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촌간의 싸움이 부른 골육상쟁…인간 탐욕에 대한 경계 교훈

현대는 지식이 넘치는 사회이지만, 역설적으로 가치관의 혼돈을 겪고 있는 ‘지혜의 가뭄’ 시대이기도 합니다. 우리 사회가 복잡화 전문화될수록 시공을 초월한 보편타당한 지혜가 더욱 절실한 이유이기도 합니다. 고전에는 역사에 명멸했던 위대한 지성들의 삶의 애환과 번민, 오류와 진보, 철학적 사유가 고스란히 녹아있습니다. 고전은 세상을 보는 우리의 시각을 더 넓고 깊게 만들어 사회의 갈등을 치유하고, 지혜의 가뭄을 해소하여 행복한 세상을 만드는 밑거름이 될 것입니다. ‘사단법인 행복한 고전읽기’와 ‘미디어펜’은 고전 읽는 문화시민이 넘치는 품격 있는 사회를 만드는 밀알이 될 <행복한 고전읽기>를 연재하고자 합니다. [편집자주]

박경귀의 행복한 고전읽기 (43)- 인간의 탐욕을 경계한 비극적 골육상쟁
아이스킬로스(BC 525? ~ BC 456)의 <탄원하는 여인들(Hiketides)>

   
▲ 박경귀 행복한 고전읽기 이사장
아이스킬로스는 이 작품의 공연으로 기원전 463년 비극경연대회에서 우승을 차지한다. 다나오스(Danaos) 딸들의 운명을 그린 3부작 가운데 첫 작품이다. 따라서 연이어 공연된 두 작품 <아이깁토스의 아들들(Aigyptioi)>과 <다나오스의 딸들(Danaides)>를 함께 읽어야만 작품 전체의 전말을 알 수 있다. 하지만 뒤의 두 작품이 남아있지 않다.

아쉽지만 이 긴 스토리를 여는 이 첫 작품만 가지고 감상하는 게 제한적이다. 따라서 여기서는 <탄원하는 여인들(Hiketides)> 한 작품에 나타난 의 내용을 넘어 소실된 2부 및 3부의 작품 전체의 줄거리를 통해 이 작품의 내용과 의미를 감상해 보고자 한다.

일단 2부 및 3부의 작품이 없으므로 부분적으로 전해지는 단편적인 신화와 전설로 사건의 전말을 추정할 수밖에 없다. 이집트의 아이깁토스 아들 50명은 다나오스의 딸 50명에게 집단 구혼을 하지만 여인들은 이를 거부하고 그리스 펠로폰네소스 반도의 아르골리스 지방으로 도피한다. 이후 일단 우여곡절을 거쳐 합동 결혼이 이루어진다. 하지만 정략결혼의 행복은 하루 만에 비극으로 전복된다.

첫날밤을 보낸 후 남편들을 모두 살해하라는 아버지 다나오스의 명령을 1명을 뺀 49명의 다나오스 딸들이 실천에 옮긴 것이다. 이 여인들의 살인죄는 아프로디테가 정화해준다. 또 다나오스의 명령을 유일하게 실행하지 않았던 딸 히페르메스트라(Hypemestra)와 운 좋게 살아남은 그의 남편 링케우스(Lynkeus)의 화해의 결혼으로 결말지어진다.

전체적으로 살인으로까지 치닫는 비참한 사랑의 갈등과 대립 속에 인간에 대한 연민과 사랑으로 ‘살아남은’ 사랑의 결실을 노래한 3부작 비극이다. 이 가운데 <탄원하는 여인들>은 다나오스의 50명의 딸들이 아이깁토스의 50명의 아들들의 구혼을 거부하며 그리스 아르고스 땅을 찾아와 보호를 의탁하는 도입부 1부의 비극이다.

그리스 아르고스의 땅으로 도피해온 이방인인 이집트 여인 50명의 갑작스런 출현은 아르고스에 새로운 풍파를 불러올 수 있는 위기를 만든다. 뒤쫓아 온 구혼자들의 원망과 갈등을 초래할 수 있기 때문이다.

   
▲ 289미터의 산위에 우뚝 솟아있는 아르고스 왕국의 아크로폴리스가 있던 성채다. 지금은 라리사 성채(Larisa Castle)로 불린다.

