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번 선택했으면 맞든 안 맞듯 자신의 분신처럼 만들어야

국내 최고의 골프칼럼니스트인 방민준 전 한국일보 논설실장의 맛깔스럽고 동양적 선(禪)철학이 담긴 칼럼을 독자들에게 배달합니다. 칼럼에 개재된 수묵화나 수채화는 필자가 직접 그린 것들로 칼럼의 운치를 더해줍니다. 주1회 선보이는 <방민준의 골프탐험>을 통해 골프의 진수와 바람직한 마음가짐, 선의 경지를 터득하기 바랍니다. [편집자주]

방민준의 골프탐험(36)- 골프클럽은 내 신체의 일부

   
▲ 방민준 골프칼럼니스트
골퍼에게 골프클럽은 육신의 일부다. 적어도 골프장에서만은 골프클럽은 피만 흐르지 않을 뿐 손으로 이어지는 신체의 일부나 마찬가지다.
 

아직도 그런 느낌을 느껴보지 못했다면 골프의 참 맛에 이르지 못했다고 보면 틀림없다. 매일이다시피 연습장에 가서 클럽을 휘두르고 집에서도 클럽을 만지작거리는 것도 바로 클럽을 육화(肉化)시키기 위한 것이다.

클럽이 신체의 일부라는 것은 곧 부단히 애정을 쏟고 관심을 기울이고 다소 미흡한 구석이 있더라도 참아내고 정을 붙여야 한다는 뜻이다.

그런 면에서 보면 클럽은 아내와 흡사하다. 결점이 있지만 긴 세월 미운 정 고운 정 주고받다 보니 떼어놓으려 해도 떼어놓을 수 없는 일심동체가 되듯 클럽도 오래 쓰다보면 아내처럼 정이 깊어지게 마련이다.
 

따라서 골프클럽도 여성을 다루듯 하지 않을 수 없다. 마음에 드는 여성을 내 편으로 끌어들이기 위해서는 끈기 있게 따라다니고 자신의 진면목을 보여주고 온갖 정성을 쏟아야 하듯, 클럽을 자신의 일부인양 사랑하고 아껴야 한다.

여성을 만나 결혼하고 나면 여간해서는 배우자를 바꿀 수 없듯, 한번 선택한 골프클럽도 쉽게 바꿀 수가 없다. 결혼을 했으면 미우나 고우나 서로 이해하고 정을 쏟으며 살아가야 하듯, 골프클럽을 한번 선택했으면 잘 맞든 안 맞든 자기 것으로 만들어야 한다. 자기의 분신으로 만들어야 한다.

많은 골퍼들이 보다 나은 스코어를 위해 골프클럽을 교체해본다. 새로운 브랜드의 클럽이 나올 때마다 바꾸는 사람도 있다. 나도 골프클럽을 여러 번 바꾸었는데, 결론적으로 문제는 클럽에 있는 게 아니라 자신에게 있음을 한참 후에 깨달았다.
 

   
▲한번 선택한 골프클럽도 쉽게 바꿀 수가 없다. 골프클럽을 한번 선택했으면 잘 맞든 안 맞든 자기 것으로 만들어야 한다. 자기의 분신으로 만들어야 한다./삽화=방민준
대개의 경우 골프클럽을 바꾸었을 때 좋은 점수가 나오는 경우는 극히 드물다. 육화가 제대로 안 되었기 때문이다. 아무리 좋은 클럽이라 해도 손에 익지 않으면 무용지물이다.

한번은 쓰던 클럽이 좀처럼 뜻대로 되지 않아 새 클럽을 사서 헌 클럽과 함께 차에 싣고 골프장으로 간 적이 있다. 물론 잔뜩 기대를 품고 새 클럽으로 출발했다. 한두 홀 맞는다 싶다가 이내 흐트러지기 시작했다. 거리도 안 맞고 방향도 엉뚱하다. 자꾸 자동차 트렁크 안에 실려있는 조강지처 생각이 난다.
 

