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 카운터파트 권한 없어 시간 낭비” 톱다운 방식 한계 인정
“북 핵폐기 목표 및 비핵화 로드맵 합의 거부…배운 건 있어”
북한인권 문제 첫 제기 “바이든 행정부에 모든 경험‧지혜 공유”
[미디어펜=김소정 기자]미국의 정권 교체를 앞두고 현직에서 마지막으로 한국을 방문한 스티븐 비건 미국 국무부 부장관 겸 대북특별대표가 4박5일 정부 고위직 인사를 두루 면담하는 ‘고별 행보’를 마치고 12일 출국했다. 

비건 부장관이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에서 2년 4개월간 북미대화와 한반도 평화정착을 위해 노력한 것에 대해 우리정부의 감사를 전하고, 동시에 차기 조 바이든 행정부에 한미 간 긴밀하게 조율해온 현안을 잘 전달해주길 바라는 차원에서 이뤄진 방한이다.  

비건 부장관은 강경화 외교부장관과 이인영 통일부 장관, 서훈 청와대 국가안보실장, 박지원 국가정보원장, 이도훈 외교부 한반도 평화교섭본부장 등을 두루 만났으며, 특히 최종건 외교부 1차관이 비건 부장관의 단골식당 서울 종로구 ‘닭한마리’을 통째로 빌려 마련한 고별식에도 참석했다.

특히 비건 부장관은 싱크탱크 아산정책연구원에서 특별강연을 열어 지난 북미대화에 대한 소회를 솔직하게 밝히는 한편, 사실상 북한에 대한 마지막 메시지를 남겼다. 거기에는 북한 체제를 바라보는 시각과 북측 협상 카운터파트들의 역할을 평가하는 대목이 포함돼 눈길을 끌었다.

그는 먼저 트럼프 행정부의 북미대화의 취지 및 성과에 대해 “70년간 적대관계가 미래의 적대관계로 이어질 필요가 없다는 트럼프 대통령의 결단에 따른 북미관계의 완전한 재창조에 대한 시도”였다고 했다. 

또 정상회담이란 빅딜 방식을 고수한 것에 대해 “70년간 적대관계를 점진적 또는 소규모 주고받기만으로는 할 수 없다는 트럼프 대통령의 시각이 반영됐다”며 “(하지만) 이 비전은 과감한 것인 만큼 많은 저항을 받았다”고 설명했다.

그는 2018년 6.12 싱가포르 1차 북미정상회담에 대해 “사상 최초 북미 정상간 합의”였다고 의미 부여했고, 2019년 2월 하노이 2차 북미정상회담에 대해선 “합의를 못 이뤘지만 완전한 실패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양측이 서로에 대해 배울 기회였다”고 밝혔다.

   
▲ 스티브 비건 미 국무부 부장관 겸 대북특별대표가 최종건 외교부 1차관(왼쪽)과 10일 밤 서울 종로구 ‘닭한마리 식당’에서 마주 앉아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2020.12.10. /사진=외교부 제공

그러면서 그는 “지난 2년여 기간 동안 실망한 적이 있다고 묻는다면, 솔직히 그렇다. 그들은(북측 카운터파트) 무수한 기회를 잡는 대신 너무 자주 협상의 장애물을 찾는데 주력했다”고 말해 북측 카운터파트와 협상하기 어려웠던 점을 털어놓았다.

그는 “정상회담을 위해선 실무협상이 중요하다. 지도자들이 최종 합의를 타결하기 위해선 그 전에 생산해내야 하는 것이 있어야 한다”면서 “(그런데) 우리는 그것을 할 수 없었다. 북측 카운터파트가 권한을 좀 더 가져야 협상이 이뤄질 수 있다고 생각한다”고 밝혔다.

아울러 “또 배운 것은 북한을 사람으로 볼 필요가 있다는 점이다. 여러 제약조건들이 있었지만 (북측도) 똑같은 사람이라는 것”이라며 “개인적으로 남는 기억 중 하나가 카운트파트들과 가족 이야기를 할 때 좋은 기억으로 남아 있다. 진정성이 있었다. 그들을 위해 인간적인 교류를 해야한다”고 덧붙였다.

이는 톱다운 방식의 북미대화에 대한 한계점을 솔직히 지적한 것이다. 북한 체제의 특성상 김정은 위원장 외에는 결정 권한을 갖지 못해 정상 차원에서 담판을 노렸지만 빅딜을 쉽지 않았다는 점을 인정한 것이다.

   
▲ 이인영 통일부 장관이 10일 스티븐 비건 미국 국무부 부장관 겸 대북특별대표와 조찬 만남에 앞서 인사를 나누고 있다.2020.12.10./사진=통일부 제공

빅딜이 무산된 것은 북한이 핵폐기 목표와 로드맵 합의를 거부했기 때문이라는 사실도 이번에 밝혀졌다.

비건 부장관은 “북측 인사는 체제보장에 대해 깊이 우려한다고 밝혔지만 방법은 여러가지가 있다”며 “조약으로 완전하게 종전선언하고, 남북이 각각 상대방의 군사훈련을 참관하고, 군사 교류도 하며, 심지어 각각의 수도에 외교연락사무소를 설치하는 것으로 궁극적인 관계 정상화를 이룰 수 있다”고 말했다. 이마 북측 카운터파트에게도 무수히 반복했을 발언일 것이다.  

그는 이어 “북측 카운터파트는 경제 개발과 제재 완화에 관심이 있었다. 우리는 투자를 유치하고, 인프라를 개발하며, 교역 추진을 위한 최선의 방법을 모색할 수 있다고 말했다”며 “하지만 (비핵화) 로드맵과 목표 지점에 대한 합의를 이뤄야 한다. 북한의 진정한 목표가 무엇인지 의문스러웠지만 (그 해답은) 그들로부터 나오지 않았다”는 말도 했다.

비건 부장관은 이번에 처음으로 북한인권 문제도 들고 나왔다. 그는 “우리는 북한 주민들의 삶을 개선시키기 위한 방법을 모색했다. 그들도 (남한과 같은) 동포로서 번영을 누리길 바랐다”며 “싱가포르 합의 각 항목에 대한 진전이 이뤄지면 인권 문제 등 가장 민감한 문제도 다루길 바랐다”고 밝혔다.

그는 북한에서 수감돼 고문을 받다 미국으로 귀국 직후 사망한 오토 웜비어와 일본인으로 북에 납치돼 숨진 것으로 알려진 요코타 메구미를 언급하기도 했다. 비건 부장관은 “다른 어떤 가족들도 웜비어와 요코타 가족들이 겪은 일을 겪게 해서는 안 된다는 것을 보여준다”며 “이것 역시 바뀔 수 있고 바뀌어야 한다. 우리의 힘으로 함께 협력해서 한반도에서 새로운 역사의 장을 만들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비건 부장관은 “북한은 내년 1월 노동당 제8차 당대회 등 중요한 외교 이벤트들을 앞두고 있다”며 “그때까지 북한이 외교 재개의 길을 열 것을 강력히 촉구한다”고 했다.

그러면서 “새로운 (조 바이든 행정부) 팀에 우리의 모든 경험과 제안, 어렵게 얻은 지혜들을 공유할 것이다. 새로운 정부에 ‘전쟁은 끝났고, 평화를 위한 시간이 왔으며, 우리가 성공하려면 미국, 한국, 북한이 함께 노력해야 한다는 점을 전달할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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