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진국, 위기일수록 초당적 공조…불씨 살릴 마지막 '골든타임'

 10대 청소년에게는 "슬픈 전세값”

 
   
▲ 김덕성 미디어펜 본부장
 
시나브로 저물어 간다. 다사다난(多事多難) 한 2014년.

매년 이때쯤이면 언론사들은 앞 다퉈 10대 뉴스를 선정한다. 그 톱은 근조 검정리본을 단 세월호 대참사가 차지하겠다. 대한민국은 1월 신용카드 개인정보 대량 유출에 따른 신상털이로 분노했고 경주 마우나오션리조트체육관 붕괴와 전방 GOP 총기난사, 최근의 오룡호 침몰로 치를 떨었다.

글로벌금융위기의 암울한 터널 속에 지뢰밭처럼 터지는 안전 불감증 사고공화국. 한해가 다 지나가는 데 신명도 감동도 찾아볼 길 없다.

 여기에 하나 더. 올해 10대 뉴스에는 세월호로 낙담천만인 온 국민을 옥조인 전세값 폭등도 고단한 서민경제의 범주에 포함될 성 싶다. 하루가 멀다 하고 치솟는 전세값. 오죽하면 ‘미친 전세값’이라고 표현했던가.
 
미친 전세값은 내 집안에서 ‘슬픈 전세’로 불린다.
 
 딸의 ‘절친’ 5총사 곧 해체 “전세 살기에”
 
 “아빠, 절친 5총사들이 곧 헤어질 판 이예요. 그런데 전세값이 왜그리 많이 오르는 것이야?” 짝사랑(?)하는 딸과 대화는 애비로서 횡재다.
 
 딸 왈, 5총사 가운데 4총사가 1억 넘는 전세값 인상에 백기를 들고 다른 곳으로 이사한단다.
 
 “힘들겠다. 어른들이 너희들 가슴에 못을 박는구나.”
 “우리들이 만들 10대 뉴스에는 ‘전세살이 생이별’이 포함될 거예요.”
 
초점은 다르나 부녀간 공감대가 순간 형성됐다. 전세문제는 소통부재와 대화빈곤으로 뻘쭘한 애비와 딸을 연결하는 끈이 됐다.
 
툭하면 신경질인 질풍노도의 중학교 2학년 딸, 북한이 남침하지 못하는 이유가 중2 때문이라는 얘기까지 나돌면서 교육부에서 가장 집중적으로 관리하는 중학교 2학년. 호랑이가 무서워하는 게 대추라고 하더니, 치솟는 전세값은 김정은도 두려워하는 중학교 2학년에게 버거운 존재로 보인다.
 
옛날 학창시절을 되돌아 보니,  소중한 친구와 헤어지는 딸의 심정이 이해된다.  애잔하다.  애비도 그 나이에 친구가 세상의 전부였다.  비가 오나 눈이 오나 등하굣길이 ‘도란도란’한 5총사.  세월호 대참사 때도 안산에서 합동분향도 하면서 서로를 다독였고 거의 매달 엄마들 생일도 함께 챙기는 끈끈한 사이였다.
 
1.5억 전세 2년만에 “1억↑”
 
친구 4명이 동시다발로 왜 이사를 갈까.  궁금했다. 4인의 친구들은 2년 전 미분양 때 지금의 단지에 전세로 들어왔다. 당시  입주물량이 넘치면서 전세가 싼 편이었다.  그들 가족은  당시 소위 ‘전세 난민’. 그런 전세값이 2년 재계약 시점에 와서 1억원 이상 올랐다. 동과 향이 좋은 집은 2억7,000만원이다. 일반 가정에서 한꺼번에 1억원이 넘는 몫돈을 마련하는 게 쉬운 일은 아니다.
 
결국 전세값 폭등으로 10대 ‘절친’들은 부모따라 뿔뿔이 헤어져야 하는 운명. 우리 단지의 중2 5총사 모임은 이래서 해체 일보 직전이다. 이들 가족들은 어디로 갈지가 또 궁금해진다.
 
‘똘망 똘망’ 한 친구는 조부모 집으로 향하고 ‘순수 다정이 병인 양’한 다른 친구는 인근 다세대로 옮긴단다. 목회 일을 하는 아버지를 닮았는지 너그러운 한 친구는 인근 소형 아파트나 월세로 옮길 작정이란다. 또 있다. 야무져서 총기가 도는 친구는 남에게 전세 준 인근 단지로 간다고 한다.
 
