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득권 지키기 위한 방편…무기력 규개위 시스템 정비해야

   
▲ 김종석 홍익대 교수
정부 예산이나 정부 조직은 계속 늘어나는 속성을 가지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어느 나라든지 예산이나 조직 인력을 관리하는 별도의 기구를 정부 내에 만들어 통제하고 있다. 우리나라도 어느 장관이나 기관장도 마음대로 예산을 늘리고 조직과 인력을 늘리지 못하도록 예산실과 행정자치부에서 통제하고 있다.

그런데 정부에 그냥 놓아두면 계속 늘어나는 속성을 가진 것이 또 하나 있다. 정부규제가 그것이다. 더구나 정부규제는 그 규제를 담당하는 부서가 해당 분야를 가장 잘 알 것이라는 전제 하에 규제의 절차, 기준의 설정은 물론 집행의 모든 과정을 규제담당부서가 담당하고 있다. 사실상 규제 담당 부서가 규제에 관해 백지위임을 받은 것이나 마찬가지다.

그 결과 대부분 규제의 절차와 집행이 집행자의 관점에서 만들어지고 이루어진다. 이것이 우리나라에서 사전규제, 원칙금지 규제가 만연하고, 고비용 과잉규제가 발생하는 배경이다.

아무리 간단한 규제 하나라도 그 규제가 적용되는 국민은 이를 지키기 위해 시간과 돈을 들여야 한다. 따라서 정부규제는 ‘감춰진 세금’이다. 국민이 현금으로 내는 세금은 눈에 보이는 부담이기 때문에 징세의 기준과 절차가 법에 의해 엄격하게 통제되지만, 규제라는 안보이는 세금은 규제를 전담하는 부서가 사실상 백지위임을 받았기 때문에 규제의 부과와 집행과정에서 견제를 거의 받지 않는다. 마치 국세청이 세율과 세목을 자유롭게 정하는 것과 마찬가지다.

그렇기 때문에 많은 선진국들이 정부 예산이나 정부 조직 인력과 같이 정부규제를 통제하고 관리하는 전담조직을 정부 내에 만들어 규제의 총량과 품질을 관리하고 있다.

우리나라도 1998년부터 대통령 직속의 규제개혁위원회를 만들어 이런 기능을 수행해왔다. 모든 정부 부서는 규제를 신설 강화할 때에 규제개혁위원회의 사전 심의를 받도록 함으로써 정부의 어느 부서도 마음대로 규제를 만들고 강화하지 못하도록 법률로 규정해 놓았다. 특히 규제개혁위원의 3분의 2를 민간위원으로 임명한 것은 정부규제를 민간의 관점에서 심의하라는 법정신을 반영한 것이다.

규제개혁위원회가 이런 권능을 가지게 된 배경은 1990년대 말까지 추진된 규제개혁이 주로 한시적 자문위원회를 통해 민간이 건의한 규제개혁안을 규제를 담당하는 공무원이 수용여부를 결정하는 소위 ‘상향식 읍소형’ 규제개혁이었기 때문에 한계를 가질 수밖에 없었던 시행착오 경험 때문이었다.

법적 근거와 권능을 가진 규제개혁위원회의 설치를 통해 규제개혁이 일과성이거나 민관의 줄다리기가 아니라 예산실의 예산관리와 같이 정부 상설기능의 일부가 된 것이다.

특히 1998년 김대중 정부가 취임 일 년만에 달성한 규제 총량의 50% 감축은 규제개혁위원회가 이런 구성과 권능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에 가능했었다. 규제총량의 획기적인 축소는 당시까지는 국내외적으로 선례가 없는 일이었기 때문에 이후 세계은행을 비롯한 국제기구에서 이를 “규제 길로틴”으로 부르게 되었고, 한국의 독특한 규제개혁 시스템과 성과는 세계은행이나 OECD가 다른 개도국에 권장하는 모범사례가 되었다.

특히 규제 공무원들이 규제개혁위원회에 자신들이 가지고 있는 규제의 내용과 수단에 대한 적정성을 입증하도록 한 것은 매우 독창적인 모델로서 규제 길로틴을 성공하게 만든 가장 핵심적인 요소로 국제적인 주목을 받은 바 있다. 그러나 한국의 규제개혁은 여전히 갈 길이 멀다. 규제개혁위원회가 제 기능을 다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규제를 통해 기득권을 유지하고자 하는 이익집단과 공무원 조직의 저항, 그리고 규제개혁위원회를 무력화시키고자 하는 정부 안팍의 집요한 시도 때문이다. 물론 규제개혁위원회 소속 공무원들의 인력부족과 전문성 부족도 한 요인이다. 일부 정부 부처는 규제개혁위원회의 사전심의를 피하기 위해 의원 청부입법으로 우회하기도 한다. 최근 문제가 된 불량 규제의 상당수는 의원입법을 통해 도입된 규제들이다.

규제개혁이 소기의 성과를 내기 위해서는 그동안 무력화된 규제개혁 시스템을 정비해야만 한다. 정부 여당은 규제개혁을 보다 효과적으로 추진하기 위해 규제총량제와 규제개혁위원회 강화를 골자로 한 규제개혁법안을 제출해 놓고 있다. 특히 국회를 포함한 헌법기관과 지방자치단체도 규제심사를 하도록 한 것은 큰 의미가 있다.

일부 야당의원들은 이에 대응하여 행정규제기본법 개정안을 제출해 놓고 있는데, 규제개혁위원회를 자문기구로 만들어 기능을 축소하는 내용을 골자로 하고 있다. 그동안 규제개혁이 지지부진했던 것을 고려할 때, 규제개혁위원회를 무력화시켜 과연 어떤 공익이 보호되는지, 누가 이득을 보게 이를 누가 반길지 잘 생각해야 할 것이다. /김종석 홍익대 교수, 바른사회시민회의 공동대표

(이 글은 한국경제신문에 게재된 것을 수정, 보완한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