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를 나무라 주십시오"

대한항공 회장으로, 한 여식의 아버지로 조양호 회장은 국민을 향해 고개를 숙였다. 조현아 전 부사장의 '땅콩회항'으로 국민들의 공분을 샀을때, 조 회장은 자식을 웃자라게 만든 책임을 통감했다.

   
▲ 조현아 전 부사장의 땅콩회항 사건과 관련해 부친인 조양호(왼쪽) 한진그룹 회장이 지난 12일 오후 서울 강서구 공항동 대한항공 본사 복도에서 기자회견을 갖고 고개 숙여 사과하고 있다. 오른쪽은 국토교통부 조사를 받기 위해 고개숙여 입장하는 조 전 부사장./뉴시스
그는 지난 12일 서울 강서구 공항동 대한항공 본사에서 대국민 사과를 통해 "대한항공 회장으로서 또 조현아의 애비로서 국민 여러분의 너그러운 용서를 다시 한번 바랍니다"고 읍참마속의 심정을 전했다.

아버지로서 자녀의 잘못으로 빚어진 사태에 대해 사과하는 심정이야 오죽했을까. 자식이 잘되길 바라는 마음은 세상 모든 부모의 공통점일텐데.

조 회장은 이같은 일이 발생한 것은 우선 자식을 잘못 키웠다는 점을 자책했다.  물론 잘못된 점만 비난해야 함에도 지난 일까지 싸잡아 재벌세습을 비난하는 것은 마녀사냥에 가깝지만 대한항공이 본인 가족들의 항공사가 아닌 국민의 항공사인 점을 깊이 깨달은 반성이다.  특히 기업들의 노블레스 오블리주 정신이 요구되는 이때 자식의 '겸손의 미덕'이 아쉬었다는 점을 뉘우치는 순간이었다.

더불어 조 회장은 권위적이고 폐쇄적인 조직문화에서 비롯됐다는 점을 깨달았다.

언론에 알려진바에 따르면, 조 회장은 지난 14일 밤 대한항공 본사에서 지창훈 대한항공 사장, 신무철 그룹 커뮤니케이션팀 전무 등과 함께 조현아 전 부사장의 '땅콩회항'을 두고 논의를 하면서 작심발언을 한 것으로 알려졌다.

조 회장은 그 자리에 모인 임원들을 향해 "나는 24시간 일하는 사람이다. 한밤중이라도 나를 깨우라"는 말은 던졌다.  이 말 속에는 많은 의미가 담겨졌다.

우선 회장의 딸이자 부사장이던 조현아의 항공기 회항 사건이 발생했는데도 대한항공 내부 조직에서는 에둘러 사건을 덮으려고 했을뿐 조 회장에게 보고조차 하지 않았다. 사측은 회장의 딸로서 회사의 넘버 3라는 점에서 조용한 침묵은 당연한 도리라고 오판했다. 

'땅콩 회항' 사건이 발생했을 당시 조 회장은 국제올림픽위원회(IOC) 총회에 참석차 해외에 머물렀다. 조 회장은 9일 오후에 귀국했다. 대한항공측은 조 전 부회장과 사무장간 단순한 갈등 차원으로 치부해 조 회장에게 보고하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더욱 회항 사건이 세상 밖으로 알려지자 어설픈 대응으로 국민들의 분노를 더욱 키우고 말았다.

조 회장은 이 점을 지적한 것이다. 늦은 시간이라도 보고하라는 뜻이 아니다.  눈가리고 아웅식의 일처리를 해서는 안된다는 점을 꼬집었다. 사건의 심각성을 파악하지 못한채 조 전 부사장의 책임을 회피하려는 사측의 대응에 소리없는 채찍을 가한 셈이다.

또 조 회장은 소통이 없는 조직문화를 바꿔보자는 심정으로 조직 내 소통을 강조했다. 그는 "조직 내 소통을 더욱 활발하게 만들어 유연한 조직으로 거듭날 수 있도록 노력하자"고 강조했다. 이 자리에 참석했던 임원에 말을 빌어보면, 이번 사건을 통해 그룹 내 조직문화를 효율적이고 선진적인 문화로 탈바꿈해야 한다는 조 회장의 강한 의지를 확인한 자리였다고 전했다.

'땅콩회항' 사건으로 대한항공 내부는 침통한 분위기다. 국내 뿐만 아니라 외국에서도 조현아 '땅콩'이라며 조롱거리로 전락하고 말았다. 그간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항공사라는 대내외 이미지는 날개없이 추락했다.

대한항공 주가는 땅콩회항에 단단히 발목을 잡혔다. 유가하락으로 수혜를 입을 것이란 호재에도 오너리스크가 주가를 끌어내리고 있다.

조 회장도 이 점을 익히 알고 있다. 어수선한 분위기를 다잡기 위해서라도 따끔한 지적도 필요했다. 그는 "이번 사태가 회사 위기로 이어지면 안된다. 정신 바짝 차려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가 임직원에게 던진 메세지에서 반성과 개선의지를 확인하는 계기였다. 조 회장의 잘못은 자식교육을 못했다는 점이지만 이번 사건 하나로 그를 평가할 수 없다.

웃자란 식물은 바람에 잘 넘어지고 열매가 잘 열리지 않는다는 자연의 철칙이 있다.  권위적이고 폐쇄적인 조직문화로 앞으로 더 나아가지 못한 현실에 통렬한 반성을 통해 극복하겠다는 자성을 진지하게 들어 줄 수 있는 성숙한 문화가 필요하다.

합리적인 DNA를 조직문화에 심어 조직에 활력을 불어넣을 수 있는 새로운 변화를  이끌수 있는 조 회장의 리더십을 기다려본다. [미디어펜=이서영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