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우 조우진, 영화 '도굴'서 고분 벽화 전문가 존스 박사 역 맡아
"새로운 시도, 걱정 많았죠… 영화 보고 '다행'이라는 말 먼저 떠올라"
"감정선 공유하는 것이 극장 문화의 백미, '도굴'로 위로 얻으셨으면"
   
▲ 영화 '도굴'의 배우 조우진이 미디어펜과 만났다. /사진=CJ엔터테인먼트


[미디어펜=이동건 기자] "새로운 시도이다 보니 근래에 안 하던 스타일의 연기를 했고, 신선한 소재의 모험물이라 긴장한 상태에서 작업을 했거든요. 결과물이 어떻게 나올까 상상만 하다 영화를 봤는데, 다행이라는 말이 가장 먼저 떠올랐어요. 야구 경기에 비유를 하자면 신혜선 씨가 볼 넷 얻고 나가주고, 임원희 형님이 데드볼 한 번 맞고 나가주고, 제가 희생 번트를 하면 이제훈 씨가 적시타로 귀한 점수를 내는 야구 게임… 그런 느낌이 들었어요."

최근 서울 종로구 삼청동의 한 카페에서 만난 조우진은 영화 '도굴'(감독 박정배)을 이같이 표현했다. 불과 1년 전만 해도 눈앞의 질문에 치열하게 몰입하고 좀처럼 장난기를 보이지 않았는데, 한층 여유가 생긴 표정과 분위기를 돋우는 멘트가 눈에 띄었다. 물론 작품과 연기에 대한 태도는 여전히 진중했다.

"예전에는 너무 진지하다고 욕을 많이 먹었어요. 제게 '이 자식아', '저 자식아', '소주 한 잔 먹자' 몸 부딪혀가면서 지내고 싶어도, 잘 못하겠다는 반응이 많았거든요. 후배인데도, 동생인데도 어렵다는 표현이 많았죠. 예전보다는 유연해진 것 같아요. 그래서 연기라는 직업이 고맙기도 해요. 절 성숙해지게 하기도 하고, 좀 더 편한 사람으로 바꾸게 만들지 않았나 싶어요. 나이 이야기하면 그렇지만, 40살이 넘어가니까 좋은 분위기를 만들고자 하는 욕구도 생겼고요. 조금 더 사람들에게 편하게 다가가자. 나 스스로도 변화해보자."


   
▲ 영화 '도굴'의 배우 조우진이 미디어펜과 만났다. /사진=CJ엔터테인먼트


조우진은 '내부자들'(2015)부터 '남한산성'(2017), '국가부도의 날'(2018), '돈'(2019)까지 한국영화 풍년을 이끈 일등공신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내부자들'의 조 상무로 강렬한 인상을 남긴 뒤 16년의 긴 무명 생활을 청산한 그는 스크린과 브라운관을 가리지 않고 쉼 없이 달려왔다.

"한 작품의 한 인물에 집중하는 것도 많이 힘든데, 다양한 색깔을 교차적으로 혹은 동시에 표현한다는 건 더 어려운 것 같아요. '내부자들' 이후 운이 좋게도 여러 작품과 캐릭터를 맡게 됐는데, 완전 다른 캐릭터와 작품을 동시에 서너편 했던 적도 있어요. '어떤 작품 하고 있지?', '어떤 캐릭터를 하고 있지?' 정체성에 혼란이 올 때도 있었지만 정신을 다잡으며 작업을 했죠. 그렇게 꾸역꾸역 버텨냈던 시간이 조금씩 도움이 되는 것 같아요. 여전히 부족하다고 생각하지만. 앞으로도 캐릭터의 농도·밀도를 짙게, 재밌는 캐릭터는 더 재밌게, 긴장감을 유발하는 캐릭터는 더 긴장할 수 있게 노력해야겠다는 생각을 합니다."

한동안 묵직하고 카리스마 넘치는 역할로 관객들과 만난 조우진은 이번 작품에서는 자칭 '한국의 인디아나 존스'인 고분 벽화 도굴 전문가 존스 박사를 연기, 밝고 에너지 넘치는 모습을 선보인다.

