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부인과 지침 개정이 첫째 벽…'법 공백' 메꾸고 가족형태 공론화 이뤄야
   
▲ 11월 16일 방송인 후지타 사유리(41) 씨는 자신의 SNS에 글을 올리고 비혼 출산 소식을 전했다. 사유리 씨는 "11월 4일 한 아들의 엄마가 되었다. 모든 사람들에게 감사한다고 전해주고 싶다. 지금까지 자기 자신을 위주로 살아왔던 제가 앞으로 아들 위해서 살겠다"고 밝혔다./사진=사유리 인스타그램(sayuriakon13)
[미디어펜=김규태 기자] 지난 16일 방송인 후지타 사유리(41) 씨가 일본 정자은행을 통한 '비혼 출산' 소식을 알리면서 우리나라 각계각층에 '남편 없이 엄마될 권리'라는 화두를 던졌다.

사유리 씨가 쏘아올린 공은 지난 며칠간 사회 곳곳에서 화제와 응원을 이끌어내며, 우리나라에서 '비혼 출산'이라는 개인의 선택을 다시 생각해 보는 계기가 됐다.

사유리 씨 사례와 마찬가지로 배우자 없는 여성이 정자기증을 받아 체외수정 시술을 할 경우 현행법상 불법이지는 않다. 하지만 구체적으로 '여성이 혼자 임신·출산할 권리' 자체는 법적으로 규정되어 있지 않은, 공백 상태다.

'여성이 혼자 임신·출산할 권리' 현 주소는

여성이 혼자 임신·출산하기 위해서는 크게 두가지 과정이 필요하다. 바로 정자를 기증 받을 수 있는 정자은행, 시험관 시술과 같은 보조생식술이 그것이다.

문제는 두가지 다 법제도상 금지되어 있거나 규정되어 있지 않아 실제로는 이용하기 불가능한 실정이다.

줄기세포 연구과정에서 난자 채취 등이 일어난 황우석 박사 사태 이후, 2005년 1월 제정된 생명윤리법은 난자와 정자의 매매를 엄격히 금지하고 배아 연구 규정을 까다롭게 강화했다.

특히 난자나 정자를 기증하거나 시험관(체외수정) 시술시 모두 배우자의 서면 동의를 받아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어, 배우자가 없는 여성의 경우를 상정하지 않고 있다.

의료인이 이를 어기면 2년 이하 징역형이나 3000만원 이하 벌금형에 처해지는 처벌 법조항도 사실상 배우자 없는 여성의 임신 출산을 막고 있다.

이 법으로 인해 우리나라에서는 비배우자 정자 제공을 기반으로 한 정자은행 사업이 불가능하다. 공공 정자은행을 운영하는 일본과 프랑스, 민영 정자은행을 활발히 영위하는 미국이나 덴마크와 대조적이다.

우리나라에서 임신 후 출산을 위해서는 산모 모두가 산부인과에 가는데, 이 과정에서도 전국의 모든 산부인과가 생명윤리법의 '배우자 동의' 조항을 진료 현장에 그대로 적용한다.

대한산부인과 보조생식술 윤리지침에는 '비배우자간 인공수정 시술은 원칙적으로 법률적 혼인관계에 있는 부부만을 대상으로 시행한다', '시술 대상 부부 모두가 이를 수락하고 동의한 경우 시행한다'고 명시되어 있어 부부만을 전제로 하고 있다. 현실적으로 비혼 출산이 가능하지 않은 구조다.

보건복지부는 국내에서 비혼 여성이 시험관 등 인공수정 보조생식술을 받아도 법에 위배되지 않고 시술을 받은 당사자나 담당 의사가 처벌받지 않는다는 입장이지만, 진료 현장을 직접 담당하는 의사들의 생각은 다르다.

   
▲ 산부인과 신생아실./사진=연합뉴스

대한산부인과의사회 김재연 회장은 이에 대해 "일선 병원이나 의사 입장에서는 비배우자 인공수정 시술을 했다가 정자를 기증한 생물학적 아버지가 찾아와 아기 개인정보를 알려달라고 하거나 반대로 아이가 아빠를 찾으려고 하는 등 문제가 발생했을 때 법적 책임에 대한 우려도 있다"며 "불법은 아니지만 그동안 사회적 요구가 높지 않아 이를 윤리 지침에 반영할 필요성이 크지 않았다"고 밝혔다.

대한산부인과학회 이필량 이사장 또한 "시대의 윤리적 가치관과 잘 부합하는지에 대한 사회적 합의가 선행되어야 한다"며 "(비배우자의 정자 제공으로) 태어난 아이가 생물학적 부모를 찾으려고 할 때 생길 법적 분쟁 소지도 고려해야 하기에, 단순히 출생률을 높이거나 여성 인권을 신장하기 위해 (지침 개정을) 당장 추진할 수 있는 건 아니다"고 지적했다.

실제로 우리나라에서 보조생식술을 제공하는 난임치료 여성전문병원 모두 법률적 혼인관계에 있는 부부만을 대상으로 운영하고 있다. 대부분의 병원이 가족관계증명서나 혼인증명서 등을 제출해야 한다고 안내하고 있다.

'비혼 출산' 가능할까…향후 과제는?

오는 24일 대한산부인과학회는 난임 및 인공수정 위원회를 열고 관련 지침 개정에 대한 학계의 입장을 정리할 방침이다.

이에 대해 더불어민주당 한정애 정책위의장은 "법이 아닌 병원과 학회의 윤리지침이 비혼 여성의 체외수정 시술을 어렵게 하고 있다"며 "제도 개선이 필요한 사항은 국회에서 검토하겠다. 보건복지부는 불필요한 지침 수정을 위한 협의에 들어가달라"고 당부했다.

손영래 보건복지부 대변인은 지난 19일 이와 관련해 "정부의 공적 기증체계에서는 정식 혼인관계에 있는 부부에게 정자를 제공하고 있다"며 "(비혼 여성은) 본인이 직접 절차를 진행해야 해 고가의 시술비를 부담해야 하는 어려움이 있을 수 있다"고 설명했다.

다만 이와 같은 비용 문제를 떠나 동성 결혼을 인정하지 않고 남녀의 결혼-출산-양육으로 이어지는 소위 '정상가족'만을 인정하는 우리나라에서 '비혼 출산'이 실제 보장될지에 대해서 논란이 많다.

혼인제도로 결합된 난녀만을 정상가족으로 인정하는 현행법상, 최근 들어서야 비혼 여성이나 동성 커플 등 다양한 가족형태에 대한 공론화가 시작됐기 때문이다.

실제로 여성가족부 대부분의 지원 정책이 '출산 후' 정상가족을 대상으로 삼고 있다. 여성가족부 관계자는 "한부모 가족지원법에 의해 출산 여성은 정책 대상이지만, 여성정책 논의에서 '비혼 출산' 논의를 한 적은 없다"고 전했다.

대리모 문제도 마찬가지다. 불임 부부가 제 3의 여성에게 임신과 출산을 맡기는 대리모는 우리나라에서 불법이다. 하지만 합법적 부부의 정자와 난자를 체외수정한 후 이를 대리모 자궁에 착상하는 유형의 대리모에 대해서는 관련 법규정이 없어 역시 공백 상태다.

의학기술의 발전으로 보조생식술의 변화가 지난 10년간 급격해진 가운데, 현행법으로 해결할 수 없는 문제가 늘어나고 있다. 여야를 막론하고 입법부의 지혜를 모을 시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