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동 대상 디지털 성범죄에 최소 10년 형 중형 선고
마르텔로조 교수 "관심 필요 요하는 아이들, 주된 피해자"
재영 한인 사회 "한국 성범죄법, 너무 가벼워…사회 연대해야"
디지털이라는 새로운 환경은 무차별적이다. 그들만의 세상에서 벌어지는 잔혹한 범죄는 왜곡된 성에 대한 죄의식조차 없다. 이는 사이버상의 문제만이 아니라 우리 사회 곳곳에서 일어나고 있는 아픈 현실이다.

단지 성적 모럴 해저드가 아니라 사회 깊은 곳에서 오랫동안 암적인 존재로 자라온 고질적 병폐이기도 하다. 잘못된 성 관념이 악의 세습으로 이어지면서 사회 통합의 가장 큰 걸림돌로 작용하는 게 아닐까 하는 의혹마저 들게 한다. 

이에 본보는 디지털 성범죄의 현황과 구조적 문제 진단,  범죄 엄단과 예방을 위한 양형기준 강화, 성인지 지수 향상, 해외 사례 등을 중심으로 '내 손안에 악마가 산다 - 제2의 n번방 막아라'를 주제로 심층 기획시리즈를 연재한다. 

시리즈 순서: ①n번방 사태로 본 디지털 성범죄 현주소/②악마는 디테일에 있다?…2차 피해는/③'솜방망이' 처벌이 부른 악순환/④피해자 위한 사회 안전망은?/⑤[르포]아이들 향해 랜선 타고 엄습하는 '검은 손'…영국에서는/⑥[르포]미국에서 n번방 사건 일어났다면?/⑦[르포]여성인권 선진국 스웨덴…강력한 법이 답/⑧'제 2의 n번방 막아라' 전문가들 목소리는[편집자 주]

   
▲ 영국 런던 템즈강변 전경./사진=미디어펜

[제2 n번방 막아라-⑤] [르포]아이들 향해 랜선 타고 엄습하는 '검은 손'…영국에서는

[미디어펜=영국 런던/특별취재팀 박규빈 기자] 올해 초 발생한 소위 'n번방 사건'과 '박사방' 사건은 대한 대한민국 전역을 떠들썩하게 만들기에 충분했다. 기존 성범죄가 단발적이고 물리적 행위로만 이뤄졌다면 이 사건들은 비대면으로 이뤄지며 지속적으로 피해자들을 괴롭히는 특성이 있었기 때문이다.

특히나 텔레그램 대화방에서 거래된 불법 촬영물에는 주로 아동·청소년 등 미성년자들이 등장했고 피해자들을 괴롭히는 수준을 넘어 가히 '성 착취'라고 부를만 했다. 이른바 '온라인 아동 성범죄'다.

아동 음란물 근절 국제 협의체 '가상 글로벌 태스크포스(Virtual Global Taskforce)'는 이미 2005년 온라인 아동 성범죄에 대해 '신체적 또는 성적 학대를 당하는 아동 이미지 공유·내려받기, 오프라인에서의 성관계를 목적으로 아동에게 접근하는 행위인 '그루밍''이라고 정의를 내린 바 있다. 이는 곧 아동들이 온라인에서 직면하게 될 수 있는 다양한 심각한 위험에 대해 경고하는 것으로 이어진다.

해당 위험 요인으로는 아동·청소년들이 적절하지 않은 대화에 노출되며 부지불식간에 성적 판타지의 표적이 되거나 정상인 내지는 아동을 가장한 성인들에게 유혹당하는 것을 포함한다. 이 외에도 자신 또는 주변인의 나체 사진 전송 요구를 받고 노골적으로 성적인 대화에 끼도록 해 성적 행위를 하도록 종용하는 '사이버 섹스' 형태로 발현된다.

   
▲ 영국 잉글랜드 런던 북서부 헨돈 소재 미들섹스대학교./사진=미디어펜
본지는 이와 같은 온라인 아동 성범죄에 대해 심도있는 연구를 진행해온 엘레나 마르텔로조(Elena Martellozzo) 영국 런던 미들섹스대학교(Middlesex University London) 법과대학 범죄·사회학과 교수와 그의 연구실에서 지난달 26일 인터뷰를 진행했다.