지난 주말 영하의 날씨에 ‘쌩쌩’ 찬바람으로 얼어붙은 손을 불며 이삿짐을 싼 다른 이웃처럼 4총사 가족도 엄동설한에 짐을 싸야 할 판이다.  
 
40대 실수요자 “전세선호 이유있다"
 
딸 친구들의 부모는 대부분 40대다. 그 중 한 가정은 아빠가 번듯한 직장에 다니며 엄마도 작지만 알찬 가게를 꾸려나간다. 할아버지와 함께 사려는 가정은 괜찮은 사업을 하고 있어 남부럽지 않게 산다. 목자인 집도 사정이 딱하지는 않은 듯 하다고 애 엄마가 귀뜸한다.
 
동네 집값이 비교적 낮음에도 이들은 집을 사지 않을까?  뼈저린 학습효과다. 이들은 드라마 ‘응답하라 1994’, 즉 ‘응사’세대다. 대학시절 외환위기를 겪으면서 젊은 '88세대'의 궁핍과 고통을 겼었다. 우려곡절 끝에 일자리를 얻었으나 30대에 금융위기로 다시 휘청거린 세대다. 이들은 지금 ‘미생’에 웃고 울고 한다. 계륵과 같은 미생마(未生馬)의 처지를 곰 씹으면서….
 
이들은 공통점이 있다. 첫째, 고성장시대 베이비부머와 같이 집장만에 대한 강박관념이 없다. 집값 하락으로 골치 앓는 하우스푸어를 누구보다 잘 아는 세대. ‘집이 원수‘인 선배나 친구들을 보면서 자주 이사하는 불편이 오히려 낫다고 보는 세대다.
 
둘째, 이들은 양대 위기를 겪다보니 살림살이가 경제적이다. 전세가 최소 비용으로 최대 효과를 내는 거주수단임을 꿰찬다. 사실 떼이지만 않는다면 전세는 2년 살고 보증금을 고스란히 받으며 보유세를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 저금리시대에 거주비용이 가장 저렴하다.
 
셋째, 40대는 집을 살, 구매여력을 갖춘 실수요자가 상당수다. 소득이 일정 수준 뒷받침하고 있다. 그러나 집은 ‘사는 곳이지 사는 것’이 아님을 알고 있다. 더구나 정부가 90%까지 저리로 전세대출해주는 데 집을 왜 사는가 반문한다. 반면 낮은 이자소득으로 재미를 보지 못하는 집주인은 갈수록 전세값을 올리거나 반전세나 월세를 선호한다. 앞으로도 전세 값 상승이 불가피한 이유다. 
 
40대, 이들은 비정규직이 상당하고 평생 직장은 없다는 것을 안다. 쫒기면서도 이들은  중·장년과 달리 주어진 여건에서 삶을 즐긴다. 휴가기간 중 어떤 차 또는 비행기를 타고 어느 곳을 여행할까를 연구하며 주말에 온 가족이 즐길 공연장과 맛 집은 어디인지를 아는 세대다.
 
매매시장에 이들이 나서지 않는 배경이다.  이들은 경기회복이 대세이고 집값이 오른다는 시그널이 확실할 때에만 움직인다.
 
 
   
▲ 부동산3법의 국회통과가 지연될 경우 부동산시장은 회생 불가능한 침체의 늪에 빠질 수 있다. 사진은 어둠이 내리기 전 석양 속의 한강 이남 압구정 등 재건축예정 단지.
 
▲ 부동산3법의 국회통과가 지연될 경우 부동산시장은 회생 불가능한 침체의 늪에 빠질 수 있다. 사진은 어둠이 내리기 전 석양 속의 한강 이남 압구정 등 재건축예정 단지.
 
정부·여당, 시장활성화 공조 ‘엇박자’
 
박근혜 정부는 출범 이후 무려 8차례의 부동산대책을 내놓았다. 첫 선은 2013년 4·1대책이다. 양도세 등 세제의 감면을 통해 거래를 촉진하려 했다. 저금리시대에 필연적인 전세값 급등을 염두에 둔 조치였다.
 
당시 야당은 ‘부자를 위한 세제개편’이라며 반발했다. 박대통령의 부동산시장 정상화를 위한 첫 시작은 터덕거렸다. 국회가 관련 법 통과를 늦추면서 정책 불신이 생겨났고 글로벌 시장의 불확실성이 점증되면서 시장은 이내 나락으로 떨어졌다.
 
