헌재, 해산 결정 대한민국 구해낸 역사적 쾌거…통일대박론 힘 받아

   
▲ 조우석 문화평론가
통합진보당 해산을 결정한 헌법재판소의 19일 판결은 위기의 대한민국을 구해낸 역사적 쾌거가 분명하다. 법이 정한 판결 기일(6개월)을 한참 넘기면서 헌재가 정치권 눈치를 너무 본다는 일부 우려가 없지 않았지만, 지금 생각하니 헌정사(憲政史)에서 가본 적이 없던 길을 뚫는데 따르는 부담감을 전혀 이해 못할 것도 아니다.

결과적으로 우리의 기쁨은 두 배가 됐다. 이날의 역사적 결정은 해외에서 들려온 대형 뉴스와 짝을 이뤄 김정은 정권과, 국내 종북세력에게 결정적 타격을 안겨줬다. 전날인 18일 UN총회는 고문, 공개 처형, 강제 구금 등 인류에게 반하는 북한의 범죄적 인권상황을 국제형사재판소(ICC)에 회부하도록 권고하는 결의안을 압도적 표차로 통과시켰다. 

북한식 사회주의를 따르는 종북(從北)행위란 대한민국에 대한 파괴행위임을 천명한 국내 결정에 이어 범죄집단 평양에 대한 경고를 국제사회가 재확인한 것이다. 결코 우연일 리 없는 겹경사인데, 이제 우리가 문제다. 남은 과제는 2014년 말 안팎에서 거의 동시에 날아든 두 선물이 갖는 파장과 의미를 음미하고 효과적으로 활용하는 작업이다.

청와대 문서 유출 사건으로 빚어진 소모적 혼란상 반전 계기

망국적 종북세력을 제거한 채 펼쳐야 하는 진정한 진보세력의 재구성, 그걸 좌파운동사 100년의 역사 속에 재정립해주는 작업은 정치권과, 학자-저널리스트들의 몫이지만, 통진당 해산은 내년으로 3년 차인 박근혜 정부의 정국 운용에 당장 결정적 호기로 작용할 것이다. 대통령은 청와대 문서 유출 사건으로 빚어진 혼란상을 반전시킬 결정적 동력을 얻었다. 그게 포인트다.

그 점에서 통진당 해산 효과는 1982년 봄 포클랜드 전쟁을 주도하며 성공한 정치인으로 일어설 수 있었던 영국의 마가릿 대처 총리의 리더십 회복에 비견할 수 있다는 게 필자의 판단이다. 구조부터 닮았다. 포클랜드 전쟁이 터지기 전 대처에 대한 지지율은 25%에 불과했다. 여론조사가 시작된 이래 어떤 총리도 이처럼 지지율이 떨어졌던 적은 없었다.

그러나 멀리 대서양 남쪽의 작은 섬, 때문에 영국에게는 큰 전략적 가치도 없던 섬을 지키려던 '대처의 전쟁'이 결과적으로 영국 정치판을 송두리째 바꾸는 계기로 작용했다. 직후 대처는 집권 초반 인기 없던 정치인의 이미지를 씻어내고 전사 여왕(Warrior Queen)의 반열에 성큼 올라섰다. 그 동력으로 개혁정책을 밀어 붙여 동서냉전을 종식시킨 지도자로 부각됐는데, 그 극적 반전의 사례를 잘 스터디해볼 가치가 있다.

32년 전 영국으로부터 1만3000km 떨어진 작은 섬 포클랜드를 아르헨티나가 기습 점령했던 것은 국내의 정치적 위기를 돌파하려던 꼼수였다. 그때 영국인들은 포클랜드가 어디에 있는 섬인 줄도 몰랐다. 적지 않은 이들은 아르헨티나의 이 도전을 대영제국 쇠락의 상징으로 보며 체념하다시피 했다. 각료들도 섬을 지키기 위해 병력을 보내는 건 "미친 짓"이라고 여기던 분위기였다.

   
▲ 헌법재판소가 통합진보당을 해산하고 소속 국회의원들의 의원직을 상실한다는 결정을 선고한 19일 오후 서울 종로구 헌법재판소 인근에서 보수단체 회원들이 통합진보당 해산 결정 찬성 집회를 하고 있다. /뉴시스
'마가릿 대처의 전쟁' 그리고 '박근혜의 전쟁'

대처는 달랐다. 그는 포클랜드 침공은 독일이 자기 고향 그랜섬을 침략한 것만큼이나 용납할 수 없는 행동으로 받아들였고, 그래서 "영국의 자존심을 세우기 위해서라도 그냥 지나치지 않겠다"고 결심했다. 실제로 대처는 사상자 발생을 예측했으면서도 섬의 탈환을 과감하게 명령했다.

