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은 도움으로 국적항공사 통합 ‘첫걸음’…규모의경제로 포스트코로나 대비
항공사는 육해공 잇는 제4군 겸 수출역군, 국가 항공경쟁력 강화 기대
산업은행이 대한항공-아시아나항공 통합작업에 8000억원의 국민혈세를 투입하기로 결정하면서, ‘항공빅딜이 도마 위에 올랐다. ‘대마불사라는 비판이 나오는 가운데산은은 항공업이 네트워크로 먹고 사는 국가기간산업이라며 빅딜의 당위성을 강조하고 있다지난 2017년 2월 세계 7위의 국적선사 한진해운이 정부로부터 약 3000억원의 지원을 받지 못하고 파산하면서 수출입으로 먹고 사는 우리나라는 역대급 물류대란을 겪었다. 4년여 흐른 지금도 해운경쟁력은 원상회복되지 못하고 있다정부가 공공성을 띠는 망산업의 특성을 간과해 항공업도 무너뜨리면 안 된다는 지적이 나온다본지는 3회(㊤대한·아시아나 시험대…'원메가캐리어'가 수송보국 지름길 한진해운 파산 4년…세계시장서 외면받는 한국해운 로나에도 항공사 먹여살린 화물사업, 투자만이 살길)에 걸쳐 항공업과 해운업의 중요성을 살펴보고정책금융의 필요성을 짚어본다. [편집자주]

   
▲ 대한항공-아시아나항공 M&A 일러스트./사진=연합뉴스

[미디어펜=류준현 기자] #1. “항공빅딜은 국민들에게 비난받아도 해야 합니다. 코로나19로 전 세계 항공시장이 올스톱되면서 (공급부족으로) 항공운임이 역대급으로 폭등하고 있습니다. 양대 국적항공사가 서비스 경쟁을 이어간다면 수출업체와 물류업체가 혜택을 누릴 수 있지만 현실적으로 어렵다면 초대형 항공사로 재편돼야죠.”

#2. “물류는 네트워크 사업입니다. 제조업처럼 공장과 기계가 있다고 되는 게 아닙니다. (아시아나가 파산하면) 지정학적 요지를 자랑하는 인천공항은 당연히 허브 지위를 포기해야 합니다. 정책금융을 담당하는 실무자들이 물류의 가치를 깨닫고 적극적인 투자에 나서야 합니다.”

양대 국적항공사인 대한항공과 아시아나항공의 여객기와 화물기로 매일 수출화물을 실어 나르는 국내 물류업계는 하나같이 산업은행 주도의 항공빅딜을 ‘불가피한 선택’이라고 입을 모았다. 

물류업계는 항공사의 ‘고객’으로서 경쟁체제가 유지되면 운임협상력을 가질 수 있고, 다양한 운항스케줄을 누릴 수 있는 만큼 수출화물을 한층 수월하게 보낼 수 있다. 

하지만 이번 통합작업에 대해선 ‘국익’이 우선이라는 입장이다. 1국적항공사로 재편되면 운임인상이나 노선 정리 등 독과점에 따른 폐해가 우려되지만, 이런 우려는 훗날 걱정해야 할 일이라는 평가다. 

오히려 산은의 지원에 힘입어 양대 항공사가 '원메가캐리어'로 성장하면, 포스트코로나 시대에 세계시장을 선도할 수 있는 절호의 기회가 될 것이란 주장이다.

   
▲ 항공빅딜 거래구조도. 산업은행이 한진칼 주식을 인수하는 조건으로 8000억원을 투입한다. 이후 한진칼→대한항공→아시아나항공 순으로 재원이 투입될 예정이다./자료=KDB산업은행


혈세논란 항공빅딜…기간산업 가치 상기해야 

산업은행은 지난달 16일 양대 국적항공사의 통합을 골자로 하는 투자계약을 발표하며 빅딜에 대한 포문을 열었다. 

세부적으로 살펴보면, 출자과정은 한진칼→대한항공→아시아나항공 순이다. 우선 산은이 한진칼의 아시아나항공 인수를 위한 제3자 배정 유상증자에 참여해 한진칼에 5000억원을 수혈하고, 추가로 3000억원 규모의 교환사채를 인수해 자금을 제공한다. 