아웃을 끝내고 인으로 들어서기 전에 클럽을 교체했다. 역시 비슷한 현상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처음 몇 홀은 역시 “구관이 명관!”이라며 마음을 주려 하는데 클럽이 금세 주인을 몰라본다.
결국 그날 골프는 점수는 물론 여러 가지 면에서 최악이었다. 새 클럽은 손에 익지 않았고 헌 클럽은 마음속에서 이미 버림을 받아 제대로 된 샷이 나올 까닭이 없었던 것이다.

가능한 한 조강지처는 버리지 말아야 한다. 다소 모자란 데가 있고 흡족하지 않지만 서로의 속성을 다 알고 있으니 편하다. 클럽도 육화되지 않은 최신 클럽보다는 좀 낡았지만 분신으로 변한 것이 낫다.
 

만약에 클럽을 바꾸기로 작정했다면 새 것을 쓸까, 옛날 것을 쓸까 고민하지 말아야 한다. 클럽을 바꾸기로 작정했다는 것은 곧 옛날클럽 조강지처를 버리기로 마음이 변했다는 것을 말한다. 한번 떠난 마음을 돌려놓기란 거의 불가능하다. 한번 가출한 아내를 집안에 붙들어 놓기 어려운 거나 같다.

이미 정나미가 떨어진 여자를 평생 데리고 살 수 없듯, 아무리 노력해도 골프클럽에 정이 붙지 않고 마음이 떠나 있다면 과감히 결별을 선언하는 것이 현명한 행동이다. 마음이 떠난 클럽은 자신감을 빼앗아가 버리고 항상 부정 탄 물건처럼 불길하고 부정적인 것만 연상케 한다.

이럴 땐 다른 클럽으로 교체하는 수밖에 없다. 새 클럽에 온갖 정성을 쏟아 자신의 새로운 분신이 되도록 해야 골프의 맛을 되찾을 수 있다.

문제는 교체한 클럽이 잘 맞아주면 다행인데 대부분 뚜렷한 차이를 발견할 수 없을 때가 많다. 옛날 클럽이 더 잘 맞았다는 생각이 난다. 그럴 수밖에 없다. 아직 손에 익지 않았으니 장기간 손때가 묻은 옛날 클럽에 비해 어색하고 낯설 수밖에.

새 클럽과 옛날 클럽 사이에서 갈등을 겪게 된다. 새것을 쓰자니 제대로 맞아 주지를 않아 옛날 클럽에 대한 미련을 버릴 수 없고, 헌 것을 그대로 쓰자니 한번 마음이 떠나버린 뒤라 찜찜하고 비싼 돈 들여 산 새 클럽이 아깝다.

두 클럽을 두고 겪는 갈등은 여간 스트레스 쌓이는 일이다. 이럴 땐 과감히 택일하는 게 상책이다. 헌 클럽에 마음을 붙일 수 없다면 새 클럽에 헌신적으로 사랑을 쏟아야 한다. 그리고 나서도 새 클럽의 선택이 잘못된 것이라는 확신이 서고 헌 클럽에 대한 미련이 강하면 조강지처를 다시 불러들이고 전보다 더한 사랑을 쏟아야 한다. 클럽이 어떤 것이든 간에 신뢰가 가고 자신이 붙으면 그것이 가장 좋은 클럽이다.

서양 사람들은 남에게 배우자를 소개할 때 ‘better half’라는 말을 자주 쓴다. 나의 반쪽은 반쪽인데 나보다 더 나은 반쪽이란 뜻으로, 얼마나 깊은 신뢰와 애정이 담긴 표현인가. 아내를 분신처럼 깊이 사랑하고 신뢰해야 가정이 화목하듯 골프클럽에 대한 애정도 깊고 뜨거워야 골프인생을 즐길 수 있다.  /방민준 골프칼럼니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