징벌적 손해배상제 확대·신규 순환출자 금지 등 사실상 통제 경제
정부가 단기적 정책성과를 위해 시장에 개입하고 포퓰리즘 통제가 만연하면, 기업은 위험을 감수하며 혁신과 창조에 나서지 않기 마련이다. 자유가 보장된 환경이 조성될 때, 13척으로 왜함 330척을 쳐부순 이순신 장군의 명량대첩과 같은 기업가정신도 발휘 될 수 있다. 시장을 이기는 정부는 없다. 창조경제의 씨앗들이 싹을 트고 꽃을 피우기 위해서는 시장의 보복을 부추기는 분열의 철학과 정책을 타파하는 것이 중요하다. 자유경제원이 이러한 취지에서 2014년 한 해를 되돌아보고 2015년 새해를 열기 위한 대토론회를 16일 개최했다. 아래 글은 자유경제원의 <분열의 철학, 정책 버리고 성장으로 가자> 특별토론회에서 배진영 인제대 국제경상학부 교수가 발표한 토론문 전문이다.

오용되어 오염된 용어, 민주화

   
▲ 배진영 인제대 국제경상학부 교수

1. 성역으로 자리 잡은 두 용어 - 사회적, 민주화

한국에서 ‘민주화’라는 단어는 ‘사회적’ 단어와 더불어 마치 누구도 비판하면 안 되는 또는 손도 되지 못하는 그런 성스러운 용어이다. 두 단어는 기능적으로 결코 함께 할 수 없는 용어의 앞 또는 뒤에 붙어 해당 용어의 의미를 퇴색하거나 그 기능을 점차 소멸시켜, 결국 그들이 목적하는 사회를 구현하고자 한다.

경제민주화는 사회적 시장경제, 제3의 길, 사회 민주주의, 사회적 자유주의, 사회적 정의 등과 그 내용에서 별반 다를 바 없이 포장만 바꾼 정치적 선전 도구이다. 시대적 상황에 따라 이 말을 사용했다 저 말을 사용했다할 뿐이다. 최근 한국에서 경제민주화라는 용어가 시들해지자 사회경제기본법이 시중의 관심으로 새롭게 등장하는 것도 이런 맥락이다.

   
▲ 자유경제원이 16일 주최한 <분열의 철학, 정책 버리고 성장으로 가자> 특별토론회의 전경 

2. 경제민주화의 실현 가능성

상이한 두 용어의 공존을 꿈꾸는 이런 사고는 구조론적 사고에 기반을 둔다. 경제민주화는 대표적인 구조론적 사고에 입각한 세상 설계이다. 시장경제에다 민주화란 정치를 섞어 보겠다는 발상이다. 독일 경제학자 Herder-Dorneich는 경제체제의 형태와 전환을 두 가지 관점에서 분석할 수 있다고 했다.

하나는 ‘구조론’적으로 다른 하나는 ‘이분법’적이다. 구조론적 접근은 한 사회를 상충된 기능을 가진 다양한 질서들을 조합하여 가장 이상적인 사회를 구성할 수 있다는 믿음에서 출발한다. 인간 이성과 국가 조직의 신뢰에서 출발한다. 구조론적 접근에 의한 체제가 기능을 발휘하기 위해서는 이질적인 질서 요소들 간에 안정적인 관계를 유지하든지, 그렇지 않다면 이질적 질서들 간의 상호 영향이 완전히 차단되어야 한다.

이에 반해 이분법적 접근을 주장하는 자들은 시장경제이거나 통제경제에서만 체제의 기능이 원활히 발현할 수 있다는 믿음을 갖고 있다. 서로 상충되는 기능을 가진 경제질서가 공존할 때는 질서 기능의 충돌로 자원은 비효율적으로 사용되고 이로 인한 자원 낭비는 실로 엄청나며, 여기에는 부정, 부패, 그리고 비리가 똬리를 튼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경제체제는 시장경제와 통제경제 외는 생각할 수 없다. 구조론자들이 말하는 이질적 질서 요소들 간의 안정적인 상호 영향은 탁상 위의 선긋기에 불과하며 그 개념이 아주 모호하다. 이들 간의 상호 영향 차단도 전혀 현실적이지 못하다. 거의 모든 역사가 이것을 증명한다. 역사는 구조론적으로 설계된 경제질서가 실제로 현실 정책으로 옮겨질 때는 결국 이분법적으로 접근하려는 경향을 강하게 갖는다는 사실도 보여준다.

   
▲ 박근혜정부가 경제민주화를 명분으로 시장에 지나치게 개입했던 것은 자유민주적 기본질서를 근간으로 하는 헌법에 위배될 소지가 많다. 사법영역보다 공법영역, 공적 개입이 늘어날수록 국민의 행복추구권과 사적 자치는 위협받게 된다. 박근혜 대통령이 국민경제자문회의에서 모두발언을 하고 있다. 

