텔레그램 생소해도 아동 온라인 성범죄 노출은 마찬가지"
4월 미국판 'n번방' 사건 함정수사 통해 가해자 30명 체포
디지털밀저작권법 기반 국가기관서 성착취물 신고 접수 삭제
디지털이라는 새로운 환경은 무차별적이다. 그들만의 세상에서 벌어지는 잔혹한 범죄는 왜곡된 성에 대한 죄의식조차 없다. 이는 사이버상의 문제만이 아니라 우리 사회 곳곳에서 일어나고 있는 아픈 현실이다.

단지 성적 모럴 해저드가 아니라 사회 깊은 곳에서 오랫동안 암적인 존재로 자라온 고질적 병폐이기도 하다. 잘못된 성 관념이 악의 세습으로 이어지면서 사회 통합의 가장 큰 걸림돌로 작용하는 게 아닐까 하는 의혹마저 들게 한다. 

이에 본보는 디지털 성범죄의 현황과 구조적 문제 진단,  범죄 엄단과 예방을 위한 양형기준 강화, 성인지 지수 향상, 해외 사례 등을 중심으로 '내 손안에 악마가 산다 - 제2의 n번방 막아라'를 주제로 심층 기획시리즈를 연재한다. 

시리즈 순서: ①n번방 사태로 본 디지털 성범죄 현주소/②악마는 디테일에 있다?…2차 피해는/③'솜방망이' 처벌이 부른 악순환/④피해자 위한 사회 안전망은?/⑤[르포]아이들 향해 랜선 타고 엄습하는 '검은 손'…영국에서는/⑥[르포]미국에서 n번방 사건 일어났다면?/⑦[르포]여성인권 선진국 스웨덴…강력한 법이 답/⑧'제 2의 n번방 막아라' 전문가들 목소리는[편집자 주]

[주홍글씨 n번방⑥]미국에서 n번방 사건 일어났다면?

[미디어펜=미국 워싱턴D.C./특별취재팀 이다빈 기자]올초 온라인 음지 속에서 꿈틀거리던 텔레그램 ‘n번방 사건’이 수면위로 떠오르면서 온 나라가 분노를 감추지 못했다. 사건의 잔인함은 가해자들이 ‘그루밍’이라는 가면을 쓰고 미성년자들의 심리상태를 무력화해 지속적인 성범죄를 일삼았다는데 있었다. 

사실 n번방 사건과 같은 반인륜적인 범죄가 한국이 아닌 다른 곳에서 일어났다면 어땠을지와 같은 가정 자체에 많은 이들이 불편함을 느낀다고 말한다. n번방 사건은 그 어디에서도, 어떤 이를 대신해서도 다시 일어나서는 안 되는 참혹한 범죄이기 때문이다. 이는 ‘제2의 n번방 사건’ 예방에 허술함이 없어야 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미국 시민들이 말하는 ‘n번방 사건’
 
미국 워싱턴D,C.의 시민들에 n번방 사건에 대한 간략한 개요를 설명하고 사건에 대한 개인적 의견과 그루밍 성범죄, 텔레그램 등을 통한 사이버 성범죄 인식 등에 대한 인터뷰를 진행했다. 

25일 신종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의 여파로 워싱턴D,C. 내셔널 몰 공원 일대는 평소보다 한산했다. 낮선이와 접촉을 꺼려하는 분위기가 있었지만 방역수칙을 지키고 몇 번의 시도 끝에 총 15명의 시민들과 이야기를 나눌 수 있었다.

   
▲ 인터뷰를 진행한 미국 워싱턴D,C. 조지타운대학교 전경./사진=미디어펜

그들 중에는 ‘그루밍’이라는 용어를 들어본 적이 없다는 답변이 많았다. 하지만 호감을 얻거나 돈독한 관계를 형성하는 듯 접근해 피해자를 심리적으로 지배한 상태에서 일어나는 성범죄라는 개념은 낯설지 않다는 목소리가 많았다.

직장인 티파니 씨(Tiffany, 26)는 “그루밍이라는 용어는 생소하지만 정신적으로 성숙하지 않은 피해자들을 돌봐준다는 명목으로 접근해 범해지는 성범죄는 미국에서도 종종 일어난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미국에서는 미성년자를 대상으로 하는 모든 범죄에 민감하고 아이들은 가정과 학교에서 철저하게 보호받고 있다”면서도 “그렇기에 성범죄를 목적으로 미성년자에 접근하는 가해자들은 초반에 더욱 호의적인 태도로 아이들의 판단을 흐리게 만들어 성범죄가 일어날 것을 인지하지 못하게 하는 경우가 많다”고 말했다.

조지타운대학교에 재학 중이라고 밝힌 다니엘 씨(Daniel. 21) 역시 ‘그루밍’이라는 용어를 들어본 적이 없다고 응답했다. 그는 ‘텔레그램’ 플랫폼 역시 한 번도 접해보지 못했다고 답했다. 그는 “텔레그램은 미국에서 흔히 사용하는 SNS는 아니다”면서도 “텔레그램이라는 SNS에 한정하지 않더라도 온라인 상의 미성년자들이 성범죄에 무방비로 노출돼 있는 점은 한국과 유사하다”고 설명했다.

