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언어·문화 동질성 회복…정치적 교육시스템 구축 필요

한국선진화포럼(이사장 이승윤)은 23일 서울 명동 은행회관 빌딩에서 ‘통일 의식의 선진화 어떻게 할 것인가?’를 주제로 제91차 월례토론회를 개최했다. 2015년은 남북분단 70년이 되는 해로 그동안 통일에 대한 획기적인 전기를 마련하지 못한 우리의 현실을 되짚어 보기 위해 마련된 뜻깊은 자리였다. 이날 토론회는 통일에 대한 국민들의 합의를 이끌어 내고 모두가 공감 할 수 있는 통일의식의 선진화 방안을 모색하는 논의의 장이 됐다. 아래 글은 곽삼근 이화여대 교수의 토론문이다.

동일한 민족이면서 분단국으로 남아있는 한반도의 통일여부에 세계적인 관심이 주목되고 있는 이즈음, 통일의식 선진화를 다룬다는 것은 매우 시의적절하며 큰 의미가 있다고 본다. 이렇게 중요한 주제에 대하여 박세일 선생님께서 통일에 대한 역사적 관점을 제시해주시고, 그 필요성과 중요성에 대해 국민적 관심을 환기시키고 방향성까지 제시해주신 발표에 깊이 공감한다.

분단은 해결되어야 할 과제로 다가오고 있는데, ‘통일을 왜, 어떠한 방향으로 또 어떻게 성취 할 수 있는가’에 대해 발제해주신 내용 중 특히 우리가 적극적으로 나서야함을 강조해주셨다는 측면에서 매우 고무적이라고 생각한다.

오늘 발표내용 중 통일에 관한 논지 대부분의 내용에 전적으로 동의하면서도 “어떻게”라는 전략에 있어서는 좀 더 고민하고 대책을 마련해야 할 사항들이 많이 있다고 본다. 즉, 통일의 필요성과 이를 위한 준비를 해야 한다는 점에는 이의가 없을 것이나 어떠한 준비를 어떻게 해야 할 것인가, 한발 더 나아가 지금 우리는 무엇을 준비하고 단계적으로 실천해야할 것인가에 대하여는 중지를 모으고 토론을 활성화 할 필요가 있을 것이다.

발표자께서 제시해주신 ‘국민과 지도자의 통일의지와 열정, 북한동포의 지지를 얻어내는 것, 통일외교’ 등은 매우 중요한 필수요소이다. 특히 시민의식 차원에서 ‘선진통일교육과 선진통일운동을 체계적 조직적으로 확대하는 일’에 깊이 공감한다. 그렇다면 ‘선진통일교육’은 어떻게 해야 하는가? 본 토론자는 이 사안이 무엇보다 긴급하고 중요하며, 지금 우리가 직접 실천할 수 있고 또한 우리가 의지만 있다면 실현 가능성이 높은 방안이라고 생각하므로 시민교육 시각에서 토론을 전개하고자 한다.

   
▲ 한국선진화포럼(이사장 이승윤)이 23일 ‘통일 의식의 선진화 어떻게 할 것인가?’를 주제로 월례토론회를 개최하고 있다.
탈북 청소년들에게 한국 적응을 돕는 봉사활동 경험담을 들으면, 언어 사용을 비롯하여 남북간의 사회문화적 차이로 인한 개인의 의식차이가 매우 큼을 알 수 있다. 우리보다 앞서 통일을 이룬 독일의 경험에서 배울 점이 있다고 생각한다. 그런데 무엇을 어떻게 배울 것인가에 대해서는 의견이 상이하다.

독일 통일 당시 주독일 한국대사관 공사로 3년간 근무하였던 염돈재 선생은 <독일통일의 과정과 교훈>(2010)에서 "독일 통일의 원동력은 '햇볕정책'이 아니라 '힘의 우위' 정책이었다"고 주장한다. 그는 독일의 통일 과정에서 우리가 배울 점 몇 가지를 제시하였는데, 이중 “안정되고 부강한 대한민국’을 만들어 북한 주민들이 선망하도록 해야 한다”는 점과 '힘의 우위'를 확고히 해야 한다는 점을 강조한 것이 주목된다.

평화통일을 위해서는 무엇보다 내부적으로 단결된 강력한 대한민국이 선결 요건이라는 것이다. 로타 드메지어 전 동독 총리가 "분단은 분담을 통해서만 극복할 수 있다"는 주장도 고통을 분담하려는 국민적 능력과 의지가 그만큼 중요하다는 뜻으로 해석된다.

그렇다면 지금 이 시점에서 과연 우리에게는 통일을 향한 그러한 능력과 의지가 있는가에 대해 자문해보아야 할 것이다. 국가정체성, 선진통일의식, 국가발전, 사회적 책무성 등의 용어가 우리 교육현실에서 외면당하고 있는 상황이다. 오늘 발표해주신 훌륭한 내용에 얼마나 많은 젊은이들이 이러한 내용에 공감하고 통일의 부담을 짊어지려고 하는 마음의 준비가 되어있는지 의문이다.

