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가 방송시장구조에서 UHDTV 콘텐츠 기대하는 건 사막서 고래 찾는 격

   
▲ 황근 선문대교수
본격적인 디지털시대에 들어서면서 방송기술은 하루가 다르게 변모하고 있다. 이 같은 디지털 미디어의 진화는 크게 세 가지 모델로 나눌 수 있다. 첫째, 위성방송, 케이블TV 같은 다채널모델이다. 이 모델은 20세기 후반 미디어진화를 선도해왔지만 최근 들어 기세가 꺾긴 모습이다. 그렇지만 앞으로도 상당기간 명맥은 유지할 것이다. 둘째, 양방향 모델로 디지털케이블이나 IPTV가 대표적인 형태다.

그렇지만 수용자들의 미디어접촉 패턴이 자기주도형으로 변화하면서 이 모델의 주도권이 스마트TV나 스마트 폰을 이용한 OTT(over the top)로 넘어가는 양상이다. 셋째, 고품질 모델로 HDTV와 3DTV 그리고 최근 확산되고 있는 UHD TV를 들 수 있다. 향후 홀로그램 TV로 진화할 것으로 전망되고 있다.

2014년은 새로운 고품질TV인 UHDTV 상용화 원년이라고 할 수 있다. 그 기폭점은 6월에 있었던 브라질월드컵이다. 주역은 일본이다. 일본 NHK가 월드컵 전 경기를 4K로 중계한 것이다(용어싸움도 만만치 않다. 우리가 UHD라고 하는 반면 일본은 소니를 필두로 4K, 8K, 16K라는 용어를 집요하게 사용하고 있다). 2010년 소니가 남아공월드컵을 3DTV로 중계한 것과 같은 맥락이다.

전통적으로 TV기술의 진화는 주요 대형 스포츠행사를 통해 이루어졌다. 멀리 1956년 멜버른 올림픽 컬러TV, 1960년 로마올림픽 위성중계를 시작으로 가깝게는 2012년 런던올림픽이 HDTV 상용화 전환점이 된 것에서 볼 수 있다.

물론 UHDTV가 얼마나 빨리 세계 TV시장을 재편할 것인가에 대해서는 여전히 미지수다. 그 이유는 컬러TV나 HDTV 역사를 보면 알 수 있다. 1928년 처음 만들어진 TV는 컬러TV였지만 시작은 흑백TV였다. 이는 TV도입으로 인해 피해 입을 것을 우려하던 영화사들의 방송사업 진입을 금지하는 대신 흑백방송을 하도록 한 미국 연방통신위원회의 절묘한 결정 때문이었다.

때문에 컬러TV는 30년 지난 1950년대 말에야 상용화되었다. 여기에 국가간 이해득실로 단일 국제 표준방식도 못 정해져 NTSC(미국), PAL(독일), SECAM(프랑스) 방식이 공존하고 있다. HDTV 역시 1964년 동경올림픽에서 일본이 처음 차세대TV기술로 발표하였지만 30여년이 지나도록 국제표준방식으로 채택되지 못하고 2000년대 이후에야 상용화되게 된다.

이렇게 새로운 TV들이 쉽게 상용화되지 못했던 이유는 TV단말기산업 주도권 때문이다. 현재 UHDTV 상용화를 주도하고 있는 것은 중국이다. Futuresource Consulting에 따르면, 2014년 전세계 UHDTV 판매량은 1천160만대로 전년대비 700% 증가했고, 이 중에 70%가 중국에서 판매된 것으로 나타났다. 반면에 서유럽과 북미는 각각 10%와 8%를 차지했다. 이 추세대로라면 2018년에는 1억대를 돌파해 전체 TV판매량의 38%를 차지할 것으로 전망되고 있다. 더구나 급속히 가격이 떨어지고 있어 보급추세는 더욱 가속화될 것이다.

   
 
우리나라 역시 지난 4월 케이블TV를 시작으로 위성방송 등이 UHD전용 채널을 도입하면서 본격적인 UHDTV 시대를 열었다. 당초 2014년 하반기 시험방송을 거쳐 2015년에 상용화하기로 했던 계획을 앞당긴 것이다. 기술에 총력전을 전개하고 있는 일본과 거대시장을 기반으로 추격해오고 있는 중국과의 경쟁에서 뒤처지지 않겠다는 의지다.

물론 중국기업들의 추격을 받고는 있다고 하지만 아직까지는 우리 기업들이 세계 UHDTV 시장을 주도하고 있다. 그렇지만 이미 22K UHDTV까지 선보이면서 80년대 한국에게 빼앗긴 TV시장 헤게모니를 되찾겠다는 일본의 도전이 만만치 않다. 벌써 2015년 1월에 열릴 CES2015에서 한국과 일본 전자업체들의 고품질TV 경쟁이 엄청날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하지만 문제는 급속한 확산에도 불구하고 UHD 콘텐츠가 턱없이 부족하다는 것이다. 역사적으로 보더라도 새로운 미디어가 상용화되는데 엄청난 시간이 소요되거나 중간에 소멸되었던 이유가 결국 콘텐츠가 뒷받침해주느냐의 문제 때문이었다. 콘텐츠산업은 성장이 매우 더디고 시장여건, 문화적 조건 등 다양한 외부요인들에 의해 불확실성이 매우 높은 산업이다.

1990년대 이후 매체 혹은 플랫폼 확장을 통한 콘텐츠 산업육성전략이 실패를 거듭해 온 이유도 바로 여기에 있다. 솔직히 케이블TV, 위성방송 등이 UHD전용채널을 만들었다 하더라도 국내에서 가용한 콘텐츠는 통 털어 수십 시간 분량도 되지 않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그중에 시청자들을 유혹할 만한 상업적 콘텐츠는 정말 몇 개되지 않는다.

UHDTV 성공여부 역시 거기에 걸 맞는 고품질 콘텐츠의 지속적 공급에 있다. 더구나 우리 방송시장은 콘텐츠사업자가 생존하기 힘든 매우 척박한 저가구조로 고착되어 있다. 그나마 고품질 콘텐츠를 생산해낼 수 있는 지상파방송사들은 UHD 실험방송조차 못하고, 700Mhz 주파수사용을 놓고 갈등하고 있다. 척박한 내수시장과 단말기 제조산업에 의존하고 있는 우리 미디어산업구조를 감안해 볼 때, 이같은 정책부재가 지속된다면 조만간 UHDTV 주도권이 일본이나 중국으로 넘어갈지도 모른다.

그나마 정부가 UHD 콘텐츠투자를 위해 사업자들간 공동 지원방안을 모색한다고 한다. 하지만 중요한 것은 요란한 이벤트나 형식적 지원 사업이 아니라 건전한 미디어생태계를 구축하는 것이다. 지금 같은 저가 방송시장구조에서 고품질 UHDTV 콘텐츠를 기대하는 것은 어쩌면 사막에서 대형 고래가 나오기를 바라는 것과 같다. /황근 선문대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