"영화 캐릭터를 흉내 내는 사촌 형들을 보면 재밌기도 하지만 똑같지 않아서 느껴지는 아재미, 잔망미가 있잖아요. 감독님께서 존스 박사의 멋스러움도 있지만 착장 자체부터 그런 안쓰러움이 담겼으면 좋겠다고 하셔서, 큰 웃음은 못 드리더라도 미소 한 스푼 정도는 관객분들이 갖고 가실 수 있게끔 노력했어요. 상황에서 나오는 코미디를 최대한 살려보려고 노력했는데, 결국엔 진정성밖에 없겠더라고요. 가끔 제가 엄청 진지한 연기를 할 때 보는 분들이 생각지도 못한 웃음을 터뜨리실 때가 있거든요. '도깨비'에서도 그런 부분이 있었고요. 제 능력 밖의 과한 반응이 있었죠. 코미디 연기가 어렵다는 걸 알게 됐으니 연기하는 직업인으로서 사명감을 가지고 연구, 개발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극 중 존스 박사처럼 초등학교 시절부터 '인디아나 존스', '백 투 더 퓨쳐' 시리즈의 열렬한 팬이었다는 조우진. 형, 누나들 앞에서 영화의 명장면을 흉내 내는 것을 즐겼고, 긴 세월이 흘러 인디아나 존스를 표방하는 캐릭터를 마주했을 땐 너무나도 반가웠단다. 그는 "양복을 입고 나와 긴장감을 유발하고 인상을 찌푸리게 하는 역할을 많이 해서, 관객분들께서 피로감을 느끼시면 안 되겠다는 생각을 하고 있었다"며 "마침 존스 박사 역이 주어져 '좋은 기회다' 반갑게 맞았다"고 밝혔다.


   
▲ 영화 '도굴'의 배우 조우진이 미디어펜과 만났다. /사진=CJ엔터테인먼트


그렇다면 강렬한 충격을 선사했던 '내부자들'의 이미지를 벗고 싶은 바람이 있는 걸까. 조우진은 그런 것은 아니라고 답했다. 그는 "캐릭터는 운명이라고 생각한다"며 "하고 싶다고 해서 오는 것도 아니고, 하기 싫다고 해서 역할이 안 오는 것도 아닌 것 같다"고 전했다.

"단지 관객분들의 입장에서 생각을 해본 거죠. 제 능력과는 상관없이 그런 캐릭터로 분한 제 모습을 보고 지겨워하실까 봐. 강박 또한 없고요. 어떻게 다르게 변주하고 확장해볼까… 그런 연구를 먼저 하는 게 저의 의무이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이번 작품에서 함께한 이제훈과는 두 번째 만남이다. 2014년 드라마 '비밀의 문'에서 만났던 두 사람은 오랜 기간 서로의 성장을 마음으로 지켜본 동료다.

"연기 모범생과 함께하는 작업은 참 좋은 일인 것 같아요. 몰입도, 준비성, 현장에서의 태도, 작품과 팀에 대한 주인의식이 굉장히 넘쳐났던 친구예요. 저와 촬영할 때도, 밥 먹을 때나 이야기할 때도 행복하고 즐겁게 작업하는 모습이 있었는데. 어느 순간 이 친구가 갑자기 없어져요. 어디 갔나 싶어서 보면 구석에서 콘티를 보고 연구하고 있어요. 끊임없이 연구하고 준비하더라고요. 감독님과도 이야기를 나누고, 저와 부딪히는 장면은 상의하고. 그런 자극을 쉴 새 없이 받을 수 있다는 건 좋은 기회인 것 같아요. 제훈 씨가 이번 작품을 같이 한다는 이야기를 들었을 때 굉장히 기뻤고, '비밀의 문'의 인연을 이어갈 수 있다는 것도 좋았어요. 그때의 좋은 기억을 서로 갖고 있었더라고요. 이번 작품을 통해 그걸 확인하고, 좋은 협업을 이뤄서 좋은 결과물이 나왔고… 그래서 제훈 씨와의 호흡은 참 행복한 시간이었어요."

코로나19 팬데믹 시대 속 '도굴'을 선보이게 된 상황이 부담스러울 법도 한데, 조우진은 이를 "'도굴'이 가진 숙명"이라며 담담히 받아들였다. 그는 "'이런 기회를 이 시국에도 가질 수 있다는 건 감사한 일이라고 생각하고 열심히 임하자'고 마음을 모았다. 그래서 사명감이라는 단어가 떠오르더라. 작품이 어떤 색깔의 운명으로 주어질지 모르는 상황에서 우리가 할 수 있는 건 예전보다 더 노력하는 것뿐이다. 그게 아티스트의 자세가 아닐까 싶다. 정신 차려야겠다는 생각을 많이 했다"고 털어놓았다.

"관객분들이 영화관에서 영화를 보는 행위를 잊은 것 같다는 업계 관계자의 말에 충격을 받았어요. 완전한 방역 수칙을 준수한다는 전제하에 영화관을 찾아주셨으면 좋겠어요. 영화는 혼자 보면 재미가 없잖아요. 웃긴 것도 같이 봐야 웃을 수 있고. 그게 극장 문화의 백미라고 생각하거든요. 감정선을 같이 공유한다는 것. 작품을 같이 보고, 같이 울고, 같이 웃는다는 것. 전 그게 문화, 영화의 힘이라고 생각하고요. 그걸 조금이나마 회복할 수 있는 계기가 됐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이 영화가 조금이나마 위로가 됐으면 하는 바람이에요."

[미디어펜=이동건 기자] ▶다른기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