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계 "현행 산안법 외 처벌법 산적한 상황서 과잉입법" 반발
이병태 교수 "이해상충 시 외국선 돈으로 보상…왜 사법처리에 목 매나"
현장서도 "근로자들 안전 규정 안 지키는데 기업인만 옭아매려는 악법"
   
▲ 신승관 한국무역협회 전무·서승원 중소기업중앙회 상근부회장·우태희 대한상공회의소 상근부회장·김용근 부회장·권태신 전국경제인연합회 상근부회장·반원익 한국중견기업연합회 상근부회장·정병윤 대한건설협회 상근부회장이 16일 서울 중구 세종대로 프레스센터 18층 외신기자클럽에서 중대재해기업처벌법안 입법 추진에 대한 경제계 공동 입장문을 발표하는 모습./사진=미디어펜


[미디어펜=박규빈 기자]중대재해기업처벌법안(이하 중대재해법) 입법이 추진되고 있는 가운데 경제단체들이 공동 성명을 내고 "기업과 경영인을 옭아매 사실상 사업을 접게 만드는 꼴"이라며 강력 반발하고 나섰다.

전국경제인연합회·한국무역협회 등 30개 경제단체·업종별 협회는 16일 한국프레스센터 외신기자클럽에서 공동 기자회견을 열고 중대재해법 입법 반대 목소리를 냈다.

김용근 한국경영자총협회 상근부회장은 재계를 대표해 "중대재해법안 입법이 이뤄지면 헌법·형법을 크게 위배하면서까지 경영 책임자와 원청에 대해서 필연적으로 가혹한 중벌을 부과하게 될 것"이라며 "입법추진은 중단돼야 한다"고 운을 뗐다.

재계는 중대재해법안을 모든 사망사고 결과에 대해 인과관계 증명도 없이 필연적으로 경영책임자와 원청에게 책임과 중벌을 부과하는 법으로 보고 있다. 관리 범위를 벗어난 불가능한 것에 책임을 묻는 만큼 같은 곳에 있다는 이유만으로 공동연대 처벌을 가하는 것이기 때문에 '운수소관'의 운명이며 사실상 연좌제라는 게 재계 주장이다. 대기업 대표·이사 외에도 중소·중견기업의 오너들이 모두 직접적인 대상이 된다는 분석이다.

유해·위험방지라는 의무 범위도 추상적·포괄적이라는 비판도 나왔다. 중대재해법안은 과실범에 대해 2~5년 이상을 하한형으로 징역형을 부과하고 3~5배 이상의 징벌적 손해배상책임까지 부과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현행 산업안전보건법이 징역 2~5년 이상 또는 5000만원~5억원 이상의 벌금을 하한선으로 정하고 상한선을 10억원 이하 벌금으로 규정하는 것에 비해 무겁다는 지적이다.

때문에 재계는 중대재해법안이 헌법상 '과잉금지 원칙'과 형법상 '책임주의 원칙'·'명확성의 원칙'에도 정면으로 위배된다는 점을 꼽고 있다.

재계는 "정부와 국회는 영국의 법인과실치사법을 벤치마킹했다고 하나 여기에는 없는 형사처벌까지 담고 있는 게 중대재해법안"이라며 "기업에 대한 벌금 외에 △경영책임자 개인처벌 △영업정지·작업중지 등 행정제재 △징벌적 손해배상이라는 4중 제재를 부과하고 있어 그야말로 세계 최고수준의 처벌법안이 되고 있다"고 토로했다.

전삼현 숭실대학교 법학과 교수는 "외국에는 중대재해법과 같은 무소불위의 처벌법이 없다"며 "이와 같은 과잉 입법으로 사회적 비용도 늘어날 것"이라고 비판의 날을 세웠다.

정부 차원의 산업안전정책의 기조를 현행 '사후처벌 위주'에서 '사전예방 정책 중심'으로 전환하는 것이 보다 시급한 국가적 과제라는 제안도 나왔다.

   
▲ 국내외 산업안전보건법상 처벌수준 비교/자료=중대재해기업처벌법안 입법추진 관련 재계 공동 참고자료

현행 산안법상 사망재해 발생 시 처벌수위는 이미 세계 최고 수준에 있으나 우리보다 처벌 수위가 낮은 미국·독일·일본 등의 선진 산업국들에 비해 사고 사망자 감소효과는 더 낮다는 게 재계 주장이다. 

재계는 사망사고 감소 효과를 실질적으로 높여나가기 위해서는 처벌 강화보다 다른 나라보다 매우 미흡한 수준에 있는 산재예방정책을 대폭 강화해 나가야 한다는 입장이다.

