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용은 '혁신의 길'을 따라 "무소의 뿔처럼 전진하라"
동북아시아의 끝자락에 놓인, 그것도 절반이 잘려 나간 한반도 위에 세워진 인구 5천만의 작은 나라에서 "세계 1등" 기업을 일군 '위대한 경영인' 고(故) 이건희 삼성 회장의 영결식이 28일 오전 엄수됐다. '코로나'라는 전대미문의 역병으로 인해 그의 장례식은 가족장으로 치러졌지만, 이름없는 수많은 국민들은 끊임없는 혁신과 도전, 결단으로 기적을 만든 고인에게 사랑과 존경을 표하고 그의 명복을 빌었다.

서울 강남구 삼성서울병원 장례식장에서 거행된 영결식에는 고인의 부인인 홍라희 전 리움미술관장과 아들인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 딸 이부진 호텔신라 사장, 이서현 삼성복지재단 이사장 등 유족과 재계 인사들이 마지막 가는 길을 지켜봤다. 

아버지에 대한 사랑이 각별했던 것으로 알려진 이부진 사장은 영결식 내내 몸을 가누지 못하고 휘청이며 애통해 하는 모습을 보여 주변을 안타깝게 했다. 이건희 회장과 유족, 친지 등을 태운 운구 행렬은 용산구 삼성미술관 리움과 경기도 삼성전자 화성사업장 등 이 회장의 발자취가 담긴 공간을 돌며 마지막 이별을 고했다.

향년 78세. 6년간 식물인간으로 입원해 있었기에 건강한 삶은 유지한 것은 72세까지다. 이 회장은 100세 시대에, 너무나 아까운 나이에 너무나 아쉽게 세상을 떠났다. 한국 최고 부자였던 고인이 병마에 시달리며 이렇게 일찍 세상을 떠난 것은 초일류 기업을 만들고 유지하기 위해 감당해야 했던 책임의 무게가 그만큼 무거웠기 때문일 수 있다.

   
▲ 이부진 호텔신라 사장과, 이서현 삼성복지재단 이사장, 김재열 삼성경제연구소 사장이 28일 서울 일원동 삼성서울병원에서 엄수된 고 이건희 회장의 영결식 후 버스 탑승을 위해 이동하고 있다. /사진=미디어펜

생전의 이건희 회장은 혁신의 아이콘이었다. 셋째 아들인데도 형들을 제치고 가업을 이어받은 그는 생존과 번영, 아버지 극복이라는 화두를 안고 치열하게 살았다.  1993년 신경영 선언에서 "마누라와 자식을 빼고 다 바꾸라"고 외치며 '초일류 경영'의 길을 열었다.

"기업은 2류, 행정은 3류, 정치는 4류"라고 질타했다가 정치권으로부터 보복을 받기도 했다. 그룹 지배권이 취약해 어느덧 대주주가 된 외국계 펀드들로부터 수시로 공격을 받았고, 반재벌 세력의 공세로 법정에 서기도 했지만 끝내 전세계가 부러워하는 세계 최고의 제조업체를 만들어냈다.

노동계의 지지로 정권을 잡은 여당 일각에서 "재벌 중심의 경제구조를 강화하고 무(無)노조 경영 등 부정적 영향을 끼쳤다"고 고인을 폄훼하는 논평이 나오기도 했지만 국민은 온·오프라인을 통해 고인에게 존경을 표하며 세상을 떠난 '혁신의 아이콘'을 추모했다.

삼성 측도 반재벌 정서를 감안, 일반인 조문을 받지 않기로 했다가 빗발치는 항의에 못 이겨 일반인들의 조문을 허용했다. 놀랍게도 2030 세대들이 각종 커뮤니티 사이트 등을 통해 "세계 1등"을 현실화하고 수많은 고급 일자리를 만든 이 회장의 업적을 "영웅적"이라고 높이 평가하고 삼성을 격려했다.

이건희 회장의 고등학교 동기동창으로 50년 지기인 김필규 전 KPK 통상 회장은 영결식에서 읽은 추모사에서 이건희 회장을 "아버지를 능가함으로써 효도를 했다"고 평가했다. 성공한 아버지를 둔 자식들이 유업을 물려받아 크게 융성시키는 것은 지극히 어려운 일로 여겨진다.

