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진당 해산 기회…지식·정보의 오염 바로 잡아 건강한 사회로

헌재의 통진당 해산 결정은 대한민국을 구한 쾌거다. 그러나 헌재의 결정은 종결이 아니라 시작일 뿐이다. 통진당 주도세력에 대한 검찰 수사 등 마무리 과정도 중요하지만, 그중 심각한 게 1980년대 전후 우리사회 저변에서 진행돼온 지식-정보의 좌편향 구조를 정상화하는 작업이다. 통진당 해산은 헌재 결정문의 표현대로 민주질서를 파괴하려는 적으로부터 스스로를 지키는 방어적 민주주의를 법리(法理)로 하는데, 그러기 위해서는 건강하고 바람직한 지식-정보 생태계의 부활이 필수다. 그걸 점검하는 시리즈는 ①백낙청-리영희-조정래 등 좌파 삼인방이 지식-정보 오염의 뿌리다, ②반(反)대한민국-반미로 치달아온 좌편향 지식정보의 구조, ③무엇을 어떻게 할 것인가의 순서로 싣는다. <편집자>

②반(反)대한민국-반미로 치달아온 좌편향 지식정보의 구조

   
▲ 조우석 문화평론가
경제민주화 논의의 원조 격인 그는 오래 전부터 평등과 분배정의, 균형발전, 자립경제를 주창해온 사람으로 유명하다. 1955년 서울대 상대에 부임한 뒤 4·19 당시 교수 데모에 상대 교수로 유일하게 참여했다는 경력이 훈장처럼 따라 붙는데, 1980년대 종속이론 소개도 그가 주도했다.

지적-도덕적 권위를 자랑하는 그는 오래 전부터 “고지점령 식의 경제가 민주주의 가치를 훼손했다”며 박정희 비판에 앞장 섰다. 변형윤(87) 서울대 명예교수 얘기인데, 그가 말하는 평등-분배-균형발전-자립경제론의 배경에 마르크시즘의 세계관이 깔려있다는 걸 아는 이는 안다. 즉 박현채의 민족경제론과는 한 끗 차이다.

그들 눈에 한국사회는 제국주의 미국에 종속된 반봉건 사회(헌재 결정문에 등장하는 표현)에 다름 아니다.
고백하자. 그게 1980년대 학계의 화두인양 등장했고, 당시 모든 이들이 이 미친 토론에 매달리지 않았던가? 그런 19세기적 낡은 틀로 세상을 바라보는 지적(知的) 장애를 가진 이들이 아직도 수두룩하고, 그게 한국사회 발전의 발목을 잡고 있다. 헌재의 통진당 해산 결정은 이런 지식-정보의 좌편향 구조 혁파에 결정적 계기다.

한 학계 거두의 말“왜 김대중이는 38선을 열지 않는 거야?”

허위의식에 빠져 관념의 사치를 즐기기 딱 좋은 집단이 학계-문화계인데, 그걸 망가뜨린 사람이 변형윤-박현채뿐이랴? 좌파 삼인방 백낙청-리영희-조정래 말고도 지난 번 언급한 내재적 발전론의 태두(泰斗) 김용섭(전 연세대 교수), 현대사 왜곡에 앞장선 강만길(전 고려대 교수)도 모두 그쪽이었다. 1980년대 전후 학계는 말도 안되는 체제변혁론으로 부글부글 끓었다.

지금 거론된 7명의 학자 중 한 명의 얘기인데, 그는 1990년대 말 미국 유학을 다녀온 제자와의 대화 중 무심코 이렇게 말을 내뱉었다.“왜 김대중이는 38선을 열지 않는 거야?”북한과의 무조건적 통합을 서슴없이 말하는 것, 그게 통진당 자주파의 민족해방(NL)정서다. 섬뜩한 좌파 지식정보의 찌꺼기 제거야말로 ‘통진당 해산 이후’ 최대 과제라는 이 시리즈의 제안은 그 때문이다.

그 작업을 위해 좌편향 지식-정보는 어떻게 이 나라 학계의 지배적 인식체계로 자리잡았나 하는 과정을 파악해야 한다. 그건 1987년 민주화 항쟁을 전후해 대세로 등장했다. 당시 5공 정부가 유화책으로 이데올로기 금서(禁書) 기준을 일부 완화한 1982년 봄이 기점인데, 당시 현대사 연구의 수정주의 흐름을 포함한 좌파적 방법론이 학문적 시민권을 받는 계기였다.

무서웠다. 대표적으로 당시 변호사 박원순(현 서울시장)과 스님 원경(박헌영의 아들)등이 역사문제연구소를 만든 1986년을 전후해 학계의 젊은 피는 그쪽으로 쏠렸다. 그런 식의 좌파연구소는 당시 우후죽순 격으로 많았는데, 이미 1970년대 지식사회에서는 그쪽이 대세였다. 지적-도덕적 우위를 점유하는데 성공했던 백낙청 식의 민중문화운동이 보수적 지식체계와 문화권력을 대체할 카드로 급부상했다.