마르텔로조 교수는 범죄학 전문가로 주로 온라인 성범죄와 관계된 아동 행동을 관찰해왔다. 그는 국내외 다양한 기관들과 협업하고 있고 특히 런던광역경찰청(Metropolitan Police Service, MPS)과 긴밀히 공조하고 있다.

엘레나 마르텔로조 교수는 "디지털 성범죄는 정의하기에는 너무 광범위해 아동 성범죄에 대해서는 '온라인 그루밍'이라는 개념이 생겨났다"고 운을 뗐다. 그는 "역사적으로 아동 성범죄는 늘 있어왔지만 가족·학교 단위로 통제가 가능했다"며 "인터넷의 발달로 접근성이 좋아진 요즘에는 기존에는 없던 온라인 성범죄가 성행하고 있다"고 진단했다.

특히나 최근에는 코로나19로 인해 집에 머무는 시간이 늘어 관련 사건들이 더욱 많이 일어난다는 점도 곁들였다.

1차적으로 온라인 성범죄는 비대면 방식으로 시작하는 만큼 범죄자와 피학 아동간의 관계 성립 과정을 필요로 한다. 흔히 동물을 길들이는 과정을 '그루밍'이라고 한다. 마찬가지로 성적 학대를 감행할 목적으로 온라인 상에서 아이들에게 접근하기 위해서는 친밀감과 신뢰도, 지배 관계를 설정하는 그루밍 과정이 필수적이다.

이와 같은 의사소통·사회화 과정이 인터넷 상에서 이뤄지기 때문에 '온라인 그루밍'이라고 불린다.

영국 양형자문단(Sentencing Advisory Panel, SAP)은 2007년 성적 그루밍에 대해 '범죄자가 성학대를 목적으로 피해 아동과 상호작용하는 동안의 사회화 과정으로 정의할 수 있는 심각한 약탈적 범죄'라고 규정한 바 있다.

◇"온라인 그루밍 통한 디지털 성범죄, 관심 요구하는 아이들이 당하기 쉬워"

   
▲ 엘레나 마르텔로조 미들섹스대학교 법과대학 범죄·사회학과 교수./사진=미디어펜
마르텔로조 교수는 "온라인 그루밍에 필요한 시간은 상황과 조건에 따라 5분이 될 수도 있고 1주일이 걸릴 수도 있다"고 말했다. 그녀는 "피학 아동·청소년과 가해자가 관심사·취미를 공유하고 정신적 지지와 공감 등 상호작용 과정에서 이뤄진다"고 강조했다. 

마르텔로조 교수는 영국 MPS와 공동으로 온라인 아동 성범죄에서 나타나는 대화 내용을 연구·분석했다. 대체로 성인 남성이 범인이었으며 본인의 나이를 속여 먼저 성적인 내용이 담긴 대화를 시도했다는 게 그의 설명이다. 이 외에도 실명·휴대전화 번호·학교명·사진을 수집하는 등 범행 대상 아동에 대한 사전 조사를 벌였다고 덧붙였다.

기자는 영국에서만 발생하는 특이한 유형의 디지털 성범죄가 있느냐고 물었다. 이에 마르텔로조 교수는 "사이버 세계에는 국경이 없어 설명하기 어렵다"고 답했다. 특히나 "온라인 아동 성범죄자들이 안정적인 직장을 가졌고 결혼한 상태인 등 보통 사람들과 별반 다를 바 없는 모습이었다"며 "이는 곧 경찰 당국에 발각되지 않은 '은둔형 범죄자들'이 많을 것임을 암시한다"고도 했다.

마르텔로조 교수는 "이들의 주된 먹잇감으로는 대체로 칭찬에 목말라 있고 자존감이 낮은 아이들"이라며 "사랑받는다고 느끼게 해 심리적으로 편안한 상태로 만든 다음 현실 세계에서의 접촉을 궁극적인 목표로 삼는다"고 말한다. 흔히 연예인들과의 만남을 약속하거나 게임 아이템을 선물하며, 어린 여자 아이들에게는 모델 일을 제안한다는 것이다.

이는 2009년 유럽 인터넷 안전프로그램 집행위원회(Safer Internet Centres, SIC)의 지원을 받아 수행한 유럽 4개국 내 온라인 그루밍 행동 탐구 연구에서도 확인할 수 있는 대목이다.