3. 경제민주화 법안의 현실 충돌 – ‘징벌적 손해배상제 확대’ 법안을 예로서 검토

박근혜 정부는 집권 후 적지 않은 경제민주화 관련 법안들을 통과시켰다. 징벌적 손해배상제 확대, 불공정특약 금지, 일감몰아주기 규제, 신규 순환출자의 금지, 가맹점주의 권리 강화 관련 법안들이 그것이다. 이 법안들의 국회통과는 최근 노대래 전 공정거래위원장의 이임사에서 그가 자랑스럽게 언급한 그의 치적이다.

이 법들이 시장경제의 기능과 어떻게 충돌하고 그 결과로 얼마나 많은 자원이 낭비될지는 앞으로 두고 보아야 하겠지만, 이들 법안들의 시장경제 기능 훼손은 어렵지 않게 추론해볼 수 있다. 징벌적 손해배상제의 강화를 통해 이를 추론해보자.

이 법은 원(原)사업자(대체로 대기업)로부터 수급 받은 하청업자(대체로 중소기업)를 보호하기 위하여 원사업자의 권한을 지나치게 제한하는 법이다. 사인(私人)들 간의 거래에서 국가라는 공법기관이 개입하여 거래 한 당사자의 자유를 제한하는 것이 어떤 법적 문제를 야기하는지를 따지지 않더라도, 다양한 시장경제 기능의 훼손들을 쉽게 지적할 수 있다. 그것들을 요약하면 아래와 같다.

⓵ 시장의 선별기능과 통제기능의 훼손

원사업자는 하도급 업자를 자유롭게 선택할 수 있는 자유를 제한받음으로써, 보다 경쟁력이 있는 업자에게 자원을 배분할 수 있는 기회를 상실한다. 하청업자는 국가의 강력한 보호를 받기 때문에 더 효율적으로 자원을 이용할 수 있는 기술과 생산 공정의 개발 그리고 경영혁신에 그다지 신경을 쓰지 않을 것은 뻔하다.

원사업자라는 대기업에 안정적으로 자신의 제품을 판매할 수 있는데 굳이 개발과 적응이라는 시장의 압박을 받을 이유는 하등 없는 것이다. 그러므로 징벌적 손해배상제의 강화는 자원을 보다 효율적으로 사용하는 자만 시장에 남아있게 하는 시장의 선별기능과 시장에서 살아남기 위하여 누구의 명령이나 지시 없이도 스스로 통제하게 하는 시장의 통제기능을 크게 훼손한다.

⓶ 기업가정신의 훼손

기업가를 포함한 개인은 대체로 화폐적 이윤 확대와 안정적인 삶의 유지에서 자신의 행복을 찾는다. 이윤이 많지 않더라도 안정된 판매망의 확보에 기업의 목표를 두는 경우도 허다하다. 안정된 판매망의 확보는 수급업자에게 미래의 불확실성을 제거해주기 때문에 아주 매력적인 전략이다.

공권력이 판매망의 안정적인 확보를 보장해준다면, 거기에는 더 이상 기업가는 존재하지 않는다. 미래의 불확실성에 도전하는 자가 기업가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징벌적 손해배상제의 확대는 기업가 정신을 크게 훼손한다.

   
▲ 자유경제원이 16일 주최한 <분열의 철학, 정책 버리고 성장으로 가자> 특별토론회에서 토론하고 있는 배진영 인제대 국제경상학부 교수 

⓷ 시장의 분배기능 훼손

우리는 원사업자로부터 수급을 받지 못하고 있는 그렇지만 수급을 받기 위해 원가절감과 품질향상을 위해 모든 노력을 다하는 수많은 다른 중소업자들을 생각해야 한다. 징벌적 배상제의 확대는 기존의 하청업자로 하여금 강력한 기득권자로 남게 한다.

그래서 이 법은 원사업자와의 관계 맺기를 간절히 원하는 수많은 중소업자들에게 강력한 시장진입 장벽으로 작용한다. 그래서 이 법은 이들의 기업가정신을 꺾을 뿐만 아니라, 원사업자와 하청업자와의 관계 밖에 놓여 있는 모든 중소업자들을 궁핍하게 만든다. 그러므로 이 법은 시장의 분배기능을 크게 훼손하는 결과를 낳는다.

⓸ 부정, 부패, 비리의 만연

이 법의 또 다른 강력한 부작용은 이 법이 관료들의 권한을 강화시켜주어 부정, 부패, 그리고 비리를 더 교모하게 저지르게 한다는 점이다. ‘징벌적 손해배상제 확대’ 법안의 내용을 보면, 원사업자가 징벌 받을 수 있는 범위에 ‘부당한 단가인하,’ ‘부당한 발주취소,’ ‘부당한 반품’이 포함되어 있다. 무엇이 부당한가를 판단할 때, 관료들의 자의적인 해석이 당연히 가능하다.

