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북 온상이자 반역의 소설에 대한 문제제기 계속돼야

   
▲ 조우석 문화평론가
"붉게 타는 노을을 바라보며 가슴 울렁거리는 감격 속에서 혁명의지를 재충전하는 그들(사회주의 운동가)의 모습을 (<태백산맥>에서) 그려냄으로써 그들이 인간을 위한 혁명에 나섰고, 자기희생마저 감수해나가는 인간들이었다는 순결함과 진정성을 표현해내려고 애썼던 것입니다.”

직전의 칼럼에서 <태백산맥>이 사회주의혁명 옹호를 위한 작품이라는 걸 소설가 조정래 스스로가 고백한 내용이라며 앞의 글을 인용했더니 "정말이냐?"며 물어온 독자가 있었다. 섬뜩하고 노골적인 혁명 찬양이 당혹스러웠을텐데, 필자 판단으론 <태백산맥>의 이적성(利敵性) 논란에 종지부를 찍을만한 결정적 대목이다. 

조정래는 당시 소설가 겸 영화감독 이창동(훗날 문화체육부 장관), 평론가 남진우 등 문화계 인사들과 좌담회를 했는데, 그때의 발언이 단행본 <문학과 역사와 인간-'태백산맥'의 소설적 성과와 통일문학의 전망>(1991년 한길사)에 수록됐다. 조정래는 그 발언 직전 이른바 혁명적 낭만성을 언급하는 치기만만함도 보여줬다.

당대의 표준이자 주류로 올라선 좌파적 지식-정보

“사실 그 어느 시대, 어느 땅에서나 혁명에 가담하는 사람들은 낭만주의자들이거나, 이상주의자들이라는 사실은 잘 알려져 있는 바 아닙니까? 그래서 혁명적 낭만성이라는 말도 있는 것 아닙니까?"

더 이상 말이 필요할까? RO 모임을 통해 “대민족사의 결전에서 통일혁명의 선두에 서는 명예”를 선동했던 종북주의자 이석기의 빨치산 용사놀이의 원조는 1980년대 이후 젊은이들을 오염시켜온 <태백산맥>이 분명하다. 그렇게 종북의 온상(溫床) 노릇을 해온 조정래 때문에 삐딱선을 잘못 타고, 인생을 망친 무수한 무리 중의 하나가 종북콘서트의 신은미-황선다.

<태백산맥>의 조정래와, 종북 괴물 이석기 그리고 종북 환자 신은미-황선 사이의 직접적 인과관계는 규명할 수 없다. 단 사회문화적 상관관계는 높다. 높아도 아주 높다. 그걸 부정하는 이들이 있다면, 문화적 문맹이라는 지적을 받아 마땅하다. 한 걸음 더 나가자. 내친 김에 <태백산맥>이 좌파 지식권력-문화권력 형성의 몸통이라는 걸 새삼 확인하는 게 이 글이다. 

지금 생각하면, 23년 전 조정래와 좌담을 했던 이창동의 발언은 대담하면서도 자기예언적이었다. 그는 <태백산맥>의 출현이 “관제 반공주의를 무너뜨리고 역사학계에 커다란 충격을 주고, 사회과학 분야에도 큰 파문을 일으켰다”고 평가했다. 그게 2000년대 초반 우리의 사회문화적 현실로 굳어졌다. 지금 반(反)대한민국, 반미, 종북-친북의 정서는 문학을 포함한 인문사회과학 전반에 깊고 넓게 자리를 잡았다. 

좌파적 지식-정보가 당대의 표준이자 주류로 올라선 것이다. 지식-정보에 좌파 시각이 반영된 그런 차원이 아니라 인문사회과학의 패러다임과 분위기가 변했다. 철학자 미셸 푸코, 자크 데리다의 등장과 1970년대 포스트모더니즘 이후 서구학문도 반(反)제국주의 비판과, 자본주의에 대한 냉소가 대세라고 하니 국내의 아류 지식인들도 대놓고 좌파 코스프레에 열중했다.

   
▲ 전남 보성 벌교 '태백산맥 문학관'. /뉴시스

초대문화부 장관 이어령 등 지식인 모두가 <태백산맥> 찬양

전두환-노태우의 신군부는 지식사회 바닥 전체의 변화에 대처할 능력과 준비가 없었다. 김영삼 정부는 멋도 모른 채 좌파 지식권력의 몸집을 키워줬다. 그런 게 운동권 NL정서와 합쳐져 좌파 지식권력으로 완전 굳어진 게 1990년대 초중반이다. <태백산맥>이 누적 판매부수 350만 권을 기록한 게 1991년인데, 그때 이런 흐름을 결정적으로 재촉하는 공을 세웠다.

