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타협 노동투쟁 접고, 조정위 양보 타협에 열린 자세 필요

   
▲ 이의춘 미디어펜 발행인
"고장난 수레는 소리만 요란했다. 목적을 가진 운동논리만 횡행했다. 유가족의 보상문제는 안중에도 없는 것 같다.”

삼성전자 반도체공장 직업병 피해보상 협상이 좀처럼 결실을 맺지 못하고 있다. 조정위가 수개월전에 출범했지만, 반올림의 무리한 요구로 인해 가동중단 상태에 빠졌다가 최근 재가동에 들어갔기 때문이다.

협상 타결은 반올림이 얼마나 진정성을 갖고 유가족을 위한 실질적인 협상에 응하느냐 여부에 달려있다.

삼성전자 직업병 협상은 보상범위, 회의 방식등을 놓고 소모전을 벌였다. 삼성전자는 사회적 책임경영 차원에서 진정성과 책임감을 갖고 협상에 나섰다. 하지만 노동투쟁차원에서 접근한 반올림의 벽에 번번히 막혔다.

반올림은 피해자와 유가족들을 위한 보상보다는 무노조삼성을 공략하려는 것을 염두에 두고 성동격서식 전술을 구사해왔다. 이들은 철저하게 살라미스 전법을 전개했다. 협상장에 나섰다가 갑자기 무리한 요구를 해서 판을 깨고, 다시 다른 이슈를 만들어 협상장에 나타나곤 했기 때문이다. 반올림은 유가족을 위한 피해보상에 별다른 관심을 갖지 않는다는 의구심을 받아왔다.

반올림에 참여했던 유가족중 6명은 이같은 행태에 대해 불만을 표시하며 탈퇴했다. 이들은 삼성과 별도의 협상을 벌여왔다. 유가족들은 반올림에 대해 ‘고장난 수레’같다며 불편한 심기를 드러냈다. 유가족들이 반올림의 노동투쟁에 이용만 당하는 것 아니냐는 불만도 많았다. 삼성과 협상을 통해 보상을 받으려는 유가족들은 애가 탈 뿐 이었다. 반올림은 처음엔 유가족들을 돕는 것처럼 행동했다. 하지만 지난 1년이상 지루한 협상과정을 보면 결국엔 노동운동을 위해 삼성을 압박하려 한 것 아니냐는 의혹을 받았다.

반올림 행태는 살리미전술을 연상케 한다. 하나를 얻으면 또 다시 다른 이슈를 꺼내 상대방을 끝없이 압박하는 전술을 지칭한다. 이탈리아사람들은 소시지를 얇게 썰어서 조금씩 조금씩 먹는다. 살리미전술은 하나의 카드를 여러개로 쪼개서 보상을 각각 따로 받아내는 것을 말한다. 협상을 통해 이익을 극대화하는 수법이다. 북한은 미국과 핵무기협상을 벌이면서 살라미전술을 익히 써오고 있다.

삼성전자 반도체 라인 직업병 문제는 이제 실질적인 해법을 도출해야 한다. 반올림은 더 이상 운동논리차원의 접근을 중단해야 한다. 근로자들의 실질적인 건강증진과 직업병 재발방지를 위한 안전한 작업환경 조성, 유가족에 대한 원만한 보상 등 핵심의제에 대해 신뢰성있게 접근해야 한다.

이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조정위가 가동된 것은 고무적이다. 삼성전자와 반올림(반도체노동자의 건강과 인권지킴이), 그리고 가족위(삼성직업병 피해자 가족대책위원회)가 지난 18일 만나 조정회의를 가진 것. 조정위원장은 법조계에서 신망이 높은 김지형 전 대법관이 맡았다. 조정위원회는 내년 1월중 의견수렴과 합리적인 조정방안을 모색할 예정이다.