이런 움직임에 호응해 역사학-정치학-철학-사회학-경제학을 포함한 거의 모든 인문사회과학이 학술운동이란 이름 아래 좌파 패러다임을 도입했다. 이 구조를 한 사회학자는 “스승 없는 제자들에 의해 이뤄진 지적(知的) 쿠데타”라고 표현했다.(전상인 지음 <고개 숙인 수정주의>). 이렇게 대학 커리큘럼 바깥에서 이뤄진 좌파의 지식혁명은 한국사회 상부구조를 점령했다.

   
▲ 26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 본청 내 전 통합진보당 원내대표실 등 사무실이 텅 비어 있다. 헌법재판소가 통합진보당 해산을 결정함에 따라 국회사무처는 국회청사관리 규정에 의거해 지난 25일까지 국회 내 당 사무실과 의원실 등을 모두 비워야한다고 당에 전달했었다./뉴시스
80년대 사회과학시대란 “스승 없는 제자들의 지식 쿠데타”

지금 좌파가 쥐고 있는 헤게모니의 구조는 요지부동이다. 이명박 정부에 이어 박근혜 정부가 고전을 하는 이유도 맹렬하게 작동하는 좌편향 지식-정보의 구조 때문이다. 한 사회의 공식적인 지적-문화적 헤게모니가 이토록 짧은 시간 내에 허물어지고, 끝내 정치사회적 불안의 요인으로 등장한 것은 극히 드문 사례에 속한다.

이 과정에서 해방 이후 정부의 보호 아래에서 소박하게나마 자유주의의 전통을 유지해오던 관변(官邊) 반공주의 세력은 무력화됐다. 그렇게 부끄럽지 않는 건국세력이 어느 덧 수구 꼴통에 천덕꾸러기 취급을 받게 된 것이다. 대한민국의 제도권은 이렇게 일패도지(一敗塗地)했다.

지금 좌파의 지식권력-문화권력은 아카데미즘의 중심부로 성큼 진입했다. 인적자원 분포도 그렇다. 활동적인 50대 전후의 대학 교수는 출판계의 유명 베스트셀러 저자 그룹을 포함한 편집자-출판사 대표 등 대부분이 젊은 시절 지적-문화적 세례를 학술운동, 민중문화운동에서 받았다. 좌파 이념이 아카데미즘 내부에, 아니 당신의 가슴과 뇌를 점령한 것이다.

뿐인가? 좌파적 지식과 정보는 중고교 각급학교에도 스며들었다. 올해 초 친북 성향의 좌편향 역사교과서가 일선 학교에서 압도적 다수로 채택되고, 정통사관에 따라 쓰여진 교학사가 찬밥 신세인 것이 매우 상징적이다. 역사과목은 물론 사회-경제-국어-도덕 과목 곳곳에서 좌편향 지식과 정보는 지금도 10대 학생들을 망가뜨리고 있는 중이다.

“자본주의 망가뜨리는 자기파괴적 힘을 조심하라”는 슘페터의 명언

이런 지적 풍토의 대학 코스웍을 마친 사람의 상당수가 깜짝 놀랄 정도로 반기업적 정서를 표출한다거나, 자본주의 시장경제에 대해 적대적이기까지 하다는 것이 우연일 리 없다. 고학력일수록 반대한민국 정서를 내면화하고 있는 게 현실이다. 지난 16일 자유경제원이 주최한 연말토론회에서 필자는 그 점을 지적했지만, 뾰족한 해결책은 없었다.

그러다가 마지막 기회가 찾아왔다. 19일 헌재의 통진당 해산 결정은 이런 참담하고 자기파괴적 구조를 바꿀 수 있는 계기다. 경제학자 슘페터는 “자본주의 사회에는 자기파괴적인 힘이 작동한다”는 명언을 남겼는데, 그게 한국사회만큼 맹렬하고, 학문과 지식정보의 이름으로 구조화된 경우는 없었다.

좌편향 지식정보 오염의 정화 문제는 몇몇 자유주의자들의 당위적 요청, 원칙론적 주장을 넘어 올바른 철학을 공유하는 교육당국과의 연대를 포함한 전략적이고 구조적 접근이 요청된다. 쉬운 일이 아니다. ‘비정상화의 정상화’를 외친 박근혜 정부에서 첫 발자국을 뗀 뒤 향후 10년, 한 세대를 넘어 진행해야 장기과제인데, 보다 구체적인 방안을 다음 회에 제시해보겠다. /조우석 미디어펜 논설위원, 문화평론가