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문과 지식의 미명 아래 저지른 '사실상의 대역행위' 숨은 손

헌재의 통진당 해산 결정은 대한민국을 구한 쾌거다. 그러나 헌재의 결정은 종결이 아니라 시작일 뿐이다. 통진당 주도세력에 대한 검찰 수사 등 마무리 과정도 중요하지만, 그중 심각한 게 1980년대 전후 우리사회 저변에서 진행돼온 지식-정보의 좌편향 구조를 정상화하는 작업이다. 통진당 해산은 헌재 결정문의 표현대로 민주질서를 파괴하려는 적으로부터 스스로를 지키는 방어적 민주주의를 법리(法理)로 하는데, 그러기 위해서는 건강하고 바람직한 지식-정보 생태계의 부활이 필수다. 그걸 점검하는 시리즈는 ①백낙청-리영희-조정래 등 좌파 삼인방이 지식-정보 오염의 뿌리다 ②반(反)대한민국-반미로 치달아온 좌편향 지식정보의 구조 ③무엇을 어떻게 할 것인가의 순서로 싣는다. <편집자>

①백낙청-리영희-조정래 등 좌파 삼인방이 지식-정보 오염의 뿌리다

   
▲ 조우석 문화평론가
헌법재판소의 역사적인 통진당 해산 결정 이후 정치적 위기에 빠진 케이스가 2011년 통진당 창당을 주도했던 인사다. 당시 심상정, 노회찬, 유시민 등이 "대중적 진보정당의 시대를 열겠다"고 호언했던 걸 우리는 기억한다. 그들이 내분 끝에 통진당과 결별했다지만, 헌재 결정문의 표현대로 대역(大逆·국가와 사회질서를 어지럽힘)행위를 한 당을 만든 원죄는 남는다.

야권연대에 매달렸던 새민련(당시 민주당)의 발등에도 불이 떨어졌다. 그들은 왜 당 차원의 사과를 하지 않는가? 국회의원 문재인, 이해찬 등은 요즘 "통진당 해산으로 민주주의가 상처를 입었다"고 불만인데, 그럴수록 자기 정치생명을 단축시킬 것이다. 이정희와 함께 야권연대 합의문에 서명했던 당시 민주당 대표 한명숙 등에도 책임을 물어야 정상이다.

이들만큼 관심있는 건 범야권 재야 쪽이다. 그들이야말로 현실정치를 조종하는 좌파의 몸통이자, 종북의 숙주(宿主)이기 때문인데, 그들이 엊그제 한 차례 움직임을 보였다. 신부 함세웅, 백기완, 목사 김상근 등이 주축이 된 ‘통합진보당 강제해산에 따른 비상원탁회의’는 22일 모임에서 “(1987년) 6월 항쟁 때보다 강력한 투쟁조직”을 선언했다. 불복 투쟁이 볼만할 것이다.

'희망 2013·승리 2012 원탁회의'를 주도해던 座長 백낙청

사실 야권연대를 이뤄냈던 '숨은 손'이던 원탁회의 멤버들은 10년 전 맥아더 동상 철거시위 이후 광우병 촛불집회,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반대시위, 제주 해군기지건설 반대투쟁을 주도하며 사회갈등을 증폭시켜왔다. 그런데 왜 '그 분'이 안 보일까? '희망 2013·승리 2012 원탁회의'를 주도해 야권연대와 후보단일화를 추진했고, 세월호 때도 특별법 재협상에 영향을 미쳤던 그 분 말이다.

서울대 명예교수인 영문학자 백낙청(76). 지난 반세기 좌편향된 대한민국 지식권력을 쥐락펴락해온 그야말로 범야권 재야의 좌장(座長)이자, 좌파 지식계의 대부다. 벗겨도 벗겨도 또 드러나는 양파 같은 종북세력 중 백낙청, 그는 가장 깊숙이 숨어있는 빅브라더다. 여하한의 검증을 한 번도 받지 않았으면서도 학계-시민단체를 포함한 전방위에서 지적 도덕적 권위를 행세해왔던 위험인물이기도 하다.

   
▲ 23일 오후 서울 여의도 국회 의원회관 통합진보당 김재연 의원실 앞에서 미화원이 의원실 관계자가 내놓은 물품들을 청소하고 있다. 헌법재판소가 통합진보당 해산을 결정함에 따라 국회사무처는 국회청사관리 규정에 의거해 오는 25일까지 당 사무실과 집무실을 모두 비워야한다고 통합진보당에 전달한 상태다. /뉴시스
필자는 1970년대 이후 좌파 지식권력-문화권력 핵심 중의 핵심으로 지식인 세 명을 지목한다. 교수 백낙청, 소설가 조정래, 저널리스트 리영희가 그들인데, 조정래는 총판매부수 1000만 부를 팔며 이 땅 젊은이들을 오도한 대하소설 <태백산맥>을 썼다. 지난 번 지적대로 통진당 이석기란 <태백산맥> 속에서 튀어나온 듯한 인물이라고 보면 그게 정확한 얘기다.