조정위가 파행을 거듭해온 것은 아쉬운 대목이다. 삼성전자 권오현 부회장은 지난 5월 직업병문제에 대한 사과와 보상, 재발방지 등 특단의 조치를 내놓았다. 협상타결 분위기가 높았다. 권부회장은 반올림과 심상정 정의당의원이 제안한 내용을 폭넓게 수용하는 결단을 내렸다. 직업병 피해자와 유가족들이 근로복지공단을 상대로 낸 산재소송에서 보조참가한 것도 철회했다. 반올림및 유가족과의 협상 걸림돌을 완전히 해소한 것이다.

   
▲ 삼성전자 직업병 문제를 협상해온 반올림은 이제 노동운동차원에서 비타협적으로 접근하는 것을 지양해야 한다. 유가족들이 조속한 보상을 받도록 하고, 근로자들이 안전한 작업환경에서 근무할 수 있는 재발방지 대책에도 열린 마음을 갖고 협상에 임해야 한다. 반올림은 더이상 글로벌기업의 발목을 잡지 말아야 한다. 삼성전자와 반올림, 유가족이 최근 김지형 조정위원장 주재로 회의를 가졌다.

심상정의원은 당시 ▲사과 ▲공정하고 객관적인 제3의 중재기구 구성 ▲재발방지 대책 수립등을 요구했다. 이를 계기로 지난6월 조정위가 발족되는 등 큰 진전을 이루는 듯했다. 삼성전자는 진정성을 갖고 피해자와 유가족을 도우려 했다.

반올림은 이에 아랑곳하지 않고 무리한 요구를 지속했다. 조정위는 설전과 공방전을 벌였다. 반올림은 10월초 돌연 협상에 진전이 있는 상황에서 조정위가 필요없다면서 불참했다. 조정위를 통한 협상은 중단됐다. 유가족들은 반올림의 행태에 실망한채 삼성전자와 별도의 협상을 벌였다.

이런 우여곡절과 파행을 겪어온 조정위가 가동되는 것은 만시지탄이다. 그동안 소중한 시간만 허비한 셈이다. 연말까지 모든 이슈를 타결할 수 있는 골든타임을 놓쳤다.

반올림은 판을 깨는 게 목적을 둬선 안된다. 일방적으로 삼성을 몰아붙이려는 것도 접어야 한다. 유가족과 삼성이 윈-윈할 수 있도록 도우미역할만 하면 된다. 완장차고 삼성을 압박하려는 태도는 온당치 못하다. ‘삼성무노조깨기’에 집착해선 안된다. 피해보상과 재발방지가 최우선 협상이슈가 돼야 한다. 피해자및 유가족들이 원하는 것도 이것이다.

문제는 반올림이 여전히 비타협적 태도를 견지하고 있다는 점이다. 반올림은 이번 조정위 재가동과 관련해 발표한 성명서를 통해 이 점을 분명히 했다. 즉 “하나의 양보와 타협이 과정이라는 관점에서 접근하겠다”는 조정위의 공정한 입장을 내놓고 비판한 것. 반올림은 이번 성명에서 “이번 사안은 주고받기식 타협이 아닌, 노동자의 건강과 생명을 분명하게 지향하는 양보와 타협이 되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는 반올림이 자신의 입장을 고수한채, 삼성전자에게 일방적인 양보만을 요구할 것임을 시사하는 대목이다.

이래서야 어찌 협상이 이뤄질 지 답답하다. 조력자인 조정위의 역할 자체를 부인하는 것이나 다름없다. 반올림은 1차 조정위에 탈퇴할 때, 삼성이 조정위 뒤에 숨어서 책임을 회피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이것도 억지논리다. 권부회장이 가슴에서 우러나오는 사과를 한데 이어 보상, 재발방지, 그리고 조정위 구성까지 수용했기 때문이다. 반올림이 삼성에 대해 닫힌 마음을 갖고 협상에 임하는 것은 올바른 태도가 아니다.