이후 벌어진 11주 동안의 전쟁에서 미군 장성들은 "자기들이라면 그런 작전을 세우지 않는다"고 혀를 내둘렀지만, 군통수권자 대처의 지휘 하의 영국군은 실로 용감했고, 아르헨티나는 3개월을 못 버티고 항복을 선언했다. 흥분한 군중들이 다우닝 가에 몰려들어 "브리타니카여, 지배하라"를 부르며 애국심을 쏟아냈을 때 윈스턴 처칠 식의 전시(戰時) 리더십을 재현한 대처는 리더십을 너끈히 회복한 뒤였다.

실로 드라마틱한 변화였다. 이게 분수령이 되어 이후 8년 집권 내내 대처는 전에 없던 국정 장악력을 행사할 수 있었는데, 통진당 해산을 이끌어낸 박근혜 리더십은 포클랜드 전쟁 승리를 이끌어낸 대처 리더십에 비해 손색이 없다. 포클랜드 전쟁은 외부의 요인이 발생한 경우이지만, 통진당 해산은 박근혜 대통령이 견지해온 국정철학이 거둔 승리다. 또 통진당 해산은 암덩어리 종북행위를 뿌리 뽑는 결정적 수순으로, 박근혜 정부 치적 중 최고로 꼽아야 한다. 이게 우연일 리 없다.

대처가 성공적 전쟁 지도자가 될 수 있었던 것은 목표가 명백했기 때문으로 분석되지만, 그 점에서도 박근혜 대통령은 밀리지 않는다. 그걸 <중간은 없다-마거릿 대처의 생애와 정치>(기파랑 펴냄)를 쓴 서울대 사학과 박지향 교수는 이렇게 분석하는데, 그 말을 박 대통령에게 적용해도 된다.

지지율 등락 따위에 박근혜는 신경 쓰지 말길

"전쟁에서 건 경제문제에서 건 그녀의 도덕적 확신은 분명했다. 자신의 대의(大義)가 옳기에 반드시 승리하리라는 도덕적 확신은 경제에서와 마찬가지로 전쟁에서도 분명히 대처의 모습을 확인해주었다. 지도자에게 여성이라는 사실은 결코 문제가 되지 않았다."

며칠 전 국내 언론들은 대통령 지지율이 급락했다고 보도했지만, 통진당 해산은 또 한 번의 극적인 반전으로 연결될 것이다. 아니다. 박 대통령이 등락을 거듭하기 마련인 지지율 따위에 연연하는 건 어울리지 않는다. 그가 취임 초 내세웠던 '비정상의 정상화' 작업에 올인하는 것이 가장 그다운 정면돌파이자, 최선의 정치행위라는 걸 새삼 확인할 필요가 있다.

법외(法外) 노조 전교조 문제 해결, 공기업 개혁, 한반도 신뢰 프로세스에 따른 통일대박론의 구체화 등의 숙제가 그것인데, 통진당 해산 이후의 탄력을 효과적으로 활용하면, 기대 이상의 호성적도 기대된다. 챙겨야 할 것 또 있다. 경제민주화 구호를 정리하고 다시 성장으로 돌아서서 한국경제 회생을 위한 모멘텀을 확보하는 과제 말이다.

이걸 위해서는 이른바 소통과 통합의 구호를 습관처럼 반복하는 국내 언론과 자칭 평론가 무리들의 아우성와 작은 주문 따위에는 너무 귀를 기울일 필요가 없다. 그런 건 적절히 참조만하면 될 뿐이다. 청와대를 포함한 일부 장관 등 인적 쇄신의 경우도 마찬가지가 아닐까? 한 신문은 역사와의 대화에 몰두하는 지도자의 위험성을 지적했지만, 박 대통령이 그런 대업(大業)을 외면할 수 없다. 지금 한반도 상황이 그만큼 어렵기 때문이다.

지난 번 글에서 필자는 말했다. "내년 한 해 저들 김정은 세력의 몰락과 이 땅의 얼치기 종북주의자들의 동반몰락을 냉정하게 지켜볼 일이다." 그대로 됐다. 통쾌하기 짝이 없다. 통진당 해산 이후 큰 줄기가 잡힌 것은 정말 경이로운 경사가 분명하다. 헌정사는 물론 대한민국 앞날을 위한 결정적 카드였다. 큰 물꼬를 텄고, 이걸로 탄력을 받은 박근혜 정부의 앞날과 큰 성취를 더욱 기대한다. /조우석 미디어펜 논설위원, 문화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