둘러보면 수많은 대기업이 있었지만 대를 이어 존속하지 못하고 사라졌다. 금호아시아나그룹, 해태그룹, 진로그룹, 대우그룹 등 한 때 세상을 빛냈던 기업들이 어느 순간 무대 뒤편으로 사라졌다. 이건희 회장은 수많은 어려움을 이기고 이병철 선대 회장이 세운 토대 위에 세계 최고 기업을 우뚝 서게 했다. 아버지를 크게 능가함으로써 국가와 사회에 기여한 것이다.

이재용 부회장은 할아버지와 아버지의 뒤를 이어 세계 최고 기업을 유지하고 발전시키고. 새로운 성장동력을 찾아 미래 먹거리를 창출해야 한다는 지난한 도전에 직면하고 있다. 환경은 결코 우호적이지 않다.

우선 이 부회장의 경영능력이 검증되지 않았다는 평가다. 누구보다 먼저 디지털 삼성 사업을 시작해 한국 사회의 디지털화를 주도하려 했지만 뚝심 있게 버티지 못해 중도에 포기했다. 그 시도 속에서 네이버 이해진, 다음카카오의 김범수라는 신흥 재벌이 탄생했지만 이재용은 끈기가 부족해 그 과실을 챙기지 못했다.

   
▲ "세계 1등" 기업을 일군 '위대한 경영인' 고(故) 이건희 삼성 회장의 영결식이 28일 오전 엄수됐다. 이건희 회장이 2010년 반도체 라인증설 행사에서 삽을 뜨고 있다. /사진=삼성전자 제공

사법 리스크 속에 휩싸여 경영진에 대한 인사도 제대로 하지 못했다. 엘리트 중심의 인의 장막에 갇혀, 능력 위주의 인재 발탁도 하지 못하는 등 할아버지와 아버지가 가졌던 "야성"이 사라졌다는 평가를 받기도 한다. 이재용 부회장이 넘어야할 장애물들이다.

무엇보다도 사법 리스크가 이 부회장의 발목을 잡고 있다. 반재벌 정서를 악용한 정치권과 사법 권력에 의해 전세계 어떤 나라의 법전이나 관습법에도 없는 "묵시적 청탁", "경제 공동체"라는 괴이한 법리가 적용돼 재판을 받고 있다. 

2016년 국정농단 사건 뇌물혐의로 시작된 재판은 아직도 진행중이다. 여기에다 시세조정, 분식회계 등으로 삼성 경영권을 불법으로 승계했다는 혐의로 기소돼 또다른 재판이 이제 막 시작됐다. 전문가들은 5년 가까이 재판이 이어질 것으로 예상한다. 길고 지난한 재판이 이어지겠지만 사필귀정의 순리를 믿고 담대하게 대응해 가야할 것이다.

삼성의 지배구조를 다시 짜는 일도 만만치 않다. 당장 10조원 정도로 예상되는 상속세를 마련해야 한다. '이재용→삼성물산→삼성생명→삼성전자'로 이어지는 지배구조의 큰 틀은 유지되겠지만 정부와 여당이 추진하는 보험업법 개정안이 통과되면 삼성생명이 보유한 삼성전자 지분 중 20조원 이상을 매각해야 하는 상황이 올 수 있다. 가뜩이나 취약한 지배력으로 인해 외국계와 국민연금 등 외부 세력에 휘둘려 경영권을 내놓아야 하는 상황이 올 수도 있다.

아버지도 떠나고 아버지가 발탁한 경영진들도 떠난 삼성에서 이재용의 도전은 형극의 길이 될 것이다. "당장 그만두고 싶다"고 외치고 싶을 정도로 어려운 과정의 연속이겠지만, 사업보국의 신화를 일군 이병철 선대 회장, 혁신의 비전으로 세계 1등 기업을 키운 이건희 2대 회장의 뜻을 이어받아, 글로벌 경쟁을 이겨내는 "뉴 삼성"을 만들어내야 한다. 

선택의 여지는 없다. 용기 있게 무소의 뿔처럼 앞만 보고 걸어 나가야 한다. 이재용 부회장은 오로지 눈높이를 세계 최고에 두고 용맹 정진했던 아버지의 길을 따라, 용기 있게 성큼성큼 앞으로 전진하기 바란다.
[미디어펜=편집국] ▶다른기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