조정위는 이제 지루한 공방전을 끝내는 조정안 마련에 전력투구해야 한다. 유가족과 삼성이 수용할 수 있는 최선의 해법을 도출해야 한다. 반올림이 무리한 요구를 하면 결기도 보여야 한다. 김지형 변호사가 제안한 대로 합리적 해결을 위한 조정안을 만드는데 주력해야 한다. 조정안이 논쟁을 다시 촉발하는 것이 아니라, 이를 치유하는 방식으로 이뤄져야 한다. 신속한 보상과 사과, 항구적이고 미래지향적인 종합대책을 동시에 마련하는 것이다.

삼성전자는 전향적인 태도를 갖고 있다. 그동안 조정위원으로 추천된 백도명 서울대 보건대학원 환경보건학과 교수의 선임에 동의했다. 백도명 교수는 반올림에 편향된 행보를 보여왔다. 삼성은 협상의 조속한 타결을 위해 백교수의 조정위원 참여를 받아들인 것이다. 삼성의 진정성을 느끼게 한다.

조정위가 어렵게 가동되는 만큼 산고를 통해 옥동자를 낳아야 한다. 반올림은 비타협적 투쟁을 버리고, 조정위에 힘을 실어줘야 한다. 합의정신이 최우선적으로 고려돼야 한다. 반올림은 피해자와 유가족들의 고통을 더 이상 외면해선 안된다. 그들에겐 보상보다 더 중요한 게 무엇이 있는가? 김지형 변호사의 소신처럼 “우선 나부터 나를 넘어 남, 그리고 사회에 다가가는 것은 위대한 양보”이다. 반올림이 자신만의 아집에만 머문다면 어떤 성과도 도출되지 못할 것이다.

과학적인 입증이 안된 직업병 문제로 인해  삼성전자가 국내에서 어려움을 겪어선 안된다. 삼성전자는 지금 미국의 애플과 스마트대전을 벌이고 있다. 더구나 샤오미 등 중국스마트폰 업체들의 추격도 만만치 않다. 스마트폰 실적 부진으로 올해 영업이익이 지난해보다 급감하고 있다. 지난 3분기엔 4조원대에 그쳐 전년 같은 기간의 10조원대에 비해 60%가량 줄었다.

삼성전자로선 지금 절체절명의 위기를 맞고 있다. 위기는 기회이기도 하다. 내년 상반기에 내놓을 갤럭시 S6가 애플 아이폰6를 잡아야 한다. 이재용 부회장과 신종균 사장은 S6의 빅히트를 위해 모든 것을 걸고 있다.

삼성전자는 애플과의 스마트폰 대전에서 이겨야 하고, 중국의 추격도 뿌리쳐야 한다. 애플과 샤오미에 끼여 위기를 맞을 수 있다. 삼성전자는 이를 타개하기위해 샤오미휴대폰보다 더 싼 10만원대 타이젠 스마트폰을 출시키로 하는 등 글로벌1위수성을 위해 역량을 집중하고 있다. 대한민국 경제의 회복여부는 삼성전자의 스마트폰 성공신화가 이어지는 데 달려있다. 삼성이 흔들리면 대한민국 경제가 휘청거린다. 삼성전자 실적이 악화하면 외국인들이 대거 빠져나간다.

반올림은 삼성전자의 고비에 대해 나몰라라 하면 안된다. 글로벌 기업이 국내 극렬 노동운동단체에 의해 계속 발목을 잡히는 것은 국가경제에 심각한 악재가 될 수밖에 없다. 내수비중이 고작 10%도 안된다. 글로벌 경제전쟁에서 금메달 경쟁을 벌이는 간판선수의 모래주머니를 없애줘야 한다. 반올림의 성숙한 협상태도를 기대한다. 유가족들이 걱정하는 것처럼 운동논리에 맞지 않는다는 이유로 독한 말과 행동으로 판을 깨는 것은 안된다. 유가족 고통을 더 이상 외면하지 말아야 한다. 운동권의 정의롭지 못한 정의가 유가족의 정의를 짓밟아선 안된다. [미디어펜=이의춘 발행인 jungleelee@nave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