◇영국 경찰, 성범죄 베테랑 전문 요원들 갖춰…법원선 대체로 중형 선고

가해자들이 아동을 상대로 성범죄를 실행에 옮기는 심리에 대해 마르텔로조 교수는 "한 가지로 정의할 수는 없고 명쾌하게 설명해줄 이론도 없다"며 "아동 대상 성범죄는 몸을 탐닉하는 '페도파일'과 정신적인 부분에서 흥분을 느끼는 것으로 양분할 수 있다"고 분석한다.

전자의 경우 성인과 아동을 구분하지 않고 본인이 상황을 이끌어감에서 흥분을 느낀다고 한다. 어떤 것이 더 많은 비중을 차지하느냐는 질문에 그는 "온라인 시대에는 정확한 비율 계산이 어렵다"고 답변했다.

정부 당국의 디지털 성범죄 관련 정책과 대책에 대해서도 말을 이어나갔다. 마르텔로조 교수는 "영국 경찰에는 15년차 가량의 아동 성범죄 전문 수사조직이 존재한다"며 "학교에서는 온라인 성범죄를 피하는 방법을 가르친다"고도 말했다.

마르텔로조 교수는 디지털 성범죄에 처한 아이들을 도와주는 인터넷 감시 재단(Internet Watch Foundation, IWF)과 같은 비정부기구(NGO)들도 많고 경찰과 연계된 핫라인도 많다는 설명도 곁들였다. 실제 영국 정부는 마약·알코올 중독자를 치유하듯 아동 성범죄자들에 대한 심리 워크숍을 열어 성욕을 스스로 제어할 수 있게 하는 '인식행동(Cognitive behavioural therapy, CBT) 테라피'를 운영한다.

   
▲ 지난달 26일 영국 런던 미들섹스대학교에서 본지 박규빈 기자(좌)가 엘레나 마르텔로조 범죄학 교수(우)와 연구실에서 인터뷰를 진행하는 모습./사진=미디어펜
처벌 수위와 관련, 마르텔로조 교수는 "아동에 대한 디지털 성범죄에 대해서는 사법 당국이 최소 10년 가량의 중형을 선고하는 편"이라고 말한다.

이와 관련, 2003년 잉글랜드·웨일스 성범죄법은 인터넷을 통한 아동의 성적 그루밍 범죄를 인정한 바 있다. 같은 해 제정된 영국 성범죄법은 성적 목적으로 아동을 그루밍하고 해당 아동과 조우하고자 하는 의도를 지닌 범죄자의 행동을 막고자 제정됐다.

구체적으로 해당 법 제15조는 성적 그루밍 행위를 한 이후 아동과의 만남 자체를 중범죄로 못을 박아뒀다. 18세 미만의 아동·청소년과 성행위를 할 목적으로 이전에 최소 한 번 이상 의사소통을 하며 아동과 만날 준비를 하는 경우를 상정한 것이나, 이는 온·오프라인을 가리지 않고 적용된다.

앞서 설명한 SAP의 그루밍 개념은 2005년 제정된 스코틀랜드 '아동보호와 성범죄 예방법' 상 '특정 예비 접촉 후 아동과의 만남'에서도 인정된다. 뿐만 아니라 잉글랜드 지역 성범죄법상 그루밍 개념과도 일치한다.

마르텔로조 교수는 "교도소 출소 후 아이들과 대면하는 업종에는 취업 제한이 걸리며 전과자 목록에 오른 이들은 평생 경찰의 추적 관리 대상이 된다"고 전했다.

이에 따르면 경찰관이 해당 전과자에게 노트북과 휴대전화 접속 기록 내역을 제출토록 요구할 수 있거나 학교 접근 제한 또는 곧바로 다시 체포할 수 있도록 규정돼 있다. 아울러 아동 포르노물을 시청하는 것 자체만으로도 처벌이 가능하다는 전언이다. 마르텔로조 교수는 "수요가 있어 새로운 아동 포르노물이 만들어지기 때문에 보는 것도 범죄라고 생각한다"는 사견을 밝히기도 했다.