한진칼은 8000억원이 확보되면 아시아나항공을 인수하기 위한 2조5000억원 규모의 대한항공 유상증자에 참여한다. 이후 대한항공은 1조5000억원 규모의 아시아나항공 신주와 3000억원의 영구채를 인수하게 된다. 또 내년 하반기까지 통합을 매듭짓는 것을 목표로 아시아나항공에 1조원을 투입할 계획이다. 

한진칼과 경영권을 다투고 있는 KCGI가 서울중앙지법에 신주 발행 금지 가처분 신청을 했지만 법원이 지난 1일 이를 기각하면서, 10일 현재 1단계 작업인 산은의 한진칼 5000억원 유상증자(신주 700만주 보유)는 순조롭게 이뤄졌다. 새해에 산은은 교환사채를 인수해 3000억원을 추가 투입할 예정이다. 

산은은 항공업이 공급과잉에 따른 과당경쟁과 코로나19 사태 장기화로 산업 재편이 불가피했다고 밝혔다. 

세계적으로도 항공업계는 규모의 경제를 시현하기 위해 ‘1국가, 1국적항공사’ 체제로 합종연횡하고 있다. 영국의 브리티시에어웨이즈, 프랑스 에어프랑스, 독일 루프트한자, 호주 콴타스항공이 대표적이다. 

규모의 경제로 기대할 수 있는 수혜는 여객기는 좌석당 운항원가를, 화물기는 t(톤)당 운항원가를 크게 낮출 수 있다. 

우선 운항원가에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는 항공기리스비용을 꽤 낮출 수 있다. 덩치가 커지면 리스거래량이 크게 늘어나는 만큼, 통합사가 리스사로부터 항공기를 좀 더 저렴하게 임차할 수 있다. 

또 노선합리화로 항공수요에 맞춰 항공기를 효율적으로 운용할 수 있고, 지상조업사의 조업비용도 절감할 수 있다. 

이 외에도 한진그룹의 핵심사업 중 하나인 항공기 유지보수운영(MRO) 사업이 한층 성장하는 기회가 될 수 있다. 지금은 한진그룹이 대한항공과 진에어의 항공기엔진 및 핵심 장비를 자체 검수‧정비하는 데 그치지만, 통합이 이뤄지면 아시아나항공 에어부산 에어서울의 물량을 추가로 확보할 수 있어 MRO사업을 대형화할 수 있다. 

세계 최고 수준의 허브인 인천공항은 슬롯(항공기 이착륙 허용능력) 점유율을 확대할 수 있어, 통합항공사가 글로벌 항공사와 전략적 협력을 맺거나 해외 환승수요도 기대할 수 있다. 

이번 빅딜을 단편적으로 보면 양대 항공사만 직접적인 이익을 누리는 것 같지만, 항공 유관 사업이 수혜를 누리고 우리나라의 항공경쟁력을 드높일 수 있다는 점에서 ‘피할 수 없다면 받아들여야 한다’는 게 전문가들의 의견이다. 

   
▲ 2019~2020년 양대 항공사 정책자금 지원규모./자료=KDB산업은행


하지만 일각에서는 산은의 빅딜을 평가절하하고 있다. 정부가 ‘항공산업 경쟁력 제고’라는 명분을 내걸어 경영권 분쟁 중인 한진칼에게 좀비기업을 떠넘기는 게 일종의 ‘혈세낭비’ 아니냐는 지적이다. 

또 세계 항공시장을 놓고 보면 놀고 있는 항공기가 많고, 인천을 오가는 외항사가 많은 만큼 아시아나가 없어져도 우리나라에 큰 지장이 없을 것이라는 논리다. 

이 외에도 양대 국적항공사는 이번 통합 작업과 별도로 경영악화와 코로나19 등의 영향으로 국책은행으로부터 정책자금을 지원받았다. 