물론 정부 스스로도 찬물을 끼얹는 자가당착에 빠진다. 대표적 사례가 올해 다주택자 임대소득세 부과방침이다. 정부는 이 세수로 비어가는 재정 곳간을 채우려 했다. 그러나 시장은 즉각 반발했다. 결국 ‘마파람에 게눈 감추듯‘ 책상 속으로 들어갔다.
 
당시 부동산시장은 여름답지 않게 썰렁했다. 시장에 온기를 불어준 주인공은 최경환부총리. 그는 7월 정치인에서 경제부처 수장으로 변신, “규제 개혁을 통한 시장 활성화”를 주창했다. '초이노믹스'는 양대 위기를 겪으면서 금기시하던 수도권 주택대출규제에 과감히 손을 댔다.
 
그는 “여름옷 입고 한겨울을 보낼 수 없다”며 분양가 상한제 등 과거 시장 과열 시에 만들어 낸 부동산규제에 메스를 가한다.
 
금융규제 완화 “시장 회복 청신호”
 
내수 진작을 위한 부동산시장 활성화를 위해 그는 금융시스템 부실화에 대한 우려에도 불구, LTV(담보인정비율)과 DTI(총부채상환비율) 등 주택대출규제를 완화했다. 시장은 이내 화답했다. 미분양이 줄고, 올 들어 10월까지 주택매매거래량도 8년 만에 최대치를 기록했다. 그러나 이도 잠시. 지난달 주택거래는 급격 위축, 사실상 동면에 들어갔다.
 
대한민국 국회하면 떠오르는 말이 있다. ‘공전’과 ‘파행’, ‘정쟁’ ‘무법천지……. 부정적인 이미지 일색이다.
 
지금도 “경제 민주화가 우선이다.“와 ”경제 활성화를 해야 한다.“로 한 치 양보 없는 곳이 여의도다.
 
선진외국, 글로벌위기 “초당적 경제 활성화”로 극복
 
국회에 묻는다. 글로벌 금융위기를 촉발시킨 미국 상원이 초당적으로 양적통화확대의 물꼬를 열어준 게 경제 민주화인가 경제 활성화인가? 재정파탄 위험에도 유동성을 무기한 공급한 미국연방준비은행(FRB)의 전 의장 버냉키. 그는 집권당인 오바마의 민주당뿐만 아니라 공화당의 큰 지지 속에 지난 2010년 연임, 모두 3차례에 걸쳐 모두 4조달러가 넘는 달러를 무차별 살포했다.
 
국가위기에서 초당적인 결정이 벼랑길의 미국을 구한 것이다. 미국은 양적완화를 앞세워 하우스푸어의 채무를 축소하고 저신용자의 모기지 대출기준을 완화시키고 있다.
 
EU도 양적완화에 팔뚝을 걷어붙였다. 마이너스 경제성장률에 대한 우려 때문이다.
 
중국은 지난주 인민은행의 금리를 전격 인하했다. 이 조치는 부동산과 주식시장 거품심화가 우려되는 시점에서 나왔다. 지속가능한 성장에 금리인하가 걸림돌이 될 것이 불 보듯 뻔 한데도 중국정부는 과감하게 치고 나갔다.

일본열도 살리기에 나선 아베노믹스. 소비세 인상으로 삐꺽되고 있지만 ‘잃어버린 20년’을 벗어나기 위해 양적 완화를 끊임없이 추진 중이다. 일본은 주택시장 살리기를 위해 고령층의 주택과 교육에 증여세를 폐지하는 등 내수살리기에 진력한다. 누가 중국과 일본의 경기부양책을 경제민주화라고 하겠는가.
 
영국 야당 노동당을 보자. 노동당은 올해 잉글랜드에 4개 신도시에 20만 채의 주택을 짓겠다는 공약을 발표했다. ‘토건족’ 운운하며 경제민주화를 외치는 한국 야당에게 기대하기 어려운,  상상으로도 힘든 발상의 전환이다.
 
"내 나라 내 국민부터 살려라"
 
세계 최강의 G2를 비롯, 이들 강대국과 의회의 경제살리기는 다른 나라 눈치를 보지 않는다. 제 나라, 자기 국민 살리는 데 최우선이다.
 