   
▲ 3500여 년 전 미케네 시대부터 축조된 라리사 성채는 이후 이 지방을 지배했던 로마, 비잔틴, 프랑크, 투르크 세력에 의해 다양하게 혼합된 성벽 양식을 보여준다. 펠로폰네스 반도 아르골리스 지방의 중심에 위치하고 있다.
아르고스왕 펠라스고스(Pelasgos)는 구원을 청하는 탄원자들을 물리칠 경우 “손님의 권리를 보호해주는 제우스신을 모독하는 처사”가 되고, 이방의 여인들을 받아들일 경우 이들을 쫒는 이집트 청년들과 무력 충돌할 가능성이 높기 때문에 어떤 결정을 해야 할 지 망설이게 된다.

하지만 다나오스 딸들이 자신들이 아르고스의 공주의 후손이라고 주장하며 자신들을 보호해주지 않을 경우 자살하겠다고 위협하고, 게다가 자신들을 내줄 경우 도시에 저주를 내리겠다고 엄포를 놓자 이들은 여인들을 수용한다. 처녀들을 내달라는 아이깁토스 아들들의 요구에 대한 펠라스고스의 해법은 일단 합리적이다.

여인들이 스스로 원할 경우 데려가도 좋지만, 강제로 데려가려 할 경우 전쟁을 불사하겠다는 것이다. 구혼자들이 여인들을 설득시켜 보라는 주문이다. 사랑의 결합을 전제로 여인들과 청년들의 동의와 화합을 내건 것이다. 이는 이후 뒤이어 전개될 2부와 3부의 후속극의 플롯 전개 내용을 예측하게 하는 복선(伏線)과도 같다. 마음으로부터의 사랑이 없는 강제 결혼이 몰고 올 비극적 파국을 경고하고 있는 지도 모른다.

   
▲ ‘다나오스의 딸들(The Danaides)’, 다나오스의 딸들은 남편 49명을 죽인 죄로 밑 빠진 욕조에 물을 채우는 벌을 받았다. John William Waterhouse(1849~1917), 1903년 작.
이 작품에서 곁가지로 고대 그리스인들의 흥미로운 문화적 관습과 사유방식을 몇 가지 엿볼 수 있다. 먼저 낯선 이방인을 받아들이는 과정과 방식을 주목하게 만든다. 아르고스 인들은 전혀 연고가 없어 보이는 낯선 이방인일지라도 제우스의 이름을 빌어 “흰 양털실을 감아 맨 탄원자의 표지를” 왼손에 들고 애처롭고 절박하게 탄원하는 사람의 소망을 모질게 거부하지 못했다.

신에게 보호를 요청하는 사람의 탄원을 들어주어야 하는 것을 경건한 의무로 여겼기 때문일 것이다. 신의 이름을 빈 탄원을 거부할 경우 제우스의 노여움과 가혹한 벌을 자초할 수 있다고 여긴 것이다. 고대 그리스인들의 깊은 신심(信心)의 관습을 잘 보여준다. 사연을 막론하고 무엇이든 탄원할 수 있었던 나라의 ‘화롯가’인 신전은 그리스인들에게 안전한 도피처이자, 죄를 씻어주는 정화구역, 혹은 패자부활의 기회의 장이었던 셈이다.

또 하나는, 신화를 역사적 실재로 믿고 신화 속의 이야기가 현실의 삶과 자연스럽게 연동되고 있음을 보여준다는 점이다. 이방인인 이집트의 여인들이 아르고스에서 와서 자신들의 조상의 땅이라며 스스로를 아르고스인의 후손이라고 주장했다. 분명 이들의 모습은 흰 피부의 그리스인들과 달리 까무잡잡한 피부색을 가진 전형적인 이집트인 혹은 혼혈인의 모습이었을 것이다. 그럼에도 이들은 자신들이 제우스와 이오가 이집트에서 낳은 에파포스의 자손이라고 주장한 것이다.

