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합진보당이 19일 역사속으로 사라지게 됐다.

통합진보당은 지난 2011년 12월 민주노동당과 국민참여당, 통합연대가 합당해 탄생했다. 그러나 출발부터 순탄치 않았다. 비례대표 부정경선 논란부터 내란음모 혐의 사건까지 파란만장한 사건의 중심에 서 있었던 정당이 바로 통합진보당이었다.

통합진보당은 이정희·유시민·심상정 공동대표 체제로 출발하면서 19대 총선에서 13석을 확보하며 원내 제3정당으로 정치적 위상이 급상승했다.

   
▲ 헌법재판소가 19일 통합진보당 해산 심판 청구 사건에서 재판관 8(위헌) 대 1(합헌) 의견으로 정당해산을 결정했다. 사진은 이날 서울 강서구 김포공항에서 시민들이 통진당 해산 관련 뉴스를 바라보고 있는 모습. /뉴시스
하지만 통합진보당의 명운은 여기까지였다. 이후 통합진보당의 행보는 정치권과 우리사회에 찬바람만 몰고왔다.

총선직후 비례대표로 이석기·김재연 의원이 당선된 것을 둘러싸고 당내에서 부정경선 의혹이 불거졌다. 당권파와 비당권파의 갈등은 폭발했다.

이석기 의원이 검찰 수사 과정에서 민족해방(NL) 계열 경기동부연합의 핵심 인물로 알려지고 "애국가는 국가가 아니다"라는 발언까지 더해지면서 종북논란까지 가세했다.

이석기 의원의 제명을 논의하기 위한 의원총회까지 열렸지만 부결되는 등 당의 내분은 극에 달했다. 통합진보당은 내홍을 넘어서지 못한 채 당이 갈라지게 됐다. 당시 탈당한 인사들이 정의당을 창당해 쪼개지게 됐다.

진보당은 18대 대선에서도 주목받았지만 부정적인 이미지를 걷어내지는 못했다.

진보당은 이정희 대표를 18대 대선 후보로 내세웠지만 새누리당 박근혜 후보를 대통령으로 만드는데 일등공신 역할을 했다는 비판을 받았다.

이정희 대표는 TV토론에서 "박근혜 후보를 떨어뜨리기 위해 출마했다"고 주장하는 등 총공세를 펼쳤지만 오히려 역풍에 휩싸였다.

이런 가운데 지난해 8월 이석기 의원 등이 내란음모 혐의로 체포되면서 통합진보당의 운명을 갈랐다. 특히 진보당이 정당해산이라는 유례없는 초유의 사태를 맞게 된 것은 'RO(Revolutionary Organization·혁명 조직)'사건이 결정적 계기가 됐다.

국회는 지난 9월4일 이 의원에 대한 체포동의안을 처리했다.

검찰은 이석기 의원에 대한 구속영장을 한차례 연장하며 수사를 벌였고 그해 10월 그는 법정에 서게 됐다. 동시에 정부는 정홍원 국무총리 주재로 열린 국무회의에서 진보당 해산심판 청구안을 의결, 헌재에 위헌정당해산 심판을 청구했다.

통합진보당은 정부의 정당해산 심판 청구에 맞서 법정싸움과 장외집회 등 모든 것을 총동원해 저항했지만 정당해산을 막아내지 못했다. 결국 통합진보당은 이날 헌법재판소가 해산을 결정하면서 역사속으로 사라지게 됐다.[미디어펜=문상진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