독일은 사회복지를 서독이 하는 기준으로 실시하게 되어 많은 경제적 부담과 혼란을 가져왔었는데, 이는 우리나라의 통일 준비에 실제적 도움을 줄 수 있는 자료이다. 물론 독일은 그 위기를 잘 넘겨 이제는 매우 강력한 국가로 우뚝 설 수 있었는데 이를 가능케 한 것은 정치적 리더십과 독일 시민의식이라고 볼 수 있다.

능력과 의지를 갖춘 정치가와 시민을 배출한 독일교육은 우리가 본받을만한데, 무엇보다 한국에서도 내부적으로 강한 국가와 국민이 곧 통일선진화의 필수요소 아닐까? 그런데 오늘 언급하고자하는 독일 사례, 마이스터 및 선진시민양성 모두에서 성공한 독일과 한국은 교육시스템과 시민의식에서 큰 격차가 있는 것 같다.

올바른 역사와 민주시민의식을 갖추게 하려는 독일의 시민교육체제는 세계적으로 돋보인다. 물론 나치라는 비극적 시대를 경험한 후 현대에는 이에 대한 경각심을 갖고 더욱 체계적인 교육에 집중한 결과라고 볼 수도 있다. 시민들의 소질을 평등하게 살리고 세계적 장인정신을 갖도록 하며, 소통과 인성교육을 강조하는 독일의 교육 시스템은 매우 굳건한 시민교육의 토대를 형성한다. 한국에서도 통일을 위한 준비로서 정치교육이 반드시 요청되며, 독일의 교육 시스템은 시민교육측면에서 우리가 숙지하고 벤치마킹해야할 점이 많다.

첫째, 역사를 현재 삶의 교훈과 거울로 삼는다는 점이다. 지난해 폴란드의 아우슈비츠 수용소 탐방을 갔을 때 세계각지에서뿐 아니라 독일의 정치인으로부터 어린 학생들까지 현장에 와서 당시의 참상을 살펴보고, 다시는 그러한 비극이 없어야 한다는 것을 가슴에 새기게 하는 장면을 목격하였다. 과거에 대한 반성과 비판적 성찰이 강조되는 역사교육을 시민교육과정으로 적극 활용한다는 점이 발전적으로 생각되었다.

둘째, 사회전반에 장인정신이 뿌리내리고 있으므로 자신의 일에 자긍심을 갖고 각자의 직업과 일에 최선을 다해 임하는 자세가 발전의 원동력이다. 페스탈롯치의 후예답게 노작교육의 정신이 스며있고, 정신과 육체의 조화를 통한 실용적이고 근검한 생활이 습관화 되어 있다.

이를테면 독일에서 벤치마킹하여 우리나라에도 부분적으로 도입된 ‘마이스터 고등학교’ 체제는 학벌보다 실력을 중심으로 장인정신을 뿌리내리게 할 수 있는 좋은 시도라고 할 수 있다. 독일처럼 우리나라에서도 이러한 교육체제를 잘 살리고자하는 시민의식교육과 지원시스템이 필요하다. 그래야 통일을 대비하여 실용성에 기반하여 상대편 문화를 이해할 수 있고 진정성 있는 장인정신으로 차근차근 자신의 일을 천직으로 즐겁게 일하고, 합당한 대우를 받는 선진시민문화가 자리 잡을 수 있을 것이다.

셋째, 독일은 시민정치교육이 매우 중요한 평생교육 시스템으로 확립되어 있다는 점이다. 다양한 시민교육기관들이 많지만 특히 1952년 설립된 연방정치교육센터(BPB)와 주별 정치교육센터는 극우 극좌 같은 정치적 갈등을 시민의 힘으로 억제하고, 정파의 이해관계를 떠나서 선진시민문화를 만드는데 기여하였다.

독일 시민교육은 분단하에서도 공통의 역사, 언어, 문화로 독일민족의 연대감을 강조하였고, 동독주민에 대한 인권보장이 서독인의 의무임을 가르치는 통일교육까지 포함하였다. 이러한 정치교육은 서독인들의 성숙한 시민의식을 고취시켰고, 동독을 객관적으로 이해하도록 하였으며, 민족의 동질성과 사회질서유지에 기여하는 등 독일 민주화와 통일의 기반이 되었다.

한국이 독일의 통일로부터 배워야 할 점이 많지만, 무엇보다 시민의식을 성숙하게 해준 정치교육시스템의 도입이 시급하다고 생각한다. 건전한 시민의식교육을 통해 우리 국민들에게 민족적 정체성과 역사의식. 그리고 북한 인권보장에 대한 책임감을 느껴야 할 것이 중요하다.

아울러 장인정신을 기리며, 법질서를 존중하고, 타인존중과 열린 마음의 튼튼하고 강한 민주시민의식이 자리 잡는 것이 선결과제일 것이다. 이러한 정치교육을 위한 교육시스템 구축도 필요하다. 현시점에서 통일을 향한 준비로서 이러한 시민정치교육을 누가 어떻게 시작하고 실천해야 할지에 대한 방안모색이 시급히 요청된다. /곽삼근 이화여대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