산업은행에 따르면 두 국적항공사가 지난해부터 자금을 수혈받은 규모는 4조8000억원으로, 산업은행 3조1000억원, 수출입은행 1조4000억원, 기간산업안정기금 3000억원 등이다. 

항공사별로 대한항공은 올해 1조2000억원의 자금을 수혈 받았는데, 영구전환사채로 3000억원의 재원을 확보했다. 아시아나항공은 지난해 산은과 수은의 공조로 1조6000억의 재원을 확보한 데 이어, 올해 2조원을 추가로 마련했다. 영구전환사채규모는 8000억원에 달한다. 

올해 3분기 기준 대한항공과 아시아나의 부채비율은 각각 737% 2432%로, 국내 주요 산업군에 견줘 재무건전성이 열악한 것도 혈세투입 논란을 부채질하고 있다.

이런 지적에 대해 물류업계는 재무성과에만 사로잡혀 국가기간산업의 특수성을 간과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한 물류기업 관계자는 “만약 산은이 한진칼을 지원하지 않고 아시아나를 정리한다면, 훗날 항공시장이 정상화됐을 때 외항사들이 회심의 미소를 지을 것”이라며 “수출의존도가 전체 경제의 70%에 육박하는 나라에서 국적사 하나가 사라지면 기업들의 수출경쟁력도 필연적으로 악화될 것”이라고 지적했다. 물류경쟁력 약화가 장기적으로 국가 수출경쟁력에도 악영향을 줄 수밖에 없다는 분석이다. 

또 다른 관계자는 “항공사와 해운사는 민간기업이기 전에 육군‧해군‧공군을 잇는 제4군으로서 국가위기상황 시 국민과 군수물자 등을 수송할 수 있는 유일한 수단이라는 걸 명심해야 한다”고 말했다.

   
▲ 인천국제공항 주기장에 세워진 대한항공·아시아나항공 여객기들./사진=연합뉴스


산은, 고강도 책임경영 지시…긴 안목으로 성과 평가해야

‘대마불사’ ‘혈세투입’ 등의 논란이 있는 만큼, 산은은 인수합병 후 통합항공사가 경영성과 기준에 미흡하면 경영진에게 담보주식을 처분하거나 퇴진을 요구할 계획이다. 

이를 위해 합병 후 통합(PMI) 계획을 수립하고 이행하기 위한 경영평가위원회를 구성한다. 경평위는 PMI 이행실적과 경영목표 달성여부 등을 토대로 성과를 평가하는데, PMI에서 경영평가 등급이 ‘E등급’이거나 2년 연속 ‘D등급’을 받으면 경영진 교체나 해임을 요구할 것으로 알려졌다. 산은은 우선 경평위를 구성한 후 평가기준이 정해지는 대로 실사에 나설 예정이다. 

산은 관계자는 “항공은 기본 네트워크 인프라가 사라지면 없어지는 산업이다. 파급효과가 워낙 크기 때문에 산은 차원에서 기간산업의 특수성을 인지하고 있다”며 “대한항공이 아시아나를 인수하기 위해 (산은이) 지원하는 상황인 만큼, PMI작업도 그에 따라 진행될 예정”이라고 밝혔다. 

다만 산은의 이런 고강도 기준에 대해 우려의 시각도 있다. 익명을 요구한 학계 한 관계자는 “경영이라는 게 1~2년 만에 쉽게 성과가 나오는 것도 아니고, 항공기 리스는 장기계약을 맺기 때문에 단기간에 획기적인 경영성과를 기대해선 안 된다”며 “코로나19 사태에 따라 성패가 좌우될 수 있는 만큼, 3년 이상의 장기적인 안목으로 경영진을 객관적으로 평가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한 물류기업 관계자는 “산은이 정치논리에 휩쓸리지 말고, 현장을 좀 들여다본 후 원칙에 걸맞은 통합작업을 펼칠 필요가 있다”며 “지금은 코로나 여파로 여객이 사실상 제로지만 코로나가 진정되면 통합항공사가 ‘원메가캐리어’의 힘을 발휘할 것”이라고 말했다.

[미디어펜=류준현 기자] ▶다른기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