◇"디지털 성범죄 변화 방향, 예측 불가…교육 통해 미연에 불상사 방지해야"

국내에서는 최근에서야 '성 착취'라는 새로운 개념이 도입됐다. IT 기술의 발달로 촬영물 또는 불법 녹화물을 가지고 돈을 받고 타인에게 판매하는 것 때문에 생겨났다. 마르텔로조 교수는 "아이들에게 촬영 행위 자체가 위험하다는 인식을 심어줘야 한다"며 "성 착취물의 위험성과 노출로 인한 파급 효과에 대한 교육을 한다면 충분히 사전에 막을 수 있다"고 조언했다.

국내 불법 촬영물 피해자들의 주된 관심은 영상 삭제에 있다. 이에 마르텔로조 교수는 아동 성범죄 전문가 켄 래닝을 인용해 "아동 포르노그래피는 '실제 아동에 대한 성학대나 성착취의 영구적 기록'"이라고 지적했다.

그는 "영국에서는 IWF와 경찰 내 온라인 아동성애 전담 조직이 협력해 관련 영상 삭제에 나선다"며 "해당 업무를 수행하는 시민사회단체들에 정부가 50%, 마이크로소프트·구글 등의 IT 기업들이 나머지 예산을 지원한다"고 언급했다.

차후 디지털 성범죄가 어떤 방향으로 전개될지에 대해 마르텔로조 교수는 "성범죄는 늘 사회 변화에 맞춰 진화를 거듭해왔다"며 "IT 기술이 시시각각 발달하기 때문에 어떤 모습으로 우리 아이들에게 다가올지 예측할 수 없다"고 답변했다.

   
▲ 엘레나 마르텔로조 영국 미들섹스대학교 법과대학 범죄·사회학과 소속 교수 프로필과 한국어로 출간된 저서 '온라인 그루밍 성범죄-아동·청소년을 노리는 위험한 손길'./사진=미디어펜
마지막으로 그는 "영국에서도 아이들이 또래 아이들을 대상으로 디지털 성범죄를 저지르는 일들이 종종 벌어진다"며 "아동 체포 역시 가능하지만 근본적으로는 각 가정과 학교에서 철저한 교육을 통해 이와 같은 일들을 미연에 방지해야 한다"고 재차 강조했다.

◇재영 한인 사회 "한국 법, 아동 성범죄에 솜방망이 처분…사회가 연대해야"

재영 한인 사회 역시 아동 성범죄에 대해서는 단호한 입장을 갖고 있었다.

런던에서 기차로 30분 거리에 위치한 뉴몰든(New Malden)에 거주하는 재영 한인 1세대 송천수 재영한인총연합회장은 "한국에서는 아동 성범죄에 대한 인식 수준이 아직도 낮아 낮은 형량을 선고하는 반면 사회 분위기가 대체로 보수적인 영국에서는 어림도 없는 얘기"라고 말했다. 송 회장은 "'n번방 사건'이나 '웰컴투비디오' 같은 일에 연루된 주변인은 없지만 영국에서 이와 같은 사건이 발생했다면 무기징역도 가능하다"고 부연했다.

김숙희 재영한인총연합회 부회장은 "이곳 영국의 성범죄 관련 법규는 매우 엄격해 아이들을 만지는 것만으로도 중죄인 취급한다"며 "대체로 현행법을 믿고 따르는 편"이라고 전했다. 김 부회장은 "한국에서는 아동 성범죄자 조두순이 출소한다는 소식이 들려온다"며 "그런 일이 발생했을 경우 영국에서는 20년형감"이라고 지적했다. 

영국에 정착한지 40년 가량 됐다고 소개한 조모 씨 또한 "한국에서 벌어진 아동 성범죄 행위들이 그대로 이곳에서도 생겨난다면 전국이 떠들썩해질 문제"라며 "한국 현지법이 더욱 강화될 필요가 있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조 씨는 "내 아이들도 그런 흉악한 범죄에 당하지 않으리라는 보장이 없다"며 "전 사회가 수수방관하지 말고 연대해야 한다"는 의견을 피력했다.

[본 기획물은 정부 광고 수수료로 조성된 한국언론진흥재단 언론진흥기금의 지원을 받았습니다.]
[미디어펜=영국 런던 박규빈 기자] ▶다른기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