 버클리) 도서관이 소장 중인 이 책 6쪽에는 '이 건물의 정초석은 이토 공작의 친필로 만들어졌다'는 설명이 담겨 있다"고 지적했다.

이번 현지조사는 '일본 하마마츠시 시립중앙도서관 누리집'에 있는 이토 붓글씨와 '조선과 만주의 경제 개요'에 게재된 당시 머릿돌 사진 등 자료를 참고했다.

문화재청은 "머릿돌에 새겨진 '定礎' 글자는 이토가 먹으로 쓴 글씨와 왼쪽 위에서 오른쪽 아래로 비스듬하게 내려쓴 획 등을 볼 때, 이토 글씨의 특징을 갖고 있다"고 설명했다.

또 글씨 새기는 과정에서 획 사이가 떨어져 있어야 하는 부분이 붙어 있고, 붓 지나간 자리의 서체를 살리지 못한 점 등 정교함이 부족하다는 의견도 함께 제시됐다.

머릿돌에서 일자 및 이토의 이름을 지우고 새긴 '융희(隆熙) 3년 7월 11일'(1909.7.11.) 글씨가 이승만 대통령의 필치로 보인다는 의견이 제시되기도 했는데, 융희는 1907년부터 사용된 대한제국 마지막 연호다.

문화재청은 "정확한 기록이 없는 상태"라며 "아마도 해방 이후 일본 잔재를 없애고 민족적 정기를 나타내기 위해, 이승만이 특별히 써서 석공이 새긴 것이라 추정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문화재청은 이번 고증 결과를 서울시(중구청)와 한국은행에 통보할 예정이며, 이후 한은이 안내판 설치나 '정초' 글 삭제 등 문화재 현상변경 허가를 신청하면, 전문가 의견을 수렴한 뒤 문화재위원회 심의를 거쳐 관리방안을 마련할 계획이다.

한국은행 본관은 1907년에 착공해 1909년 정초 후 1912년 조선은행 본점으로 준공된 건축물이며, 광복 후인 1950년 한국은행 본관이 됐다. 

지난 1987년 신관이 건립되면서 지금은 화폐박물관으로 사용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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