또 한국과 미국 모두 디지털 성범죄 예방을 위해서는 체계적이고 신속한 신고 제도가 필수적이라는 의견이 있었다. 무한대의 온라인 상에서 모든 범죄를 통제할 수 없으니 범죄가 발생했을 때 피해자들이 빠르게 이용할 수 있는 신고제도가 자리잡아야 한다는 설명이다.

초등학생 자녀를 둔 사만다(Samantha, 37)씨는 “최근 인근 학교에서 비슷한 일이 있었는데, 학생들에게 신임을 얻은 운동부 코치가 지도 학생들을 대상으로 성범죄를 저지른 사건이었다”며 “보다 약한 지위에 있는 피해자들의 감정을 자극해 무력하게 만들고 성범죄를 저질렀다는 점에서 한국의 n번방 사건과 비슷한 맥락”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신고 시스템이 가장 중요하다”며 “이 사건 경우에도 또래, 지역 커뮤니티에서의 평판이 두려워서, 또는 신고 시스템이 있는지 몰라서 피해 학생들이 가해자 코치를 일찍 신고하지 못했다”고 말했다. 이어 “한국의 n번방 사건 역시 신고 시스템이 체계적으로 준비 돼있고 피해 아동들이 그것을 사전에 알고 있을 수 있도록 홍보가 철저했더라면 피해를 줄일 수 있었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 ‘n번방 사건’ 미국에선 불가능?…함정수사와 중형의 필요성

n번방 사건이 한국 사회 전반에서 뜨거운 감자로 공론화되던 올해 4월, 미국에서도 ‘미국판 n번방 사건’이라고 불리는 유사한 디지털 성범죄 사건이 있었다. 

이 사건은 성인 남성 가해자들이 인터넷을 통해 미성년자에게 접근해 성관계와 성추행 등 성착취를 시도한 사건이다. 미국 버지니아주 페어팩스(Fairfax) 카운티 경찰은 가해자 30명을 체포해 성매매를 사주하고 외설 행위를 강요한 총 68건을 중범죄 혐의로 기소했다. 

   
▲ 페어팩스 경찰국이 공개한 '코비드 단속 작전'을 통해 검거한 가해자 30명./사진=페어팩스 경찰국
현지 경찰이 범죄자들을 일망타진 할 수 있었던 데는 '코비드 단속 작전(Operation COVID Crackdown)'이라 불리는 함정수사의 역할이 컸다.

현지 경찰관들은 어린이를 가장해 온라인 플랫폼에 접속했고 체포된 남성들이 가상의 어린이에게 접근해 노골적인 대화를 시도하고 성관계를 요구하는 정황을 포착할 수 있었다. 경찰은 해당 남성들이 어린이로 가장한 경찰관과 오프라인 상에서 만나기로 합의된 장소에 도착했을 때 그들을 체포했다.

코로나19의 여파로 각급 학교 학생들의 온라인수업이 일상화 되면서 디지털 성범죄 노출 가능성이 커진 부분은 한국과 크게 다르지 않다. 차이점은 미국에서는 가해자들을 체포하기 위한 함정수사가 큰 효과를 봤다는 것이다.

미국 내 함정수사의 다른 사례로 미국연방수사국(FBI)은 2016년 직접 아동음란사이트 '플레이펜'을 운영해 사이트에 접속한 사람 137명을 기소하기도 했다.

n번방 사건이 미국에서 일어났더라면 초기에 사건 진압이 가능 했었을 것이라고 예측하는 이유는 이 때문이다. 실제로 캐나다, 영국 등의 국가에서도 디지털 성범죄에 대한 함정수사가 활발히 진행되고 있다. 

한국에는 아직 디지털 성범죄에 대한 함정수사가 이뤄진 적이 없다. 경찰은 법적‧제도적 한계로 인해 디지털 성범죄 함정수사에 적극적으로 나서지 못하고 있다고 설명하고 있다.

국내에서는 n번방 사건의 가해자들을 모두 체포하지 못했다는 안타까움에 최근에는 디지털 성범죄 함정수사 합법화에 대한 여론이 커지고 있다. 전문가들은 함정수사는 범죄자의 검거율을 높이고 수사가 성공했다는 발표나 계획으로 범죄율을 줄이는 효과도 있을 수 있다고 설명하고 있다.

한국 디지털 성범죄의 뿌리를 뽑기 힘든 이유로 외국의 사례보다 가벼운 형량도 꼽힌다. 처벌 수위는 천지차이다. 미국에서는 아동 음란물을 소지하기만 해도 최대 10~20년의 징역형이 선고된다. 미국 법무부에 따르면 아동 음란물 유죄 판결 중 60%에 5년 이상의 징역형이 내려졌다.