절체절명의 위기에서 벗어나기 위해서는 물불가리지 않는 게 이들 국가이며 의회다. 소비와 투자를 늘리고 일자리를 창출하는 총수요관리에 ’올인‘, 경제활성화에 여야가 따로 없다. 한마디로 ‘아생연후살타(我生然後殺他)’다.

한국 경제는 여전 글로벌 경제위기의 한복판이다. 경제 활성화가 본 궤도에 오르지 않을 경우 내년 성장률 3%도 장담하기 힘든 상황이다.
 
 
   
▲ 2014년 국회 국토위원회 법사소위에 계류 중인 부동산3법의 주요 내용
 
▲ 2014년 국회 국토위원회 법사소위에 계류 중인 부동산3법의 주요 내용
 
국회에서 멈춰선 부동산3법. 경제 활성화와 민생 살리기의 핵심이다. 세월호 침몰로 낙심천만인 국민을 위해서 해를 넘겨서는 안된다. “연내 일괄 타결”에 시장이 한목소리다.
 
분양가 상한제와 재건축 초과이익 환수제, 재건축 주택 공급제한 해제. 야당이 얘기하는 부자를 위한 법인 측면도 있다. 그러나 재정파탄을 무릅쓰고 내수를 살리기 위해 초당적으로 협력한 미국을 보자. 저금리 저성장, 저물가에서 저소비와 저투자가 지속될 경우 한국 경제의 미래는 암담할 뿐이다.
 
박원순, 8만호 임대공급도 3법통과 선행해야
 
야당이 귀담아 들어야 할 부동산정책관련 한 가지 팁이 있다. 대한민국의 수도 서울특별시는 야당의 도시다. 그 수장은 차기 대권주자로 꼽히는 박원순 시장이다. 그는 지난주 오는 2018년까지 저소득층과 소외층을 위해 임대주택 8만가구를 공급하겠다고 발표했다.
 
이들 임대주택의 상당량은 재건축과 재개발이 제 궤도에 올라가야 공급이 가능하다. 이번 부동산3법이 통과되지 않는다면 박시장도 임대주택 공급계획이 차질을 빚을 수밖에 없다.
 
불황기일수록 낙수효과가 없다는 게 정설로 자리 잡고 있지만 공공성이 강조되는 주택시장에서는 아랫목효과가 분명 존재한다. 도시재정비에 소형 임대아파트를 최대 20%까지 짓도록 한 게 단적 사례다. 주택재생사업에 적정 사업성 보장이 필요한 이유다. 정략을 고집하지만 말고 시장의 앞과 뒤, 전과 후를 살펴보길 바란다.
 
여당도 마찬가지, 야당에 귀를 기울이라.
 
전월세의 상한을 정하고 임대차 계약기간을 1~2년 연장하자는 야당의 서민주거안정책은 시장에 이율배반적이나 서민의 주거불안문제 해소를 위한 대안이 될 것이다. 줄 건 주고 받을 건 받아라. 올해 여야는 큰일을 해냈다. 대립과 반목만 하는 줄 알았더니 귀한 결실을 이끌어냈다. 세월호 특별법제정과 내년 예산통과가 바로 그 것이다.
 
부동산3법 통과가 된다고 하더라도 시장이 힘을 얻는 상황으로 돌변하지는 않는다. 얼어붙는 시장의 냉각 속도를 줄이는 데는 기여할 것이다. 그 사이 정부와 국회는 우리의 경제체질을 강화시키고 일자리와 소비, 투자가 늘어날 수 있게끔 중지를 모아 실행해야 한다. 그래야 부동산을 비롯해 시장에 온기가 비로소 돌 수 있을 것이다. 사실 인구와 가구, 소득 구조 상 경제성장률이 4~5%가 되지 않는 한 부동산 시장에 생기를 기대하는 것은 무리다.
 
미국과 영국 등 세계 경제를 이끌고 있는 국가의 의회를 보라. 경제 활성화에는 여야가 없지 않은가. 세월호로 숯검정이 된 국민을 힐링하는 국회. 초당적 공조로 칭찬받는 국회가 절실하다.
 
부동산시장은 갈수록 차가워간다. 완전 식을 경우 불씨도 살릴 수 없다. 일본의 ‘잃어버린 20년‘ 교훈을 잊지 않도록 하자.
 
올해 마지막 임시국회. 부동산3법과 서민주택법을 통과시키며 2014년 대미를 장식하길 기대한다. "대한민국 국회의원 여러분, 송구영신합시다." /김덕성 미디어펜 뉴스본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