관료들이 이에 관해 사심 없이 판단한다고 하더라도, 억울한 사업자가 반드시 나올 수 있다는 점이 문제이다. 전(前) 공정거래위원장의 이임사에서 “과징금은 기업이 망하지 않을 정도여야 한다.”는 그의 표현에서도 관료의 자의적 잣대의 냄새를 쉽게 맡을 수 있다. 여기에 관료의 사적인 이해관계가 개입되면, 누구에게는 과징금을 부과하고 누구에게는 그것을 면하게 해주면서, 부정과 부패, 그리고 비리의 악취를 풍기게 된다.

징벌적 손해배상제의 확대 법 외의 다른 법들에 대해서도 시장경제 기능의 충돌 가능성을 쉽게 예측할 수 있다. 역설적인 것은 현 정부가 규제 개혁을 위한 끝장 토론을 거창하게 개최하였다는 점이다. 경제민주화 법안들이야 말로 기업의 경제활동을 저해하는 전형적인 규제인데, 한 쪽에서는 이들 법들을 강화하거나 새롭게 제정하고 다른 한 편에서는 규제 개혁을 위해 모든 관료들이 발 벗고 나서라고 재촉하는 것은 참으로 우스꽝스러운 모양새가 아닐 수 없다.

   
▲ 최경환 부총리가 최근 기업인 사면방안이 본격제기된 것에 대해 "전적으로 공감한다"고 화답했다. 기업인 사면은 특혜를 주는 게 아니다. 경제민주화 광풍이후 기업인들이 일반형사범에 비해 중형선고를 받는 등 역차별을 받고 있기 때문이다. 경제회복과 일자리창출에 헌신할 수 있는 기업인에게 기회를 주는 것은 실사구시적 관점에서 바람직하다. 최경환 부총리가 9월 30일 기업인들과 간담회를 갖고 있다. 

4. 결국 이분법적으로 귀결 : 경제민주화 → 경제민주화 vs 경제활성화 → 경제활성화

2013년 하반기부터 정부는 경제활성화를 위해 총력을 기울이고 있다. 그러면서 경제민주화는 세간의 관심에서 점차 멀어지고 있다. ‘경제민주화’에서 ‘경제민주화 vs 경제활성화’의 구도로 바뀌어 가다 이제는 ‘경제민주화’는 거의 잊힌 듯하다. 이것은 앞에서 언급한 것과 같이 구조론적으로 설계한 세상을 현실로 옮길 때 결국 이분법적으로 귀결될 수밖에 없음을 증명해 보이고 있다. ‘경제민주화 vs 경제활성화’ 구도에서 향후 ‘경제활성화’만 남을 가능성이 매우 높다.

5. 경제민주화는 양극화를 해소할 수 있는가? - 양극화의 주범은 누구인가?

‘경제민주화’라는 개념은 시장경제에 1인1표의 민주주의 가치를 도입하자는 것으로 이는 두 가지로 해석될 수 있다. 하나는 기업의 의사결정에 노동자의 참여를 보장하자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모든 사람의 경제력이 균등화 하는 방향으로 나아가자 하는 것이다.

양극화는 사람들을 선동하는 정치적 용어이다. 시장경제 또는 자본주의는 양극화의 원흉이라 선동하면서, 이 용어는 시장경제 질서를 다른 질서로 대체하고자 하는 좌파들의 아주 유효한 전략으로 이미 자립 잡았다. 시장경제가 정말로 양극화의 주범인가? 현실에서 빈익빈 부익부가 강화되고 있는지는 학문적으로 보다 세밀하게 검토되어야 할 사항이다. 분배에 관한 연구는 자의적인 용어 선정과 그 용어의 자의적인 해석이 늘 문제가 되기 때문이다.

이런 문제를 차치하고서도, 빈익빈 부익부의 주범은 시장경제나 가진 자가 아니라 정부의 통화량 팽창이라는 것이 토론자의 기본 입장이다. 시장경제에서 사회 전체에 걸쳐 빈익빈 부익부의 경향을 초래하는 메커니즘은 존재하지 않기 때문이다.

빈익빈 부익부를 가져오게 하는 유일한 통로는 정부의 통화량 확대뿐이다. 통화량 확대 경로에서 확대의 시작점에 가까이 있는 자들은 부의 확대를 경험하며, 그 경로의 끝 지점에 놓인 자나 그 경로에서 아애 제외되어 있는 자들은 부의 감소를 겪게 된다.

그래서 경제민주화를 통해 빈익빈 부익부 문제를 해소하고자 하는 것은 근본적으로 잘못 짚은 정책 방향이며, 위에서 언급했듯이 그것은 오히려 분배 문제를 더 악화시킬 수 있다. 이 문제의 근본적인 해소책은 경기를 부양한다는 명분으로 행해지는 통화량 완화 정책을 억제하거나 강력히 축소하는 것뿐이다. /배진영 인제대 국제경상학부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