이 와중에 조정래와 작품 <태백산맥> 앞에 아부 내지 공치사를 하지 않은 지식인은 없다. 거의 모든 문학평론가-교수들이 이 2.5류의 정치 상품인 <태백산맥>의 문학적 성취를 치켜세웠으며, 이적성을 부인하는데 입을 모았다. 당시 서울대 국문과 교수 권영민은 "작품에 대한 판단은 미학적이어야만 한다"면서 국가보안법의 존재 이유를 조롱하는 대범함까지 보였다.

그럼 권영민은 좌파인가? 아니다. 좌파정서를 내면화한 부류일 뿐인데, 초대 문화부 장관 이어령도 그랬다. 11년 동안 이 작품의 이적성 여부를 수사했던 검찰이 무혐의 결정을 내리도록 유도한 사람이 그였다. 그는 이 사안에 대한 주무장관 의견서를 검찰에 제출했는데, 여기에서 "<태백산맥>은 작가의 자유로운 상상력에 의해 씌여진 <신판 홍길동전>이다"고 규정했다. 

이어령 식의 문화 우선주의가 이 황당한 좌파 소설에 대한 올바른 판단을 막은 것이다. 지식인들이 대한민국 헌법공동체 훼손에 참여한 셈인데, 유감스럽게도 세상을 넓고 깊게 보는 큰 지식인은 없었다. 외려 백낙청의 민족문학이 나서서 <태백산맥>을 옹호하는 나팔을 불어내는 통에 영화판도 따라하기 나서며, 문화권력의 좌향좌를 재촉했다.

이후 영화는 창작의 자유를 앞세운 채 1960~70년대 애국주의적 한국영화 전통과 사뭇 다른 쪽으로 줄달음쳤는데, 그 분기점이 임권택 연출의 영화 '태백산맥'이다. 그의 부친이 빨치산인 임권택은 1994년 영화 '태백산맥' 개봉 때 호언했다.“이데올로기란 이름으로 사람이 희생돼서는 안 된다. 해방공간 당시 좌우익 격돌은 애국이란 관점에서 봐야 한다.”

   
▲ '태백산맥' 영화 포스터.

영화감독 임권택에서 MBC-TV 드라마 '여명의 눈동자'까지

이런 싸구려 휴머니즘 옹호 속에 자유민주주의 가치는 땅에 굴렀다. 영화 '태백산맥'은 당시 국산영화 사상 최대 규모인 제작비 40억 원을 투자했다. 대중은 이런 게 냉전구조를 깨는 새로운 예술이라고 받아들였다. 이런 흐름 속에 1990년대 중반 벌써 반역(反逆)의 작품 <태백산맥>이 좋은 문학, 표준적 문학으로 둔갑하고, 조정래가 대형작가로 대접 받았다.

그 전후 이태의 <남부군>(상하권)이 베스트셀러를 기록하고, 영화로 만들어졌다. 안방극장도 오염되기 시작했다. 1990년대 초 MBC-TV로 방영된 드라마 '반민특위법', '땅', '여명의 눈동자'를 주목해야 한다. 이 세 드라마는 이승만의 1공화국 형성과정을 삐딱하게 보고 군경 등 우익의 잘못을 일방적으로 부각시키는데 앞장섰다. 

지금은 좌파 지식권력-문화권력이 대형포털로 틀 잡았고, KBS를 포함한 좌파 언론권력으로 공고화됐다. 학계는 말할 게 없다. 국사학-사회학-정치학-경제학-철학-문화인류학까지 두루 좌파정서에 갇혀있다. 그걸 멀리서 견인해주는 건 지금도 문학과 영화 쪽인데, 좌파 지식권력-문화권력 형성에 조정래의 <태백산맥>이 결정적 기여했다는 건 비밀이 아니다.

그래서 대한민국은 좌파 세상이다. 이명박-박근혜로 이어지는 우파 정부가 연속 집권했지만, 그렇게 힘든 것도 좌파 지식권력의 역풍을 받는 구조 때문이다. 분명한 건 이 구조에 황혼이 찾아들었다는 점이다. 훗날 역사는 한국사회의 기형적인 좌편향 구조를 바꿔줄 결정적 계기가 다음 주였다고 기록할 지도 모른다.

헌재의 통진당 해산 결정이 그것인데, 단순히 불법 정당의 공중분해에 그치지 않고 시대착오적 지식권력의 종언으로 이어질 지 주목할 일이다. 좌파 지식권력의 '청소' 아닌 '치유'를 기대하는 마음이다. /조우석 미디어펜 논설위원, 문화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