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박3일 문대통령·강경화 이어 여권 인사 줄면담
사드‧한한령 숙제 못 풀고 강 장관 중국 초청만
한중 관계 강화 강조…한미동맹 쏠림 견제 목적
[미디어펜=김소정 기자]왕이 중국 국무위원 겸 외교부장이 25~27일 방한 일정을 마무리하면서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의 연내 방한은 사실상 어려운 것으로 드러났다. 지난 8월 양제츠 중국 공산당 정치국위원에 이어 이례적으로 고위급의 연이은 방한에도 시 주석의 방한 일정은 잡히지 않았고, 한반도 사드 배치 문제나 한한령 해제와 관련해서도 중국의 진전된 입장은 나오지 않았다.

대신 왕 위원은 이번 방한 기간 중 문재인 대통령을 비롯해 강경화 외교부 장관, 이해찬 전 더불어민주당 대표, 박병석 국회의장, 문정인 대통령 통일외교안보특보와 윤건영 민주당 의원 등 여권 인사를 두루 만났다.

왕 위원은 각 회담의 언론 브리핑마다 자신의 이번 방한은 코로나19 상황 속에서도 실질적인 행동을 통해서 한중관계의 중요성을 보여주기 위한 것이라고 거듭 강조했다. 강 장관과 회담을 갖기 전 기자회견에선 “이번 회담은 반드시 성과를 거둘 것”이라고 의욕을 드러내기도 했다. 또 문 대통령을 만났을 땐 강 장관과 가진 회담에서 열가지 공감대를 이뤘다고 말했다.

왕 위원의 이번 방한 목적은 역내포괄적경제동반자협정(RCEP) 체결 이후 양국의 전략적 협력 동반자 관계 발전과 동북아 경제협력 증진에 맞춰져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미국에 조 바이든 새 행정부가 출범하기에 앞서 일본과 한국을 방문해 역내 다자주의를 다지기 위한 것으로 보인다. 

왕 위원이 이번 방한 중 미중 갈등 속에서 중국을 선택하라는 압박성 발언을 내놓았다는 말은 들리지 않았다. 하지만 다자주의와 자유무역 수호 등 역내 현안에서 양국이 함께하기를 바란다는 점을 분명히 했으며, 취재진과 문답에서 “세계에 미국만 있는 게 아니다”라고 말해 주목을 끌었다.

   
▲ 문재인 대통령이 26일 오후 청와대에서 왕이(王毅) 중국 외교담당 국무위원 겸 외교부장을 접견하고 있다. 2020.11.26./청와대

이번 한중 간 회담에선 RCEP과 동북아 방역보건협력체계, 한반도 평화프로세스 등이 중요 키워드로 언급됐다. 경제는 물론 북한 문제 해결을 위해서도 중국과 협력해야 하는 우리정부의 입장이 반영된 것이다. 이는 앞으로 특히 동맹의 역할을 중시하는 바이든 정부가 동북아에서 한미일 동맹 강화에 나설 것으로 예상되면서 충돌할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왕 위원은 다수의 여권 인사와 만나 의미심장한 발언을 남기기도 했다. 그가 26일 이해찬 전 민주당 대표와 만찬을 가진 내용은 중국 외교부가 홈페이지에 보도자료를 올려 알리기도 했다. 왕 위원은 이 전 대표에게 “문재인정부의 성과에 대해 여러 평가가 있겠지만, 전쟁과 파국을 막았다”며 “지금은 (남북이) 소강 국면이라고 하지만, 이 정도의 소강 상태도 쉬운 일이 아니다”라고 했다.

또 왕 위원은 RCEP을 언급하며 “한중일 FTA도 박차를 가해서 RCEP보다 높은 수준의 경제협력을 할 수 있기를 바란다”면서 “중한은 우호적인 가까운 이웃이자 긴밀한 협력 동반자이다. 중국은 한국과 함께 노력하고 각 분야의 교류협력을 확대해 중한 관계가 새로운 단계로 들어서길 희망한다”고 했다.

왕 위원은 박병석 국회의장을 만나선 “남북이 한반도의 진정한 주인이다. 한반도의 운명은 남북 양측의 손에 주어야 한다”고 했다. 그는 이 자리에서 “중국이 한국에 제안한 동북아 방역보건협력체계 구축이 중요하다”고 말하면서 “한중 양국은 100년동안 없었던 변곡점에 처해 있다. 양국 관계 미래발전위원회 설립 및 운영에 더 많은 관심을 가져달라”고 당부했다.

한중 외교장관회담에서 강 장관과 양 위원은 두 정상간 만남을 예정하면서 각급의 대화채널을 활발히 가동하고, 교류사업을 활성화해나가기로 한 것으로 전해졌다. 이와 관련해 외교 당국자는 “양측이 가까운 시일 내에 한중 외교차관 간 전략대화, 한중 인문교류촉진위, 한중 국장급 해양사무협력대화를 개최할 수 있도록 협의해나가기로 했다”고 설명했다.

한반도 정세와 관련해선 외교 당국자는 “앞으로 한반도 상황을 안정적으로 관리하면서 한반도 평화프로세스를 진전시킬 수 있도록 긴밀히 소통하고 협력하는데 의견을 같이했다”고 전했다.

   
▲ 26일 서울 종로구 외교부를 방문한 왕이 중국 외교부장이 강경화 외교부 장관과 회담 전 팔꿈치 인사를 하고 있다.2020.11.26./외교부

왕 위원은 이번에 강경화 장관을 공식 중국으로 초청했다. 따라서 시 주석의 방한은 먼저 강 장관의 방중 이후 코로나 상황이 어느 정도 진정되면 실현될 전망이다. 또 남아 있는 한한령 해제는 오는 2022년 한중 수교 30주년과 북경올림픽 개최를 위해 양국이 협력하는 과정에서 서서히 풀릴 것이란 전망을 해볼 수 있다.  

한편, 중국 관영 글로벌 타임스는 이날 왕이 위원의 방한과 관련해 논평을 내고 “왕이 위원의 방한은 미국의 압력에도 깊어진 한중 관계를 반영한다”고 평가했다. 

이어 “중국의 반등 잠재력을 감안하면 코로나19 이후 중국 내 한국 기업의 투자는 종전 수준을 넘어설 것”이라고 봤다. 지난 26일 베이징에서 열린 한국상품홍보박람회를 언급하면서 “행사가 왕이 부장 방한 직후 열렸다. 코로나19에도 양국의 경제 및 무역 관계는 더 가까워졌다”고 의미 부여했다.

같은 날 일본 언론은 왕이 위원의 한국 방문이 한미일 협력 구도를 견제하는 움직임이라는 해석을 27일 내놓았다.

아사히신문은 올해 8월에 양제츠 중국 공산당 외교 담당 정치국원이 한국을 방문한 것에 있어 왕 외교부장까지 한국을 찾았다면서 중국 중요 인물이 같은 나라를 잇달아 방문하는 것은 이례적이라고 전제하고서 “미국의 동맹국인 한국을 끌어들이려는 노림수가 있는 것 같다”고 풀이했다.

니혼게이자이신문은 “(왕 외교부장의) 이번 일본·한국 방문은 한미일 연대에 쐐기를 박는 것이 목적”이라며 “미국 차기 정권이 발족하기 전에 경제면에서 연계가 깊은 일본과 한국을 끌어당겨 미국의 영향력을 약화하려는 의도가 있다”고 27일 보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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