한국 법원이 세계 최대 아동 음란물 사이트 웰컴투비디오 운영자 손정우에 징역 1년6개월 형을 선고한 것과 대조적이다.

◇ 2차 가해를 막기 위한 이미지와 동영상 삭제

n번방 사건은 인터넷 상에서 지워지지 못한 피해자들의 이미지와 동영상들로 ‘2차 가해’를 양산하며 현재까지 진행 중이다. 미국에서는 2차 가해를 막기 위한 피해자 이미지 및 동영상 삭제 조치가 어떻게 진행되고 있는지 미국 국립실종착취아동센터(NCMEC, 믹맥)의 사례를 살펴봤다.

   
▲ 미국 국립실종착취아동센터 홈페이지./사진=미국 국림실종착취아동센터
NCMEC은 아동의 성범죄, 착취, 실종 등을 예방, 조치하기 위해 미국 법무부의 지원을 받아 운영되고 있는 국가정보센터이자 종합신고센터다.

NCMEC에서 다루고 있는 컨텐츠는 아동 포르노, 아동의 동의 없이 촬영된 성적 이미지나 동영상, 아동에게 노출되는 원치 않은 음란물 등을 포함한다.

인터넷에서 유포되는 성적 학대 콘텐츠의 확산 및 재생산을 막기 위해 NCMEC에서는 해당 콘텐츠가 위치한 사이트 본사에 삭제를 요청하거나 자체 신고 시스템인 '사이버팁라인(Cybertipline)'을 통한 컨텐츠를 신고 받고 있다.

사이버팁라인은 미성년자 온라인 착취에 대한 미국 내 중앙집권식 신고 시스템이다. NCMEC은 사이버팁라인으로 신고 받은 콘텐츠를 법률 기관과 협력해 보고된 위치를 찾고 콘텐츠 삭제를 시도한다. 

신고는 피해 아동이나 보호자가 직접 할 수 있고 온라인 상에서 우연히 해당 콘텐츠를 접한 제3자도 가능하다. 신고는 NCMEC 홈페이지를 통해 이뤄진다.

NCMEC에 따르면 지난해 사이버팁라인을 통해 접수 받은 신고 건 수는 1690만 건으로 6910만 개의 성적 이미지, 동영상, 파일 등이 집계됐다. 이중 한국 사이트에 위치를 두고 있는 아동 성착취물 신고 건 수는 8만3322건이었다.

이와 같은 어마어마한 신고 건 수는 미국 내에서도 다를 바 없는 미성년자 디지털 성범죄의 심각성을 보여준다. 동시에 온라인 아동 성 착취물의 양지화를 위한 기관의 노력이 나타나는 대목이기도 하다.

컨텐츠를 신고 받은 후에는 미국의 디지털밀레니엄저작권법(Digital Milennium Copyright Act)에 기반해 해당 SNS나 온라인 플랫폼 본사에 콘텐츠 삭제 요청을 한다.

1998년 미국 의회가 자국 내 온라인 디지털 콘텐츠의 저작권 보호를 위해 제정한 디지털밀레니엄저작권법은 복제 방지 기술을 무효화 시키는 것을 불법으로 간주하고 복제 방지를 위한 제어 및 구현에 대해 임의조작을 금지하며 저작물 관리 정보의 완전성을 보호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원치 않은 성적 이미지 및 동영상의 확산 및 배포를 막아 2차 피해를 예방할 수 있는데 기여를 하고 있는 법안이다.

한국도 2차 가해도 처벌할 수 있도록 하는 법적 근거 마련에 나서고 있다. 여성가족부는 지난 6일 성범죄 2차 피해 방지, 피해자 보호 강화, 사건 처리의 실효성 제고, 조직문화 개선 등을 골자로 한 '공공부문 성희롱‧성폭력 근절 대응 체계 관리 방안'을 발표했다. 

지난해에는 ‘디지털 성범죄 영상물 신속 삭제법(방송통신위원회 설치·운영법 개정안)’이 통과되며 불법 촬영물 삭제에 소요되는 기간이 과거보다 빨라졌지만 아직 성착취물 삭제와 2차 가해 처벌을 위한 법안은 부족한 실정이다.

최종상 경찰청 사이버안전국 사이버수사과장은 "2차 가해를 막기 위한 이미지 및 동영상 삭제는 방송통신심의위원회에서 심의하는 것을 원칙으로 하고 피해자 보호를 위해 여성가족부 디지털성범죄지원센터에서도 모니터링 및 대상자 의뢰에 의한 지원업무를 한다"며 "경찰도 수사기관으로서 불법 촬영물 요청 및 삭제를 진행 중이다"고 말했다. 

그는 “디지털 성범죄 2차 가해를 뿌리 뽑기 위한 첫 걸음은 2차 가해의 정의와 개념을 규정하고 사회 전반적으로 인지하고 있는 것이다"라고 덧붙였다.

[본 기획물은 정부광고 수수료로 조성된 언론진흥기금의 지원을 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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