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여정 8일 담화 “앞뒤 계산 없는 망언, 남북관계에 냉기 더할 것”
외교장관이 국제무대서 김정은 코로나 대응 성과 공개 부인에 반발
“비건 방한일 맞춰 메시지 발신으로 한미 겨냥 신중한 언행 경고”
바이든 행정부 대북 메시지 따라 대남 위협 고조 신호탄 될 수도
[미디어펜=김소정 기자]김여정 북한 노동당 제1부부장이 6개월여만인 8일 대남 비난 담화를 내며 긴 침묵을 깼다. 지난 6월 네 차례의 담화를 내면서 남북관계 파국을 언급한 이후 처음이다.

이번 담화는 북한의 성공적인 코로나19 대응과 관련해 의구심을 드러낸 강경화 외교부 장관에 대한 비난에 맞춰졌다. 최고 존엄인 김정은 국무위원장의 치적을 깎아내렸다는 점에서 김 1부부장이 발끈한 것은 예상되는 반응이다. 

하지만 강 장관 발언 사흘 뒤 스티븐 비건 미국 국무부 부장관 겸 대북특별대표의 방한일에 맞춰 나온 것이어서 더욱 눈길을 끌었다. 메시지가 간결하고 험한 표현을 자제하면서도 긴장감을 높이는 발언을 담아 한미 양국을 동시에 겨냥하고 있다는 분석도 나온다. 

김 1부부장은 강경화 장관의 발언에 대해 “앞뒤 계산도 없이 망언을 쏟는 것을 보니 북남관계에 더욱 스산한 랭기를 더하고 싶은 모양이다”라고 경고했다. 

강 장관은 지난 5일(현지시간) 국제전략문제연구소(IISS) 주최 바레인 ‘마나마 대화’에서 IISS측 패널의 남북 간 코로나 협력 상황을 묻는 말에 “북한이 우리 방역 지원 제안에 호응을 잘 하지 않고 있다”며 “코로나19 도전이 사실상 ‘북한을 보다 북한답게’ 만들고 있다고 생각한다”라고 말해 청중의 폭소를 자아냈다.

김 1부부장은 또 “그 속심 빤히 들여다보인다”면서 “정확히 들었으니 우리는 두고두고 기억할 것이고, 아마도 정확히 계산되어야 할 것이다”라고 말했다.

이번 담화 발표로 김 1부부장이 여전히 대남‧대미 정책을 총괄하고 있으며, 한국과 미국의 동향을 실시간으로 예의주시하고 하고 있는 것도 드러났다. 그가 과거 대남 메시지에서 보여왔던 원색적인 비난이나 폭언은 없지만 정세 전환기에 신중하고 전략적인 행동을 요구한 것으로 볼 수 있다.

   
▲ 북한 김정은 국무위원장의 여동생 김여정 노동당 제1부부장./사진=연합뉴스

양무진 북한대학원대학교 교수는 “북한이 코로나19 대응, 80일 전투, 8차 당대회, 미국의 정권교체 등을 앞둔 민감한 시기에 자신들의 체제 훼손과 존엄 모독에 대해 결코 좌시하지 않겠다는 의지의 메시지를 드러낸 것”이라고 말했다. 

양 교수는 “행동 예고보다 경고에 무게를 둔 듯하다”면서 “특히 강 장관의 5일 발언을 8일 담화로 경고한 것은 담화 발표 여부에 대한 내부 논의 시간을 가진 듯하다. 비건의 방한에 맞춘 것은 대북 문제에 대해 한미 양측이 언행에 신중을 기해 달라는 메세지를 담고 있다”고 덧붙였다. 

김 1부부장의 이번 담화로 남한 당국의 남북 간 보건의료협력 메시지에 북한이 호응할 가능성이 더욱 낮아졌다는 평가도 나왔다. 

임을출 경남대 극동문제연구소 교수는 “강 장관의 발언은 ‘코로나19 확진자 제로’라는 북한 최고지도자의 최대 성과를 정면에서 부인하는 모양새가 됐다”며 “북한의 추가 반발을 불러올 것으로 예상되고, 북한에 대한 백신지원을 추진하고 있는 범정부적인 움직임에도 부정적 영향을 미칠 가능성이 크다”고 말했다.

한편, 김 1부부장은 지난 3월 청와대를 향해 “저능하다”라고 비하한 데 이어, 지난 6월엔 4차례의 담화를 통해 남북관계 파국을 언급했다. 이어 개성 남북공동연락사무소 폭파와 군사행동 예고로 긴장 수위를 최고조로 끌어올렸다. 하지만 김 위원장의 군사행동유예 언급 이후 175일 동안 침묵해왔다. 

김 1부부장의 이번 담화는 미국에 어떤 입장을 내고 싶을 때 남한을 먼저 공격해 압박하는 기존 행동 틀에서 벗어나지 않은 것이다. 미국 대선으로 정권 교체가 확정된 이후에도 긴 침묵을 이어가고 있던 북한에 꼭 필요한 공격 포인트를 준 셈이다. 

따라서 미국의 조 바이든 행정부가 대북정책 메시지를 어떻게 관리하느냐에 따라 대남 위협을 고조시킬 신호탄이 될 수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임을출 교수는 “대북전단 살포 금지법 입법 등 남북관계 개선을 위한 정부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강 장관의 다소 신중하지 못한 발언은 결과적으로 남북관계의 경색을 더욱 심화시킬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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