이와 관련, 673개의 정부의 산업안전보건규칙도 업종·산업현장 특성에 적합하도록 전면 재정비해야 하며 경영책임자-현장안전책임자 간, 원청-하청 간 역할과 관리범위를 명확히 규정해 적정한 책임소재를 정립하는 것도 우선과제라는 비판도 제기된다.

산업안전행정의 전문성을 높이기 위해 산업안전보건청 설립 방안과 근로감독관이 아닌 별도의 산업안전전문요원 운영방안을 적극 검토해야 한다는 안이다. 이 외에도 민간컨설팅·민간교육기관을 강화해 범국가적 안전보건 인프라도 구축해야 한다는 게 재계 복안이다. 

사고조사 결과도 공개하지 않은 채 정부 당국이 규제와 처벌 위주 산업안전정책을 고수한다는 비판도 나온다. 재계는 인력충원·시설개선·신기술 도입 등 안전관리에 적극 투자하는 기업에 대해 세제혜택과 자금지원 등 인센티브를 대폭 확대하고, 민관 협동 대응체계를 강화해야 한다고 입을 모은다.

중대재해법안은 모델이 된 영국 법인과실치사법을 모델로 한다. 13년에 걸쳐 심층적인 논의·평가를 통해서 제정된 영국의 해당 법은 사업주 개인에 대한 처벌 규정은 없고 법인에 대한 벌금만 적용하는 것으로 구성돼 있다.

이병태 카이스트 경영공학부 교수는 "경제 분야에서 이해가 충돌할 경우 돈으로 보상하는 게 맞는 것"이라며 "국내에서는 이상하리만치 처벌에 집착해 기업인들이 협박에 시달린다"고 비판했다.

이 교수는 "외국의 징벌적 배상제도 역시 돈으로 책임을 물게 하는 것"이라며 "중대재해법이 만들어지면 한국은 자본이 외면하는 나라가 돼 어떤 경제 정책도 먹히지 않게 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그는 "안 그래도 변호사들이 공급 과잉인 상황에서 기획 소송 건수도 늘어나 기업인 괴롭히기는 더욱 심화될 것"이라고 점쳤다.

중소기업계는 산업안전에 대한 인력과 투자에 한계가 있는 만큼 처벌위험에 상시 노출돼 이에 따른 우려와 부담감을 떨칠 수 없을 것이라는 불안감을 표출하고 있다.

서승원 중소기업중앙회 부회장은 "대기업과 달리 중소기업은 99%가 오너가 대표이사를 겸임한다"며 "사고 발생 시 수습해야 하는 오너가 구속되면 회사가 문을 닫게 된다는 애로사항이 따른다"고 읍소했다. 서 부회장은 "중소기업은 법을 안 지키는 게 아니라 못 지키는 것"이라며 "수천개에 달하는 처벌 규정을 대기업도 못 지키는데 우리는 오죽하겠느냐"고도 했다.

재계는 사망사고 발생 시 형량을 가중시킬 수 있는 개정 산안법이 금년부터 적용돼 시행 초기인 점을 감안해 향후 몇 년간은 해당 법에 따른 평가를 거친 후에 중대재해법안 제정 필요성 여부를 따지는 것이 합당하다고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우태희 대한상공회의소 상근부회장은 "산안법 등 비슷한 규제법이 버젓이 존재하는데 중대재해법안이 논의되는 것은 '입법 만능주의'"라고 규탄했다.

권태신 전국경제인연합회 부회장은 "사망사고 발생시 경영자를 7년형에 처하도록 한 개정 산안법이 1월부터 시행되고 있다"며 "개념도 모호한 중대재해법 입법은 신경 쓸 요소가 산적한 기업인들로 하여금 투자 축소와 해외 이전을 고려하게 만든다"고 일갈했다.

반원익 한국중견기업연합회 부회장은 "전장의 지휘관을 감옥에 넣으면 누가 부대를 이끌겠느냐"며 "경제 성장의 주역인 기업의 활동을 존중하는 사회제도가 마련돼야 한다"고 피력했다.

현장에서도 처벌일변도 법안이 더 생겨날 수 있다는 소식에 부정적인 반응을 보이고 있다.

건설현장 안전 감시단에 몸담았던 전 모씨는 "건설현장 경력이 10~20년씩 쌓인 고참 근로자들은 관리자들이 따라다니면서 안전모와 벨트 챙기라고 강조해야 하는 실정"이라고 말한다.

전 씨는 "이와 같은 개인 과실로 인해 사망 사고가 나면 현장소장 등 책임자들은 형사 입건되는 판"이라며 "중대재해법안 제정은 그저 기업인들을 괴롭히는 것에 불과하다"고 평가절하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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