급진 좌파의 몸통인 조정래가 주로 젊은이들과 대중사회를 오염시켰다면, 지식사회를 좌편향으로 몰았던 주범은 한때 '사상의 스승'으로 추앙 받았던 <전환시대의 논리>의 저자 고(故) 리영희이다. 얼마 전에도 철학교수 한 명이 리영희가 썼던 <전환시대의 논리>, <8억 인과의 대화>를 읽고 “눈에 비늘이 벗겨진 지적 충격”을 경험했다고 고백(윤평중 지음 <극단의 시대에 중심잡기>)했지만, 대부분 지식인들이 리영희에게서 지적 세례를 받았다.

국가보안법 철폐와 주한미군 철수를 외쳤고, 북핵(北核) 옹호의 스타트를 끊었던 장본인도 리영희이다. 하지만 1970년대 이후 학문과 지식의 미명 아래 속으로 곪은 '사실상의 대역(大逆)행위'의 뿌리를 꼽으라면 단연 백낙청이다. 지식사회는 물론 문화계의 지형지물을 송두리째 바꿔놓은 거물이 그 사람이다. <창작과비평>을 창간한 1966년 이후 문학을 수단으로 좌파적 학술운동에 멍석을 깔아준 역할이 실로 엄청나다.

이제야말로 학계의 '숨은 신(神)'노릇해온 그를 도마에 올릴 때

호불호, 긍정 부정의 여부를 떠나 20세기 지식권력에 합당한 한 사람을 꼽으라면 백낙청이다. 조정래가 소설에 주력한 문단 사람이고, 리영희가 베트남 문제, 중국문제 분석을 주로 한 저널리스트라면, 그는 문사철(文史哲) 거의 전 부문, 인문사회과학 전체에 영향을 끼쳤다. 민족문학론을 설파했던 그의 문학이론은 좌파 지식권력이 시작된 1970년대 민중문화운동으로 번졌고, 1980년대 사회과학 시대를 낳았다.

인문사회학의 경우 오늘날 좌편향 지식사회의 구조를 만든 핵심으로 내재적 발전론을 만들어낸 국사학계의 김용섭(전 연세대 교수), 현대사 왜곡에 앞장선 역사학자 강만길(전 고려대 교수), 개발연대 이후 한국경제에 대한 저주를 내뱉었던 경제학자 변형윤(전 서울대 교수) 등이 꼽히지만, 백낙청이야말로 학계의 '숨은 신(神)'이라고 해야 한다.

놀랍게도 그에 대한 학계 내부의 비판은 전무했다. 온유해 보이는 외모와 달리 일관된 반미 운동을 벌여도 모두가 기꺼이 그를 따랐다.“미국의 혜택을 많이 받은 내가 반미주의자이겠느냐?”고 말하지만 그는 1990년 한반도 군축과 평화통일을 위한 선언에 서명했다. 미국이 한반도 분단에 책임을 통감하고, 전작권 이향과 주한미군 철수를 하라는 것이다.

2004년 초에는 시인 고은 등과 함께 ‘국가보안법을 폐지시켜주십시오’라는 성명서를 내기도 했다. 그 해 9월에도 가톨릭 신부 함세웅 등과 함께 ‘국가보안법 폐지촉구 원로 공동선언’을 했으니 그의 반미는 일관된 소신이다. 백낙청이 드디어 현실정치에 개입하기 시작한 것은 최근 10여 년 전이다. 김대중-김정일이 만든 2000년 6‧15 선언 전후가 타이밍이었다.

종북은 사회에 뿌리 내렸고, 지식과 정보의 형태로 몸을 바꿨다

이른바 중도주의적 변혁론을 들고 나와 좌파적 통일운동을 선동하기 시작한 것이다. 그게 좌우합작론의 변용에 불과했지만, 아무도 비판을 하지 않았다. 좌파 거물 백낙청에 대한 비판은 거의 철두철미 금기에 속한다. 1970년대 이후 이 땅 젊은이들 상당수가 극단적인 체제 부정, 자본주의 혐오, 반사회성향을 품어왔고, 바로 여기에서 통진당이 만들어지고, 이석기라는 반사회적 괴물이 만들어졌다면, 근본적인 책임은 백낙청을 포함한 좌파 지식인 삼인방이 져야 하지 않을까? 이번 역사적 헌재 결정문에는 이런 구절이 있다.

"자주파는 이른바 민족해방(NL) 계열로 우리 사회를 미 제국주의에 종속된 식민지 반(半)봉건사회 또는 반(半)자본주의사회로 이해하고 민족해방 인민민주주의 혁명이 필요하다고 주장하고 있다.… 자유민주주의 체제가 자본가 계급의 정권으로서, 자본가 내지 특권적 지배계급이 민중을 착취 수탈하는 구조적 불평등사회로 인식하고 있다."

지난 수십 년 백낙청-조정래-리영희 삼인방이 만들어낸 지식정보는 100% 그쪽이다. 새삼 반복하지만, 헌재의 통진당 해산 결정이란 종북의 종결이 아닌 출발이어야 한다. 종북은 사회 곳곳에 뿌리 내렸고, 특히 지식과 정보의 형태로 몸을 바꿨기 때문에 이에 대한 정리도 차제에 진행되어야 한다. 이 명백한 사안을 애써 외면하는 이가 있다면, 그는 지적으로 나태하고 정치적으로 무지하다는 얘기밖에 안 된다. 그 구조를 재확인해야 하고, 어떻게 할 것인가를 따져봐야 할 때가 지금이다. /조우석 미디어펜 논설위원, 문화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