이오가 이집트까지 가게 된 사연은 길다. 신화에 의하면 아르고스 공주인 이오는 제우스의 유혹에 빠져 사랑을 나눴다. 제우스는 아내 헤라의 질투를 피하기 위해 이오를 암소로 변신시킨다. 하지만 암소를 선물로 달라는 헤라의 요구에 못 이겨 암소를 주게 되고, 헤라는 암소로 변한 이오를 감시하기 위해 온 몸에 수백 개의 눈이 달리 '아르고스(Argos)에게 감시를 맡긴다.

이를 안타깝게 여긴 제우스가 헤르메스를 보내 이오를 구하게 한다. 헤르메스는 아르고스의 영원히 감지 않는 눈들을 잠들게 한 후 그의 목의 베어버린다. 이에 헤라는 쇠파리를 보내 암소를 따라다니며 괴롭힌다. 암소는 쇠파리를 피해 세상을 떠돌다 이집트까지 가게 되고, 헤라에게 용서를 구한 제우스가 다시 이오를 인간으로 되돌려주고 에파포스를 낳는다.

   
▲ 제우스와 이오‘, Giovanni Ambrogio Figino(1548~1608) 1599년 작.
에파포스는 멤피스와 결혼하여 리비아를 낳고, 리비아는 포세이돈과의 사이에서 아게노르와 벨로스를 낳았다. 바로 벨로스와 안키노에의 아들이 바로 아이깁토스와 다나오스였다. 결국 족보로 따지면 아이깁토스의 아들들과 다나오스의 딸들은 이오의 5대손인 셈이다.

펠로폰네소스 반도에 있는 아르고스 지방은 바로 이오의 고향이다. 이집트의 여인들은 자신들의 먼 조상인 이오 할머니의 나라를 찾아온 것이다. 이들이 이오의 후손인 아르고스인은 역시 이오의 후손인 자신들을 보호할 책임이 있다고 설득한 것이다. 신전의 탄원에다 모계(母系)의 혈연적 관계까지 강조하니 이들을 받아들이지 않을 수가 없었을 듯하다. 게다가 부계(父系)로 우주의 지배자 제우스의 자손이 아닌가?

신화와 역사가 불분명하게 결합된 전설 같은 이야기이지만 고대 그리스인들에겐 아주 살아있는 족보처럼 진지하게 인식되었던 것 같다. 아르고스 인들은 비록 이방인 이집트 여인들에게서 신의 자손이라는 혈연적 동질감을 느끼지 못했을 수도 있지만, 최소한 이들이 주장하는 명분을 거부하기 어려웠을 것이다.

이 작품에서는 다나오스의 딸들이 아이깁토스의 아들들의 구혼을 왜 그렇게 극구 기피하게 되었는지 설명하고 있지 않다. 다나오스와 아이깁토스는 쌍둥이 형제다. 따라서 이들 자식들 간의 결혼은 사촌간의 근친결혼이 된다. 친족 간의 결혼이 권력을 더욱 공고히 할 수 있었을 것인데, 이들의 집단 결혼을 막는 장애요인이 무엇이었는지 명시적으로 묘사하고 있지는 않다.

49명의 청년들이 동시에 살해당하는 비극은 왜 일어났을까? 가설이지만, 두 형제 간의 권력을 둘러싼 남모를 애증관계가 대를 이은 불행의 씨앗이 되었는지도 모른다. 사촌 간에 대살인극이 빚어졌던 것이다. 아마 다나오스가 형 아이깁토스에게 밀려나 이집트에서 쫓겨나게 된 것에 대한 보복이었을 것이다.

다나오스가 자신의 딸 중 유일하게 남편을 살해하지 않아 살아남은 사위 ‘링케우스’의 손에 죽게 되는 것도, 다나오스의 49명의 딸들이 남편들을 살해한 죄로 밑 빠진 독에 영원히 물을 채우도록 한 벌을 받은 것도 운명적 업보가 아니었을까? 아이스킬로스가 형제간의 권력 싸움이 부른 참혹한 골육상쟁을 극화한 것도 그리스인들에게 인간 탐욕을 경계하라는 교훈을 주려 했던 것이리라. /박경귀 사단법인 행복한 고전읽기 이사장, 한국정책평가연구원 원장

   
▲ ☞추천도서: <탄원하는 여인들(Hiketides)>, 『아이스퀼로스 비극 전집』, 아이스퀼로스 지음, 천병희 옮김, 숲(2011, 2쇄). 671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